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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형식이 머뭇거리자
“들어가시죠!” 하고 권한다.
그리곤 자기의 몰골, 때 묻은 더러운 옷, 감지도 못한 헝클어진 머리 제대로 씻지도 못한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생각해 망설이는 형식에게
“괜찮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하고 다시 권한다.
그래도 형식이 머뭇거리자
“괜찮다고 해도 그러시네.”
하고 손을 잡아끈다.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간 다방에서 종업원이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하다 형식의 몰골을 보고는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요? 오늘은 우리 벌이도 시원치 않으니 다른 곳으로 가 봐와요.”
하고 거지 취급을 하며 쇳된 소리를 하다 같이 들어오는 사람이
“아가씨! 왜 그래? 이분은 내가 모시는 손님이야.”
하는 소리에 찔끔한다.
그 소리에 카운터에 앉아있던 마담도 다방의 다른 손님들도 그들을 돌아보곤 형식의 몰골에 눈살을 찌푸리며 한 편으로는 같이 온 손님에게 호기심을 나타낸다.
그 사람은 그런 눈총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외진 곳에 자리를 찾아가서 앉고 형식에게도 앉기를 권하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는 것만 생각하고 선생께서 당하실 수모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이런 것쯤은 웃어넘길 수 있으셔야죠. 아직도 면역이 안 생기셨군요?”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은 빙그레 웃는다.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형식은
‘지금 이 사람은 내가 받을 수모도 계산하고 여기로 데리고 왔군. 어디 무슨 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수틀리면 오늘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고 벼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같은 노숙자를 데리고 다방에 들어온 그 사람의 배심도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식이 앉은 주위에 사람들이 형식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피해, 하나 둘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며.
엽차를 갖다 놓는 다방 아가씨가 유쾌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았고 그 사람은 형식의 의향도 묻지 않고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커피를 날라 온 아가씨는 그 사람 앞에는 조용히 잔을 내려놓더니 형식에 앞에는 “탁!”소리가 나도록 놓는다.
다방에서도 사람의 행색을 보고 차별을 한다.
형식은 면사무소이지만 산림계장까지 한 내가 어쩌다 이런 대접을 받는 신세가 됐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도 다방 아가씨의 그 같은 행동을 모른 척할 수뿐이 없다.
자기가 다방 주인이고 지금의 자기 모골을 한 사람이 다방에 들어온다면 자기는 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드시지요.”하고 권하는 그 사람의 말을 따라 형식은 탁자에 날라진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한 모금 마신다.
형식은 참으로 오랜만에 커피 맛을 본다는 생각을 한다.
전에 저녁을 먹은 후 순영이 끓여주는 커피 맛이 무척 좋았다는 기억이 커피의 향을 따라 피어오르며 커피잔에 순영의 잔영이 어리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사람도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나는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박두식 목사입니다.”하고는
“전에 무엇을 하시던 분입니까?” 하고 묻는다.
당황한 형식이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나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으니까.”
하고 강요한다.
자기의 처지가 열없는 생각에 그래도 형식이 입을 열지 못하자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혹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고 다그치는 박목사 말에
“전에 면 면사무소에 다 다녔습니다.” 하고 형식은 더듬거린다.
“역시 그러시군요. 면에서 무슨 일을 하셨어요?”
“산림계장을 했습니다.”
한 번 입이 떨어지니 두 번째 대답은 쉬웠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쩌다가---”하던 박목사가 말을 끊으며
“아닙니다. 내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겠죠. 실은 급식소는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지요. 우리 교회가 좀 커서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면서 교회 일을 도와주실 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일하던 사람이 며칠 전에 그만두어 지금 일을 할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을 처음 보니 노숙자 생활을 많이 하신 것 같지 않고 말 하시는 걸 보니 일반 노숙자와 다른 것 같아 그 일을 선생께 부탁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보자고 한 것입니다. 선생의 의향은 어떠십니까?”
참으로 불 감청이지만 고 소원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모양이다.
형식으로서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자리가 있으면 시켜달라고 사정을 하여야 하는 것이 형식의 입장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형식의 승낙을 받은 박목사가
“그럼 지금이라도 교회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우리 교회로 오시겠습니까? 교회 위치를 가르쳐 드릴 테니.”
형식의 입장에서는 하루가 여삼추이다. 그래서
“가능하시면 지금---” 하고 형식은 말끝을 흐린다.
“그럼, 내가 여기서 기다릴 테니 가지고 갈 짐이 있으시면 가서 가지고 오시죠.” 하는 박목사 말에
“노숙자가 무슨 짐이 있겠습니까?”라고 형식이 대답한다.
“그럼 지금 내 차로 가시죠.” 하고 일어선 박목사가 커피값을 계산하고 형식을 차에 태워 교회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해서 형식의 교회 생활이 시작됐다.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자기에게 돌아왔는지 지금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목사와 같이 교회로 가며 몇 번 허벅지를 꼬집어 보며 생시임을 확인하는 형식은 무척 고마운 박목사에게 연신 눈길이 가고 얼굴엔 미소가 감돌고 속으로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렸다.
물론 옛날 영월에서 면사무소 산림계장이라면 이런 제안에 웃었을 것이고 박목사도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형식, 9개월 가까운 여인숙 생활과 노숙생활의 모멸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무게가 박목사의 제의에 형식이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워하게 한 것이다.
박 목사는 박 목사대로 급식소에서 하는 형식의 행동에서 비록 노숙자이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말이나 행동에서 학식도 있는 것 같고 씻지 않아서 그렇지 허우대도 멀쩡한 그런 형식이 그때 교회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던 자기에게 적합한 사람인 것 같고 또한,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형식을 만나 보았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것 같이 면사무소에서 산림계장까지 한 사람이라는 말에 두말하지 않고 형식을 데리고 간 것이다.
도착한 교회에는 주일이 아니라 성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형식의 몰골에 눈살을 찌푸리며 목사님이 왜 저런 사람을 데리고 왔느냐고 수근거린다.
제대로 깍지도 못하여 수염으로 덮인 얼굴, 뒤엉켜 까치집이 된 머리, 헤어지고 찢어지고 땟국이 줄줄 넘치는 옷 그런 차림의 형식을 웃음으로 맞아 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교회에 도착하여 우선 입으라며 박목사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한 벌을 꺼내주고 돈도 쥐어 주며 갈아입고 머리 깎고 모욕부터 하라고 했다.
더러운 모골 그대로는 바로 목욕탕으로 갈 수가 없어 교회에 딸린 화장실에서 대강 닦고 박목사가 준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목욕탕으로 갔다.
생각해보니 지금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은 고향을 떠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9개월여를 하루 같이 입은 옷이다.
고향을 떠날 때 입었던 봄옷을 그때까지 입고 있었다.
모욕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새 옷을 갈아입으니 원래의 훤칠한 형식의 모습이 나타나고 다시 새사람이 된 기분이다.
목욕하고 돌아온 형식을 보고 그 변한 모습에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냐?”며 박목사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다.
다음 날부터 교회에서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잡일도 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빗자루를 잡으며 형식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울에서 이렇게 안정된 생활의 터전을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이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라는 선입견도 좋고 박목사의 인품도 좋은 것 같아 기대되는 교회 생활이었다.
순조로운 교회 생활이었다.
일은 많지 않고 환경도 좋고 모두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형식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라는 곳이 너무 외골수이어서 융통성이 없고 또 배타심이 강한 것 같다는.
교회라고 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참 너그럽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은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이기심도 강하고 자만심도 많고 정말로 깊은 정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거의 모든 일이 나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니까 해야 하는 체면 때문에 하는 것 같고 참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는 것 같다.
또 무엇인가 일을 하고 나면 누구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잘못하면 참지 못하여 상처받고 교회에서 맡겨주는 작은 직책을 무슨 큰 감투나 되는 것처럼 시새움을 하는 것 같다.
사랑 속에 빈곤이 넘치는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교회도 사람들의 사회이고 그래도 교회이기 때문에 그만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교회의 교리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면서 교회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형식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교회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고 자기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교회 일에 적응을 잘한다.
사실 형식의 집안은 유교 사상에 깊이 젖어 있고, 그리고 형식은 기독교 보다는 불교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던 사람이다.
하긴 9개월여의 힘들고 괴로운 부랑자 생활을 한 형식에게 삶의 터를 준 교회가 고마워 열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형식의 입장이긴 하지만
교회 생활이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청소나 잔심부름하는 고용인으로 나중에 인정받으며 교회의 시설관리와 차량 운행 등을 하는 사찰로 그렇게 3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형식을 훌륭한 성도라고 부르지만 자기는 자신을 확실한 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어정정한 상태이다.
다만 자기는 교회에서 교회가 맡겨준 일을 충실히 하고 다른 교인들과 화합하며 교회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뿐이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렇게 세례를 받으라고 해도 미루며 받지 않았다.
자기가 확실한 교인이라고 자신이 확신하기까지는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생각 때문에, 아니 어쩜 아직도 뿌리 깊은 유교적 관념이 형식을 잡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9개월여의 노숙자 생활을 한 것이 약이 되어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의 보람을 알게 해주어 교회 일은 열심히 했다.
맡겨진 일뿐만 아니라 일을 찾아가며, 세례는 안 받았지만, 평신도의 신분으로
3년을 지내는 동안 교회의 여러 사람이 그리고 박목사가 여러 번 형식의 사연을 물어보았지만, 형식은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런 형식을 보고 어느 날인가 박목사가
“형식 성도님은 학식도 있고 일도 잘하고 하는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고 했다.
3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지나는 동안 세월이 약이라고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형식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건 교회에서 일하며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들으며 보낸 세월이 마음에 안정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긴 방황에 터널을 지나거나 아니면 영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안정을 찾자 자기가 떠날 때 누구에게도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고향에서는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산사태가 덮쳐 반파되었던 집은 어찌 되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논밭에 농사는 누가 대신 짓고 있을까? 그 소작인들이 잘 돌보고 있는지?
마을은 옛 모습을 찾았을까?
보고픈 마을 사람들은 다 잘들 있는지?
특히 아버님은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그러나 참았다. 아직은 마음의 안정이 모자라 고향을 찾을 때가 아니라며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말 고향이 그립다.
아니 고향이 그립다기보다 교회로 옮겨와 몇 달이 지나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그동안 밤마다 걱정이 되던 자기가 고향을 떠날 때 칠십 중반이 훨씬 넘으셨으니 이제는 팔십이 넘으셨을 홀로 된 지 오래된 아버지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것이 더 염려가 됐다.
아버지에 대한 염려가 깊어지자 하루라도 빨리 고향엘 가야겠다는 생각이 조급증을 불렀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할 정도로
박목사의 허락을 받으러 갔다.
“목사님! 이제 고향엘 가야 하겠습니다.”
“형식 성도님께도 고향이 있었습니까? 그래! 고향이 어디예요?”
“강원도 영월입니다.”
“아! 그랬군요? 언제 가시려고요?”
“내일이라도---”
“아니 그렇게 빨리요?”
“집에 계시는 늙으신 아버님이 걱정이 돼서---”
“지금까지 잘 참으시다가 갑자기 아버님 걱정이 되신다니요?”
“요즘 꿈자리가 좋지 않아서---”
형식은 얼른 변명을 한다.
“형식 성도님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슨 사정이 있는 분 같더니 정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
형식은 대답을 피한다.
“고향엘 가시면 아주 가시게요?”
“가보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꼭 내일 가셔야 합니까?”
“그동안 살펴 주셨는데 그래야 하겠습니다.”
“섭섭하군요. 혹 보수 없이 일만 시켜서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 마십시오. 그동안 살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송구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 박목사가 형식을 위해 조촐한 송별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형식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그동안 형식이 교회 일을 열심히 했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잘 지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형식이 떠난다고 박목사에게 인사를 할 때
박복사가 형식에게 통장을 하나 내민다.
“무엇입니까?”
“형식 성도가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일한 대가를 통장에 넣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지고 가셔요.”
“아닙니다. 거리에 버려졌던 저를 구제하셔서 그동안 제가 교회에서 잘 있었고, 먹고 자고 입었는데 또 무슨 보수를 바라겠습니까?”
“이것은 형식 성도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지 교회에서 일부러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성도님이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것이에요.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받으세요. 한 달에 삼십 만 원씩 계산했습니다.”
“이러시면 제가 미안해서---”
“미안하긴 무엇이 미안해요.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인데. 고향에 가면 당장 돈이 필요할지 모르니 가지고 가셔요.”
그러며 박목사가 억지로 형식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요. 잘 가십시오. 그리고 혹 서울에 다시 와서 갈 곳이 없으면 다시 오십시오. 십여 일은 자리를 비워 놓겠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형편 닿는 대로 편지하겠습니다.”
“그래 주세요.”
그렇게 하고 형식은 고향으로 향하며 박목사의 처사에 다시 감사를 했다.
갑자기 떠나겠다고 하면 사람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라며 며칠은 잡아둘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청을 들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며 하나님을 믿는 목사라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고속버스 터미널을 향해가는 전철에 몸을 싣자 많은 감회가 서렸다.
처음 서울에 도착하여 갈 곳이 없어 당황하던 일.
거리를 배회하며 여인숙에서 생날을 죽이던 일.
학교에 다니며 가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운 외에는 힘든 일을 해보지 못한 자기가 노동판에서 잡부로 삽질, 곡괭이질을 하루 종일 하던 일.
노숙자가 되어 밤거리를 헤매던 일.
급식소에서 밥을 타 먹으며 겪었던 일.
교회에서 4년간의 생활.
생각해보니 집을 떠난 지 5년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고향행 버스에 올라탔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지키미님!
이초롱님
감사합니다 \.
2024년 갑진년 청룡의 새해 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