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악장(Largo)은 악상이 상당히 풍부하며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곡으로서 4성부로 되어있는 곡이다. 즉, 바이올린이 한 성부를 맡고 하프시코드가 세 개의 성부를 맡는다.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는 각각 따로 멜로디를 전개해 나가지만 둘은 완벽하게 어울린다.
제2악장 (Allegro)은 상당히 강렬하게 시작하는 곡이며,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제3악장(Adagio)은 정말 독특한 곡으로서 바이올린은 줄기차게 화음을 연주하고 하프시코드는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가면서 펼침화음을 연주한다. 바이올린이 계속 화음을 연주하기 때문에 분위기는 매우 독특해지고,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곡이 아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4악장(Vivace)은 2악장과 비슷하게 강렬한 주제로 시작하는데, 이 곡에서는 당김음이 인상적으로 사용된다. 바흐는 장조 곡의 빠른 악장은 경쾌하게, 단조 곡의 빠른 악장은 강렬하게 작곡하였다..
바이올린과(쳄발로) 하프시코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흔히 듣는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BWV 1001-1006)할 때의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반주있는, 즉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말한다. 원 제목을 축약해서 '바이올린소나타'로 부를 때는 약간 혼동이 오기 쉬운데, 두 곡 모두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6개소나타 (BWV.1014~1019)는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 직무를 수행하기 전인 쾨텐 시대에 씌어진 작품(1720년 작품, 1717-23년 사이에 씌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하나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이고 다른 하나는 엄연히 반주가 딸린 바이올린 소나타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 작품들이 반주가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구별해놓고 있어도 우리 앞에는 금방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또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이 소나타의 양식적인 측면과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이 소나타에 대해 남긴 말부터 음미해보자.< "6곡의 클라비어트리오, 이는 내가 깊이 사랑하는 아버님이 남기신 가장 훌륭한 작품들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비록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주 훌륭한 소리를 내며 내게 커다란 기쁨을 준다. 이 작품들에는 아다지오가 몇 개 있는데 오늘날에도 그보다 더 훌륭한 노래 양식이 작곡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인용문에 근거해서 우리는 바이올린 소나타의 특성과 관련된 두 가지 점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카를 필리프가 아버지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대단히 휼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아버지의 작품들을 이상하게도 '클라비어트리오(Klaviertrio)'명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점은 웬만큼 훈련된 귀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 카를 필리프는 왜 아버지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을 '클라비어트리오'라고 부르고 있었을까? 이점은 바흐 작품의 특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바흐가 바이올린 소나타를 쓸 때는 건반 악기의 역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건반 악기 쳄발로는 오랜 세월 동안 반주의 영역, 즉 정상적인 콘티누오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악기였다.
그런데 바흐는 이 반주 악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자기 주장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간단히 말해 그 위대한 음악가는 쳄발로란 악기로 하여금 상성부 멜로디에 확실히 대응하는 오블리가토(Obligato)의 기능까지 하도록 작품을 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쳄발로는 바흐의 음악에서는 단순히 반주 역할만 하는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건반악기에 내려진 하나의 혁신이며 해방이었다.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이제 건반악기 연주자는 단순히 숫자화음에 복종하며 반주하는 베이스 콘티누오 연주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쳄발로는 드디어 밑바닥을 박차고 나와 멜로디 성부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종횡무진 다양한 표현을 일삼게 되었다.
그러므로, 온당하지는 않겠지만,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과거의 전통적인 트리오 소나타에서 건반 악기, 즉 쳄발로의 기능을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과 쳄발로만으로 3성부를 만들 때는 쳄발로 연주자의 오른 손과 왼손에 각각 하나의 성부를 부여해 실행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에 쳄발로는 과거의 기능, 즉 통주 저음으로서의 기능에서 탈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쳄발로의 역할이 강화되었다고해서 바이올린 독주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회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이올린의 표현 영역은 오히려 그전보다도 확충되어 있었고 그 집요함은 여전했다. 가끔 그렇게 바이올린 독주 기능이 강화된 부분에서는 쳄발로가 잠시 반주 역할로 머물러 있을 때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이런 특징들을 생각해보면, 바흐가 쓴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양식적 본질이 바로 트리오 소나타에서 연유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몇몇 최초 버전들을 검토하다 보면,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이 사실은 클라비어트리오라는 결론에 더욱 근접하게 된다. 어떤 초창기 문헌에는 바흐의 소나타들이 쳄발로와 독주 바이올린, 그리고 필요한 경우 비올라 다 감바를 베이스 반주로 하는 6곡의 소나타(Sei Suonate a Cembalo certato Violino Solo, col Basso per Viola da Gamba accompagnato se piace)양식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긴 제목은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본질이 결국 트리오 소나타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임에 틀림없다.
트리오 소나타란 보통 두 대의 바이올린, 베이스 비올(혹은 첼로) 그리고 건반 악기 콘티누오로 구성되었던 기악양식이며, 그것은 바로크 시대, 특히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에 널리 유행했었다. 17세기말에 가서 이 양식은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로 양분되는데, 바흐의 소나타들은 6번(BWV 1019)만 제외한 나머지 다섯 곡 모두가 '느리고, 빠르고, 느리고, 빠르고'식의 악장 진행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교회 소나타 양식을 따르고 있다. 말하자면 바흐는 위대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쓴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결국 그는 바로크의 교회 소나타 양식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음악가였던 것이다.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하나하나가 주옥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 뛰어난 내용이 담긴 걸작들이다.
바흐가 자신의 소나타들에서 각각의 악기를 다루는 솜씨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각각의 악기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관계를 그는 아주 면밀하게 탐구했다. 코렐리, 퍼셀, 헨델, 쿠프랭, 비발디, 아니 그 밖의 어떤 위대한 바로크 작곡가도 바흐만큼 높은 경지의 트리오 소나타를 쓰지는 못했다. 이 음반에서는 전 6곡 중에서 4,5,6번 세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제 4번 BWV 1017은 비통한 느낌으로 가득하며 바이올린 소나타 전 6곡 중에서 가장 즉각적인 호소력을 지닌 작품이다. 1악장 라르고는 시칠리아노 풍의 춤곡을 사용하고 있다. 목가적이며 서정적인 선율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2악장 알레그로는 쳄발로로 당당하게 시작하는 곡이다. 바이올린 선율을 쳄발로가 그림자처럼 계속 쫓아다니며 함께 어우려져 놀라운 유희를 들려준다. 3악장 아다지오는 여름 저녁의 들판을 연상케 하는 한가롭고 부드러운 느낌의 악장이다. 그리고 4악장은 생기발랄한 알레그로 악장이다. 제 5번 BWV 1018도 4번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곡이다. 1악장이 아주 특징적인데 악상이 풍부하며 하염없는 슬픔이 노래된다. 제 6번은 나머지 다섯 곡과는 달리 5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3악장, 5악장이 알레그로로 되어 있고 사이사이에 라르고(2악장)와 아다지오(4악장)가 슬프면서도 가슴 뭉클한 정서로 노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