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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속 초록빛에 기대어☆]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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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續 초록빛에 기대어]
임강빈 시선집 / 빛나는시 100인선 / 인간과문학사(2015.07.03)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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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임강빈
좋은 시집 받아보는 일은
지기를 만난 만큼이나 반갑다
한 편 한 편
여백을 둔 시다
빗소리가 들린다
기다리던 비다
비는 사선으로 흔들기도 하고
직선으로 꽂히기도 한다
빗줄기가 끊기면 어떡하나
가늘어진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모처럼 흡족히 내렸다
다시 읽기 시작한다
요즘 시는
가뭄 타는 데 익숙하다
오늘 시집은
주룩주룩 빗소리로 흥건하다
풍문
임강빈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
아픈 이야기는
그저 떠도는 소리이기를 바란다
근거 없는 맹랑한 것으로
끝났으면 한다
나의 귀에
찾아온 슬픈 풍문은
멀리멀리 떠돌았으면 한다
바람이 절름발이 되어
제발 더디 왔으면 한다
소통
임강빈
나이 팔십 들어 동창들이 모였다
동심이 다시 피었다
오랜만에 만남이라
흥이 날 법한데
부위기가 그전만 못하다
귀가 먹어서
알아듣지 못하고
언성 점점 높아지고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소통이 안 되어
조금은 짜증스럽다
요즘 소통이라는 말이
왜 회자되는지 알 것 같다
팔십이 되어 만난 동창 모임
그래도 반가웠다
그게 아니더라
임강빈
시인은 시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깊숙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달라치면
덥석 시를 주곤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글자 한 자
자
시구詩句 하나에 매달리다가
고심하다가
마침내 찾아냈을 때의 기쁨
그 희열로 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전부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말 건네고 싶다
임강빈
정류장 긴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노형! 하고 말을 건네고싶다
아이를 업고 있는 젊은 여인하고도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낯설지 않은 사람들의 풍경
버스가 도착하면
우르르 행선지 찾기에 바쁘다
잠깐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전에는 말을 걸어오면
모르는 척하기 일쑤였는데
오히려 내 쪽에서
자꾸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민들레 2
임강빈
마당에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전쟁도 아닌데
간밤에 낙하산 부대가 내려왔다
사뿐히
은밀히 숨으라는 명령에 따랐다
총성은 없었다
더는 머물 이유가 없어 복귀하기로 했다
가볍게 가볍게
짐을 꾸려라
낙오되면 어떡하느냐고
한 병사가 애걸복걸한다
깃털의 준비는 끝났다
출발이다
표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가벼워서 좋았다
누수漏水
임강빈
며칠을 두고
굵은 빗소리가 요란하다
벽이 눅눅하다
틈새로 비가 새는 모양이다
방수제로 손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집도 주인도
함께 늙어간다
친구 이름도 성도
약속 시간도 까먹는다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
나의 누수 현상이다
연꽃
임강빈
시간에 갇혀 연못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빈 하늘이
성큼성큼 휜 구름이 모인다
돌을 던진다
가늘게 퍼지는 파문
수면 아래는
탁한 냄새
꽃 한 송이 쑥 올라와서
가부좌跏趺坐한다
아, 연꽃
참새
임강빈
너의 부지런은 당할 수가 없다
우리가 부스스 눈을 뜰 때
이미 너는 산뜻하게 깨어 있었다
처마 밑으로 혹은 나뭇가지를
쫑쫑 오르내리며 아침을 노래했다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새
흔히 볼 수 있는
아부 평범한 새
흔해서 사랑을 덜 받는 새
작은 새
참새가 짹짹 운다 해서
짹짹은 너희 무리
통틀어 붙인 대표음
운다는 것도 독선적인 표현
너무 상심 말라
한 번도 멀리 떠난 적 없는 새
우리는 친할 수밖에 없는 사이
깜빡했구나
무관심으로 살아 왔다
참새여, 미안하구나
반취半醉
임강빈
계곡 아래로 단풍이 왔네
잡다한 것 버리고 혼자 왔네
반나절이 훌쩍 지나고
뭔가 허전한 것 같아
술도 없이
공연히 마시는 시늉만 했네
햇살은 너무 부시고
진홍빛 잎잎이 손을 흔들며
그냥은 견딜 수 없어
미리 취했네
단풍과 반반 취하기로 했네
으름덩굴
임강빈
산에 있어야 할
으름덩굴이
도시로 나들이 왔다
몇 해 전 대문 옆에
으름덩굴을 옮겨 심었다
처음엔 시름시름하더니
그 덩굴이 기세 좋게 감고 올라가
얼마나 뻗었나
그걸 바라보는 일이나의 낙이 되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나와
다닥다닥 땅을 향해
등처럼 드리운 자줏빛
꽃
바람 없는 날이면
그 짙은 향기가 가관이다
산에 있어야 할 그 향기가
지금은 넘쳐서
이웃에게 무료 서비스하는 중이다
솟대
임강빈
나무가 된새야
날고 싶은 새야
파닥파닥
나는 연습도 생략한 채
장대 꼭대기에 앉아서
겨울바람이 차구나
철새떼가
파도치듯 까맣구나
부끄럽다
임강빈
씨-발 씨발
단골로 내뱉은 나의 옥지거리
벌써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뭔가 성 안 차서 그랬을까
혼란스러워서 그랬을까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왔다
소리소리 질러도 하늘은 멀고
풀잎에 업힌
작은 이슬만 부끄럽게 됐다
선인장
임강빈
꽃에도 가시가 숨어있다는데
차라리 홀가분합니다
전부 벗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입니다
단단히 무장을 했습니다
이미 알고 찾아왔으니
몸조심하라는 팻말은
따로 붙이지 않겠습니다
색깔은 나름대로 준지되어 있습니다
좋은 걸로 골라보시오
가시에도 황홀할 때가 있습니다
스냅
임강빈
거실 방바닥에 엷은 햇살이 된다
그것과 몇 마디 건네다가
퇴색한 스냅 사진을 다시 들춘다
거의가 술잔을 높이 들었다
술을 사랑했고
견딜 수 없던 추억이
순간을 스친다
슬픈 과거는 아름답다
멀리 여행한 것 같은데
늘 제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잇을 뿐
인생은 역시 짧구나
정색한 기념 사진은 언제나 쑥스럽다
찰칼찰칵
한 컷 내 진솔은 어디l 있느냐
울밑에 선 봉선화야
임강빈
여름에 피는 꽃은
요염하거나 빛깔도 진하지 않다
오히려 수줍다
봉선화
우리가 울먹이며 부르던 노래
불러서 시원하던 노래
폭양은 깊고 길었다
원산지는 몰라도
이미 우리 곁에서 우리꽃이 되었다
아래로 눈뜨고 피는 꽃
긴긴 여름날
처량하게 부르던 노래
봉선화 긴 가락
달동네*
임강빈
납작납작한 지붕이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울음소리가 없는 동네
문단속이랑 것도 없습니다
좀은 골목
가파른 등성이
달빛도 헉헉거립니다
취중에 어지러이 발자국 애내지 않도록
한밤중에만 눈이 내립니다
세상이 모두 발 아래입니다
솜씨 좋은 작가의 앵글이 아닙니다
깜박 졸다가 찍은 신의 작품입니다
손끝이 시립니다
오장이 짜릿합니다
관광차 들르십시오
대한민국 마지막 달동네입니다
* 서울 관악구 신림7동 101번지 난곡
감정의 무게
임강빈
계절이나 장송 따라
사람의 마음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즐거울 때의
슬플 때의 색깔은 다르다
육십 킬로그램
이쪽저쪽인 나의 체중
물론 감정가지 포함된 몸의 무게이다
순수한 감정의 양量은 얼마나 될까
증오를 달아보았다
추가 한쪽으로 기운다
고독은 어떨까
역시 아래로 처진다
중심이 잡히지 않아
저대로 측량하기 어렵다
사랑도 마찬가지
시기 심층시층까지
정확히 알아내기란 힘들다
시가 쉽게 씌어진 날
임강빈
왠지 수상쩍다
너무 쉽게 시가 씌어진 날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모두가 어렵다 하는데
나만 편안할 수 있는가
고뇌와의 싸움에서
일찍 항복한 것은 아닐까
죄송하다
애써 위장한 것은 아닌데
쉽게 시가 얻어진 날은
왠지 두렵다
일상의 나사를 조인다
긴장을 힘써 조여본다
추억
임강빈
기역자 형型의
조가 지붕 한 채
반듯한 울타리
짙은 녹색으로 둘러쳐 있었다
그 안엔 노란 탱자가
시나브로 익고 있었다
우릉 우르릉 탈곡기 소리
앞마당에 멈췄다
이때다 싶어
몇 개를 슬쩍했다
가시에 찔리기는 했지만
가득한 호주머니 속의 향기
지금 그 자리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어둑어둑할 때면 수선 떨던
그 참새 소리 뜸하고
탱자 짙은 향기
그 추억도 적막하다
뭐 좋은 일없습니까
임강빈
하루는 하늘에게 물었다
뭐 좋은 일 없습니까
하루는 땅에게 물어보았다
뭐 좋은 일 없습니까
역시 묵묵부답이다
심심해서 이번에는
산을 향해 물어보았다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심심해서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살랑살랑 이파리들만
은빛으로 번쩍일 뿐이다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속삭이듯 건넨다
절간 같다고 한다
나에게 자문하기로 했다
좋은 일 없는 것만으로
자족自足하라 한다
그 말씀 진짜 같다
버들강아지
임강빈
교도소 철문이 활짝 열린다
드르륵 하는 금속성金屬聲
웅성대는 사람
막혔던 시간이 일제히 쏟아진다
오랜 만남의 포옹
자유를 심호흡한다
난사亂射하던 햇살이
높은 담벽을 꺾여 돌아간다
정지된 시간이 되살아나는
한 컷의 스케치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배음背音으로 깐다
시냇가 부푼 버들강아지
망설임
임강빈
이렇게 옹졸할 줄이야
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일
예쁜 꽃 앞에서
참 부럽다는 생각]
딸까 말까
큰 일보다는
작은 일일 때의
이 망설임
어느 쪽을 택할까
하루에도 몇 번
이 얄팍한 망설임 앞에 선다
외등外燈
임강빈
골목을 지키는 외등 하나
낮이면 더 추위를 느낀다
모두가 동동걸음이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무관심은 어디에서나 춥다
함박눈이 내린다
형광등을 껐다
이중 우윳빛 유리창 때문일까
눈송이가
솜 조각만큼은 커 보인다
합박눈이 방안을 기웃거린다
들어오려고 애쓴다
창을 열었다
외등 불빛 아래로
함박눈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유등천 산견散見
임강빈
유등천 사이로
도시 계획인가 뭔가 해서
길만 자꾸 넓히더니
사람의 왕래도 여전 뜸하고
어쩌다 트럭이 지나가면
뿌연 흙먼지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좁은 소년으로
지랄한다 욕도 해댔지만
그게 아니었다
육차선
포장한 도로로 변해버리고
앞 다투어 집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에 가리어
산이며
능선을 전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서대전에서 한국조폐공사 공장 쪽
버드나무가 한 줄로 늘어서서
유등천 뚝방애도 한 줄로 서서
겨울 때를 털어내고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길게 늘어선 버드나무가지
아래로 아래로 쏠리는
저 초록빛
답답하다 생각이 나면
유등천
버드나무로 와서
이 기막힌 초록빛이나 만나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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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대개 ‘정년퇴임’을 하면 칠, 팔년 정도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다.
내가 정년퇴임(1996)하고 지금껏 살아 있으니 진짜 100세 시대에 진입하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재주 없는 나로서는 ‘시’하나로 벅찼다. 이완 이것 하나라도 충실하자 했으나 별무 성과다.
시 쓴다는 것은 무상無償의 즐거움에 있다. 그 즐거움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평생 시집 12권이 전부다.
그 중 6권의 시집에서 시선집《초록빛에 기대어》가 나왔고, 나머지 중에서 뽑은 것이 두 번째 시선집이다. 이번 시선집도 역순으로 했다.
문단에 등단한지 어언 회갑을 보게 될 나이가 되었다.
허송세월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부끄럽다.
2015.6
대전 구봉산 아래 임강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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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빈 詩選集 [※속續 초록빛에 기대어※]
[ 임강빈의 시세계 ] -
가장 한국적인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시학
유한근
(문학평론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충청도 양반골 대표 시인으로 박용래와 한성기, 그리고 임강빈 시인을 든다. 평자들은 임강빈 시인의 시정신을 선비의식과 중용사상으로 말하곤 한다. 이는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시인에 대한 예의적인 차원의 담론이 아니라 시세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집약된 평가이다. 임강빈 시인이 절제된 말과 행동, 풍란 향기와도 같은 인품에 걸맞은 시세계를 60년 가까이 일관되게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임강빈 시인은 45년 가까이 교직에 몸 담아왔고, 1956년《현대문학》지로 문단에 데뷔한 후 고향에서 1969년 첫 시집《당신의 손》을 비롯한 12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자연인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담은 이 시선집《속續 ․ 초록빛에 기대어》의 서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토로한다. “재주 없는 나로서는 ‘시’하나라도 벅찼다. 이왕 이것 하나라도 충실하자 했으나 별무성과다/시 쓴다는 것은 무상無償의 즐거움에 있다. 그 즐거움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시인의 말’에서)”라고.
따라서 필자는 이 ‘시인의 말’에서의 ‘무상無償의 즐거움’이라는 언어를 화두로 삼아 이 시선집에 묶은 시를 감상하려 한다.
1. ‘무상無償의 즐거움’과 불교 인식
무상無償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경지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시정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안빈낙도의 시정신은 절제 미학으로 가능해진다. 서거정은《동문선》에서 “기호嗜好는 성품을 흐리게 하고, 욕심은 마음의 연못을 출렁이게 하니, 이는 만인에게 다 똑같으나, 절제하는 사람은 현자라 일컫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도 절제의 미학은 좋고 싫음으로 인해 성품을 흐리게 하지 않고 마음 밭이 잔잔해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다. 공자의 시편에서의 ‘사무사思無邪’의 미학과도 다르지 않다. 또한 중용의 시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임강빈 시인의 시는 시어에서부터 시 구조는 물론이고, 시정신까지도 절제 미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에 갇혀 연못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빈 하늘이
성큼성큼 흰 구름이 모인다
돌을 던진다
가늘게 퍼지는 파문
수면 아래는
탁한 냄새
꽃 한 송이 쑥 올라와서
가부좌跏趺坐 한다
아, 연꽃
-시 <연꽃> 전문
시 <연꽃>은 11행으로 구성된 소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연꽃이라는 시적 대상을 불교적 인식과 자연친화 상상력을 통해 우주적으로 형상화 시이다. 연못 속에 “비친 구름을 시간에 갇혀 지나간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연못에 빈 하늘과 구름들이 모여든다고도 표현한다. 이러한 인식은 한 톨 모래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불교적 인식의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 인식이 한 송이 연꽃과 인因과 연緣을 맺는다. 5행의 돌을 던진다/가늘게 퍼지는 파문”과 “탁한 냄새”가 “꽃 한 송이 쑥 올라”오게 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다분히 불교적이다.
불교적 인식의 핵은 인도의 논리학인 인명因明논리다. 인명 논리는 신인명新因明과 고인명古因明이 있다. 신인명新因明의 삼지三支는 종宗인因유喩이다. ‘종’은 단안斷案이다. ‘인’은 소전제에 해당하며, ‘유’는 대전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신인명은 연역법에 해당된다. 그러나 고인명古因明은 종宗-인因-유喩-합合-결結의 5분작법分作法으로 비논법比論法이다.
이런 인도논리학을 이 시에 대입한다 할 때, 역으로 ‘신인명’에 대입해야 한다. 이 시의 1,2,3,4행은 유喩이고, 5,6,7,8행은 인因이며, 9,10,11행은 종宗이 된다. 물론 임강빈 시인이 이러한 인도의 논리학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많은 서정시인의 시적 인식 방법이 이러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분석 때문에 그것을 끌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 시인들의 시가 순발상이든 역발상이든 이러한 인식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찌되었든 임강빈 시인은 절제된 언어와 불교적 인식을 통해 작은 오브제 속에서 큰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의 다른 시는 <승천-민들레에게>이다.
그 넓은 땅 제쳐 두고
하필이면
궁핍하게 태어났다
돌 틈 사이에서 아슬아슬했다
여전 궁핍은 따라다녔지만
청춘은 길었다
밤낮 걱정으로
호호백발이 되었다
이제는 승천할 차례다
우리가 만난
헛된 시름 털어 버려라
가벼이 승천할 차례다
-시 <승천․ 민들레에게> 전문
이 시는 민들레라는 시적 대상을 ‘승천’이라는 시어를 통해 새롭게 인식한 시이다. 시인은 민들레를 돌 틈 사이에서 궁핍하게 태어난 존재로 인식한다. 하지만 청춘은 길었고 “밤낮 걱정으로/호호백발이 되었다”고 인식한다. 민들레는 속씨식물문의 쌍자엽강에 속하는 식물로 줄기는 없고, 잎이 뿌리에서 뭉쳐나며 옆으로 퍼진다. 잎 가장 자리에 톱니가 있고 털이 있다. 이 털을 관모(깃털)이라고 부르는데, 흰색이고 뿌리가 7-8㎜인데 반해, 그 털의 길이는 6㎜쯤 된다고 한다. 그 관모를 시인은 호호백발이라고 표현한다. 민들레를 자기화한 표현이다. 땅 가까이로 퍼져나가는 잎과 깃털의 이미지를 시인 자신과 동일화하면서 승천 선험을 한다. 그 승천을 시인은 ‘가벼운 승천’이라고 말한다. “헛된 시름 털어 버”리고 세상에 대한 모든 걱정과 고통, 세속의 짐을 벗고 가볍게 승천하는 민들레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그 민들레를 통해 죽음까지도 초월한다. 시<생애>의 “명함 한 장 없이/가볍게 살다”가는 생애, “풀잎에 머물다/또르르 이슬로 사라”지는 삶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시는 삶에 대한 관조와 초월의식 없이는 이 또한 가능하지 않은 선비 의식이며, 불교적 인식이다. 이러한 시인정신을 일상인들도 본받을 때 ‘무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시인정신과‘천의무봉’의 시학
시인정신은 그 시인의 주관적 정신이다. 서정시의 개념이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가장 짧게 표출한 주관시”라 할 때 시인정신도 곧 주관정신이 된다. 주관정신이 곧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시인은 하나의 주관정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것이 독창적인 창조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정신은 시인의 시창작법이라는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 개인적 모티프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평자들의 말을 빌려, 임강빈 시인을 선비와 중용의 시인으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시법이 불교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봤다. 그러나 이러한 탐색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라 좀 더 살펴보려 한다.
좋은 시집을 받아보는 일은
자기를 만난 만큼이나 반갑다
한 편 한 편
여백을 많이 둔 시다
빗소리가 들린다
기다리던 비다
비는 사선으로 흔들기도 하고
직선으로 꽂히기도 한다
빗줄기가 끊기면 어떡하나
가늘어진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모처럼 흡족히 내렸다
다시 읽기 시작한다
요즘 시는
가뭄 타는 데 익숙하다
오늘 시집은
주룩주룩 빗소리로 흥건하다
-시 <시집詩集> 전문
이 시 <시집>에서 우리는, 임강빈 시인이 선호하는 시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그 시는 “여백을 많이 둔 시”이다. 그런 시를 시인은 갈증을 해소해 주는 시로 여긴다. 그 비가 사선으로 흔들리든 직선으로 가늘게 내리든 끊기지 않으면 된다. 흡족하게 내리면 된다. 그러나 “요즘 시는/가뭄 타는 데 익숙하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직선으로 가늘게 내리는 비는 곧 절제되니 서정시일 것이고, 사선으로 내리는 비는 서정시의 변용된 시일 것이다. 그리고 가뭄 타는데 익숙한 시는 팍팍한 시, 정서가 메마른 시, 난해시, 민중시, 실험시 등등을 의미할 것이다.
현대 서정시의 미학을 단정적으로 말하면 형상성에 있다. 발생적 서정시에 획기적인 변혁을 준 프랑스 시인들의 미학이다. 그들은 서정시를 순수한 표현을 통한 예술적 형식으로 믿었다. 사상이나 정서의 절망적인 체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예술적 시도를 형상성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초월성을 획득하려는 예술적 시도인 셈이다. 삶의 공소함, 무기력, 절대고독과 절망, 비인간화와 무신론 팽배 등등 세기말적 체험에서 일탈할 수 있는 초월적 국면을 이들은 형상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정서를 해체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맞는 신서정을 회복하고 새로운 신서정시를 탐색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임강빈 시인의 고집스러운 시법이 주목된다. 시의 내용 또한 시대에 맞는 것이야 하지만, 시의 형식도 존재이며, 시인의 실존적 당부이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강빈 시인의 정서와 형식은 간과될 수 없다.
가장 확실한 건
이승을 떠나간 사람하고는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일이다
아직 푸른 기가 남아있는
가로수 은행나무
부채꼴 모양의 이파리가 흔들린다
어떻게 알았을까
노란 은행 열매가 미리 와 있다
이 사실도 모르고
황망히 떠났으리라
하늘이 하도 맑아서
혹시나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욧
찍찍 잡음만 되돌아온다
그대로 내버려두는 건데
공연한 짓 했나싶다
-시 <모일某日> 전문
시 <모일 某日>은 일상의 어느 날, 전화의 불통을 모티프로 하면서 자연과의 소통을 꿈꾼 시이다. 이승을 떠나간 사람과는 불통이 확실하지만, 은행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는 것은 은행열매가 미리와 있음을 증거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혹여 알지 못하고 떠난 은행잎 같은 인간의 존재, 그 존재를 환기시켜 주는 시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나무를 비유로 하여, “하늘이 하도 맑아서/혹시나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는 시인의 의식은 하늘이 표상하는 바 의미인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초월적 그 무엇과 소통하고 싶다는 시정신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자연친화 상상력은 자연과의 소통을 시작으로 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위한 상상력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 인간과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소통이 문제되는 이 시대에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은 지구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도 될 것이다.
활모양의 긴 뿔을 한
동남아 지방에서 써레질하는 소나
포악하게 길들여진 스페인의 투우나
소는 소지만 왠지 낯설다
일본사람은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
조선어독본 첫 장에
<소>를 가르쳤다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산 그림자 밟는 걸음
위태위태하면서도
뚜벅뚜벅 한결같았다
외양간에서 별 보며
반추하는 조선의 소야
글썽대는 눈가에는
조선의 정이 스친다
-시 <소> 전문
위의 시 <소>는 ‘조선의 소’, 한우를 노래한 시이다. 조선의 소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을 노래하려 했고, 나아가서 한국인의 은근과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제는 없어져 버린 은근과 느림, 그 미학을 ‘조선의 소’를 통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한우를 ‘조선의 소’라 바꾸어 지칭한 것에는 의도성이 있다. ‘한우’라는 언어는 우리의 먹거리인 소고기라는 의미로 변질되어 상용된다. 현대에서의 한우는 농사는 짓는 동반자로서의 동물이 아니라 식용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어독본의 소를 거론하면서 한국의 소인 ‘조선의 소’라는 시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을 보인다. 이 시의 3연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산 그림자 밟는 걸음/위태위태하면서도/뚜벅뚜벅 한결같”이 걷는 조선의 소, 그 소는 우리 기억 속의 소이며, “외양간에서 별 보며/반추하는 조선의 소”이다. 그리고 그 소의 “글썽대는 눈가에는/조선의 정이 스친다” 여기에서의 ‘조선의 정’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말 속에는 많은 여백이 있다. 그 여백 속에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 사상이 들어 있다. 백의민족의 한恨과 인정이 있고, 선비정신과 중용사상도 있다.
이렇게 애써 꾸미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시학이 임강빈의 시학이다.
씨-발 씨발
단골로 내뱉은 나의 욕지거리
벌써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뭔가 성이 안 차서 그랬을까
혼란스러워서 그랬을까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왔다
소리소리 질러도 하늘은 멀고
풀잎에 업힌
작은 아침이슬만 부끄럽게 됐다
-시 <부끄럽다> 전문
우리 민족은 부끄러움을 아는 백성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러한 우리를 꾸짖는 시가 <부끄럽다>이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거칠고 황폐한 일상을 환기하는 시라기보다는 이 시의 “소리소리 질러도 하늘은 멀고/풀잎에 업힌/작은 아침이슬만 부끄럽게 됐다”는 끝 3행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시법을 알게 된다.
“씨-발 씨발”이라는 욕설을 시인은 “뭔가 성이 안 차서” , “혼란스러워서”, 그리고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튀어나오는 언어로 인식한다. 아무리 큰 소리로 질러도 하늘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하늘을 인간의 분노와 혼돈과 갈등을 해소해주는 존재로 인식한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여기에서의 하늘은 시 <뭐 좋은 일 없습니까>에서 시인과 서로 자문하고 소통하는 하늘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마음과 정신을 가져 부끄러운 심사를 “풀잎에 업힌/작은 아침이슬”로 비유한다. 자신을 풀잎의 작은 아침이슬과 동일시한다.
이렇듯 임강빈 시인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시의 많은 부분들을 풀잎의 아침이슬처럼 감각적으로 인식하면서, 지나치지 않게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면서 그 자연의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3. 사물의 인식과 이미지의 새 지평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통 서정시는 귀에 의존하지 않고 눈에 의존한다. 운율을 중시하기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게 된다. 시인의 감정이나 사상을 귀에 호소하지 않고 눈에 호소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그것은 이미지스트의 공로이기는 하나, 그것의 극단화로 인해 서정시의 핵인 정서는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다른 공로는 시적 대상인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 과정을 이미지로 그리면서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탁탁
도리깨질을 한다
마당 구석에서 손으로 턱을 괴고
그 광경이 재미있었다
콩깍지에서 빠져나오는 소리
여기저기 튕기는 소리
적막을 흔들고 있었다
한잠을 자고 나면
외할머니는
윗목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고 계셨다
쪼르르 내려오는 소리
그 소리에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면
노란 대가리가 쑥 올라 있었다
-시 <적막寂寞> 전문
‘적막’은 고요하고 쓸쓸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의지할 데 없어 외로운 것을 의미한다. 그 언어를 위의 시 <적막寂寞>은 1연에서 소리가 흔드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아이러니를 내재한다. 적막이라는 시적 대상을 명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도리깨질 소리, 콩깍지 소리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반어적 의미로 “마당 구석에서 손으로 턱을 괴고”있는 적막, 콩깍지에서 빠져나오는 적막으로 인식한다. 그런 뒤, 시인은 과거 유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외할머니가 “윗목 콩나물시루에 물을” 줄 때 콩나물 시루벽을 타고 “쪼르르 내려오는” 물소리에 다시 잠이 든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침이면 쑥 올라오는 콩나물의 노란 대가리를 떠올린다. 그것을 적막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듯 임강빈 시인은 적막을 소리로 인식하면서 이미지로 표현한다.
등기 소포나
택배로 보낼까 했습니다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보낼 것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세월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일입니다
슬픔 자체가 세월입니다
외로움도 매한가지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지만
짐이 점점 커져서
보내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섭섭하다거나
야속타 하지 마십시오
뼈아픈 허송 세월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시 <허송> 전문
위의 시 <허송>은 자연물에 의탁하지 않는 특별한 시이다. ‘시간을 하는 일 없이 헛되게 보낸다’는 의미의 언어 ‘허송’을 “등기 소포나/택배로” 보내고 싶은데, “보낼 것이 너무 많아서” 어렵다고 시인은 이 시에서 인식한다. 그러면서 “세월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슬픔 자체도 세월이고 외로움도 마찬가지로 세월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짐이 커져서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취할 것은 취하지만/짐이 점점 켜져서/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소유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를 통해서 보면 시인의 정신은 무소유, 절제된 삶의 정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의 이러한 잠언적 표현구조는 임강빈 시인의 시에서는 드문 경우지만, 시정신을 짐작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양해를 구한다. “너무 섭섭하다거나/야속타 하지 마십시오/뼈아픈 허송 세월은/버리기로 했습니다/양해를 구”한다고, 재미있다. 시의 톤이 경쾌하고 가볍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이 시의 짐처럼 무겁다. 택배로 보낼 수 없다. 이 시 <허송>에서 시인은 ‘허송’을 ‘뼈아픈 허송’으로 표현한다. 일없이 헛되게 보내는 허송은 뼈아플 수 없다. 가벼울 뿐이다. 그렇다면 임강빈 시인이 무겁고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이 시를 통해서 볼 때, ‘슬픔=세월’과 ‘외로움=세월’이다. 슬픔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세월이다. 세월 그 자체가 슬픔이고 외로움이다. 서정 시인이 가장 무겁게 느끼는 그것이다. 그것은 ‘감정의 무게’이다. 시 <감정의 무게>를 보자.
계절이나 장소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즐거울 때의
슬플 때의 색깔은 다르다
육십 킬로그램
이쪽 저쪽인 나의 체중
물론 감정까지 포함된 몸의 무게이다
순수한 감정의 양量은 얼마나 될까
증오를 달아 보았다
추가 한쪽으로 기운다
고독은 어떨까
역시 아래로 처진다
중심이 잡히지 않아
제대로 측량하기 어렵다
사랑도 마찬가지
그 심층深層까지
정확히 알아내기란 힘들다
-시 <감정의 무게> 전문
이 시에서의 ‘감정의 무게’는 “육십 킬로그램/이쪽 저쪽인 나의 체중/물론 감정까지 포함된 몸의 무게”이며, “중심이 잡히지 않아/제대로 측량하기 어”려운 무게이고, ‘정확히 알아내기 힘든 심층까지’의 무게이다. 색깔이 다른 슬픔과 즐거움, 순수한 감정의 양, 그 무게, 증오 고독, 그리고 사랑의 무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감정의 무게는 시인의 존재, 그 자체의 무게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무게 때문에 임강빈 시인은 ‘쉽게 시가 씌어진 날’을 두려워하는가?
왠지 수상쩍다
너무 쉽게 시가 씌여진 날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모두가 어렵다 하는데
나만 편안할 수 있는가
고뇌와의 싸움에서
일찍 항복한 것은 아닐까
죄송하다
애써 위장한 것은 아닌데
쉽게 시가 얻어진 날은
왠지 두렵다
일상의 나사를 조인다
긴장을 힘써 조여본다
-시 <쉽게 시가 씌어진 날> 전문
위의 시에서 시가 쉽게 쓰여지는 이유를 시인은 “고뇌와의 싸움에서/일찍 항복한 것은 아닐까/죄송하다/애써 위장한 것은 아닌데”라고 의혹하고 반성한다. 고뇌라는 정체에 대한 무게 때문이 아닐까하는 회의다. 그래서 시인은 그 두려움 때문에 ‘일상의 나사를 조’이고 “긴장을 힘써 조”인다.
삶이나 인간 본체 규명을 위한 고뇌에 대한 항복을, 우리는 시 담론에서 시정신이 치열하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의 긴장성과 치열함을 시행 길이의 분량으로 혹은 시의 진지함과 주제의 중량감으로 저울질하게 된다. 그러나 임강빈 시인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위의 시들에서 보듯이.
질서는 말하지 않는다
가을 하늘은 더욱 그렇다
너무 투명해서 그럴까
자 건물 옥상에서
펄럭이는 깃발
그냥 넓은 가슴이라면 좋겠다
만나자고 한다
서로가 흔들어대며
어서 오라고 한다
적당한 접경에서
눈물 글썽이며
꼭 만나자고 한다
-시 <깃발> 전문
시 <깃발>은 유치환의 동명同名의 시와 그 인식의 모티프면에서 다르다. 유치환이 <깃발>이 ‘깃발’의 은유적인 사물에 대한 설명의 시라 한다면, 이 시는 ‘깃발’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시이다. ‘깃발’이 존재하는 의미는 하나의 의미를 표상하는 기호로서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질서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어서 오라고”“꼭 만나자고” 눈물을 글썽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좀 더 새겨봐야 할 부분은 2,3행 “가을 하늘은 더욱 그렇다/너무 투명해서 그럴까”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왜 만나자고 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전자의 경우, 전반부 6행은 산문으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건물 옥상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질서를 말하지 않고, 가을 하늘도 너무 투명해서 질서를 말하려 않는다. 그냥 넓은 가슴으로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서 산뜻한 이미지는 투명한 가을 하늘의 질서에 대한 침묵이다. ‘질서’는 규정된 사회 규범이나 윤리,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 혹은 지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넓은 가슴”은 넉넉한 포용력 있는 가슴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의혹으로 남는 부분은 ‘투명한 가을’의 의미망이다. 이 시어는 말 그대로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청명한 하늘, 숨김이 없는 하늘, 청결한 하늘을 의미한다. 그래서 규범이나 윤리처럼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그것으로도 좋은 하늘이기 때문에 “질서를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하늘처럼 깃발도 그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 6행에서 만나자고, 어서 오라고 “서로가 흔들어 대며”에서의 ‘서로’의 정체와 “적당한 접경에서/눈물 글썽이며/꼭 만나자고 한다”의 ‘접경’과 ‘눈물’이라는 시어가 의미하는 바와 ‘꼭’이라는 시어의 존재의미가 이 시의 관건이다. 여기에서의 ①‘서로’가 자아와 타자 혹은 하나의 대상과 다른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때 ‘접경’은 합일을 의미할 것이다. 작게는 소통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대해석해서 ②‘서로’의 정체가 ‘정正’과 ‘반反’이라 할 때, ‘접경’은 합合이 될 것이다. 또 ③분단국가인 한반도의 경우라 할 때, 그것은 남과 북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접경’은 통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①의 해석으로 봄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두 개의 객체의 합일이 필히 ‘꼭’ 만나기로 한다는 상징물로, 또는 눈물로 염원하는 상징물로 임강빈 시인은 ‘깃발’로 표상한다.
이렇게 필자는 시인의 육십갑자년 동안의 시를 조야하게 일별하면서, 임강빈 시인이 한국 시가를 표상하는 청결한 영혼의 서정시인임을 여러 각도에서 명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해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것은 시인의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시 속에 우리 한국인의 어제와 오늘의 삶과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행간의 여백을 탐색하며 시인의 정서와 사상의 중심까지 이르러야 온전한 시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여백은 투명하고 청결하다. 투명하고 청결한 만큼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이나 정서는 무한하다. 그것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탐색해내야 하는데, 그것은 어떤 방법보다도 반복해서 읽고 애송할 수밖에 없다. 시의 여백이 맑은 임강빈 시인의 시는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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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충청도 양반골 대표 시인으로 박용래와 한성기, 그리고 임강빈 시인을 든다. 평자들은 임강빈 시인의 시정신을 선비의식과 중용사상으로 말하곤 한다. 이는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시인에 대한 예의적인 차원의 담론이 아니라 시세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집약된 평가이다. 임강빈 시인이 절제된 말과 행동, 풍란 향기와도 같은 인품에 걸맞은 시세계를 60년 가까이 일관되게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중략)
필자는 시인의 육십갑자년 동안의 시를 조야하게 일별하면서, 임강빈 시인이 한국 시가를 표상하는 청결한 영혼의 서정시인임을 여러 각도에서 명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해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것은 시인의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시 속에 우리 한국인의 어제와 오늘의 삶과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행간의 여백을 탐색하며 시인의 정서와 사상의 중심까지 이르러야 온전한 시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여백은 투명하고 청결하다. 투명하고 청결한 만큼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이나 정서는 무한하다. 그것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탐색해내야 하는데, 그것은 어떤 방법보다도 반복해서 읽고 애송할 수밖에 없다. 시의 여백이 맑은 임강빈 시인의 시는 더욱더 그러하다
- 유 한 근(문학평론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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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강빈 시인∥
∙ 1931 충남 공주 출생
∙ 1950 공주중학교 졸업
∙ 1952 공주사범대학 졸업, 청양중학교 교사
∙ 1956 《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
∙ 1996 대전용전중학교 정년퇴임
∙ 시집 : 당신의 손(현대문학사 1969) / 동목(농경출판사 1973) / 매듭을 풀며(심상사 1979) / 등나무 아래에서(문학세계사 1985) /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창작과 비평사 1989) / 버리는 날의 반복(오늘의 문학사 1993) / 버들강아지(오늘의 문학사 1997) / 버리는 날의 향기(문학세계사 2000) / 쉽게 시가 씌여진 날은 불안하다(리토피아 2002) / 한 다리로 서있는 새(리토피아 2004) / 집 한 채(황금알 2004) / 이삭줍기(동학사 2010)
∙ 수상 : 충남문학상, 요산문학상, 상화시인상, 대전문학상, 정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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