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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제가 3박4일간 좀 쉬고자 합니다.
컴퓨터가 되지 않을 곳에 갈 것 같아서 9월 23일 묵상만 올려드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빌어주십시오.
2021년 9월 23일 목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자신을 이겨내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는 잘못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양심에 걸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존재가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하는 존재도 또한 자신이라고 합니다. 새무얼 스마일즈(Samuel Smiles, 1812 – 1904 스코틀랜드 해딩턴에서 11명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4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의사 밑에서 보조 일을 하다가,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작품 self-help가 성공학의 고전으로 꼽힙니다.)는 자조론(self – help)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이겨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조급해하지 마세요.
급한 사람은 실수가 많습니다.
< 외강내유형과 외유내강형 >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은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에도 망설이다 일을 그르치고, 지나치게 덜렁대는 사람은 성공보다는 낭패 볼 확률이 더 높다. 현대는 이 두 인물의 절충형을 원한다.
2, 화를 내지 마세요.
이성을 잃어 가슴을 멍들게 합니다.
< 내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나' >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에게 알맞은 정도로, 적당한 시기에,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뿐더러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 시기하지 마세요.
창조와 생산이 중단됩니다.
<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 >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을 취하지 못한다.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4, 낙심하지 마세요.
절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용기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 >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결단력과 용기뿐이다.
5, 외로워하지 마세요.
세상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 삶을 최대한 즐기자 >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삶이다. 꼭 눈에 보이는 결과를 이룩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명예를 얻고 부를 쌓는 것만 위대한 인생은 아니다.
6, 못남을 한탄하지 마세요.
그 모습 그대로 승리를 보이라는 뜻입니다.
<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남에게 성실할 수 있다 >
오직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만이 남에게도 성실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남에게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7, 속이지 마세요.
몸에 종기를 키우며 사는 것과 같습니다.
< 양심은 영혼의 소리 >
양심의 소리는 결코 우리가 알아들을 만큼 큰 울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인(sign)도 보내지 않는다. 다만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움직인다면 바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8, 게으르지 마세요.
스스로를 파괴시키게 됩니다.
<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
시간처럼 귀중한 것은 없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잘 보낸 스물네 시간은 헛되이 보낸 일생보다 값지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와도 같다.
9. 얼굴을 찡그리지 마세요.
인생의 승패가 얼굴에서 시작됩니다.
< 웃음의 성공학 >
명랑한 성격은 인간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좋은 토양이 된다. 그것은 밝은 마음과 강인한 정신을 길러준다. 쾌활한 마음이야말로 정신을 고양시키는 최선의 약이다.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축일9월 23일 성 비오(오상의) (Pius)
신분 : 신부
활동 지역 : 피에트렐치나(Pietrelcina)
활동 연도 : 1887-1968년
같은 이름 : 비우스, 피오, 피우스
오상의 성 비오 신부는 1887년 5월 25일 이탈리아 남동부의 베네벤토(Benevento) 대교구에 속한 피에트렐치나에서 아버지 그라초 포르조네(Grazio Forgione)와 어머니 마리아 주셉파(Maria Giuseppa Forgione) 사이에서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출생 다음 날인 2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려서부터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와 묵상을 즐겨 했다. 10살 때 그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부모에게 말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신학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일하러 갔다. 12살 때 첫 고해와 첫영성체를 한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을의 사립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1903년 1월 6일 16세의 어린 프란치스코 포르조네는 모르코네(Morcone)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같은 해 1월 22일 수련복과 함께 비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뒤 1907년 1월 27일 종신 서원을 하고, 1910년 8월 10일 23세의 나이로 베네벤토의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후 1년 정도 지난 1911년 9월 7일 그의 두 손, 특히 왼손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받은 상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1918년까지 거의 매주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오상(五傷, stigma)의 흔적이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1915년 10월 10일부터였다. 그는 오상이 보이지 않도록 해 주기를 예수님께 간청하였고 얼마 동안은 별 흔적 없이 지낼 수 있었다. 1915년 11월 6일 군에 소집되어 1918년 수도원에 복귀하기까지 성 비오 신부는 1년 혹은 6개월의 병가를 여러 차례 받았고, 1918년 3월 16일 기관지염 때문에 군 복무 불능 판정을 받고 3월 18일 산조반니 로톤도(San Giovanni Rotondo)의 수도원에 복귀하였다.
성 비오 신부는 1918년 9월 20일 다시금 그의 두 손과 두 발과 옆구리에 오상이 찍힌 것을 알게 되었다. 오상은 처음에는 작은 상처에 지나지 않았으나 몇 달이 지나자 점점 커졌고, 그 후 그는 아물거나 덧나지도 않는 오상의 고통을 50년 동안 겪게 되었다. 그가 오상을 받았다는 소문은 급속히 퍼져 산조반니 로톤도 수도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 비오 신부는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오해와 의혹의 눈길을 받게 되었다. 1923년 6월 17일에 그는 수도원 내의 경당에서 홀로 미사를 봉헌하되 외부인은 참례할 수 없다는 지시를 받았고, 그에게 오는 편지의 답장도 금지당했다. 미사는 6월 26일부터 다시 성당에서 봉헌하게 되었으나, 그 뒤 교회의 제재는 몇 차례 되풀이되었다. 1931년 6월 9일에는 미사 이외의 모든 성무 집행이 정지되었고, 미사도 경당에서 복사 한 명과 봉헌하도록 제한되었다. 이틀 뒤 이 명령을 전해 들은 성 비오 신부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며 순명하였다.
격리된 기간 동안 성 비오 신부는 미사 집전과 기도로 시간 대부분을 보내다가 1933년 7월 16일부터 다시 성당에서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그리고 1934년 3월 25일부터 남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게 되었고, 5월 12일부터는 여자들에게도 고해성사를 주게 되었다. 그는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애정으로 1947년 5월 19일에 ‘고통을 더는 집’(Casa Sollievo della Sofferenza)라는 병원 설립을 추진했는데, 이 병원은 1956년 5월 5일에 완공되어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1960년 8월 10일 성 비오 신부의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축하식이 거행되었고, 1963년 1월 22일에는 수도복 착복 6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그리고 1968년 9월 20일 그의 오상 50주년을 축하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성 비오 신부는 1968년 9월 22일 오전 5시에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다음날인 23일 월요일 새벽 2시 30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26일 지하 성당에 안치되었다.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충만한 성 비오 신부는 인간 구원을 위한 자신의 성소를 충실히 살았다. 그는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신자들을 영성적으로 지도하는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였다.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의 거행에 충실했으며, 특히 미사성제를 통해 그 미사에 참여한 이들이 영성적 충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곧 삶이었다. 그는 모든 의지를 신앙 안에서 세웠고 모든 행실을 신앙 안에서 행하였다. 그는 열성적으로 기도 생활에 투신하며 많은 시간을 하느님과의 대화로 보냈다. 그는 “책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신앙은 그로 하여금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뜻마저도 받아들이게 인도하였다.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였다. 또한 겸손과 순명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비판과 오해를 풀어나갔다.
그가 선종한 지 3년이 되어가는 1971년 2월 20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카푸친회 장상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비오 성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비오 신부님이 얻은 명성을 보십시오. 그분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왜 그렇겠습니까? 그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현명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가 겸손하게 미사를 지내서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해소에 머물며 고해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쉽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오상을 자신의 몸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와 고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성 비오 신부의 거룩함과 명성은 살아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다음에 더욱 커졌다. 그래서 1969년부터 그에 대한 시복시성이 절차가 시작되었다. 1982년 11월 29일 그는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시복 추진에 대한 ‘장애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 5월 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6월 16일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30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예수님의 오상을 받아서 ‘오상의 비오 신부’로 불리는 그는 또한 ‘파드레 비오’(Padre Pio)로도 불리는데, 이는 그를 존경하여 일반적으로 부르는 호칭으로 ‘비오 신부님’이란 의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오(오상의)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편찮으시지만 않다면......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휴식시간 가지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디 영육간에 평안하십시오.
잘 쉬고 왔습니다.
항상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산나 자매님께도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좋은 휴식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잘 쉬고 왔습니다. 항상 저희들을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