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하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나태주,1980
이 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본래는 1980년도에 낸 연작시집 《막동리 소묘》에 실린 사행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그 시집은 시의 제목은 없고, 모두가 번호로 되어 있습니다. 총 작품 수가 185편인데 위의 작품은 그중 172번입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막동리 소묘·172〉, 나태주,1980
그저 그런 작품이고, 큰 제목 속에 작은 번호로만 표시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걸 꺼내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사람은 나도 알지 못하는 어느 미지의 독자입니다. 시의 제목도 본래 있던 ‘막동리 소묘·172’에서 새롭게 붙여졌지요.
‘내가 너를’. 그건 내가 붙인 제목이 아닙니다. 행갈이도 네 줄인데, 이렇게 반듯하게 여러 줄로 만들었고, 연 구분까지 잘 처리했습니다. 독자의 힘입니다. 원작자는 나이지만 또 한 사람의 손이 거들어서 이런 시를 이루게 되었지요. 일견 놀라운 일입니다.
이 시는 요즘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사랑해주는지 몰라요. 그 열도에 놀라울 지경입니다. 오래 묵은 시집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시 한 편을 어느 눈 밝은 독자가 꺼내어 세상 빛을 보게 만든 것입니다. 감사한 일이고, 한편 두려운 일입니다.
이런 예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순간의 꽃》이란 그분 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작품 제목도 없이 * 표시 아래 한 편씩 수록되어 있는 작품을 독자들이 꺼내어 세상에 돌리면서 제목까지 더불어 지어준 작품이지요.
그렇게 독자들의 눈이 날카롭고 그 힘이 무섭습니다. 시인들은 이점을 알아 독자들을 십분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 ‘죽기 전에 詩 한 편 쓰고 싶다(나태주, 리오북스,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05.15. 화룡이) >
첫댓글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보다 말하지 않고 좋아한다면 더 깊은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은 꼭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말하는 사랑,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니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