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투지배【眼透紙背】
눈빛이 종이 뒷면까지 뚫는다는 뜻으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힘이 매우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
───
김삿갓(509)
화전놀이
이윽고 모란봉으로 찾아오니, 때마침 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
꽃구경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높이 올라오니, 시야가 점점 활연하게 전개되어 보인다.
저 멀리 눈 아래 푸른 비단 폭처럼 넘실거리고 있는 것은 대동강일 것이고, 강건너 수량버들이 심실이 우거진 섬은 능라도가 아니겠는가.
봄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수많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란봉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봄을 찾아 나선 상춘객(賞春客)들일 것이고, 대동강 물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은 놀잇배가 아니면 낚싯배인성 싶었다.
(아아, 평양은 단순한 금수강산이 아니라, 지상(地上)의 선경(仙境)임이 분명하구나!)
김삿갓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산상에서 살펴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봄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꽃향기도 그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아, 이 강산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
오직 감탄이 있을 뿐이어서, 김삿갓은 오랫동안 넋을 잃고 눈앞의 풍경에 도취되어 있었다.
고려때의 시인 권한공(權漢功)은 일찍이 평양 구경을 왔다가, 모란봉 위에서 대동강을 굽어보며 시를 지은 일이 있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모랫가의 푸른 나무는 봄빛이 엷고
물에 비친 청산엔 저녁놀이 짙구나
물속에 있는 듯 원근조차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석양에 노랫소리 들려오네.
磯邊綠樹春陰薄(기변록수춘음박)
江上靑山暮色多(강상청산모색다)
宛在水中迷遠近(완재수중미원근)
芳洲何處竹枝歌(방주하처죽지가)
눈앞의 풍광이 너무도 황홀하여, 김삿갓 자신은 시상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김종서(김종서)가 모란봉 위에서 이별가를 들어가며 지었다는 시만이 또 연상되었다.
님 보내는 강가에는 한이 서리어
풍악소리만 처량할 뿐 노래를 못 이루네
하늘은 바람을 시켜 돛을 막고 있는가
대동강 저녁에는 물결이 거칠구나.
送客江頭別恨多(송객강두별한다)
管絃凄斷不成歌(관현처단불성가)
天敎風伯阻征旆(천교풍백조정패)
一夕大同生晩波(일석대동생만파)
이별하는 선남선녀들의 애끓는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라고 하겠다.
이윽고 금수산 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평탄하고 도 훤칠한 을밀대(乙密臺)가 나온다.
거기에는 사허정(四虛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을밀대를 일명 <사허정>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정자의 이름을 왜 <사허정>이라고 지었을까?)
김삿갓은 <사허정>이라는 이름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스러운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을밀대는 동서남북 사방이 탁 틔어 있어서, 그 정자 위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으므로, <사허정>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한 이름일 것 같았다.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의 웅자(雄姿) ! 당나라의 어떤 시인은 사허정 올라 와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금수산 산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바람을 타고 때때로 놀러 오는 곳이리.
錦繡山上頭(금수산상두)
一臺平和掌(일대평화장)
恐有天上仙(공유천상선)
乘風時來往(승풍시래왕)
───
🪀☂️식구(食口)☂️🪀
청국장을 냄비에 끓여
밥상 한가운데에 놓고 식구끼리 같이 떠먹던 모습을 바라본 스웨덴 사진 작가가 위생관리가 안된 민족이라 했고 바가지에 비빕밥을 비벼 둘러앉아 퍼먹던 모습에 언젠가는 크게될 민족이라 했다지만 정말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식구'란 조상으로부터 물러 받은 우리민족의 유산이자 전통이고 개념입니다. 오늘날 진정 옛날과 같은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식구'란 게 있기는 할까요?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우리의 단어 '식구'가 그립고,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가족은 영어로 패밀리(family) 입니다. 노예를 포함해서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 에서 왔습니다.
즉,
'익숙한 사이' 라는 의미 입니다.
중국은 '일가'(一家), 일본은 '가족'(家族)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 합니다.
즉,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같이 밥 먹는 입' 란 뜻입니다. 그르므로 한국인에게는 '가족'이란 "한솥밥을 먹는 식사 공동체"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기 아내나 자식을 소개할 때도 우리 식구'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한 집에 살아도 한 상(床)에서 밥을 먹지 않거나, 식사를 할 기회가 없다면 엄밀히 말해서, "핏줄"이기는 해도 '식구'랄 수는 없습니다. 근 한국 가정의 위기가 심각해 지고 있는 것은 족 간에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풍조가 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몇 년 전 뉴스에 나온, 고된 이민 생활 속에서도 6남매를 모두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보내, 미국 최고 엘리트로 키운 '전혜성' 여사도, 자녀 교육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침식사는 가족이 함께 했다"며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요즈음, 우리 생활을 들여다 보면, 실제로 '식구'가 얼굴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밥상머리 뿐인데 오늘 날,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출근시간, 자식의 등교시간이 다르다보니, 각자 일어나자 마자 허둥지둥,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또는 우유 한 잔 서서 마시고 나가기 일쑤고, 저녁 귀가시간도 각자 달라 저녁식사를 한 식탁에서 하기는 커녕, 언제 귀가 했는지 서로 모르고 각자 방에서 잠자기 바쁩니다. 이러한 일상의 연속이니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어떤 때는 며칠간 얼굴 못볼 때도 허다 합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늦게 귀가하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이나 장롱의 이불 속에 밥을 묻어 두곤 했습니다. 밥의 온도는 곧 사랑의 온도 이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어머니는 뜨끈한 국과 따뜻한 밥을 챙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전기밥솥이 그 자리에 대신 놓여있고, 라면 등 몸에 좋지않는 인스턴트 제품이 집집마다 있어 필요할 때면, 밤중에라도 각자 알아서 처리하게 끔, 너무도 친절하게 배려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밤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밥상 차리라고 했다간 이 시간까지 밥도 못먹고 어딜 돌아 다녔느냐고 핀잔 듣기 십상입니다,
느닷없이 소낙비 오는 밤, 버스 정류장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언제 올 줄도 모르는 '식구'를 기다리는 그 많은 모습들을 요사이는 볼수가 있는가요?
누가 말했던가?
오늘날 아버지는 "울고 싶어도 울 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버지는 직업 형편상 귀가하는 시간이 대체로 늦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가장을 기다리다가 먼저 잠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다, 아이들이 깨어 있더라도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제방에서 건성으로 인사만 건넵니다.
그러니 밥상머리 교육이나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고 나아가 얼굴은 자주 못 보더라도 서로 각자의 시간과 생활은 간섭이나 침범을 하지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 찬바람 불듯, 집안 분위기를 냉각 시킵니다.
평소 눈길 한 번 준 일 없던, 애완견만이 한 밤중에 쓸쓸히 반갑게 맞아주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시대와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자식이 결혼으로 분가하기 까지는 가급적 '식구'들과 지지고 볶는 생활을 갖는 것이 진정한 '식구'이며 진정한 삶의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식구'란 정겨운 단어가 그립고 어릴때 빙둘러 앉아 함께했던 밥상이 정말 그립습니다.
어머니 밥상이 그립습니다...!
참고로 견디기 어려울때는 가족 형제 친구 동료만한 보약이 없다고 합니다.!
첫댓글 고맙게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말휴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식구'가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