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시작
성경본문: 시편 128: 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 이윤남 권사...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이름이 갑자기 카톡의 새로운 친구란에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참 반갑기도 하고 당황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권사님이 하늘나라에서 나에게 카톡을 하셨나? 하늘나라에도 카톡이 있나? 그러다 생각해보니 권사님의 1주기 추도식 때에 그 딸이 내게 주소를 알려주는 문자를 보내주었는데, 그 번호를 권사님의 이름으로 저장해 두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문제는 풀렸지만... 이윤남이라는 이름을 볼 때. 참 반가웠고, 권사님이 천국에서 내려오신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그분과 함께 보낸 시간이 25년 정도가 되었는데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3년 밖에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내가 그분을 기억한 시간은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금 간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지금 더불어 함께 지내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직장의 동료들... 이런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훨씬 더 따스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에 대한 고마움, 그것을 마음에 새긴다면 그것은 또한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마음인가?
앞서 가신 분들을 생각해보면 죽음도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고, 그분들도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되기를...
시간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은 마치 쉬지 않고 꾸준히 흐르는 물결과도 같다. 좋지 않은 것들을 담아서 흘러 보내기도 하고,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소중한 것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때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며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아름답고 멋지게 가꾸어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렇듯 저마다 제한 된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름답고 멋지게 가꾸어 가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나의 삶 속에 담겨진 행복할 이유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라면 우리의 삶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이 되든지... 참으로 멋지고 근사한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는다.’ v.1
이렇게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 이것을 느끼고 믿으며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과 신비함과 영감으로 충만한 것인지...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마음 편하고,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항상 밝고 건강하게 바라보면서 살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건강하고 멋진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산다는 것, 주님의 명에 따라서 산다는 것은 곧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세상에 온 사람이다.”
이런 자의식, 우리를 당당하게 하고 남다르게 살 수 있게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서 자신을 바라보며 살게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루 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가?
‘네 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v.2
여러분은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아 참 기쁘고 즐겁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 중에서 공부를 하면서 ‘난 참 행복해’ 이런 맘을 가지는 친구들이 있을까?
“또한 주어진 결과들... 받는 월급이나 공부의 결과를 보면서 이정도면 충분해.”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행복해야할 이유라고 그렇게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찾아보면. 여기에도 행복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건강하지 않다면... 재능이 없었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보내는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서 행복을 발견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도 행복의 이유가 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나무와 같고, 네 상에 둘러앉은 네 아이들은 올리브나무의 묘목과도 같다.’ v.3
남다를 것 없는 우리네 가정... 부모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가정... 그러면 남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안방”과 “식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안방”. 얼마나 포근한 곳인가?
편안함과 쉼을 생각할 수 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곳... 크고 작은 허물이나 상처도 다 덮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식탁”. 이야기가 꽃피는 곳이 아닌가? 사랑과 격려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
“안방”과 “식탁”을 회복하는 일... 아마도 그것이 가정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한데...
어쟀든 우리들의 가정에는 크든 작든, 화려하든 그렇지 않든 안방이 있고,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든. 그렇지 않든 가족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대회를 통해서 서로를 격려하고 아픔을 나누게 되는 식탁이 있기에 세상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참된 행복이 있는 곳이다.
우리의 삶에서 찾게 되는 행복이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복임을 알게 될 때에, 깨달아 지는 것이다.
내게 생명주시고, 나를 믿음의 세계로 초대하여 주시고, 가정을 허락하시고, 오늘도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내게 내리시는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행복은 시작된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행복
(시 128:1-6)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행복하려면 행복하기로 마음에 작정을 해야 합니다(잠 4:23). 2011년 행복하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이 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의 의미를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면, 대부분 성취를 떠올립니다. 바라는 회사에 들어갈 때,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할 때와 같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은 수명이 짧은 행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최고의 행복감을 느꼈을 때는 하와를 만났을 때입니다(창 2:23). 진정한 행복은 ‘소유’나 ‘성취’가 아니라,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 계십니다. 관계가 주는 행복이 진짜 행복입니다. 관계가 주는 행복이 수명이 길고 큰 행복입니다.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까? 성경적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교회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행복을 위하여,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총진군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사랑이 행복
‘사랑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기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엄마가 더 행복합니다. 아기는 사랑을 받고, 엄마는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받는 손자도 행복하지만,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더 행복합니다. 살아가면서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입니다. 시편 128편을 보면, 짧은 구절 안에 ‘복’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 복은 큰 물질이나 막강한 권세가 아닙니다. “집 내실에 있는 아내”, “상에 둘린 자식”입니다(시 128:3). 사랑하는 가족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을 잘 알았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 29:20)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니까 품삯 없는 7년의 노동도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혹시 물질의 행복만을 좇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행복입니다. 사랑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 ‘하는 것’이 더 큰 행복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 5:11)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먼저 사랑합시다(잠 15:17). 사랑을 하면 행복이 솟아납니다. 사랑하는 것이 “더 큰 은사”(고전 12:31)입니다. 사랑이 “제일 좋은 길”(고전 12:31)입니다. 사랑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입니다(고전 13:13). 우리 모두 사랑함으로 이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둘째, 나눔이 행복
나눔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눔은 행복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먼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의 좋은 형제’ 이야기처럼 콩 한쪽이라도 “형님 먼저, 아우먼저”하면서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려고 하면 나누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병이어입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어리를 나누자 ‘모두 다’ 행복해졌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마 14:20-21). 이 사건은 하늘과 땅을 행복하게 만든 행복 뉴스입니다.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큰 행복을 우리도 누려야 합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 행복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에도 나눔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감나무 주인은 까치를 위해서 감나무에 감을 남겨두었고, 농사 짓는 사람들은 배고픈 이들이 주워갈 수 있도록 이삭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장 보러 나가면 살게 없을 정도로 물가가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울수록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울 때 더 어렵습니다. 약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과 오병이어를 나눕시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살 때,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어려울수록 서로 나누어야 수만 명이 먹고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힘써 나눌 때, 더욱 부하게 되는 행복을 누립니다. 성경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손을 주셨습니다. 한 손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손입니다. 또 다른 손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나눠주라고 주신 손입니다. 두 손 가지고 “내 것이야, 내 것이야”하며 움켜잡지 말고, 우리 모두 두 손을 활짝 폅시다. 그리할 때, 우리 손 안에 하늘이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섬김이 행복
현대인의 특징 중 하나는 무표정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메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정말로 활짝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아닙니다. 유력한 정치인도 아닙니다. 바로 자원 봉사자들입니다. 춥고 좁은 골목에서 연탄을 나르는 자원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얼굴에 연탄이 묻어서 지저분해도 미소만큼은 천국입니다. 지난 12월 31일, 우리 교회는 어려운 이웃과 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누어 드릴 쌀을 가지고 가는 모든 성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원 봉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자원 봉사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몸이 고단해도 마음만큼은 행복 충만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섬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섬김에는 ‘자원하는 마음’이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왕이라도 억지로 왕노릇하면 고역입니다. 종노릇이라도 자원하면 행복입니다. 2007년 태안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을 때, 우리 교회도 자원하여 가서 기름을 닦아냈습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도 행복했고, 뉴스를 취재하는 사람도 행복했고,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섬김에는 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섬김은 하나님의 손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각처를 다니면서 말씀으로 섬겼습니다. 성경은 그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했다고 말씀합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행 11:20-21). 바울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심한 핍박과 죽음의 위협에도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 주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섬김의 마음은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 충전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자원하여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섬김의 겨자씨를 심으면, 모두가 다 행복해집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 4:31-32).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신 33:29).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다 주셨습니다. 우리 옆에,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나눔이, 섬김이 행복입니다. 2011년에는 사랑합시다. 나눕시다. 섬깁시다. 하모니합시다.
복 받은 사람들
성경본문|시편 128: 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
출 처| 박종순목사
시편 128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가며 부른 노래 중 하나입니다.
중심 사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개인이 복을 받게 됩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복 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받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이라야 구원 받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줍니다.
유대인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방인도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섬기고 받들고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독재자들일수록 자신을 찬양하고 높이도록 법을 만들고 제도적으로 조정합니다.
BC 2600년경 고대 이집트 왕들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146m높이의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무너졌습니다. 지금 이집트에 가면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영광도 권력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2대 왕이라는 점, 왕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도 있습니다. 사울은 백성이 세웠고 다윗은 하나님이 세웠습니다.
사울왕은 잘못을 책망 받았을 때 핑계대고 변명했고 다윗은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울은 당대로 왕조가 끝났고, 다윗은 후손들이 뒤를 이어 왕통이 이어졌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다윗처럼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그들이 받는 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수고한대로 먹는다는 것은 헛수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피땀 흘려일하고 죽기 살기로 일했지만 결과가 없다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러나 수고한 대로 결과가 나타난다면 행복한 일입니다. 수고의 결과를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뜻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일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한당입니다. 그러나 일한다고 다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면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인 것입니다.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한마디로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시면 그 어떤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고 나의 고백입니다.
2. 가정이 복을 받게 됩니다.
3절을 보면 "네 집 내 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했고 4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조지프 케네디는 술 밀매와 헐리우드 영화 사업으로 돈을 벌어 케네디 가를 명문가로 만든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명성과 명문세가의 전통이 얼마동안 계속되느냐입니다.
남의 집안의 불행한 이야기여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니까 교훈삼아 하겠습니다.
큰아들 조지프 케네디 2세는 2차 세계대전 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40대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돼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존 F 케네디입니다. 그는 민주당 후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공립학교에 걸어놓은 십계명 다 떼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기도로 시작하던 전통을 깨고 기도를 없애버렸습니다. 신앙은 자유라는 이유대문이었습니다.
그토록 인기상승세를 타고 선풍을 일으키던 그가 어떻게 됐습니까? 오스왈드가 쏜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셋째 아들 로벗 케네디는 대통령 유세 중 L.A. 엠베세터 호텔에서 암살당했습니다. 그 이후 앰베세더 호텔은 흉가로 소문나 마침내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딸은 정신병으로 유랑신세가 됐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큰 아들은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됐지만 대서양에 있는 섬에 놀러가기 위해 부인과 함께 가다가 자신이 운전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죽었습니다.
조셉 케네디의 아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테드 케네디는 정치를 하고 있지만 몸조심 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줄줄이 침몰하는 비극을 지켜본 조지프 케네디가 남긴 말은 "술 팔아 남의 가정 파괴시킨 죄 값으로 이렇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야망과 사랑, 권력과 부, 명성, 섹스, 약물중독, 정신병, 사고, 암살로 얼룩진 케네디가, 신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 말은 인터넷에 기록된 평가입니다.
무엇이 성공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까?
하나님 바로 섬기고 부부가 함께 신앙지키고 자식들이 주님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입니다. 예수 없는 성공, 그 명이 길지 못합니다. 예수 없는 행복,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 같은 아내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포도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포도주는 음료로 쓰이고 약으로 쓰입니다. 포도는 식용으로 쓰입니다. 어린 감람나무는 희망과 성장,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모신 가정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만 손에 잡으면 살맛난다고 여겨 권력 중심권으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 인기권력, 돈, 명성...남자가 손에 움켜쥐고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치료한 의료진의 보고서에 의하면 대통령 재임시 만성 소화장애, 아드레날린 분비가 적어 피부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는 에디슨시병을 앓았습니다. 홀몬제 복용, 진통제, 항우울증 치료제, 흥분제, 수면제 등을 가리지 않고 복용했고 어떤 날은 하루에 8가지 약을 처방 받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력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병을 감춘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케네디의 행복입니까?
가정은 가족의 행복이 움트고 자라는 요람입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들이 바로 자라고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 모신 가정이 되게 합시다.
남편이 있느냐 없느냐, 아내가 있느냐 없느냐, 초혼이냐 재혼이냐, 부자냐 가난하냐, 압구정동이냐 이촌동이냐 이런 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 모셨느냐 아니냐가 문제입니다.
3. 나라가 복을 받게 됩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지칭할 때 시온 혹은 예루살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개인이 복을 받고 가정이 복을 받을 분만 아니라 민족과 나라가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미국 하워드 대학의 존슨 교수는 사람에겐 계층구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계층구조란 육체적 단계, 정서적 단계, 지적인 단계, 영적인 단계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단계로 올라갈수록 건강해지고 영적인 단계에서 파생되는 힘이 질병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나라도 건강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정직, 청렴, 친절에 관한 조사를 했습니다. 1위는 기독교국가 2위는 불교국가 3위는 회교국가였습니다.
주일마다 매일새벽마다 산에서 들에서, 어른도 젊은이도 아이들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 기독교를 정치인 아무개가 깍아 내리고 학자라는 아무개가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나라, 예수님 이름 부르는 나라가 선진국가고 앞선 나라들입니다. 무신론국가 공산국가 치고 잘사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갔습니다. 큰 간판이 걸려있더랍니다. 간판에는 수리중이라는 글이 써있었습니다. 공사 책임자한테 무슨 수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 때문에 수리를 안 할 수 없게 됐다며 한국은 동네마다 불가마, 찜질방, 사우나, 쑥탕이 있어서 뜨거운데 익숙해 지옥에 오는 사람마다 "어 시원해 좋다, 화끈해 좋다"며 지옥을 마치 불가마인줄 알고 즐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10배 정도 더 뜨겁게 만들기 위해 대폭 수리를 하고 있다는 대답.
어떤 사람이 천당엘 갔습니다.
천당 입구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대 혼잡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팀장으로 보이는 천사한테 "왜 이렇게 입구가 혼잡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팀장 대답 "본래 생명책에 기록되고 입력된 얼굴과 실물을 대조한 후 입장을 시켜야 되는데 생명책에 입력된 사진과 실물이 영 달라서 대조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이유는 세상에 살면서 모조리 얼굴을 뜯어 고쳐 사진과 실물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든 유모어입니다. 앞에 얘기는 불감증을 꼬집는 얘기고 뒤의 얘기는 이중성을 꼬집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감증과 이중성으로 대 혼잡을 격고 있습니다. 겉은 하얗고 속은 빨간 사람, 겉으론 예수 속으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낮에는 지킬박사 밤에는 하이드, 겉으론 민주주의 속으론 공산주의,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점점 더 혼란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복이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찌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살기 때문에 개인이 복 받고 가정이 잘 되고 이 나라에 평강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