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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사’字 전문직 먹고살기 힘들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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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밥그릇에도 ‘기웃기웃’ 굿바이! 전문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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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외환위기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능시험을 다시 치렀던 A씨. 그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한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한의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경희대 한의대 합격권은 서울대 의대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수능 성적 상위 0.5%에 들어도 합격을 걱정해야 했다.
어렵게 지방 한의대에 들어간 A씨는 2006년 졸업과 동시에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하루빨리 한의원을 차리려 했지만 초기 투자시설비가 만만치 않았다.
5억 원 넘는 시설비를 감당하기 위해 값싼 엔화를 대출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하는 한의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원금과 이자는 2배로 불어났다. 주위에 한의원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환자 수마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적자가 계속되자 A씨는 개원 2년 만에 한의원 문을 닫고 말았다.
“파리 목숨 같은 직장생활보다는 전문직이 낫겠다 싶었죠.” 사법연수원생 이모(29) 씨는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하더라도 ‘변호사’란 자격증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M·A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변호사란 전문직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변호사가 더 이상 고소득 올리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영광의 직업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실제 취업시장이 얼어붙으면서 2010년 사법연수원 수료생 10명 중 4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이씨는 “상위권 연수원생들이야 굳이 판검사를 안 해도 로펌을 골라서 가겠지만, 500등에 들지 못한 연수원생 중에는 취업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며 “국내 대기업 취업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장 큰 요인은 매년 배출되는 법조인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1985년 사업연수원 수료생이 300명을 넘어선 이후 1998년까지 그 수가 유지돼 변호사 업계는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2004년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린 뒤 변호사도 취업난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2012년부터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에서 매년 20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면 법조시장의 공급과잉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인의 증가는 사건 수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2009년 한 해 서울지방변호사회를 경유한 실제 본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수임 건수는 17만4168건. 이를 서울지방변호사회 전체 회원 7380명으로 나누면 변호사 1인당 연평균 수임건수는 23.6건으로 월평균 1.9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무실 임대료를 지급하고 사무장과 여직원 한 명씩 고용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갖추는 데도 월 200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탓에, 변호사업계에선 최소한 월평균 4건은 수임해야 사무실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변호사·의사도 망하는 시대
어렵사리 사건을 수임해도 예전처럼 높은 수임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임료의 심리적 저항선이던 건당 500만 원도 깨진 지 오래다.
최대 법조타운이라 부르는 서울 서초동 일대의 수임료는 300만 원 선까지 떨어졌다.
단순히 사건 수임 건수에 수임료를 곱해도 6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단독 개업을 한 한 변호사는 “전체 변호사시장의 절반 이상을 대형 로펌이 차지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개인변호사들은 한 달에 한 건을 수임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수임 건수로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변호사가 늘다 보니 법무사, 변리사, 노무사, 세무사, 관세사 등 법조인접직역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 직역 역시 해마다 신규 자격자가 쏟아지지만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 한때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 꼽히던 변리사 업계도 치열한 가격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허 대행을 해주면 착수금으로 150만 원, 2년 정도 걸려 등록에 성공하면 150만 원을 추가로 받는데 이 가격은 1995년 이후 15년째 제자리다.
K법무법인의 한 변리사는 “특허출원 건수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 한 해 배출되는 변리사 수는 10년 새 6배 넘게 늘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일을 맡으려다 보니 망하는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최고의 전문직으로 꼽히는 의사들도 아우성이다. 전국 42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포함)에서 매년 3000명가량의 의사면허를 가진 졸업생이 배출된다.
치과대학과 한의대 졸업생도 각각 800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매년 5000명에 육박하는 의료인이 신규로 배출되면서 문 닫는 병원 수가 늘고 있다.
2004년 이후 연간 병원의 폐업 건수는 84개, 70개, 78개로 3년간 주춤했지만 2007년부터 150개 이상으로 대폭 늘었다. 요양병원을 포함하면 2008년 병원의 폐업률은 17.1%에 달한다.
의사가 되면 돈 잘 번다는 말은 옛말이다. 의사협회가 2009년 회원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가까이가 빚이 있으며 평균 부채액은 4억 원가량. 그렇다고 당장 문을 닫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평균 개원비용이 5억 원을 넘다 보니 개원 당시 금융권에서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 개원을 전제로 대출받았기 때문에 폐업을 하면 당장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특히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병원은 고사 직전이다. 요즘 동네병원은 ‘피부과 전문의’ ‘외과 전문의’ 등으로 전문 분야를 드러내는 대신 여러 환자를 두루 치료할 수 있는 ‘의원’ 간판을 내거는 일이 부쩍 늘었다.
부산의 한 개원의는 “6년간 의대 교육을 이수하고 의사고시에 합격하면 진료과목에 구분 없이 진료 및 치료가 가능하지만,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친 전문의는 자신의 전문 과목으로 개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그러나 요즘은 전문 분야만으로는 도저히 유지가 안 돼 외과 전문의가 감기 환자나 간단한 피부질환도 치료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거들떠보지 않던 타 직역 진출 노려
‘신규 배출 전문직 증가→시장 포화, 경쟁 치열→도태하는 전문직 속출’이란 악순환이 되풀이되자 전문직들은 예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타 직역에까지 눈을 돌리며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
법조계 일각에선 법무사, 변리사, 노무사, 세무사, 관세사 등 법조인접직역을 변호사 업무로 통합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법무부는 지난 4월 ‘법조인접직역 업무조정 및 통폐합 방안 연구’라는 주제의 연구용역 시행계획을 공고하면서 통폐합 논의에 불을 지폈다.
법무부는 “2020년 변호사 3만 명 시대가 예상되는 만큼 변호사직역과 법조인접직역 통폐합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최근 변호사 업계는 공직의 법무담당관이나 사기업의 사내변호사로 활로를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외국에서처럼 변호사가 종합법률컨설턴트로 업무 범위를 넓히려 해도 이미 변리, 노무, 세무 등 분야마다 전문직이 자리 잡은 상태여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한변호사협회 장진영 대변인은 “한 해 1000명의 변호사가 배출되는데 향후 3배 이상 배출되면 이들이 갈 곳이 없다.
법조인접직역은 변호사 수가 부족할 때는 존재의 의미가 있었지만 이처럼 변호사가 늘면 굳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변리사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대한변리사회 고영회 부회장은 “세상의 중심은 변호사이고 나머지 전문직을 인접이나 유사로 표현하는 사고방식부터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는 “지적재산권은 엄연히 변리사라는 전문가가 필요한 직역이다. 변호사 업계가 어려워졌다고 자신들 중심으로 통폐합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변호사 스스로가 공익과 인권의 수호자라고 주장한다면 통폐합 논의도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10년, 100년 후 국가 장래를 놓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방안은 크게 △ 법조인접직역 자격사 선발제도를 폐지하고 기존 자격사의 자격업무만 존치시키는 방안 △ 자격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기존 자격사를 변호사로 흡수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특히 대한변호사협회가 “통폐합을 통해 변호사가 아닌 법조인접직역 자격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것은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해 결론 도출이 쉽지 않다.
한편 공인회계사와 감정평가사는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2011년부터 IFRS가 본격 도입되면 앞으로 기업 자산가치는 장부상 가치가 아닌 시장 가치로 평가하게 되므로 상장기업과 금융회사(상호저축은행 제외)는 부동산 등 보유자산 가치평가를 새롭게 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5년간 상장사 자산재평가 시장은 그 규모가 평가액 기준 800조 원(평가수수료 기준 11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성장할 것이 예상되는 블루오션이다.
발로 뛰며 고객유치 차별화된 서비스
문제는 누가 자산가치 평가를 맡느냐는 것. 회계업계는 “공인회계사법 제2조에 ‘회계에 관한 감사·감정 및 기업회계 기준서’란 근거가 있는 만큼 공인회계사들도 자산평가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선의 한 공인회계사는 “IFRS에서 말하는 가치 평가는 기업의 경영전략, 재무상태를 고려한 공정가치 평가가 돼야 한다. 기업의 재무상태를 잘 분석할 수 있는 공인회계사가 자산가치 평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정평가사들은 “감정평가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고유 영역”이라며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 정재흥 정책연구이사는 “평가 목적이 무엇이든 평가 대상이 부동산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산가치 평가는 감정평가사가 해야 한다.
회계사들이 주장하는 공정가치는 분식회계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2009년 말 회계법인 삼정KPMG는 자회사 KPMG어드바이저리를 통해 삼성전자가 경기 수원·기흥, 충남 아산 등에 보유한 부동산과 공장에 대한 자산재평가 작업을 실시했다. 그러자 한국감정평가협회가 이를 부동산 공시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법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이처럼 전문직 업계가 무한경쟁에 진입하면서 과거처럼 전문직이 앉아서 폼만 잡고 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직접 뛰어다니며 고객을 유치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의사·변호사 업계의 마케팅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법대와 의대(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 포함)의 인기가 여전히 높지만, 그 선호도가 과거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대학생 김민지(20) 씨는 “전문직보다는 차라리 공무원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몇 년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한 가지 공부에 매달리기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려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하면서 견고했던 전문직의 철밥통도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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