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1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오늘 하루를 또 새롭게 맞이합니다.
창세전의 세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시간이나 우리가 육신으로 사는 이 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나이다.
이 날이 우리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으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영원한 현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행하고 주님으로 호흡하는 카이로스가 되게 하소서.
어제 나도 모르게 지었던 죄들이 있으면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나로 하여금 정결하여 주님의 전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내 영혼이 새롭게 하시고 아들의 생명으로 하루를 넉넉히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유 1:17-25
제목 :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대적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검인 생명의 말씀 앞에 날마다 서는 것이다.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나의 묵상
유다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미 예언했던 말들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들의 가르침은 마지막 때에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과 성도들의 신앙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파당을 만드는 자들이며 육체의 본성을 따라 사는 자들이고 그들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 아니다.
이제 성도들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항상 성령으로 기도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주의 재림의 때를 소망하며 기다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짓 선생들에 의해 미혹되어 의심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나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자들은 불 가운데서 끌어내는 것처럼 그들을 구해 낼 것이다.
육체의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죄로 오염된 것은 미워할지라도 그런 죄에 빠진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긍휼을 가지고 대할 것이다.
강하신 하나님께서 비록 연약하지만 여러분들을 아주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죄로 얼룩이 진 자들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는 자로 서게 하시어 큰 기쁨을 내려 주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능력과 권세가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다. 아멘.
유다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해 준 말씀을 기억하고 신앙적으로 바르게 살 것을 권면한다.
그것은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하지 않게 행하는 이단들이 출현할 것이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유다의 말처럼 오늘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횡행하고 있는가?
이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자들에게 가서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미혹하여 넘어지게 만드는 자들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이런 이단들이 더욱 득세를 하여 믿는 자들을 파고드는데 이런 자들을 가장 잘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말씀 앞에 서는 것이다.
이단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성구 몇 구절을 뽑아서 그것으로 논리를 편다.
그런데 기존 성도들은 그런 말씀조차 알지 못하므로 성경말씀을 갖다 대면서 이야기 하면 꼼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짜를 진짜처럼 믿는데 우리는 진짜를 가짜처럼 믿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이단 앞에 서면 고양이 앞에 쥐처럼 벌벌 떨거나 꽁무니를 내린 채 슬금슬금 도망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들을 아예 상대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요이 1: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괜히 이단자들 앞에서 아는 체 하려다가 된통 당하는 수가 있으니 아예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먹고 늘 성령 안에서 반석과 같은 믿음의 터 위에 서 있으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을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길이 바로 근신하며 가장 잘 깨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그런데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다고 하여 끊임없이 대적기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은 떠나갈지어다.”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이 아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란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이기에 그 말씀의 검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대적기도는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하면 할수록 신앙의 신선도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로서 언약 공식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 공식을 버리고 부르짖음의 공식으로 살았다.
부르짖음의 공식이란 사사 시대를 잘 표현하는 말로서 ‘범죄 – 심판 – 회개 – 구원’의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나님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는 자들은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그것이 공식화 되어 습관적인 회개로 나아가면 결국 그들의 신앙의 신선도는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사기 21장에 가면 심지어 레위인과 제사장들까지 다 타락하여 사사시대 400년의 기간이 이스라엘의 역사 중 가장 흑암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습관적으로 회개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 것을 깨달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하면서 하나님을 망령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 되고 만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언약 안에 머무르는 최선의 방법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언약 공식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자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았고 이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나는 삶에서는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것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물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나는 이것을 마치 사시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밥 먹듯이 죄를 짓고 또 교회 가서 회개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또 죄짓고 회개하기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모른다.
죄를 지을 때는 하나님이 생각도 나지 않지만, 생각이 난다고 해도 하나님은 잘 접어서 바지 주머니 속에 숨겨두고 ‘하나님, 잠시만 여기 눈감고 계세요’ 하면서 죄의 자리로 쏜살 같이 달려가는 자였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기에 죄를 짓기에 얼마나 담대해지는지 모른다.
(전 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이런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죽어 마땅한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주시고 주님의 뜻인 영생을 알게 하셨다.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인 말씀을 먹는 것, 그것이 나를 살리는 지름길이요 또한 거룩한 믿음의 터 위에 굳건하게 세우는 일이고 무엇보다 나를 삼키려는 마귀의 간계에 가장 확실하게 대적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주의 말씀을 얻어먹지 못하면 영적으로 죽음의 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육신을 위하여 먹는 밥은 몇 끼만 굶어도 배가 고파서 견디지 못하는데, 영의 양식인 말씀은 먹지 않아도 영적 배가 고픈 줄 모른다.
아니 안 먹으면 안 먹을수록 더 살이 찌고 만다.
여기서 살이 찐다는 것은 곧 완악해진다는 의미이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파퀴노’인데 이는 ‘살찌다’는 의미이다.
육신이 살찌면 견디지 못해하면서 영이 살이 찌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완악해지기만 할 뿐이다.
이렇게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영이 살이 쪄서 완악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먹는 자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
심령이 가난하여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며 그 나라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영생이다.
죄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르짖음의 공식으로 일관하던 나를 그 굴레 곧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골 1:13)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흑암의 권세 아래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건져내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죄로 죽기에 마땅한 자였지만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나를 살리시고 다시 새 언약 백성 삼으사 오늘도 아버지의 품에 거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 나라요 또한 영생임을 믿사오니 주의 영광 임하여 오직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나 오늘도 아들을 힘입어 담대히 일어나 거할 성읍이요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오니 나를 받아 주옵소서.
마귀를 대적하되 대적기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하게 하시고 그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되어 오늘 하루를 넉넉히 살게 하옵소서.
내 영이 더욱 가난하여져서 오직 주님의 의만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