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한 번쯤은 절망(絶望)의 나락에 떨어져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고 있습니다.
내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습니다.
세 번의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부모님의 가정불화로 인해 엄마와 헤어져 힘든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두 번째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 간, 상하 간의 갈등이 심해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괴로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은퇴 후 잘 지내다가 지난해 뜻하지 않게 암(편도암) 친구가 찾아와 인생 밑바닥까지 내몰렸습니다.
하나같이 그때는 끝인 줄 알았습니다. 컴컴한 밤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함께했습니다. 한 가닥 희망(希望)의 빛이 비취었습니다. 가능성이 엿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저 나름대로 위 세 가지를 이겨냈습니다.
첫째, 유년기의 어려움은 작은 아버님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의사 선생님의 도움과 테니스 등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이겨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용서의 그릇을 키운 것이 극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 좋은 의사를 만나 초기 암을 잘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목 근처에 난 조그만 혹이 악성종양으로 판정되어 편도암이라니 정말 놀랐습니다.
편도암은 전국의 이비인후과 개원의가 2년에 한 번 환자를 만날 수 있는 희귀 암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하필 그게 나한테 찾아온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워낙 초기에 발견하여 깨끗하게 치료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로 인해 앞으로 오히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절망 속에서 발견한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생로병사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암으로 죽고 나머지는 심장질환, 뇌경색, 각종 사고 등으로 생명을 잃는다고 합니다. 특히 팔십이 넘어 다른 질병으로 가더라도 암이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었습니다.
세상의 유명인들이 뜻하지 않게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고 있습니다.
또한 원치 않는 질병으로 투병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예방의학자이자 의료분야 방송인인 홍혜걸 박사(57세)의 얘기입니다.
얼마 전에 폐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고 제주에 내려가 요양을 한다고 합니다. 건강전도사도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언젠가 칠십까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의 수명과 가는 날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인명재천 즉,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했는가 봅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 가는 날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옷, 책, 은행통장에 이르기까지 간소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후손들에게 짐을 주지 않기 위해서 관공서에 등록하였습니다.
막상 이런저런 준비를 다 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여느 때와 달리 보였습니다.
허투루 보낼 수 없습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고 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서 활기차게 살아가려 합니다.
단 하루라도 재미있게 살아야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훗날, 이 땅을 떠날 때에는 "그래, 재미있게 잘 살고 간다. 고맙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 속의 희망이 있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첫댓글
'절망 속의 희망'
여러 해 전에 첫 번째로 펴낸 에세이 제목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 속에 허덕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희망의 빛이 비추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떠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