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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할배들
산티아고 순례기"
<들어가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는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인 성 야곱이 예루살렘에서 순교 후 그 유해가 이베리아로 옮겨와 스페인 갈리시아지방에 매장되었으나 그 행방이 묘연하다가 AD813년 후대 성 펠라지오가 들판에서 빛나는 별빛에 이끌려 야곱의 무덤을 발견하였고 알폰소 2세가 그 무덤위에 대성당을 지었다. 그래서 Santiago de Compostela는 ‘들판에 빛나는 별 성야곱’이란 의미이다.
-산티아고는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세계 3대 그리스도교 성지인데,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Santiago de Compostela를 성지로 선포하면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죄를 면죄하는 칙령"을 발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좀 더 순례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8세기경 남쪽에서 이베리아반도로 침임하여 당시 스페인국토의 대부분을 점령한 이스람세력(무어인)에 대항해서 당시 스페인 폴투갈 등 가톨릭 국가들이 벌인 레콩기스타 Reconguest, 즉 '국토회복운동'이 정치 종교적 투쟁 목적과 맞물려 이 순례는 더욱 활발하게 되었다. 이즈음 순례자들은 이슬람세력과 투쟁하며 싸울 때도 산타아고!를 외칠 정도로 성야곱은 당시 레온 왕국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코엘료가 산티아고를 소재로 책을 발표하면서 이 순례길은 유럽과 전세계에 더많이 알려져 많은 순례객이 다녀갔고 우리나라도 몇몇 선도자들이 이 길을 다녀온후 책자를 발간하고 제주 올레길도 이 길을 걷고 벤치마킹한 것이라니 그 반응이 뜨겁다. 좀 지난 통계이긴하나 이 길을 다녀간 순례객수로는 1위 독일, 2위 이탈리아, 3위 프랑스이고 우리나라는 2,000년초부터 4,000여명 이상이 다녀와 세계 10위권이고 동양에선 첫 번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 길이 종교적 목적외에 개인적동기나 자기성찰과 여행목적으로 찾는 발길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성야곱을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라 하며, 원래 라틴어 lago(야곱)+Santo(성인)가 합쳐져Santolago 였다가 후에 Santiago로 변형되었다.
<준비와 예행연습>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길이 있으나 그 중 프랑스길, 북쪽길, 銀의길, 폴투갈길이 대표적인 길이다. ①프랑스길은 생장 피드포르 Saint Jean-Pied-Port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길이 800km에 이르는 길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래된 길이다. ②북쪽길camino de norte은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 길로 대서양의 장관을 볼수 있으나 프랑스길에 비해 길이 거칠고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③銀의 길camino de la plata은 중남미에서 Sevilla세비야를 통해 들어오는 은의 운송경로로 가장 길다 ④폴투갈길은 아직은 시설표지들이 미비하지만 파티마 성모 발현지를 비롯 숨겨진 경관을 엿볼수 있는 길이다.
-우리 APPLE순례단은 70대 중반의 나이에 걸맞게 프랑스길 중 까스티야 레온Leon에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337km의 길을 보름간 걷기로 계획하였다
*APPLE은 Active, Proud, Peace, Love, Exodus의 약자로 칠순의 나이에도 활력있게 자랑스럽게 평화롭게 사랑하며 새롭게 출발하자는 나름의 의미를 담아 사과 로고가 들어간 순례자 유니폼도 멋지게 맞춰 입었다.
-아마도 레온을 우리 순례의 첫 출발지로 선택한 시몬할아버지의 생각은 프랑스 루트의 중앙에 자리한 지루하고 긴 메세타Meseta(고원 평야)를 피하고 레온이 고대 로마군단의 주둔지여서 중세의 거리와 건축물이 발달되고 대성당등 볼거리 문화유산이 많은 점과 보름동안 목적지 산티아고까지 걷는 거리로 적합한 점을 고려했으리라 보여진다.
-우리네 속담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듯이 산티아고의 실체도 잘 모르면서 그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이 선험자들의 도서와 인터넷검색으로 흘러넘쳐 우린 정작 영적인 준비는 소홀히하고 다가올 고통과 어려움을 줄이고자 물적준비에만 몰두하였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고 그속에 담는 내용물을 꺼냈다 넣다를 반복하며 때론 새로운 장비로 교채하면서까지 한여름을 그렇게 지새웠다.
-그래서 성경(마르코6/7-13)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워 파견하시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고, 또 다른 복음서(마태오6/31-34)는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하며 걱정하지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심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는 말씀과는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서도 우린 너무나 태연스럽게 인간적인 고뇌라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 변명으로 얼버무리고~~
-각설하고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에 올려 그 꿈을 실현코자하는 노력은 우리노후의 삶을 더 풍요롭게하고 더 살아갈 의욕과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수원 호매실 농사꾼 칭구 시몬 할아버지는 그런 꿈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실현코자 일찍이 국외로는 큐수올레길, 시코쿠사찰길을, 국내에선 여순남도길, 섬진강 벚꽃길, 태안반도해변길, 온양아산부곡사길, 은이,미리내성지,손골성지,성남 누리길 그리고 한양도성 성곽길들을 우리 모두에게 학습 훈련 시키고 우린 거기에 흔쾌히 동참하였다..그리하여 한낮온도 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속 어느 날에 손골성지의 성 도리 헨리꼬 신부님 찾아 산티아고 순례의 대장정을 신고하고 안전무탈을 강복받고 그렇게 출발하였다..
-그리고 출발전에 한마디 덧붙일 일은 흔히 하는 해외여행은 여행사가 짜놓은 일정에 따라 전문가이드가 있어 별다른 신경쓰지 않고 관광하면 되지만 자유여행은 미리 항공편 확보, 숙소예약, 공항이동수단, 관광지 교통정보 와 예약, 주변음식점 검색, 현지 날씨와 기온, 해외여행자보험가입 등등 사전에 준비하고 조치할 일이 태산같다.. 더구나 한두명도 아닌 9명에 대한 이런 사전준비는 더 더욱 그렇다. 다행히 요즈음은 인터넷과 구글위성 발달 덕분에 발품 팔지 않고도 편하게 한다지만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와 어눌한 손놀림으로 이들에 대한 인터넷 구매와 예약을 마무리한 시몬과 이냐시오 할아버지의 수고를 치하하며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시 작>
① 출국: 우리 산티아고 애플순례단은 당초는 11인이었으나 2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져 9인으로 그 구성인원은 김시몬/글라라부부, 강이냐시오/쏘피아부부, 최시몬/데레사부부, 정바오로, 그리고 정베드로/피데스부부이다. 드디어 디데이 ‘18년 8월29일(수)14시20분 루프트한자 LH713편으로 독일Furankfurt까지 10여시간을 가서 작은비행기로 바꿔타고 2시간 비행 후 마드리드 바라하스Barajas 국제공항 T2터미날에 도착한 시각은 12시를 넘긴 새벽이었다. 첫 출발지 레온으로 가는 열차가 07시05분에 있어서 우린 공항터미날에서 노숙자처럼 퍼질러 앉아 대기하다가 첫열차 운행시간에 맞춰 공항을 빠져나와 마드리드 북쪽에 위치한 Chamartin역에 가서 햄버거 샌드위치로 간단한 아침을 떼우고 레온으로 향했다.
② 도착: 레온Leon-Benedictinas 알베르게 등록, 버려진 여행가방
-오전09시30분쯤 레온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역에서부터 걸어서 중세풍의 우메도Humedo 구시가지와 마르셀로 성당, 가우디 건축물 Casa de Botines, 성 이시돌성당과 레온 대성당을 관람하고 근처 Bar에서 빵과 음료로 오찬을 대신한 후 5분거리에 위치한 수녀회 운영 베네딕트 알베르게(숙소)에 등록을 마쳤다. 깐깐한 프랑스할머니 봉사자로부터 주의사항과 침상을 배정 받고 간단히 샤워한 후 성 이시돌 성당 순례자 강복미사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시몬이 영어권을 대표하여 스페인어 신부님의 강복내용을 영어해설로 낭독하는 은총을 받아 우리의 출발이 은혜로움을 느끼게 한 순간이 되었다..
-8~9kg의 배낭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가운데 첫 알베르게 숙소 쓰레기 더미에는 누군가 쓰다가 버린 푸른색 여행가방이 한쪽 모서리의 누빔 바느질이 헤진 상태로 널부러져 있었다
내자 피데스가 발견하고 얼른 챙겨서 우리단원들의 여유짐(second bag) 넣는 공간으로 순례길내내 JACO trans(택배 서비스)에 활용하니 누군가에겐 필요 없으나 누구에게는 긴요하게 쓰이는“집짓는 이들이 버린 돌 귀퉁이의 주춧돌이 되었네”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1.첫출발 제1일차 (레온Leon~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 22km)
-아침 7시30분에 주모경 기도로 알베르게 숙소를 나선 우리일행은 어제 강복받은 성 이시돌성당앞 산티아고 표지석에서 힘찬 파이팅으로 첫 순례여정을 시작하였다..시내에 자리잡은 산 마르코스 광장을 지나며 십자가 아래 지쳐서 신발 벗은 순례자상을 보고 앞으로 걸어갈 우리들의 미래상과 같아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헷갈리기 쉬운 레온시내를 벗어나는데 꽤 긴 시간이 소요 되었다. 와중에 여성단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려 중간Bar에서 카페라떼 시켜서 준비해 간 삶은 계란과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였다.
-이어서 비르헨 델 까미노Virgen del Camino에 있는 교회처럼 생긴 성당의 높은 십자가와 12사도상을 보고 성당안쪽 성체조배하고 막 나오려는데, 고해소에 있던 신부님이 빙그레 웃더니 Sello!하며 손짓한다. 스페인어로 Sello는 순례자여권에 찍는 stamp를 말한다. 우리 9명 모두 여권에 '세요' Sello를 받고 신부님과 기념사진 찍은후 서울서 준비해간 핸드메이드 십자가 고상 선물로 드렸더니 신기해하며 반긴다. 이곳 스페인 사제들은 한결같이 나이든 노인들뿐이다.
-성당에서 나와 시내를 갖 벗어나자 프레스노 델 까미노Fresno del Camino부터 도로를 따라가는 길과 들판으로 가는 길로 갈리는 현판과 마주친다. 우린 공기 맑은 들판 길을 잡아 나갔다..
한참을 가는데 젊고 날씬하게 생긴 여인이 순례복장이라기보다 나플거리는 치마같은 옷을 입고 처량하게 걷는다. 가다가 관심쏠려 쉬는 곳에서 물으니 스위스에서 왔고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혼자 걷는다. 가려진 얼굴 자세히보니 목에 주름살로 보아 50대는 되어보인다..이후 이 여인은 바오로와 절친이라고 놀리는 구실이 되었고.. 십여일 후에 한 알베르게 숙소 위 아래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그러나 아무일 없었음을 맹세코 첨언한다..
-옥수수와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구릉지대 길 위를 강열한 태양 빛이 길다랗게 만들어 놓은 그림자 앞세워 걸으면서 간혹 버려진 듯 작물없이 노는 땅도 보이고 넓다란 들녁엔 작업하는 농부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언제 이 넓은 밭의 농작물을 관리하는지 의아스러운 생각과 복받은 이베리아 반도의 광활한 대지가 부럽다는 이런저런 상념끝에 오후3시경 레온의 숙소 봉사자가 소개해준 Casa de Jesus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등록후 여장을 풀었다. 마당에는 간이 풀장이 있고 동네 아저씨들 오가며 한잔 들이키는 Bar도 겸하고 있어서 좀 소란스러운 분위기다.
주민수가 500명도 채 안되는 시골마을치고 마트가 2개나 있고 파는 물건도 꼭 있어야할 생풀품은 모두 갖춰진게 순례객들이 많이 머물다 간 때문인 듯하다. 우린 오늘 저녁거리와 낼 아침식사에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하였는데 전부 50유로가 안되었다.. 아홉사람의 입을 이 가격대에 저녁과 담날 아침식사로 해결할 수 있다니 스페인은 물가가 정말 싸고 좋았다.
2.제2일차(비야르 데 마사리페~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 15km)
-오늘은 걷기 2일째, 어제 22km를 걸어서 뻐근한 몸도 쉴겸 오늘은 15km 지점인 오르비고Orbigo까지만 걷기로 하고 마을회관같은 알베르게 뒷문 Bar를 빠져나와 주모경 바치고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다. 오늘 걷는 코스는 어제와 비슷한 표고 800m 높이에서 오르 내림을 반복하며 뻗어나간다. 10km쯤 걸은후 아담한 비야반떼Villavante마을 모퉁이에 있는 맘좋게 생긴 Bar 주인아저씨에게 시원한 생맥주와 바켓트빵 샌드위치와 카페라떼를 스페인어 단어로 주문하니 반기며 바같 테라스까지 손수 날라다 준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고하니 스페인 건배사로 흥을 돋아줘 피로도 잊고 즐거운 휴식시간을 보냈다. 여기서도 어제의 스위스여성은 어김없이 우리 옆자리에 있었다.
-긴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서 4km쯤 나가니 중세풍의 성곽도시처럼 생긴 '오르비고'가 마치 미니어쳐 장난감처럼 눈앞에 강을 끼고 나타났다.. 우린 강을 가로 지르는 멋진 아치형 돌다리에서 인증샷 찍고 먼저 택배로 보낸 짐을 찾아 독일계 베네딕트재단에서 지원하는 Karl Leisner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단정한 품새가 느껴지는 이 숙소는 항가리 출신 젊은부부 봉사자가 유창한 영어로 우리의 등록을 돕고 시원한 물까지 서비스해 줘서 갈증을 풀어준다. 입구와는 다르게 안쪽은 비록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 한거지만 넓은 정원에 범상치 않은 커다란 예수님 십자가상도 있고 시원하게 트인 야외뜰엔 사과나무 호두나무들이 긴 빨래줄이랑 어울려 줄지어 서있다..
-우린 남녀 따로 방을 배정받고 샤워와 빨래후 저녁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여긴 다른 도시와 달리 저녁7시까지만 영업하고 그 이후는 문을 닫는다니 시에스타(낮잠자는 시간)가 여기선 거꾸로 가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식자재 구입하여 저녁거리와 낼아침 먹을 일용할 양식을 조리해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우리남성용 방에는 독일계 청년 순례자3인이 나머지 침상을 메꾸어 함께 투숙하게 되었다. 이 중 두사람은 우리보다 멀리서부터 걸어왔고 한사람은 우리처럼 레온에서부터 왔다고 한다. 예의바른 청년들과 하루밤 룸메이트된 것도 큰 인연이 아닐수 없다
-여태까지 아무렇지 않던 바오로의 신발 밑창바닥이 갈라져 개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큰일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까마득한데... 알베르게 봉사자에 신발가게 물으니 여긴 소도읍지여서 없고 대신 오래전 어느 순례자가 버리고 간 신발을 주면서 발에 맞으면 가져가란다. 낡긴했으나 그래도 명색이 브랜드있는 제품인지라 좀 크지만 안쪽에 기존의 깔창 덧대어 깔고 두터운 양말로 발을 신발에 맞추니 그런대로 쓸만하여 안도하였다.
-저녁9시경에는 이웃에 있는 성당의 배가 몹씨 튀어나온 노 신부님이 알베르게 숙소에 일단의 청년들과 함께 심방하여 순례자를 격려하고 강복하는 미팅을 하였는데, 여기서도 자랑스러운 시몬할아버지는 스페인어 신부님 말씀을 미국에 산다는 스페인청년이 영어로 옮기면 또 이를 한국말로 다시 통역하는 해설사 역활을 톡톡히 잘 해냈다.. 피곤하여 졸립지만 은혜로운 밤이다..
3.제3일차(오르비고~아스또르가Astorga 17km)
-배낭무게 줄이려 택배가방에 각자의 세컨백을 쑤셔 넣었는데도 오늘로 걷기 3일째 되다보니 어깨는 천근만근 내려눌리고 무게에 비례하여 무릎의 통증은 가중되고 발바닥에 물집생겨 걷는도중 길가에 앉아 바늘로 물빼고 덧 안나게 드레싱하고 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고 우리의 순례여정은 자꾸만 지체되며 더디 나간다.
-오늘은 걷는거리가 '아스또르가' 까지 17km이지만 여느사람들은 어제 묵었던 오르비고 건너뛰고 32km를 한코스로 걷는다. 우린 여성단원도 있고 칠순나이를 고려해 반으로 나누어 걷기로 하였다. 오늘 걷는 코스에는 약간의 오르막도 있고 약300m구간에 돌바닥 너덜길도 있다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길게 뻗은 황토숲 길을 지루하게 걷다가 갈증 날 무렵 웰컴 까미노와 함께 우리앞에 홀연히 나타난 오아시스 Donativo (기부제)과일가게.. 잘익은 수박과 메론과 사과와 복숭아 자두 바나나 키위까지 먹음직스런 과일들이 즐비하다. 우리가 허겁지겁 수박을 집어먹고 나니 주인아저씨가 메론도 맛있다고 손수 잘라주신다. 태양이 강열하게 내려 쬐는 황량하고 메마른 길에서 마주한 수박은 세상에서 젤 맛있는 과일로 치부해도 손색없다고 호들갑 떨면서 최시몬의 기부금으로 감사를 대신하였다.
-천사처럼 나타난 과일로 목마름을 해소하고 너덜길 오르막을 한참을 가다가 넓다란 길가운데 우뚝솟은 성 또리비오Crucero de Santo Toribio의 십자가와 마주친다. 우린 소망담은 돌에 싸인하여 십자가 주변에 놓고 사진도 찍고 그늘에 마련된 돌식탁에 앉아 준비해간 점심을 해결하였다.
-오늘의 목적지 아스또르가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5km를 더 가야한다. 한참을 내리막길로 시가지에 진입하니 순례자용 샘터에 표주박으로 물마시는 조각상이 멋있어 보여 우리 모두는 같은 심정으로 조각상따라 물마시는 포즈로 한 컷씩 촬영하였다. 누가 조각상과 가장 유사한 포즈인지를 서로 경쟁하며~
-오늘 머물 공영 알베르게 Siervas de Maria에서 일본여성 봉사자의 안내로 등록하고 여장을 풀고나서 시장보고 빨래하고 근처성당 7시 순례자미사에 참석하였다. 어찌나 피곤한지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미사는 어느 구절에선 자장가로 들려 꾸벅꾸벅 졸기 일수이다..이곳에서도 산티아고까지 순례 잘 하도록 강복받고 연로하신 신부님과 기념촬영하고 여권에 쎄요(stamp)받고 숙소에 돌아왔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어부인들이 만든 볶음밥이었는데, 식당은 비좁고 여러순례객이 이용하다보니 식기 그릇이나 밥하는 냄비등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더구나 여성분들은 걷고나서 피곤한데 빨래와 식사까지 준비하니 식사자리가 여간 써늘 냉냉한 게 아니어서 우리 남정네들은 눈치보며 조심스레 저녁식사를 마쳤다.. 물론 설거지는 우리 남성 몫이고 담부터는 눈치껏 사먹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일본 여성봉사자는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이곳에 여행 왔다가 이곳의 매력에 빠져 남편과 자녀들은 먼저 돌아가고 자신만 여기 남아 한동안 봉사하다가 귀국할 계획이라며 활짝 웃는다. 자신을 개신교 신자라고 밝힌 이 여성의 맘이 예뻐서 이냐시오 부부와 다정한 포즈 한컷 남겼다.
4.제4일차(아스또르가~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 20km)
-오늘 갈 길은 표고 870에서 1,150m까지 오르막길을 20km 걸어야 할 좀 힘든 코스이다.
중간 중간에 N-4 도로 따라 가기도 하고 A-6도로를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산길을 오르다가4.5km걷고 처음만난 Bar에서 카페콘레체(라떼)와 아침먹고 또다시 지루한 긴도로와 흩어졌다가 만나기를 반복하는데 6개월쯤 된 어린아이 유모차에 태우고 도로를 걷는 젊은 부부를 보고 이들은 어떤 맘으로 태어난지 얼마 되지않는 어린애기까지 데리고 이 길을 걷는 것일까 미묘한 생각이 힘든 심신과 교차되며 머리를 맴돈다.
-오늘 드디어 시몬과 나는 위대하신 분의 선물, 발에 물집을 선물 받았다. 혈압과 당뇨는 우리들이 발을 잘 관리해야하는 충분한 경고표지인데 준비해간 안티**민은 물집관리의 구세주가 되었다..
긴 도로를 따라가다 갑짝스런 비를 맞아 친구가 빌려준 비옷바지와 판쵸우의까지 입고 어기적거리며 걷고나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잠시 오다 만 비에 과민반응하다가 속옷만 잔뜩 젖어 큰길로 나오니 대로변 휴게소서 기다리던 동료들이 시원한 레몬 음료 들고 반긴다..하도 걷기 힘들어서 길가에 붙은 택시회사 광고번호 폰카로 찍어두고 여차하면 급할 때 이용할 셈으로 걷는 중 '가우디를 사랑하는 협회'에서 내 건 현수막에 어린이 암과 재활치료에 필요한 모금하는 내용이 있어서 천막치고 봉사하는 이곳에 5유로 기부하고 방명록에 싸인하고 나니 철기사 복장의 봉사자 아저씨가 반기며 순례자여권에 스템프 찍어준다. 길과 나란히 가는 야산의 소로 철조망에는 나뭇가지로 만든 수없이 많은 십자가 형상이 목적지 가까이 이어진다..
-드디어 힘든 고생 끝에 라바날 의 필라르 Pilar 알베르게 숙소에 들어서니 예쁘게 생긴 젊은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 우리의 등록을 돕고 숙소를 배정해 줬다.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힘들었음으로 마트가서 밀가루사서 수제비해 먹기로하고 쇼핑하는데 작은 마을에 하나있는 마트에는 선택할 식재료가 별로 없고 가격도 다른지역에 비해 조금은 고가인 듯 하다.
-빗줄기 오락가락한데 라면 수프에 끓인 수제비 맛은 일품이어서 그릇 반이나 먹고 인근 성당 저녁미사에 참석했다..여성들은 피곤하여 숙소에 남고 남자들만 미사에 갔는데 의외로 꾸밈없는 작은 성당에는 한국인 신부님이 파견되어 3년간이나 사목중이셨다. 미사시작 전 엉겁결에 독서자로 지목받은 베드로는 영어로 된 데사로니카 전서5장 9~10절을 낭독하는 영광을 가졌다. 읽은대로 원문은 이러하다..“God has destined us for obtaining salvation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who died for us, so that whether we are awake or asleep we may live with him."-->”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깨나 그분을 따라 함께 살아가야합니다“ 대충 이렇게 해석되는 성경구절이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숙소에 돌아와 때마침 만난 한국인 청년과 담소 중에 미사끝난 신부님께서 우리숙소를 방문하셨다.. 미사 안 간 자매님들 깨워서 식당에서 대화시간을 가졌는데, 신부님은 베네딕도 소속으로 이곳에 3년전 파견되어 순례길의 상담과 사목을 담당하고 있으며 3개월 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다고 한다. 편의상 성함은 인 클레멘스이다.
-우리는 이 한국인 사제와 대화중에 여러분은 왜 이순례길을 걷는가? 라는 질문에 별로 머리에 둔 생각없어 머뭇거렸고, 누군가가 일상에선 묵상 기도가 잘 안되고 영적으로 가슴에 잘 와닿지 못하다는 취지의 말로 이 순례의 동기를 설명했고, 누군가는 한번 체험했던 옛길을 다시 걸으며 부족함을 채우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를 찾기위함이라 하였고, 베드로 나는 언젠가 이해인 수녀님 표현에 “순례는 발로 하는 기도”라는 글을 읽고 과연 발로하는 기도가 어떤 경지인지 알고 싶다고 얘기하였다..여러대화가 오가는 중에 가장 가슴에 남는 내용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람이 길들일 수 없는 날 길(in the Raw)이며 다음에 다시 올 때는 혼자 오라”는 사제의 말이 후에 이 길을 다 걷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오늘 걷는 길은 힘들고 고달펏으나 미사와 한국신부님과의 대화로 심신이 개운하다.. 그리고 우린 낼아침 걷기전에 성당앞에 모여 강복후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회에 계속>
첫댓글 소설 책 읽는 기분으로 여기 까장 읽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장으로 넘어 갈 겁니다.
.순례길에 대한 알차고 해박한 소개글과 함께 시작된 순례가 자세히 기록되어 함께 걷는
기분도 드네. 길을 걷는 동안 고난과 함께 신심도 깊어 졌을테고, 부럽네.디모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