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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에서의 환대] 부모자녀 갈들 01 – 의무가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
한 내담자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전공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지도교수와 공동연구를 하며 학부생을 가르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잘 짜인 길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전혀 달랐다. 모든 일이 버겁고,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자책이 끊이지 않았다. 막상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놓이면 하기 싫다는 감정이 먼저 치밀었고,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재’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잘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공부뿐이라 여겼고, 자연스럽게 공부는 그의 진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길 위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상담을 통해 삶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가 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영재 코스를 밟으며 겪은 과도한 경쟁과 훈련 속에서 공부는 어느새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었고, 점차 혐오의 대상으로 변해 있었다. 총명한 자녀를 두었다는 부모의 자부심 역시 그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부모의 개입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시와 재촉, 꾸중으로 이어졌고, 그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강점과 적성에 맞는 길을 걷고 있음에도 늘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상담이 시작될 무렵에는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를 그의 자동적인 자책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사실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가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건넸던 언어가 내면에 새겨져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이었다. 망가진 녹음기처럼 끝없이 돌아가는 그 목소리를 스스로 인식하고 멈추는 일이 치유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낮은 자존감 위에서 선택된 진로였다. 그는 공부를 자신의 목을 조르는 괴물처럼 느끼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의무로만 인식된 공부는 하루하루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그가 받아온 상처를 충분히 다루고 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남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신이 공부를 좋아하고 또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진로는 크게 어긋난 적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작지 않은 것들을 이뤄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끝내 견뎌냈고, 잃어버린 시간도 없었다. 자책 대신 자신을 뿌듯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던 부모의 목소리로부터도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그때 비로소 ‘공부’는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소망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의무로 짓눌렸던 지난날은 안타까웠지만, 이제 그는 같은 일을 전혀 다른 마음으로 하고 있었다. 의무가 소망으로 한 번 번역되었을 뿐인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에너지가 달라졌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종종 삶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의무로만 살아온 삶을 소망의 언어로 다시 번역할 수 있을 때, 변화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가정 안에서의 환대] 부모자녀 갈들 02 – 아빠와의 대화
그의 고민은 ‘주관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매사를 남에게 물어보며 결정했고,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다 보면 서로 엇갈린 의견들 사이에서 또다시 길을 잃곤 했다.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묻고, 그 사람의 말을 따랐다. 진로를 선택해야 할 때는 특히 막막했다. 누군가 그에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면, 그는 정작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러워 했다.
어디에서 이런 특징이 비롯되었는지, 우리는 함께 더듬어 갔다. 그는 늘 말을 잘 듣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착한 아이였다. 반면 누나는 고집스럽고 다루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고, 어머니와 자주 부딪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 더욱 애썼다. 덕분에 칭찬과 인정이 쏟아졌고, 그것은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성장의 양분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었다. 쌓아온 성취와 능력이 있음에도, 그것이 온전히 자기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낯섦이 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상담 내내 어머니와 누나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아버지에 관한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물어보니,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그는,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 지쳐가는 어머니의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기쁨이 되어 드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 없는 가족이라는 사실은 늘 감추어졌고, 그 죽음은 가족 안에서 금기처럼 자리 잡았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해지자, 그가 ‘착한 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가족 안에서 자신보다 어머니를 먼저 돌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알아차리는 힘은 자라지 못했다. 이제 와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수영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 그냥 물에 뛰어들라는 것처럼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 ‘듣는 힘’을 안으로 향하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아버지를 마음의 가족 안으로 초대했다.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긴 충격과 슬픔은, 어머니의 우울도, 누나의 반항도 모두 해결되지 못한 애도의 상처였다. 그러나 떠난 사람이라 해도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자유롭게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다정하고 든든했으며, 무엇이든 잘한다고 믿어주셨다. “왕자님”이라 부르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던 분. 지금도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만나면 “잘하고 있다”라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서 해답이 보였다. 그는 이제 무언가 결정이 필요할 때, 마음속 아버지께 여쭤보기로 했다. 자신을 온전히 믿고 지지해 주시는 그 아버지는, 결국 그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다. 묻기의 달인이었던 그는, 이제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내면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아빠와의 대화가 바로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었다.
[순례, 걷고 기도하고] (19)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
속된 세상과 거룩함, 그 경계에 멈춰섰다... 기도와 쉼 필요했기에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는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7월 테마로 선정한 ‘불편한 여행지’다. 디지털 기기와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와 침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주목받은 것이다. ‘불편함’이라기보다 익숙한 자극을 내려놓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장소라는 의미다. 2024년 5월 문을 연 센터는 수도원 고유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신축 시설을 갖춰 현대인들이 머물기에 쾌적하면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절제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머무름과 침묵, 기도 속에서 마음의 쉼과 영적 양식을 전하고 있는 센터를 찾았다.
고전과 현대, 세상과 성소의 경계
왜관역에서 10분쯤 걸어 수도원에 다다르면 성스러운 작은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수도원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센터는 건축계 거장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이다. 1928년 세워진 옛 왜관성당 곁에 자리해 예스러움과 현대의 미가 대비되며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한다.
수도원에는 196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피정의 집이 있었지만, 건물이 낡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숲이었던 부지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8년간의 구상과 회의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때마침 승효상 건축가가 천주교 시설을 짓고자 하는 원의를 갖고 있음을 알았고, 많은 설계도를 제작한 끝에 완성된 디자인으로 2년에 걸쳐 건축이 진행됐다.
센터는 ‘선’이라는 기본 개념을 가진 ‘경계 위의 집’이다. 이 집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간다는 뜻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곳을, 세상의 경계 밖에 있는 수도원을 동경해 찾아온 사람들이 힘을 얻는 장소로서 철저한 고독과 깊은 묵상의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큰길과 맞닿은 서측에 100m 넘는 길이의 콘크리트 벽을 세워 물리적으로 세상과 분리했다. 벽에 난 좁고 기다란 틈으로는 햇빛과 세상 풍경이 새어 들어온다.
건물을 통해 바깥을 누리다
서측 콘크리트 벽과 건물 사이에는 중정 ‘하늘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센터의 모든 층에서 유리 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볼 수 있다. 정원에는 붉은 열매를 맺는 팥배나무를 심어 새들과 공간을 공유한다. 그 뜻을 아는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정원 가득하다. 바닥에 난 정돈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하얀 성모자상이 은은한 기쁨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크리스티나 수녀의 작품이다.
하늘정원부터 4층 하늘성당까지 이어지는 외부 계단은 성 베네딕도의 계단이다. 끝에는 낭떠러지와 난간만이 존재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표현한 것이다. 2~4층 계단에는 기도소로 가는 다리가 있다. 삼각 모자를 쓴 기도소 나무문에 가느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이 박혀 있다. 내부는 한 평 남짓이지만, 높은 천장 때문에 좁은 느낌이 경감된다.
하늘성당에는 제대도 감실도 없지만 공간 자체에서 거룩함이 느껴진다. 수도원의 다른 십자가와 달리 하늘성당 첨탑 십자가는 왜관 시내를 향한다. 고깔 모양 첨탑 안을 들여다보니, 베네딕도의 별이라 명명된 빛살들이 긴 꼬리를 사방으로 뽐내며 빛나고 있다.
수도원에 들어오면서부터 까마귀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했는데, 실제로 첨탑 십자가가 세워진 뒤부터 까마귀가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까마귀와 성 베네딕토(480?~547)에 얽힌 일화가 떠오른다. 성인을 시기한 누군가의 음모로 독이 든 빵을 먹을뻔했을 때, 까마귀가 빵을 물고 가버려 성인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콘과 그림 속에 까마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거룩한 향기 가득한 내부
1층 하늘정원에서 경당으로 향하는 길. ‘선’과 ‘빛’, ‘그림자’의 조화를 꾀했던 건축가의 의도대로 우측 창틀이 만든 그림자의 선들이 경사로를 장식한다. 아래로 향하는 경사로는 지하무덤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설계했다. 창밖으로는 추모벽이 보인다. 수도원에 머물다 세상을 떠나게 될 분들의 이름을 새길 곳이다. 아프리카에서 구해 제작한 육중한 나무문을 당기자 12m의 높은 천장 끝까지 거룩한 향기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경당이다.
제대 오른쪽 십자고상은 최종태(요셉) 작가의 작품이다. 그 주위로 열두 사도를 뜻하는 사각형의 붉은 빛들이 세상으로 퍼져나가 예수님을 섬기고 있다. 고상 아래 감실을 둘러싼 붉은빛은 그리스도께서 성혈로서 늘 존재하심을 상징한다. 돌아온 탕자가 새겨진 감실은 수도원 금속공예실 작품이다.
왜관수도원 유리화 공예실에서 만든, ‘선’을 강조한 은은한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경당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나무 제대와 의자 등은 수도원 목공소에서 제작했다. 센터 내 대부분의 가구는 수도원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다. 파이프 오르간은 독일에서 기증한 연습용 악기로 마치 경당의 구조에 맞춰 만들어진 것처럼 공간과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센터 1층에는 벽면 가득 망치가 전시된 ‘망치실’도 있다. 한 환경 운동가가 모아 기증한 것인데, 수도회의 ‘기도하고 일하라’는 모토와 잘 어울린다. 센터 와 하늘다리로 연결된 마오로관은 1957년 지어진 건물을 센터 건축 때 함께 리모델링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천장을 뜯어내니 지붕의 잘 짜여진 목재 구조가 나와 그대로 보존하고 노출했다. 피정 강의가 주로 이뤄지는 마오로관 대강당은 수도원의 은인 고(故)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과 그의 친형 하느님의 종 구대준(가브리엘) 신부의 이름을 따 ‘구상·구대준 홀’로 불린다.
센터 곳곳에 자리한 하삼두(스테파노) 화백의 작품은 수도자들의 기도 준비 모습이나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이 묘사하는 장면을 담았다. 그림 속 수도자들은 2차원의 경계 안에 있지만, 실제로 수도원 대성당에서 만난 수도자들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일하고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경건하며, 현실과 그림 사이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그렇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되는 그날, ‘마지막 때’를 묵상하며 나는 경계 위의 집을 나선다.
■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 피정 안내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는 기도 안에서 쉼과 영적 풍요를 선사하는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 배우기 피정’을 비롯해 성모승천·성탄·부활 등 전례 시기 맞춤 ‘전례피정’도 열린다. 5~11월에는 ‘한Ti 가는 길’, ‘군위 사유원과 함께하는 문화 피정’, ‘가을 문화 피정’도 마련된다. 여름에는 ‘수도 생활 배움 피정’이 열리며, 6~9월에는 평화의 참된 의미를 배우는 ‘평화 학교’가 열린다. 이 외에도 본당이나 각 단체에서 위탁이나 자체 피정을 진행할 수 있고, 휴식형 개인 피정도 가능하다. 숙소는 1인실과 2인실이 있다. 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예진의 토닥토닥] (38) 내 부족함은 하느님께로 이르게 합니다
30대 초반의 은이씨는 남의 시선이 늘 신경 쓰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나 없는 데서 욕을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왕이면 사람들한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이런 은이씨의 사전엔 거절이란 없습니다. 이런 부탁 저런 부탁 다 들어주느라 늘 바쁩니다. 혼자 다 하느라 기운이 달려도 다 나에 대한 기대려니 생각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걱정이 올라옵니다. ‘이러다가 내 시간은 언제 갖지? 친구들 만난 지도 가족과 같이 놀러 간 적도 너무 오래됐는데, 이러다 더 혼자가 되는 거 아니야?’
이뿐만이 아닙니다. 은이씨는 매 순간 불안의 연속입니다. ‘저번에 그 미팅,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나를 일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 어머나, 동창 모임 있다고 했는데 답변을 아직 못했네. 나를 무심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새로 등록한 학원 선생님이 이런 것도 못 하냐며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
때로는 “어떻게든 되겠지! 죽기야 하겠어?”라고 호기를 부려보지만, 채 5분도 못 가서 사라지고 맙니다. 결국, 지난번 모임의 대화를 떠올리며 실수한 게 없나 복기하고, ‘다음번 미팅 때는 이러저러한 걸 조심해야지’ 하면서 생기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며 대비하곤 합니다. 이런 자신이 스스로도 한심하지만, 오래 그렇게 살아온 탓인지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너무 힘듭니다. 드라마를 보면 하나같이 자기 할 말 다하면서 멋지고 당당해 보이던데 나는 왜 이러는 걸까요? 그건 드라마라서, 주인공이라서 그런 걸까요? 은이씨는 오늘도 괴롭습니다.
어떤가요? 아, 저런 건 나도 있는 모습인데 싶은가요? 그런데 사람인 이상 우리는 모두 다 비슷합니다. 내 모습이 100% 다 마음에 든다는 사람은 아마 열에 하나둘 될까 말까입니다. 우리는 모두 보기 싫은 모습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것을 떼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미운 모습만 더 크게 보이고 나를 불안하게 하지요.
우리는 저마다의 세상에서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으로 살아야겠죠? 그런데 그건 내 인생에서일 뿐 세상은 또 다릅니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내 모습이 비친 거울만을 보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을 꿈꾸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어도 이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너무 허무하고 기운이 빠지나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중심으로 돌면 됩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남이 나를 먼저 존중해주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 때문에 발달한 나만의 노하우도 있습니다. 결국, 만족한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나도 다 내 안에 있습니다. 나는 부족해서 더 하느님께 의탁하며,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나를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나를 내어드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충만하다면 그게 과연 불행일까요?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부족한 나를 넘어 하느님께로 이르게 합니다.
[박예진의 토닥토닥] (14) 하느님의 끈! 나의 열정!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드 아들러, 구스타프 융 등 심리학 대가들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삶의 다양한 굴곡을 겪으면서 나는 고통을 맞닥뜨릴 때마다 피정을 꽤 많이 다녔고, 덕분에 나의 가치와 의미를 영성적으로 발견하면서 인간적인 어려움과 부족함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힘 덕분에 고비고비를 넘어온 듯하다.
나도 한때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다. 잘한 나만을 인정하고, 그렇다 보니 더 잘하려고 또 노력하고. 이런 삶을 살다 보니 내게는 위로 올라갈 사다리만이 보였다. 아들러식으로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투쟁(Strive to survive)으로 최고가 되고, 우월해야만 내 자리가 있고, 인간관계도 리더로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늘 허덕거리며 밖에서 채워 넣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내 안의 허기는 메꾸어지지 않았다. 에너지를 쏟아낼수록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목 디스크 등 건강에 이상이 왔다. 허리디스크 수술로 핀을 박고 난 차에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나는 무망감에 깊이 빠지게 되면서 나를 진실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모두 나의 의지였다.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도 있었다. 중요한 건 나의 선택이고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다 내가 한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고서야 가능하다니. 나는 하느님께 울부짖었다. 내가 성취해온 것들도 많았다. 주님은 나에게 많은 잠재력을 주셨으나 나의 집착이 마음에 감옥을 만들어서 나를 가둔 것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인정하는 한 가지! 하느님을 놓지 않는 끈이었다. 가냘프기도 했고, 굵기도 했지만, 필요한 때 필요한 지원자들, 수녀님과 수도자들을 보내주셔서 그 끈들을 붙잡게 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교육을 하면, 공통적인 평은 열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열정은 강의를 잘하는 것도 있지만, 한명 한명을 다 돌봐준다는 나의 진심에 대한 평이다.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강의인 것처럼. 그러고 나면 힘이 빠지지만 뿌듯하다. 성찰 중에 깨달은 것은 하느님의 끈을 굳게 잡은 나의 열정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바라는 그 모든 행위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것’이라는 카타리나 성인의 말처럼, 내가 하느님께 향한 그 마음과 행동이 바로 사랑을 이어주는 끈이었고 그로 인해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선택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도 있었고 아닌 것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을 아시고 늘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 지금 내 안에 하느님의 성전이 조금씩 강건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늘 허기진 외로움 그 밑에는 하느님께서 짊어지고 가신 십자가의 사랑, 대가 없는 그 고독한 사랑이 나를 나 되게 해주시면서, 나와 당신 그리고 나의 형제·자매들과 연결되어 함께 하게 해주셨다. 그 수많은 갈망의 세월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가는 여정이었다. 나는 누구이고, 지금의 소명을 감당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분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실패감과 패배감 속에서 온전히 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의 영성 생활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고 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실한 한 가지는, 하느님의 끈을 붙잡고 있는 한 그분의 나라에 산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