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처럼 사람마다 다른 '장 유형', 알아야 내 몸 지킨다
이소영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누군가의 대변을 살피고, 냄새를 맡고, 심지어 맛보는 이가 있다. 영화 〈광해〉의 한 장면이다. 이런 일은 하는 사람은 어의다. 실제로 어의가 왕의 대변을 세심하게 관찰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의 수라상 재료 선택에 관여해 식단을 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변의 형태, 점성, 묽기, 냄새, 빈도 등을 통해 건강을 확인하는 방법은 현대 의학에서도 유효한 것 같다. 다만 현대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분변 내 미생물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장내 미생물 정보를 추가로 얻게 됐다.
최근 20여년간의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범위는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질환,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장 질환에서부터 대사 및 면역시스템, 신경계 그리고 장과는 무관해 보이는 우울증, 자폐스펙트럼 장애, 치매 등의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수의 글로벌 대형 제약회사들이 장내 미생물을 이용해 암, 뇌·면역 질환 등 난치성 질병 치료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치료 또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기증받아 보관하는 ‘대변은행’도 만들어졌다.
식품업계에서도 이 장내 미생물을 조절할 수 있는 식품 원료인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에서 프로바이오틱스는 홍삼과 비타민에 이어 3번째로 많이 팔리는 건강기능식품이다. 2015년 이전에는 장 건강, 과민 피부 개선과 같은 일부 기능성을 대상으로 한 제품만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갱년기 대처, 질 건강 유지, 체지방·콜레스테롤 개선, 근 감소 개선, 혈당 조절 등으로 적용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효과를 느꼈다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나에게는 효과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장 유형’ 차이로 인해 장내 미생물의 종 다양성, 대사체 종류, 섭취한 프로바이오틱스의 장내 정착에 대한 저항성 등이 다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장 유형이란 혈액형이나 MBTI 성격유형 검사처럼 우리 장에 존재하는 장내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장 형태를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201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결과처럼 사람의 장 유형은 ‘제1형 박테로이데스, 제2형 프리보텔라, 제3형 루미노코쿠스’ 등으로 세분화가 가능하다. 이처럼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유형화할 수 있다는 것은 각 장 유형에 따라 적합한 프로바이오틱스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장 유형에 따른 프로바이오틱스의 체지방 감소 효과를 평가한 한 임상 연구에서는 프리보텔라 장 유형의 사람이 박테로이데스 장 유형의 사람보다 프로바이오틱스에 더 잘 반응해 체지방 감소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한 바 있다. 장 유형별 프로바이오틱스의 효과가 달리 나타난다는 보고는 이외에 많이 있지만, 다행인 건 장 유형은 식습관과 장 유형에 적합한 프로바이오틱스 섭취를 통해 일정 정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란 장 유형에 맞게 선택된 프로바이오틱스라 할 수 있다. 장 유형의 확인은 장내 미생물 분석을 통해 가능한데, 최근 몇몇 바이오기업들은 대변을 통해 장 유형을 분석하고 적합한 식단이나 프로바이오틱스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러한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뒤 1주일에서 1개월 뒤에는 소화 기능과 대변 상태 등을 관찰해 나에게 적합한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을 수 있다. 나의 장 유형과 식이 패턴, 분변 상태 등을 먼저 아는 것이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 시대에서 살아가는 지혜가 될 것이다.
이소영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