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통해 부활한 한국 최초의 아이돌 혜은이의 진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세대에게 혜은이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들리는 '파란나라'의 주인공이었다.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그 세대가 3~40대가 된 지금 '파란 나라'는 울타리가 없는 주식 하락장을 지켜볼 때 머릿속에 울리는 아이러니한 BGM이다.
하지만 현재의 혜은이도 그런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스타다. 최고의 스타였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남진, 나훈아, 조용필, 패티김과는 다르다. 그런데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혜은이는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스타로 떠오른다. 1990년대 초반의 양준일, 1980년대 후반의 이상은처럼.
2021년 현재 혜은이는 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감초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이 예능에서 혜은이는 노래 말고 살림에는 젬병이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는 종종 대중들이 잊은 혜은이의 전성기가 언급되기도 한다. 혜은이의 전성기 시절 팬이었다는 출연자가 있거나 그녀의 팬들이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또 이따금 자료화면으로 '새벽비'나 '진짜진짜 좋아해'를 부르는 혜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방송에서 언뜻 스쳐간 혜은이의 아이돌 같은 상큼한 모습은 꽤나 화제였다. 그리고 이제 유튜브에서는 인공지능 복원된 혜은이의 전성기 시절의 무대 모습을 볼 수 있다. 1970년대 흑백텔레비전 속 요정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그녀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X세대와 MZ세대도 반할 만큼 한국 최초 아이돌로 손색없는 매력을 보여준다.
이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영상은 1977년 MBC '10대가수가요제'의 '진짜진짜 좋아해'의 모습일 것이다. 격한 안무 중 무대에서 넘어지면서 화제가 된 스타는 '오늘부터 우리는'의 여자친구만 아니었다. 물론 그전에 '나 어떡해'의 베이비복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원조는 이 영상의 혜은이다.
세라복을 입은 혜은이는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다 그대로 미끄러지고 만다. 하지만 이후 일어나 미소 지으며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 맑은 음색과 편안하면서도 힘 있는 성량이 갖춰진 그녀의 가창력은 제법 격한 안무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1977년 시작된 혜은이의 전성기는 1970년대말 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당시 혜은이는 남진, 나훈아 시대를 잇는 빅스타였다. 특히 기존의 스타들이 남진, 나훈아, 이미자처럼 트로트계열이거나 패티김, 윤복희처럼 대형가수의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혜은이는 대형 작곡가 길옥윤과 손잡고 스태던드팝과 트로트 느낌은 물론 특유의 요정 같은 느낌과 맑은 목소리로 젊은 팬층에게도 어필했다.
특히 데뷔시절 바람머리 숏컷으로 여성스러우면서도 보이시한 분위기를 풍겨 10대 남학생팬은 물론 여성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혜은이를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국내 최초 국민 아이돌로 손꼽아도 손색없을 것 같다.
이후 혜은이는 디스코시대에 들어오면서 좀 더 세련되고 비주얼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특히 '100분쇼'와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보여준 '새벽비' 영상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100만회가 넘는 조회수의 100분쇼 1회의 KBS '새벽비'는 무대매너와 댄스, 가창력 3박자가 어우러진 완벽한 무대다. 이날 혜은이는 특별초대가수로 화려한 쇼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새벽비' 무대에서 혜은이는 이 쇼의 다른 여가수들처럼 드레시한 느낌의 화려한 성인가수 모습이 아니다. 캐주얼하고 심플한 패션과 메이크업이지만 세련된 퍼포먼스로 무대로 사로잡는다. 그 시절 ABBA의 무대를 보는 것 같은 심플하고 시크하고 우아한 분위기인 것이다. 발라드를 부를 때의 감미로운 눈빛이나 '진짜진짜 좋아해' 무대에서의 해맑은 웃음과는 다른 시크한 무표정도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간주 부분에서는 날렵하면서도 꽤 파워풀한 댄스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라이브 실력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한편 '웃으면 복이와요'의 '새벽비'는 좀더 펑키하고 아이돌스러운 분위기다. 이 무대에서 혜은이는 가죽바지와 야구모자를 쓰고 멜빵차림으로 등장한다. 또 100분쇼에 간주 댄스보다 훨씬 파워풀한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나 100분쇼 무대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새벽비' 무대의 콘셉트인 특유의 무표정이다.
혜은이는 아쉽게도 다른 전설의 가수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K-팝 아이돌이 사랑받는 지금,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는 혜은이의 무대는 그 세계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추자, 패티김처럼 화려하고 파워풀한 무대매너를 지닌 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맑은 음색과 가창력, 해맑은 웃음은 물론 또 다른 반전 매력인 시크한 무표정으로 대중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BS, 유튜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