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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라고9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아래 글은 최근 퇴직신청을 마치고 제가 다니는 은행 게시판에 올린 저의 고별사입니다. 은행을 떠나면서 떠납니다.
선배들이 은행을 떠나면서 고별사를 남기는 것을 보면서 언제가 나도 은행을 떠나는 날이 오면 고별사를 남겨야 할 텐데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날이 왔습니다.
한 조직에 30년 이상을 근무하다 떠나면서 어찌 남기고 싶은 소회(所懷) 한마디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고마운 것에 대하여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떠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퇴직을 신청하고 나서 그 동안의 세월을 뒤돌아보니 은행에 들어온 지가 엊그제만 같은데 세월의 저편으로 한참을 와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전부를 은행에 묻고 달려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 나의 희망이 있었고, 나의 젊음이 있었고, 나의 열정이 있었고, 나를 이만큼 키워줬던 곳,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부터 퇴직 일까지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은행에 남아 있는 동안 모든 것을 보고 느끼며.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려만 온 삶의 무게를 하나하나 내려놓으려 합니다.
내가 은행을 떠나는 그날이 오면 정들었던 은행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과 고졸출신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렇게 가르치고 성장시켜준 은행에 대한 고마움으로 많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날이 와도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리 떠날 준비를 하고 그 동안 많은 이별연습을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에 대하여 특히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먼저, 60년 12월 생으로서 은행에서 큰 출세는 못했지만 내년 1월 1일자로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마지막 시점까지 큰 대과 없이 은행으로부터 나가라는 소리 한 번 안 듣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입니다. 이 어찌 천지신명(天地神明)의 가호가 없었던들 가능했겠습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은행에서 근무한 기간이 37년에서 1개월이 부족하고 정년까지 급여 3년 치를 받아가니 급여를 받은 세월로 치면 40년에서 1개월이 부족한 세월이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퇴직하기 전에 은행 본점을 방문하여 건물 앞에 돗자리 하나 깔고 “나를 키워준 제일은행이여! 고맙습니다.”하고 큰 절 한 번 하고 떠나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직원 여러분께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 거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BIL 심사팀 Leader로서 근무하면서 영업현장에서 열심히 영업해서 승인 올린 BIL 대출 신청 건들이 안타깝게도 거절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계절은 바야흐로 거리에는 휘날리는 낙엽이 깊어가는 가을을 전하며 이제는 하얀 겨울로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조직은 대규모 퇴직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이제 나이 많은 직원들은 각자 떠나야 할 것인지 남아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의 시기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동안 은행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잘 지니다가 은행을 떠나려니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에 시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사바세계에 이 정도의 시련은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고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순리대로 살다 보면 저 나름대로 닥쳐올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로부터 인생사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이자정회(離者定會)’라 했던가요. 우리는 만나면서 이별을 염려하고 떠나면서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사는 게 인생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말입니다.
금년 가을 울긋불긋 오색단풍을 피워내는 저 나무들이 내년 봄에는 희망의 꽃을 피워내듯이 떠나는 저도 금년 겨울 휴식의 여유를 가졌다가 내년 봄에는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희망의 나래를 펼쳐보렵니다.
그 동안 제일은행과 SCB은행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의 만남 아름다운 만남 좋은 인연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남아 계시는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리스크관리본부 부장 이화구 올림
P.S. : 은행을 떠나기 전 Time-machine을 타고 지난 37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 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저의 꿈은 영어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문계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였고 1979년도 대학입시에서 전북대학교 사범대에 지원하여 합격하였으나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79년도에 처음으로 제일은행에서 입행원서가 날아들어 우연찮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은행에 오게 되었습니다. 초급행원시절에는 학교친구들은 다 대학 다니는데 나만 은행에 다니다 보니 속된말로 꿀꿀한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니 제일은행에 오게 된 것이 “하늘이 저에게는 내려준 축복”이었음을 나이가 들어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은행생활을 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일은 제 주위에 저에게 공부하라고 충고를 해주신 좋은 선배 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비록 고졸로 입행했지만 은행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스물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를 시작으로 성균관대무역대학원에서 석사과정도 마쳤고 1994년도에는 은행에서 보내줘서 베트남 호치민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행운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IMF때에는 Workout팀에서 날밤 세워가며 고생은 했지만 그때 배운 업무지식을 활용하여 은행지점과 학원을 오가며 주경야독한 끝에 CPA(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행운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그 이후 최근 10여 년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민족종교, 무교, 샤머니즘, 풍수, 관상 등 다양한 종교관련 서적과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주역, 노자, 장자 등 수많은 동양철학 관련 서적들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상고사와 관련된 수많은 역사 서적들을 읽으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찾아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을 욕심내지 않고 순리대로 살다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단순한 가르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은행을 다니면서 어찌 과오가 없었겠습니까!
1992년 책임자로 승격하여 어느 지방점포에 근무할 당시 처음이라 업무를 파악하기도 전에 타 지점에서 받아 보내준 어느 대학 편입생 대학등록금이 은행의 실수로 잘못 처리되어 편입생의 등록이 취소되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여 그 민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십 번 이상 그 학생 집에 찾아가 민원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끝에 그 학생에서 3-4학년 총 4학기 등록금을 보상해주기로 합의를 봐야 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나도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을 선택하여 은행에 왔는데 남의 대학등록금을 대줘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게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한 번은 새로운 지점에 이동하여 업무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교환에 회부된 수표를 담당계원이 부도 반환은 하였으나 실수로 경찰서에 고발조치를 하지 않아 수표를 교환에 회부했던 사채업자로부터 경찰서에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여 수없이 경찰서를 드나들어야 했고, 결국 벌금형을 받아 전과자가 되었던 일, 이런 일들이 저에게 불명예라면 불명예일 수 있으나 제 나이에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친구들도 많고 또한 같이 입행했던 친구들 중에서 본의 아니게 일찍이 은행을 떠나야 했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배부른 넋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7년이라는 긴 세월을 근무하면서 어찌 이 정도의 사건도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은 제가 어느 지점에서 1년 동안 BIL영업을 했던 기간인 것 같습니다. 그 1년 동안 BIL영업을 하면서 인생도 배우고 세상도 많이 배웠습니다. 외부 영업하면서 Sales에 성공하였을 때는 기쁨도 맞보았고, 때로는 고객으로부터 거절을 당해 좌절도 맞보면서 이것저것 세상을 많이 배운 거 같습니다.
어느 땐가는 BIL영업하러 수색 일대를 지나다가 BIL 팔기가 하도 어려워 절망을 하고 인근에 있는 항공대 캠퍼스에 눌러앉아 멍하니 하늘을 날아가는 항공대학의 연습용 경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게 무슨 짓인고!“ 한탄 하면서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 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등에 대한 많은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인생에 대하여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BIL영업을 마치고 지점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서점에 들려다가 우연히 '주역'이라는 책을 발견하여 주역을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주역이라는 경전 속에서”세상의 변화하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은행을 37년을 다니면서 어찌 최근 금융환경에 대하여 한마디 소회(所懷)가 없겠습니까!
과거 70-80년대에는 국내은행들이 수출 대기업 직원들에게 수출입업무와 관련된 외환업무를 가르쳐줄 정도로 은행의 위상이 높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감이 있습니다.
특히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잘나가는 Global 기업인 삼성전자를 보면서 “왜 대한민국 금융산업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Global Bank가 나오지 않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도 30년 이상 금융기관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삼성전자는 주인이 있는 반면, 국내 금융기관은 대부분 주인이 없다 보니 국내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또한 관치에 시달리다 보니 자율성도 결여되고 그 결과 수익성이 낮다 보니 국내 은행 중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Global Bank가 나오지 못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역설적으로 유럽 최고 은행인 HSBC도 국내에서 소매금융을 접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 최고의 Global Leader인 CITI Bank도 아시아지역에서 소매금융을 접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지역과 아시아지역의 Global Leader인 저희 SCB은행도 국내에서 특히 소매금융 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언론에서는 세계 최고의 Global 은행들이 국내에 와서는 경영부진을 면치 못하고 수익성이 악화되어 맥을 못 추고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대한민국에 선진금융기법은 없다."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저금리 하에서 소매금융이 수익성이 낮아지는 것은 있습니다만 국내은행 중에서도 국민은행 같은 소매금융 전문은행은 자산증가를 통한 수익성을 추구로 국내 Leading Bank로서의 지위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국내은행들이 과거 IMF이전에는 기업금융에 너무 많은 Portfolio를 가져가다가 갑자기 ‘IMF관리’라는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하면서 국내은행들은 대부분 부실화되었고 결국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과거 미국의 금융위기 때에는 미국의 Leman Brothers 같은 대형 IB은행들이 파생상품에 Portfolio를 너무 많이 가져갔다가 도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 이후 기업대출에 쓴맛을 본 국내 은행들은 안전자산을 찾다 보니 전부 아파트 담보대출 같은 소매금융에 몰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금리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수익성이 맞지 않아 다시 고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은행들이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을 적절하게 Portfolio에 맞춰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면 위에서 말씀 드린 “금융산업의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은행이 나오지 못하느냐”는 물음과 “세계적인 Global Leader인 HSBC, CITI, SCB가 대한민국 금융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어 더 이상 대한민국에 선진금융기법은 없다”라는 서로 상반된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처럼 국내 금융환경은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국내에 진출하여 고전하는 이유는 국내 금융환경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자기들만의 금융정책(Policy)이나 기업문화를 국내에 강요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SCB은행 중에서도 인도네시아에 소재한 'Permata Bank"같은 경우 인도네시아 내규에 의해 Local Rule에 따라 은행을 경영한 결과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고, CITI Bank도 멕시코에서 인수한 어느 은행의 경우 멕시코 내규에 따라 경영한 결과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SCB Korea의 해결책도 명료합니다. 우리도 국내은행처럼 Local Rule에 따라 영업하면 수익성을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명예퇴직과 관련한 소회(所懷) 한마디를 올려봅니다.
지난 1998년 봄, 우리 직원들은 정든 은행을 떠나면서 남은 직원들에게 반드시 은행을 다시 살려달라고 당부하며 떠났습니다. 당시 수 천 명의 직원들이 은행 문을 나서면서 만든 '눈물의 비디오'는 외환위기 이후 퇴출된 은행원들의 가슴에 쌓인 멍울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여의 세월이 흘러 우리 은행은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가 은행이름도 “Standard Chartered Bank”라는 영문으로 바뀐 지금 우리 직원들은 다시 한번 눈물의 비디오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면서♥
인류가 세상에 처음 출현했던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우리 인생은 그 길고 긴 선위의 아주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삶은 과거에 존재했던 선조들과 미래에 존재할 후세대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계절의 자연처럼 계속되는 시간선상의 어느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삶도 계속됨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남아 계시는 분들이여!
비록 계절을 이기는 꽃은 없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은 없다지만 꽃을 피워서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변해서 세상을 바꾸듯이 SCB 가족 여러분도 금번 Group에서 발표한 “Our New Strategy”를 충실히 이행하여 “SCB Korea”가 진정한 “Leading Bank in Korea”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 동안 담담했던 저의 마음도 이제는 기나긴 “추억 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마치려니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엔 이슬이 맺히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리스크관리본부 부장 이화구 올림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본 사진은 1979년 2월 저희 동기들이 신입행원연수를 마치고 연수원에서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저는 뒤에 서있는 연수생 첫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키 작은 인물이 저입니다. |
첫댓글 수고 많으셨네요.
를 보냅니다.
정년퇴직이라 참으로 축복받을 일입니다.
저역시 30여년을 무사고로 직장을 그만 뒀었는데
그때가 문득 행각 나네요.
고향에 내려 오셔서 그림같은 집을 짓고 여생을 글이나 쓰시면서 보내심이
1년전의 나의 끝마무리 날이 생각 나네요.
아쉽지만 후련 할겁니다. 후회없는 일생... 무사고였으니 위안받아 마땅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미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