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맑음. 미국에 손자가 찾아오다.
미국에 아들이 소학교 1학년인 손자를 데리고 왔다. 열흘 동안만 있다가 가기로 하였다. 두어달 남짓 못 본 것이지만 그 사이에도 좀 컸다. 한글은 물론, 영어도 간단한 말은 몇 마디 알고 있으니, 여기에서 간판 같은 것을 더듬거리며 읽어 보려고 하고 있다.
5일 토요일에는 우리가 지금 묵고 있는 센트루이스시의 남쪽의 허만Hermann이라는 농촌에 가서 산장Cottage을 하나 빌려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손자가 좋아한다고 하여, 일부러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쯤 가서 다시 승용자를 갈아타고 산길을 구불구불 돌며 몇 10분쯤 산속으로 올라가다가, 완전한 비포장 길로도 조금 들어간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주로 독일계 이주민들이 개척한 포도농장과 포도주 공장이 많은 지역의 한적한 외딴 집이다. 사방을 돌아보아야 오직 무성한 산림 뿐인, 온전히 산속에 파묻힌 2층 짜리 조그마한 펜숀인데, 모든 시설이나 환경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았고, 가격도 한국의 이런 시설보다도 오히려 저렴한 것 같아서 좋았다. 여기서 준비하여온 식품으로 저녁을 하여 먹고, 우리내외, 사위 내외, 아들 부자 등 여섯 식구가 각각세 방에 나누어 잤다. 밤에는 달까지 밝아서 한결 더 운취가 있었다. 더구나 그 산장 앞에는 제법 큰 연못까지 갖추어져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침에 나와 보니 그 산장 바로 앞에 아름답게 터를 잡고 있는 저수지 주변 둑에 난 잡풀들을 제초제를 뿌려 죽인 것을 보니 참 딱하게 보였다. 그 독한 물이 그 못으로 들어 갈 테니, 그 못에 물고기가 온전하게 살 수 있겠는가? 녹조를 띤 흐린 물 속에 오리 같은 게 몇 마리 떠돌고 있기에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오리였다. 이런 한적한 고지대의 산속에서부터 이렇게 물이 오염되기 시작하여, 그런 독한 물이 다시 강으로 흘러들어갈 터이니 그 강물은 또한 어떻게 되겠는가? 잘 자고 났지만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모처럼 온 식구가 이렇게 외국에 나와서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더군다나, 단 거리이기는 하지만 기차여행도 하여 보고, 또 산장에서 하룻 밤을 같이 합숙을 하였다는 일도 쉽지 않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돌아와서 한시 2수를 지어 보았다.
〈美國寓居, 三代相逢〉
萬里他邦暫住村 大開今日向南門
旣先進入呼阿母 亦卽忘鞋抱長孫
雖曰客居如失本 何能放浪似無根
時時習俗皆云變 子子父父不再論
〈旅次於美條里省獨逸系許晩山莊〉
葡萄美酒釀山村 處處農工渾一門
六月流頭週末日 全家避暑兼迎孫
*許晩山莊: Hermann cottage.
〈미국의 임시 거처에서, 아들 손자와 서로 만나다.〉
만리타방 잠주촌 에 대개금일 향남문 이라
기선진입 호아모 하고 역즉망혜 포장손 이라
수왈객거 여실본 이나 하능방랑 사무근 고
시시습속 개운변 이나 자자부부 부재론 이라
만리 타국에 나와서 임시로 거처하고 있는 집에서,
오늘은 남쪽 대문 활짝 열어 놓고 있게 되었구나.
먼저 집에 들어오면서 “엄마”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 들리더니,
또한 신발 걸치는 것조차 잊고 뛰어 나가서 커버린 손자를 껴안는 구나.
비록 외국에 나와서 임시로 머물고 있으니 본바탕 잃어버린 듯도 하지만,
어떻게 정처없이 방랑하고 있다고 뿌리조차 흔들리고 있다고 말할 수야 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속세의 풍속 모두 변하여 간다고 있기는 하지만,
“아들은 아들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는 이치야 재론할 필요가 있겠는가?
〈허만이라는 곳의 산장에 야영하면서〉
포도미주 양산촌 한데 처처농공 혼일문 이라
유월유두 주말일 에 전가피서 겸영손 이라
아름다운 포도주를 깊은 산촌에서 숙성시키고 있는데,
곳곳에 농장에 공장 이웃하여 혼연히 농공일체가 되었구나.
유월 유두날 즈음 마침 주말이 되어서,
온 집안 식구 피서를 가는데 손자 환영 파티를 겸하게도 되었구나.
*허만: 미조리주에서 제일 큰 도시인 센트루이스에서 기차로 1시간 반쯤 남쪽으로 내려가서 보게 되는 독일계의 주민들이 개척 농촌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