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모스크바 도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러시아군 최고위 지휘관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물 테러가 발생, 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했다. 사건이 발생한 레스토랑 '발지 로시'(Balzi Rossi)에서는 당시 일반인의 출입을 막은 상태에서 '특별한 사람'(?)을 위한 연회(파티)가 열리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폭발 직후 파티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이 신발을 손에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으며, 피 묻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도 뒤따라 나왔다고 한 목격자가 현지 언론에 전했다.
모스크바 최고급 레스토랑 '발지 로시' 폭발 사건 발생후 현장으로 몰려든 구급차량와 경찰 병력/현지 매체 rbc 영상 캡처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단체들은 "러시아군과 보안 기관에서 사용하는 검은색 번호판을 단 차량 여러 대와 연방 근위대(로스그바르디아, Pосгвардия, Rosgvardia) 버스가 사건 현장 근처에 주차되어 있었다"면서 "러시아군 최고위 지휘관을 위한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군사 블로거(텔레그램 계정)들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르 차이코 러시아 항공우주군 사령관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는 주장이 나와, 그가 공격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러시아 당국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코메르산트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1일 저녁 8시쯤(현지시간) 모스크바 쿠드린스카야 광장에 있는 이탈리아 고급 식당 '발지 로시' 입구에서 폭발물이 폭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식당은 스탈린 양식의 고층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스탈린 양식의 고층 건물 1층에 있는 레스토랑 발지 로시/사진출처:얀덱스 지도
당초 레스토랑 주방의 가스 설비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러시아 대(對)테러위원회는 "발지 로시 야외 테라스(베란다)에서 열린 개인 행사 참석자들을 겨냥한 사제 폭발물이 터졌다"며 '테러 행위' 혐의 (러시아 형법 제205조)를 적용해 수사에 착수했다. 대테러위원회는 또 "레스토랑 안으로 사제 폭발물을 반입하려 한 것으로 의심되는 신원 미상의 여성과 이 여성의 출입을 막은 경비원, 방문객 1명 등 3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병원으로 급히 후송된 중상자들도 적지 않아 앞으로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폭발 사건을 "인명을 앗아간 잔혹한 테러 행위"로 규정한 뒤 "철저히 조사해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모두 처벌받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코메르산트는 "다행히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는 가운데 파티가 열려 희생자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폭탄은 사망한 경비원이 파티 참석자에게 선물 상자를 전달하러 온 여성을 레스토랑 입구에서 멈춰 세운 뒤 문제의 상자를 살펴보는 순간, 터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레스토랑 발지 로시의 내부(위)와 간판/레스토랑 홍보 영상 캡처
여성을 통해 파티 참석자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테러 수법은, 3년 4개월 전인 2023년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식당(카페)에서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홍보하는 유명 블로거 브래들렌 타타르스키(본명 막심 포민)를 폭사시킨 사건을 빼닮았다. 그는 카페에서 '팬 미팅'을 갖던 중 한 여성 팬(?)이 선물한 자신의 흉상(조각상)이 폭발하면서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건 이튿날 체포된 20대 여성 다리야 트레포바는 테러 혐의로 기소됐지만, 선물 속에 폭발물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후 1차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테러 사건 배후에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있고, 용의자 트레포바에게 폭발물은 제공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리 데니소프(36, 1987년생)"라고 발표한 바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한 카페에서 러시아 유명 블로거 타타르스키에게 폭발물이 든 선물을 전달하고 나오는 자칭 여성 팬인 트레소바(왼쪽 원안). 타타르스키는 현장에서 폭사했다/사진출처:우크라 매체 스트라나.ua
코메르산트는 "선물 상자를 들고 온 여성도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며 "원격 조정으로 상자 속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폭발력은 TNT 1㎏(상트페테르부르크 사건의 경우, 200g 정도/편집자)으로,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금속 구슬도 함께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후, 모스크바의 도심 순환도로(통칭 가든 링, 러시아어로는 Садовоe кольцo)와 이어지는 일부 도로의 교통이 차단됐다. 이에 모스크바시 당국은 이날로 예정됐던 '모스크바 야간 자전거 축제'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자전기 축제는 순환도로 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발지 로시 레스토랑의 셰프 카르미네 알피에리는 폭발 사건 후 소셜 미디어(SNS)에 "(주방 가스 폭발 사고설을 의식한 듯) 외부에서 사건이 생겨 레스토랑과 주방은 괜찮다"라고 썼지만, 곧 삭제했다.
차이코 항공우주군 사령관의 사망설은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블로거 올레그 카신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그는 위키피디아 자료를 인용, "차이코 사령관의 생일이 7월 27일로 나와 있다"며 "그의 생일 파티가 발지 로시에서 열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지난 5월 항공우주군 사령관에 임명된 차이코 장군의 취임과 생일을 동시에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차이코 사령관은 2022년 2월 동부군관구 사령관으로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 방면으로 진격한 부대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검찰에 의해 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3월에는 유럽연합(EU)의 공식 제재 명단에도 올랐다.
4년 넘게 계속된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러시아 군 고위 장성을 겨냥한 암살 및 암살 미수 사건이 잇따르자, 러시아 FSB는 올해 초 고위 군 관계자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