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님, 감사합니다 (전남본부 / 조길님)
산골 마을 부잣집 장녀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아쉬운 것 없이 자라온 저는 어려서 결혼하였습니다. 좀 살다가 다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불면증과 무서움에 시달리고 식량이 부족해 몸이 쇠약한 가운데 아들을 낳고, 딸 다섯을 낳았습니다.
숙모님이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하여 입신을 하여 본존님의 공덕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에 살고 있는 딸이 반도체 회사의 직원들을 태우고 광주로 오게 되면 여기까지 와서 3일 정도 양파, 고추 농사를 도와줍니다.
연합회 창립 기념법요회에 다녀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습니다. 딸이 있을 때 일을 해야겠다고 딸과 함께 전동차를 타고 논에 나갔습니다.
논바닥에 둔 퇴비 포대가 전동차 바퀴에 걸려 있어 앞으로 나가지 않길래 내가 전동차에서 내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래로 굴러떨어져 도랑에 쳐박혀 버리고 전동차는 시동이 걸린 상태로 도랑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 전동차가 나를 눌러 버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아찔했습니다.
얼굴에 조금 상처가 났을 뿐 괜찮았습니다. ‘본존님의 불력으로 내가 살았구나’하고 생각하고 일어나려는데 딸이 달려오더니 “엄마, 엄마, 본존님 감사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빤히 쳐다봤더니 “엄마가 제목을 열심히 부르니까 본존님이 공덕을 주셨어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에 엄청 감동을 먹었습니다.
가끔 딸과 함께 일할 때면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딸의 손자가 음악 소속사에 시험을 본다기에 “너가 손녀를 위해 꼭 합격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제목을 불러줘라.”고 하였습니다. 손자가 시험에 합격했으며, 선생님들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본존님의 공덕입니다. 동네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억척 아줌마로 소문나 있는 저는 나이 칠십 아홉이지만 남의 전답이라도 많이 경작하면서 소득을 보장받고 있어 조금도 두렵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프고 가난해서 본존님을 만나게 되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한 결과 지금 하는 일마다 어본존님의 공덕으로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