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의 무게
부처님이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존자 사리불은 밤낮으로 세 차례씩 천안으로
세상을 살피면서 제도 할 만한 일이 있으면,
곧 그자리에 가서 제도했다.
어느 날, 장사꾼들이 장사하러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개 한마리를 데리고 갔다.
중에 장사꾼들은 피곤해서 잠을 잤다.
이때 배고팠던 개가
장사꾼들이 가지고 가던 고기를 훔쳐 먹었다.
한숨 자고 일어난 그들은 고기가 없어진 걸 보고
잔뜩 화가나서 개를 두들겨 패 주었다.
이 바람에 개는 다리가 부러졌고,
그들은 빈 들에 개를 버린 채 길을 떠났다.
이때 존자 사리불은 그 개가 땅에 쓰러져
굶주리고 괴로워 신음하면서
거의 죽게 된 것을 살펴 알았다.
그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얻은 밥을 가지고 성을 나와
굶주린 개한테 가서 밥을 주었다.
개는 그 밥을 먹고 생기가 돌자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리불은 홀로 다니면서 걸식을 했다.
바라분이 그를 보고 물었다.
"존자께서는 홀로 다니시는데,
시중드는 사미가 아무도 없으십니까?
"내게는 사미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아들이 있다는데,
내게 줄 수 없겠습니까?"
"내게 균제均提라는 아들이 하나 있긴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심부름을 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좀 더 자라면 존자께 출가케 하도록 하지요."
사리불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사리불은
다시 바라문에게 가서 그 아들을 청했다.
바라문은 곧 그 아들을 사리불에게 맡겨 출가시켰다.
사리불은 그 아이를 제타 숲으로 데리고 가서
법문을 차례차례 일러 주었다.
그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아라한이 되었다.
여섯 가지 신통력이 트이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이때 사미 균제는 처음으로 도를 얻은 후,
자신의 혜안으로 지나간 세상일을 돌이켜보았다.
‘나는 본래 어떤 업을 지어 현재의 몸을 받았으며,
거룩한 스승을 만나 아라한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전생을 살펴보다가,
한 마리 개였던 자신이
스승 사리불 존자의 은혜로 이 몸을 받아
도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환희심이 솟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스승의 고마운 은혜를 입고
짐승의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이제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승을 잘 모시고
언제까지나 사미로 있으면서
큰 계(비구계)는 받지 않으리라.’
이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균제 사미는
전생에 어떤 나쁜 업을 지었기에 개 몸을 받았으며,
또 어떤 착한 일을 했기에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 옛날 카샤파 부처님 시절에
여러 비구들이 한곳에 모여 살았었다.
어떤 비구는 음성이 맑고 낭랑해 범패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잘 불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즐겨 들었다.
그러나 한 늙은 비구는 나이가 많아
음성이 둔탁해서 법패는 잘 부르지 못했지만,
항상 노래를 부르며 혼자서 즐겼다.
그리고 이 늙은 비구는 아라한이 되어
수행자의 공덕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어느 날 음성이 고운 젊은 비구가
노비구의 둔탁한 범패 소리를 듣고 조롱했다.
‘스님의 음성은 마치 개 짖는 소리 같습니다.’
노비구는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나를 알고 있는가?’
‘저는 스님을 잘 압니다. 카샤파 부처님의 제자지요.’
노비구는 의연히 말했다.
‘나는 이미 아라한이 되었고,
사문의 위엄과 법도를 온전히 갖추었느니라.’
젊은 비구는 이 말을 듣자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온몸이 굳어지려고 했다.
그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했다.
노비구는 참회를 받아 주었다.
젊은 비구는 덕 있는 노비구를 깔보고 조롱한 과보로
개의 몸을 받았고,
집을 나와 청정하게 계율을 잘 지키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게 되었느니라."
<현우경> 사미균제품沙彌均提品
<사미율의沙彌律儀>를 배우면서
처음 이 옛일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겁주느라고 하는 소리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 뒤의 일이
더 큰 사실로 느껴져서인지 그 진실성에 믿음이 간다.
인간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생물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탈을 쓰고
개도 못할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다른 생물을 대할 면목이 안 선다.
그의 종착역이 어디냐를 따지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그 ‘있음’ 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볼 때
내 부모나 형제 아닌 생물이 어디 있겠는가.
무심코 불쑥 뱉은 한마디의 말이 스스로를
윤회의 쇠사슬로 묶어 버리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내 몸짓 하나, 말 한 마디, 생각 한 번이
새삼스레 두려워진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출처: 법정스님 '인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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