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조코 벡-미국 선불교 여성지도자
교수직 내려놓고 불교 입문한 미국 선불교 선구자
40대에 교회 강연서 스님 만나
불교 가르침·명상 수행에 전념
선불교센터 다니며 불법 공부
사람들 삶 고민·문젯거리 상담
미국 내 선불교 활성화를 위해 앞장섰던 샬롯 조코 벡
샬롯 조코 벡(Charlotte Joko Beck)이 선불교를 처음 접한 때는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서였다.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결혼해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이혼 후 아이들 양육을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해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몇 년 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캘리포니아대에서 부교수로 재직한다.
1965년 어느 날 저녁, 교회에서 강연을 하는 스님을 만나게 됐다. 조코 벡은 스님이 그곳에 모인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강연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정통 기독교 학자들은 스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현란하고 복잡한 철학적 질문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청중들이 술렁대기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스님은 모든 질문에 매우 공손한 태도로 답하며 명료한 해답을 제시했다. 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그 상황을 수습해 나갔다. 그런 스님의 태도 또한 너무나도 공손하고 바른 모습이었다. 그는 사실 대학에서 강의하며 여러 명의 수재 혹은 천재를 만나보았고 그들을 교육했지만 그 어떤 지적인 천재도 스님처럼 깊은 지식과 그것과 동반된 우아한 태도를 겸비한 이는 없었다.
조코 벡을 이토록 감동시킨 스님은 마에즈미 로시(Maezumi Roshi, 일본 조동종 선사) 스님으로 당시 스님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선불교센터에 거주하며 미국에 불교를 전파하고 있었다. 조코 벡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서 불교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좌선을 실행하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얼마 후 조코 벡은 그 지역에서 좌선을 하는 세 번째 사람이 됐다. 스님은 매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샌디에이고로 와 신입 불자들을 도왔다. 조코 벡은 한 번도 빠짐없이 스님이 이끄는 강연과 법회 그리고 참선에 참여해 수행했다.
이후 일본에서 온 야츠타니 로시(Yasutani Roshi) 스님이 이끄는 대규모 명상 모임이 북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열렸다. 이 모임은 조코 벡이 더 깊게 불교를 이해하고 불심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명상 모임이 열린 후 5년 동안 로시 스님의 지도를 받은 조코 백은 불교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지식을 쌓아갔고 또 명상하며 수행을 부지런히 이어갔다. 조코 벡은 이후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1976년 대학에 사표를 낸다. 그리고 당시 캘리포니아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의 막내딸 브렌다(Brenda)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한다.
로스앤젤레스 선불교센터에 다니며 그는 그곳 사람들과 불교 공부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지닌 삶의 문젯거리와 고민거리를 상담하고 싶어 했다. 그는 특유의 친근함과 자상함으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마치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주의 깊게 듣고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돕고자 했다. 그와 이야기 나누고 마음이 가벼워진 불자들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면 그는 자신이 한 이야기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전해주신 말씀이며 자신은 그 말씀을 기억했다 상황에 맞게 찾아 전달할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좌선을 하는 조코 벡 (오른쪽 두번째).
1978년, 조코 벡은 마에즈미 선사의 세 번째 제자가 되며 삭발을 거행했다. 삭발식이 끝나자 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그의 친구들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그를 축하했다.
그 누구보다도 깊은 지적 호기심을 지녔던 조코 벡은 불교의 기본 철학과 율법뿐 아니라 불교의 전통과 역사, 서로 다른 종파들, 또 불교와 관련된 학문을 공부해 나갔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심리학을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며 기본 심리학과 불교 심리학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연구했다.
1983년 가을, 조코 벡은 샌디에이고에 마련된 선불교 센터 주지가 됐다. 1960년대 중반, 단지 세 사람만이 좌선하기 위해 모임을 하곤 했던 샌디에이고에 이제 선불교 센터가 들어서며 서부 지역에서 선불교의 급성장을 알렸다. 이듬해 2월, 조코 벡은 ‘선불교가 미국에서 어떻게 활성화돼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세미나를 개최했다. 뛰어난 지적 내용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열리는 세미나가 입을 통해 전해지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샌디에이고 선불교 센터에 모여들었다. 세미나가 인기를 끌며 선불교 센터에 등록하는 불자 수는 점점 더 늘어나갔다.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그는 청중들의 나이 혹은 사회적 배경, 성별, 그들의 자발성 정도에 따라 그때 그때 적합한 방향으로 강연을 펼쳐갔다.
교외의 소박한 건물에 불과한 샌디에이고 선불교 센터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어느 불교 사원보다도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갔다. 명상, 염불, 절하기, 혹은 다양한 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센터에 오는 불자들이 불교에 좀 더 쉽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여든을 넘긴 때에도 일주일에 5일은 명상 세미나를 개최해 스스로 불자들을 이끌어 나갔다. 또 세미나가 끝나면 참석한 불자 한 명 한 명을 만나 질문을 받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점을 살펴나갔다. 그의 지도하에 참선을 이어가던 5명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샌디에이고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일리노이주, 뉴욕 등에 있는 선불교 센터 운영을 도왔다. 84세의 나이에도 그의 에너지와 열정은 그칠줄 모르고 점점 더 불타올랐다. 심지어 호주에 선불교 센터가 세워질 수 있도록 돕기까지 했다.
만약 누군가 조코 벡이 선불교 교육에 있어서 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이라 말한다 해도 이는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정통적인 선불교 철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며 정통성을 이어나갔을 뿐 아니라 선불교와 심리학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학문 영역을 창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새로운 불교 철학에 대한 시각과 해석은 많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실제로 그가 분석한 불교에 입각한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론들은 심리학계 전문학자들로부터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1989년 그는 ‘선불교 그리고 사랑과 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2006년 89세의 생일을 보낸 후 그는 애리조나주의 프레스콧으로 이주해 2010년까지 강연과 집필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011년 6월 15일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코 벡은 분명 미국 내 선불교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 그리고 미국 선불교 전파의 역사를 새롭게 쓴 장본인이다. 중년의 나이에 우연히 접한 불교에 모든 열정과 집중력을 쏟아부었고 또 깊은 지적 호기심과 그에 동반되는 날카로운 분석력, 또 빠른 이해력으로 불교 철학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나간 조코 벡은 불교 철학 연구의 역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례를 남긴 인물이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