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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매아(孫順埋兒)
손순이 아이를 묻다는 뜻으로, 신라 흥덕왕 때 자신의 아들을 죽여 묻음으로써 어머니를 봉양하려한 효행 설화를 이르는 말이다.
孫 : 손자 손(子/7)
順 : 순할 순(頁/3)
埋 : 묻을 매(土/7)
兒 : 아이 아(儿/6)
(유의어)
노래자유희(老萊子遊戱)
맹종설순(孟宗設筍)
반의지희(斑衣之戱)
왕상득리(王祥得鯉)
효행을 실천한 효자 이야기는 많이 소개했다. 왕상(王祥), 맹종(孟宗), 노래자(老萊子), 증자(曾子), 육적(陸績) 등을 포함하는 중국의 이십사효(二十四孝)다.
아이를 묻은 손순(孫順)은 우리나라의 효자다. 손순은 통일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때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며 늙은 어머니를 정성스레 봉양했다.
부부에겐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끼니때마다 할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어 골치였다. 손순이 부인에게 말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아이가 어머니 음식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굶주림이 너무 심하오. 그러니 아이를 땅 속에 묻어 어머니를 배부르게 해야겠소'
兒可得, 母難再求. 而奪其食, 母飢何甚. 且埋此兒以圖母腹之盈.
아이를 업고 동네 뒷산에 가서 땅을 파는 도중에 무엇이 걸려 파 보았더니 돌로 된 종이 나왔다. 아이의 복이라 여겨 묻지 않고, 석종을 지고 내려와 집 대들보에 매달고 쳐 보니 대궐에까지 소리가 퍼져 나갔다.
흥덕왕이 사연을 듣고 옛날 중국의 곽거(郭巨)라는 효자가 아들을 묻으려 할 때 하늘에서 금솥(金釜)을 내렸다더니 이것은 전세의 효와 후세의 효를 천지가 함께 본 것이라며 칭찬했다. 그리고선 집 한 채와 매년 벼 50섬을 내리고 효성을 기렸다.
손순은 옛집을 희사하여 홍효사(弘孝寺)로 하고 석종도 잘 간직했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의 효선(孝善)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늘날 시각으로는 아이를 묻으려는 생각도 할 수 없지만 간절한 효행에 보답이 왔으리라 생각하면 되겠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효행편에 나오는 구절도 알아두자.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하기 마련이니,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
孝於親 子亦孝之, 身旣不孝 子何孝焉.
손순매아(孫順埋兒)
인신공희(人身供犧) 효행설화의 일반적 구조로 정성을 다해 부모를 봉양하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 기적이 일어나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는 말이다. 부모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려 한 효행설화의 대표적 작품이다.
사실 손순(孫順)으로서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서 몹시도 갈등하고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아이를 묻을 것을 결심하면서 갈등을 일단락 되는데, 이는 효(孝) 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이 설화는 손순의 효행을 불교 신앙으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가난했던 옛집에 석종을 안치함으로써 세속적 공간인 옛집이 신성한 공간으로 변모한 손순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라 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라 하였다.
모량리는 어떠한 곳인가? 한때는 지증왕비(智證王妃)인 연제부인(延帝夫人) 박씨(朴氏) 등을 배출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었지만, 32대 효소왕(孝昭王) 대 이후에는 더할 수 없는 가난한 마을로 전락해 버리고 만 곳이다. 왜 그랬을까?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의 배경설화를 보면 이 의문이 풀린다.
진덕왕(眞德王), 태종왕(太宗王), 문무왕(文武王), 신문왕(神文王)의 4대에 걸쳐 총재(冢宰)를 지냈고, 김유신(金庾信)을 도와 삼국통일의 功을 이룬 죽지랑(竹旨郎)의 낭도 중에 득오(得烏)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모량(牟梁)의 익선아간(益善阿干)에게 부산성(副山城) 창직(倉直)으로 차출되어 그의 사전(私田)에서 부역을 하고 있었다.
이에 죽지랑은 떡과 술을 장만해 가지고 면회를 갔다. 좌인(左人: 奴僕) 및 낭도 137인이 따르는 매우 위의(威儀)를 갖춘 행렬이었다. 죽지랑은 익선에게 득오의 휴가를 청하였으나 암색불통(暗塞不通)한 익선은 이를 거절하였다.
때마침 추화군(推火郡)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가던 사리(使吏) 간진(侃珎)이 보고 조 30석을 주고 청가(請暇)를 도왔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게 되어, 또 진절사지(珎節舍知: 관등 13等)의 기마안구(騎馬鞍具)를 주고서야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결국 이러한 소문이 조정의 화주(花主)에게 들어갔고, 화주는 怒하여 그 더럽고 추함을 씻어주고자 사람을 보내어 익선을 잡아오게 했으나 익선은 도망하여 숨어 버렸다. 이에 그의 맏아들을 대신 잡아다가 城 안에 있는 연못 가운데에서 세욕(洗浴)시켰는데, 때가 마침 한겨울의 매우 추운 날이라서 그만 얼어죽고 말았다.
사건의 전말이 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대왕은 모량리인으로서 관직에 종사하고 있는 자는 모두 몰아내어서 다시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중도 되지 못하게 하였으며, 만약 이미 중이 된 자라고 하더라도 종고(鐘鼓)가 있는 절에는 들지 못하도록 조칙(詔勅)까지 내렸다.
이로 말미암아 원측법사(园測法師) 같은 이는 해동의 고승이었지만 모량리 사람이라서 승직(僧職)을 주지 않았다고 하니, 모량리 사람들의 몰락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효소왕(孝昭王) 대 이후 모량리인으로 사서(史書)에 이름이 보이는 사람으로서는 정치하고는 무관한 신문왕(神文王)에서 혜공왕(惠恭王) 대의 김대성(金大城)과 흥덕왕(興德王) 대의 손순(孫順) 정도밖에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량리를 부운촌(浮雲村)이라 불렀던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으로 돌려보자. 이 이야기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제9편 효선편(孝善篇)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신라(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때의 이야기이다.
손순은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품을 팔아 얻은 양곡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린 아들이 항상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손순은 부인에게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얻을 수 없다” 라며 아이를 땅에 묻고자 했다.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에 가서 땅을 파는데, 돌종이 나왔다. 놀란 부부가 종을 두드려 보았더니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종소리를 들은 흥덕왕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뒤 손순에게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효도하게 했다.
그러나 손순은 옛 집을 희사(喜捨)하여 절로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돌종도 거기에 달아 두었는데, 뒤에 백제의 도둑이 와서 종을 훔쳐 갔다.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잘못 전달되어 지양평(枝良坪)으로 변했다.
이 효자 손순의 이야기는 효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매우 문제가 있다. 불효 중에서도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였는데, 자식을 죽여 孝를 실천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행위는 불의가 아닌가?
어미 때문에 불의를 저지른다는 것은 어미도 함께 불의에 빠지게 함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孝라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파묻어 孝를 실행하려 했다는 얘기는 극적으로 孝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 수법일 뿐이라고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손순의 가난한 생활과 효행, 그 보답으로 얻은 보상과 절의 건립이라는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로 귀결된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뚜렷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孝이다. 효행은 손순 일가의 고난과 결핍의 상황을 기쁨과 충족으로 바꾸어 놓는 핵심요소이다.
매아(埋兒) 이후의 사건 단락에서는 종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孝의 차원에서 볼 때도 좋은 효행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건들이 종과 관련되어 제시되고 손순 일가의 중요한 문제들도 종과의 관련 아래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아(埋兒) 현장에서 돌종이 나왔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아이가 구출된다는 데는 효행과 생명의 존중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종소리는 매아의 현장에 있던 손순 부부의 내면 변화, 집으로 돌아온 뒤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을 깨달음, 국가적 단위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이야기는 윤리적 차원의 이념 추구에서부터 사랑과 구원의 의미 쪽으로 향해 가면서 이야기가 추구하는 내용이 효행담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동(南莎洞)에 북골이라고 부르는 부락이 있다. 북골이란 대효(大孝) 손순의 효성이 하늘에 통해 석종의 기적을 나타낸 데서 나온 이름이다. 지금 그 동리의 중앙에 수백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고목들이 있는 숲이 있고 그 가운데에 손순의 유허지(遺墟址)가 있다. 손순의 유허지는 효성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 건립된 홍효사의 옛터이기도 하다.
이 설화는 손순의 효행을 불교 신앙으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가난했던 옛집에 석종을 안치함으로써 세속적 공간인 옛집이 신성한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것은 孝를 신성한 불교적 행위의 하나로 승화시키려는 의도이며 홍효사라는 사찰의 이름 역시 孝의 확산을 염두에 둔 이름이다.
이와 유사한 설화로는 곽거매자(郭巨埋子), 효녀지은(孝女知恩) 등이 있다. 곽거매자는 중국 후한(後漢) 때의 사람인 곽거(郭巨)가 자식을 땅에 묻었다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함을 비유한다. 원(元)나라 곽거경(郭居敬)이 지은 24孝라는 책에는 곽거라는 효자에 대한 소개가 있다.
곽거는 집이 몹시 가난하여 아내와 함께 날품팔이를 하면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먹을 것을 겨우 조금 마련하여 늙은 어머니께 드리면, 세살 난 어린것이 거의 다 빼앗아 먹곤 하였다.
어느날 곽거는 아내에게 “얼마 되지 않은 먹을 것을 자식이 모두 빼앗아 먹어 어머님이 드실 것이 없소. 자식은 다음에 또 낳을 수 있으니 저 아이를 산에 갖다가 묻어 버립시다” 라고 말하였다.
아내도 남편의 말에 동의하여 둘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자 누런 황금으로 만든 커다란 솥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 솥 위에는 ‘이 솥은 하늘이 효자 곽거에게 주는 것이니 관청에서도 빼앗지 못할 것이며, 더구나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하느니라’ 라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효녀 지은설화(知恩說話)이다.
이 이야기는 신라시대의 효녀 지은(知恩)에 관한 설화로 효행설화의 하나로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8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효선편(孝善篇)에 수록되어 있다.
지은은 연권(連權)의 딸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나이 32세가 되도록 출가를 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살림에 쪼들리게 되어 쌀 여남은섬에 자기 몸을 종(從)으로 팔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통곡을 하였고 지은도 함께 울었는데, 마침 이 장면을 목격한 화랑(花郞) 효종랑(孝宗郎)은 그 효성에 감탄하여 곡식 100섬과 옷을 보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낭도들도 각각 곡식을 보냈으며, 왕도 이를 알고 곡식 500섬과 집을 하사하여 잘 살도록 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도 수록된 내용은 약간의 변이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제목이 빈녀양모(貧女養母)로 되어 있고 이야기를 들은 장소인 포석정(鮑石亭)이라는 배경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서는 효종랑이 직접 목격한 것으로 서술되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간접으로 이러한 사실을 듣는 것으로 나타나며, 전자에서의 지은이라는 인명이 후자에서는 그냥 빈녀(貧女)로 변화되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는 이야기 말미에 사찰연기설화의 기능으로, 나라에서 상(償)으로 내려준 집을 모녀는 희사하여 절로 삼고 이름을 양존사(兩尊寺)라 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편찬자인 승려 일연의 의식이 바탕에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효행설화 중 손순매아와 함께 상대(上代)에 속하는 것으로 이 계열의 설화가 근세까지 끊임없이 창작되고 전승되어 우리나라 설화의 특성으로 그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다.
▶️ 孫(손자 손)은 ❶회의문자로 孙(손)의 본자(本字)이다. 아들(子)이 이어짐(系)으로, 곧 자식에서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것으로 손자(孫子)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孫자는 '손자'나 '후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孫자는 子(아들 자)자와 系(이을 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系자는 명주실을 손으로 엮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어지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이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系자에 子자가 결합한 孫자는 '아들이 이어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갑골문에서는 子자와 糸(실 사)자만이 있었으나 소전에서는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系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孫(손)은 (1)후손(後孫)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손자 ②자손(子孫), 후손 ③움(나무를 베어 낸 뿌리에서 나는 싹), 돋아난 싹 ④맥락(脈絡) ⑤겸손하다(謙遜--) ⑥공손하다(恭遜--), 순종하다(順從--) ⑦달아나다 ⑧물려주다 ⑨~보다 못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자손 윤(胤), 자손 주(胄), 후손 예(裔),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할아버지 조(祖)이다. 용례로는 아들의 딸을 손녀(孫女), 손자 며느리를 손부(孫婦), 손녀의 남편을 손서(孫壻), 손자와 증손을 손증(孫曾), 아들의 아들을 손아(孫兒), 아들이 낳은 아들을 손자(孫子), 가지에서 또 새로 돋아 나온 곁가지를 손지(孫枝), 고생 속에서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손강영설(孫康映雪), 대대로 이어오는 자손을 일컫는 말을 대대손손(代代孫孫),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림을 일컫는 말을 세세손손(世世孫孫), 자손의 여러 대 또는 자손의 끝까지를 일컫는 말을 자자손손(子子孫孫), 자자손손의 썩 많은 세대를 일컫는 말을 자손만대(子孫萬代), 명당자리에 묻힌 사람의 자손을 일컫는 말을 명당자손(明堂子孫), 남의 집의 양자가 되어 성을 이어받은 자손을 일컫는 말을 계성자손(繼姓子孫), 매우 많은 자손을 일컫는 말을 백자천손(百子千孫), 천륜을 어긴 자손을 일컫는 말을 패자역손(悖子逆孫),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 된 슬픈 운명의 연인을 일컫는 말을 오손공주(烏孫公主),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대대의 자손에게 전하여 줌을 일컫는 말을 전지자손(傳之子孫), 화가 자손에게 미침을 일컫는 말을 앙급자손(殃及子孫), 차윤의 반딧불과 손강의 눈雪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서의 면학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차형손설(車螢孫雪), 착하고 옳은 일을 하면 자손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을 선선급손(善善及孫) 등에 쓰인다.
▶️ 順(순할 순)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顺(순)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川(천, 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川(천, 순)은 시내, 시내의 흐름을, 頁(혈)은 머리나 얼굴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리에 따라 흐른다는 데서 '순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順자는 '순하다'나 '유순하다', '따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順자는 川(내 천)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유순하다'는 것은 순응하며 잘 따른다는 뜻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렇기에 順자에 쓰인 川자는 사람이 까다롭지 않고 물 흐르듯이 순응하며 잘 따른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順(순)은 (1)선후 따위 관계로 정(定)해지니 배열(配列), 차례(次例). 순서(順序), 순번(順番) (2)성(性)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순(順)하다, 유순(柔順)하다 ②좇다 ③(도리에)따르다, 순응(順應)하다 ④가르치다, 교도(敎導)하다 ⑤잇다, 이어받다 ⑥제멋대로 하다 ⑦편안(便安)하다, 안락(安樂)하다 ⑧화(和)하다, 화순(和順)하다(온화하고 양순하다) ⑨물러나다, 피(避)하다 ⑩바르다, 옳다 ⑪귀여워하다 ⑫차례(次例), 순서(順序) ⑬도리(道理) ⑭도리(道理)에 따르는 사람 ⑮실마리, 단서(端緖) ⑯아름다운 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순할 완(婉),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스릴 역(逆)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차례를 순서(順序), 차례로의 위치나 차례 순서를 순위(順位), 성질이 온순하여 까다롭지 않고 화평함을 순탄(順坦), 도리에 순종함을 순리(順理), 고분고분 따름을 순종(順從), 아무 탈없이 일이 잘 되어 가는 상태를 순조(順調), 순하게 부는 바람을 순풍(順風), 부드럽게 대응함을 순응(順應), 바르게 돌아오는 차례를 순차(順次), 하늘의 뜻을 따름을 순천(順天), 차례로 연기함을 순연(順延), 순조로운 항행을 순항(順航), 글자 획의 순서를 획순(劃順), 거꾸로 된 차례를 역순(逆順),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거침을 불순(不順), 온화하고 순함을 화순(和順),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성질이 부드럽고 온순함을 유순(柔順), 효행이 있고 유순함을 효순(孝順), 고분고분하고 양순함을 온순(溫順), 천리에 따르는 자는 오래 번성한다는 말을 순천자존(順天者存), 아무 일 없이 잘 되어 간다는 말을 순차무사(順次無事),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한다는 말을 순천응인(順天應人),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소리 지른다는 뜻으로 좋은 기회를 터서 일을 시행하면 이루기가 쉽다는 말을 순풍이호(順風而呼), 돛이 뒤에서 부는 바람을 받아 배가 잘 달리는 모양이라는 말을 순풍만범(順風滿帆),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다는 말을 우순풍조(雨順風調),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킨다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명분이 정당하고 말이 사리에 맞다는 말을 명정언순(名正言順), 위와 아래가 서로 뜻이 맞아 온화하다는 말을 상하화순(上下和順), 어떤 일이든지 그때와 형편에 따라서 맞추어 한다는 말을 수시순응(隨時順應) 등에 쓰인다.
▶️ 埋(묻을 매)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다스리다의 뜻을 가진 里(리, 매)로 이루어졌다. 흙속에 묻히다, 묻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埋자는 '(땅에)묻다'나 '장사지내다', '감추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埋자는 土(흙 토)자와 里(마을 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서는 두 종류의 글자가 '묻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나는 雨(비 우)자와 狸(삵 리)자가 결합한 霾(흙비 매)자이다. 이것은 흙먼지 바람을 맞고 있는 삵을 그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덩이에 양을 묻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지금은 이 두 종류의 글자가 서로 결합한 埋자가 쓰이고 있다. 그래서 埋(매)는 ①묻다, 땅에 파묻다 ②장사(葬事)지내다 ③감추다, 드러나지 않게 감추어지다 ④메우다, 채우다 ⑤영락(零落)하다(보잘것 없이 되다), 낙백(落魄)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파묻음이나 파묻힘을 매몰(埋沒), 송장을 땅에 묻음을 매장(埋葬), 우묵한 땅을 메워 올림을 매립(埋立), 이름을 숨김을 매명(埋名), 상대편을 불시에 치거나 살피려고 적당한 곳에 몰래 숨어 있음을 매복(埋伏),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 쌓음을 매축(埋築),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적(埋積), 묻어서 감추는 것을 매장(埋藏), 지뢰나 수도관 따위를 땅속에 묻어 가설함을 매설(埋設), 신주神主를 무덤 앞에 묻음을 매안(埋安), 원망을 품음을 매원(埋怨), 뼈를 땅에 묻음을 매골(埋骨), 오랫동안 땅이나 물속에 파묻혀 화석과 같이 된 나무를 매목(埋木), 내세의 발원을 위하여 향을 강이나 바다에 잠가 묻는 일을 매향(埋香), 몰래 묻어서 감춤을 매비(埋祕), 송장을 땅에 묻음을 매유(埋幽), 땅에 묻거나 보이지 않도록 시설하는 화약 병기를 매기(埋器), 폭발물을 매설하는 일을 매화(埋火), 관을 땅 속에 넣고 묻음을 매폄(埋窆), 옥을 파묻는다는 뜻으로 잘난 사람이 죽어 땅속에 묻힘을 매옥(埋玉), 임시로 묻음을 가매(假埋), 생물을 산채로 땅속에 묻거나 또는 묻힘을 생매(生埋), 시체 따위를 땅속에 묻음을 토매(土埋), 몰래 묻음을 비매(祕埋), 남 몰래 매장함을 잠매(潛埋), 일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매두몰신(埋頭沒身), 묻은 불은 일어남의 뜻으로 후환이 없다고 안심하던 일이 다시 일어남의 비유 또는 지난 일을 괜스레 들추어 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기매화(起埋火), 멀리 보이는 푸른 산 어디든지 뼈를 묻을 수 있다는 뜻으로 대장부는 반드시 고향에다 뼈를 묻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청산가매골(靑山可埋骨) 등에 쓰인다.
▶️ 兒(아이 아, 다시 난 이 예)는 상형문자로 児(아)의 본자(本字), 齯(예)의 고자(古字), 儿(아)는 간자(簡字), 倪(예)는 동자(同字)이다. 兒(아)는 이를 강조하여 그린 사람의 모습으로, 간니가 다시 날 때쯤의 유아(幼兒)를 말한다. 옛날 사람은 臼(구)의 부분을 이가 아니고 젖먹이의 머리뼈가 아직 굳지 않은 모양으로 설명(說明)하고 있다. 그래서 兒(아, 예)는 어린아이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아이 ②아기, 젖먹이 ③젊은 남자(男子)의 애칭 ④나이가 어린 사람 ⑤어버이에 대한 아들의 자칭 ⑥명사(名詞)에 덧붙이는 조사(助詞) ⑦연약(軟弱)하다 ⑧약소하다, 그리고 ⓐ다시 난 이(예) ⓑ성(姓)의 하나(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이 동(童)이다. 용례로는 어린아이를 아동(兒童), 아이 때의 이름을 아명(兒名), 남에게 자기 아들을 이르는 말을 가아(家兒),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미아(迷兒), 젖먹이를 영아(嬰兒), 어린아이를 유아(幼兒), 죽은 아이를 망아(亡兒), 어린아이를 기름을 육아(育兒), 부모없이 홀로 된 아이를 고아(孤兒), 아들의 아들을 손아(孫兒), 어린아이를 소아(小兒), 사내 아이를 남아(男兒), 혈기가 왕성한 남자를 건아(健兒), 어린아이를 해아(孩兒), 젖을 먹는 어린아이를 유아(乳兒), 지략이 뛰어난 젊은이를 봉아(鳳兒),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을 총아(寵兒), 모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유체를 태아(胎兒), 버림받은 아이를 기아(棄兒), 여성으로 태어난 자식을 여아(女兒), 아이를 돌봄을 간아(看兒), 아이를 낳음 또는 태어난 아이를 산아(産兒), 어린이와 바쁘게 돌아다니는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철없는 아이들과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을 아동주졸(兒童走卒), 거지 애가 비단을 얻었다는 뜻으로 제 분수에 넘치는 일을 지나치게 자랑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걸아득금(乞兒得錦),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자기가 요구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읍아수유(泣兒授乳), 새 새끼의 주둥이가 노랗다는 뜻에서 어린아이를 일컫는 말을 황구소아(黃口小兒),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를 일컫는 말을 기린아(麒麟兒), 권세와 이욕을 붙좇는 소인을 꾸짖어 이르는 말을 향화걸아(向火乞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