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야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여성의식의 특성
환상적 통합성(3)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가정이나, 아이, 잔잔한 행복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한 손에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현란한 세계를 잡으려고 넘보는 것이 어떤 때는 무모한 욕심처럼 느껴도 진다. 또한 그 두 세계를 다 넘나들려고 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고단함은 차라리 당연한 업보로 여기며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딸들이 빨리 커서 이런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날들이 오면 좋겠다. 그들이 물질의 허영에나 안주하지 말고, 부단히 아파하며, 본질에 몸을 던지고, 매일매일을 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실존적 자각에 눈뜨게 되길 기원한다. (pp. 275-276.) (굵게 강조 : 인용자)
- 이숙영, 「나의 또 하나의 반쪽 이야기」 중에서 -
위의 수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숙영의 경우는 ‘일단 결혼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여인네들이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그것이 최고의 미덕인 양 숭앙되는, 획일적인 가치만을 강요하는 소위 ’가부장적 사고‘에는 반발하면서도, 가사 일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감내해가는 ’주부‘라는 직업의 여인들에게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수필은 가정과 자아라는 두 축의 상충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겠다.
가정과 자아를 환상적으로 통합하는 이 글은 작가의 자녀 양육과 모성의 경험 그리고 부부애를 당당하고 솔직하게 펴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여성적 경험의 복권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여성이 결혼과 일을 아무 모순 없이 통합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이 아닌 상태에서는 이런 매혹적 통합은 본의 아니게 슈퍼우먼 신드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하겠다.
김금지의 여성 문제 관련 수필들은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글이다. 특별하게 운명지워진 삶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을 위해' 일생을 마치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며, 한 번도 작가는 가정이나 자아를 위해 산 적은 없다고 고백하면서 그 중에서도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내 주변의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것은 오직 작가가 필요로 하고 좋아서 그리고 사랑해서 살아왔을 따름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아를 위해서 가정을 팽개치는 일도 소름끼치는 일이고, 남편과 자식에 매달려 일을 버리고 자아를 희생하며 사는 일 또한 어리석은 일이란 것이다. 그냥 열심히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남의 잘난 남자보다 그저 보통인 남편을 좋아하려고 애쓰며, 아이들 걱정하며, 아옹다웅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이 아니냐는 반문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운명관을 읽어낼 수 있다. 인생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에 통달한 사람처럼 무엇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남편과 자식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면서 사는 모습이 눈에 그려질 것만 같다. 일이 잘 안 되면 '한숨도 쉬고, 빼액 소리도 질러대면서' 열심히 사는 게 작가의 인생관이다. 한마디로 슈퍼우먼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간 뒤 남편을 깨운다. 빵 구워 주고, 달걀 부쳐 주고, 우유 주고, 쥬스 주고, 바지 다리고 부지런히 챙겨서 남편을 내보낸다. 혼자가 된 나는 마냥 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신문을 본다. 커피도 마시고, 화장도 하고, 옷도 입어보고, 다시 드러누워 뒹굴기도 하다가 10시에 집 돌보는 이가 오면 집을 나선다. ‘안녕하십니까? 구둣가게를 열었어요. 지나가시는 길이 있으시면 들러 주세요!’ 이런 개업 인사장을 돌려놓고 잘 안 돼서 금방 치우려다가, 돌린 인사장이 부끄러워 6개월만, 1년만 하다가 지금까지 계속해 온 내 구둣가게로 매일 출근한다. (...중략...)
그러다가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부지런히 다이얼을 돌린다. “도시락 다 먹었니? 맛있었니? 숙제 해라! 예습, 복습 해라! 손 좀 씻어라!” 하고 속사포처럼 잔소리를 해대고는 “아! 난 엄마 노릇을 잘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또 요즈음 남자가 모자란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챙겨야지!’하고 얼른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괜히 “점심 잡쉈어요? 뭘 잡쉈어요? 늦으셔? 몇 시에 들어오세요?”하다 보면 싱거워져서 그만 끊는다. (굵게 강조 : 인용자)
- 김금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 -
김금지의 위 작품 역시 가사와 자아를 둘 다 선택해서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을 느끼는 작가의 바쁜 일상사가 읽힌다. 연극을 하면서, 잡지사에 글을 보내면서, 구두 가게 사장이면서, 첫아들을 낳고 11개월 만에 딸을 낳아 아이 키우는 데 재미를 느낀다. 작가는 자기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남편을 끔찍이 사랑한다. 그는 '자유로운 미혼녀도, 독신녀도 아니고, 가정과 자녀를 가진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많은 제약을 느낀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부지런히 다이얼을 돌리며 엄마 노릇을 잘 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하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 '또 요즘 남자가 모자란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챙겨야지!"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며 사랑을 준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해하며, 생활에의 만족을 훨씬 넓혀 '이웃들까지도 사랑하자'며 여성의 삶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80년대 여성 작가들의 두드러진 현실 양상은 남성중심적인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고자 하는 다소 급진적인 경향을 띤다. 그것은 물론 페미니즘수필로 명명되는 사회수필 형태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러한 흐름은 7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농경사회 구조의 해체와 후기산업사회로의 구조적 변동이라는 과도기 한국 사회의 물적 기반에 따른 결과와 80년대 민주화와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권 수호성을 나타내는 여성수필이 여성시인이나 여성소설가들의 수필에서 주로 나타났지 여성수필가들의 작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위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여성수필가들의 수필은 오히려 여성 정체성에 소극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여성문학이 독자적인 지평을 확대하고 여성 현실의 복합성과 씨름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진보적 세계관의 틀이 튼실하게 세워져야 하지만, 주제를 내면화함으로써 구축할 수 있는 문학성의 확보도 중요하다 하겠다. 여성 수필은 앞으로 다루어야 할 여성 현실에 담을 내용들을 고민하면서 기법의 측면에서도 그 내용을 문학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야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작가는 여성 경험의 특수성에 주목하면서도 그 경험의 비단 개인의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각인된 사회적인 것의 산물임을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집단의 정체성'확립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여성은 세대적으로 계층적으로 자기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공감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러한 연대와 배제의 중층적인 원리를 통해 개인의 삶 속에 계급적, 성적으로 억압과 극복의 경험을 지닌 여성들의 삶이 녹아들게 되고 개인의 삶은 지속적인 성찰과 거듭남을 거쳐 객관성을 띄게 된다. 때문에 이때 '집단'은 단순한 개인의 산술적 총합이 아니며 무성적 (sex-blind)이거나 무계급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근자의 여성 작가들이 수필을 통해 자신들의 억압적 경험을 객관화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 확립을 모색하고 있는 현상은 퍽이나 희망적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 작가들이 80년대적인 현실 속에서도 ‘남성 자아’와 변별되는 ‘여성 자아’의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맥락이 일종의 밑그림으로만 존재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자기정당화의 욕망이 강한 나머지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채 선언적 진술에 머물고 만다. 때문에 이런 여성 수필은 집단의 정체성 확립에는 현격히 수준에 미달한다.
지금까지 고찰해 본 80년대 여성의식의 특성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자기 찾기라는 정체성 문제에 대한 여성 작가들의 시각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었지만 본장에서는 의식의 기본 구성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폈다. 그 결과, 자아와 일 그리고 사랑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식의 발로인 여권 수호성에는 주체의 결정성과 참여적 사회성이 종속되었고, 주부나 어머니, 며느리로서의 전통적 역할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지 못해 생기는 역할 갈등성 부분에서는 모성의 자립성과 모순적 양면성이 파악되었고, 가정, 자아, 사랑까지도 모두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수퍼우먼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운명에 자신을 맡기는 현실 적응성 부분에서는 여인의 숙명성과 환상적 통합성이 그 속성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여성 의식의 세 가지 양상은 대체로 지배체제에 대한 짙은 허무의식으로 드러나거나 광기의 이성이 지배하는 현실을 초월하려는 경향으로 파악되며, 이 흐름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80년대 여성수필의 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80년대 여성작가들 특히 여성시인이나 여성소설가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여성의식 양상이 남성 중심적인 기존 관념을 전복하고자 하는 다소 급진적인 경향을 띤다는 것은 고무적인 측면이다. 의식 특성도 언술 특성과 비슷한 특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정비례되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이 80년대 여성수필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 문제 관련 수필들의 정체성 양상이 적극적, 중도적, 소극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신달자를 비롯한 80년대 여성시인들이 쓴 일련의 여성수필들이 보여주었던 여성 정체성의 거세화나 불모화는 강제된 여성의 조건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건강한 여성 정체성의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서양의 경우는 우리 현실과 다르다. 슈퍼우먼으로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분석된다. 독신 여성의 경우 그들의 성취는 고독을 대가로 이룬 것이었고, 혼인과 일 둘 다를 선택한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에서의 이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베티 프리단이 ‘이것은 제2의 페미니즘이 공적인 구조와 남성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하고 이루어진 데서 빗어진 당연한 결과였다’고 적고 있는 것과 우리 현실은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페미니즘 수필이 적게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성차별의 철폐와 이상적인 남녀평등의 사회건설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여성학과의 개설과 더불어 앞으로는 사회수필도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유식은 ‘21세기 사회변동과 그 주제적 전망’이란 논고를 통해서 이미 8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는 페미니즘 수필이 미래 수필의 주제로 정착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도 정영자, 이정림을 비롯한 몇몇 여성작가들의 수필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여성주의 수필을 명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성과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