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모험
꿀잠 자기
대구의 박 선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영어 공부하다 잠드는 게 나의 일상”이라는 구절에서 웃음이 났다. 영어 프리랜서 강사인 그가 진짜 공부보다는 쉬 잠드는 방편으로 그걸 이용할지도 모른다 싶어서다. 옹골차고 모든 것에서 완벽한 그도 잠 앞에서는 자신이 없는 걸까.
나도 잠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수승화강(水升火降)’이라는 옛 의학서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훨씬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이 원리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물의 기운인 찬 기운은 머리 쪽으로 올라가게 하고 머리 쪽의 더운 열기는 배꼽 아래쪽으로 끌어내려야 잠을 잘 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원리에 따라 엄지발가락끼리 부딪치게 하는 ‘발끝 부딪치기’와 배꼽 아래 5센티쯤의 단전(丹田) 위에 양손을 올리고 아랫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장(腸)운동’을 한다. 6시 반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거실에서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를 본다. 하지만 잠을 청할 9시가 되면 칼같이 TV를 끈다. 2사 만루의 긴장된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와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안방, 커튼을 내리고 조명 조도를 확 낮춘다. 오동나무 반쪽짜리를 목 베개로 해서 반듯하게 눕는다. 발목을 세우고 엄지발가락끼리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아기들처럼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고 두 손은 죔죔 주먹 쥐기를 한다. 이 두 가지 동작은 건강에 좋다기에 내가 덤으로 추가한 것이다. 발끝과 머리 그리고 손, 세 지체가 한꺼번에 리드미컬하게 돌아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 누가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면 박장대소하는 댓글이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달리지 않을까.
허벅지의 극심한 고통을 참고 1,200개쯤의 발끝 부딪치기를 하고 나면 콧등에 땀이 배면서 어긋났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구부러졌던 몸이 반듯하게 펴진 듯 온몸이 편안해진다. 이어서 아랫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장운동, 아래로 내릴 때는 깊게 내려갈 수 있도록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준다. 이렇게 300번 정도의 장운동을 하고 나면 목덜미 쪽이 서늘해지고 아랫배가 따뜻해지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마침내 숫자를 셀 수 없는 지경, 그쯤에서 잠이 드는 것이다.
AI와 비상구
장마 중의 여우볕, 서둘러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전동 예초기라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무더위 탓인지 땀이 비 오듯 했다. 삼십여 분간의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고가 터졌다. 예초기가 담벼락 아래쪽을 지나가는 가느다란 통신선을 끊어 버린 것이다. 이어주면 되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을 마쳤다. 한데, 막상 전기 테이프를 찾아 들고 시작해 보니 이을 수가 없었다. 비닐 피복 속에 있는 것이 전기에 사용하는 구리 선이 아니고 플라스틱 선이었기 때문이다.
통신공사 KT에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땀투성이 나를 맞이한 것은 먹통이었다. TV와 인터넷, 카톡조차도 깜깜 불통이었다. 아마 그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이었던 모양이었다.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AI가 나와 “인터넷과 TV는 1번, 휴대폰은 2번. 무엇 무엇은 3번”이라기에 급하게 1번을 눌렀다. 그러면 당연히 인터넷과 TV 담당 상담원이 나와야 마땅할 터, 한데 AI가 다시 “누르는 ARS는 1번, 보는 ARS는 2번, 말로 하는 ARS는 3번”이라고 했다. 난감했다. 지금 저 셋 중의 어느 번호를 눌러도 상담원은 나오지 않고 또다시 AI가 나올 게 뻔하지 않은가.
사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이 ARS의 안내를 받아 상담원과 만난다는 것은 미로(迷路) 탈출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인공지능 도입이 경영 합리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면 그에 적응하지 못할 노인들을 위한 비상구 같은 걸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가령 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입력하면 바로 상담원이 나와 응대한다든가 아니면 인공지능이 목소리로 노인임을 알아보고 곧바로 상담원과 연결해 주는 방법 같은 것도 있지 않았을까.
어디 KT뿐이랴, 대부분의 국가 기관이나 공공 기관 그리고 어지간한 규모의 기업체에서까지 AI를 앞잡이로 세웠다. 젊은이들에겐 그 앞잡이가 일 처리를 도와주는 상냥한 아가씨일지 모르나 우리 같은 고령자들에겐 요리조리 둘러대며 길을 가로막는 못된 아가씨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고 AI 아가씨와 맞서보지만, 연전연패, 어깨를 축 늘어뜨린 노년들의 쓰린 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까.
오프라인에서는 노년들에게 각별한 배려가 있다. 전철 무료 승차에다 경로석까지 주어지고 고궁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재 관람도 그냥 통과다. 어째서 온라인 쪽에서는 아무 배려도 없는 걸까. 일상이 온라인 쪽에 무게가 실리는 요즘, AI 적응이 어려운 노년 세대들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에세이문학 2020 겨울호 게재)
첫댓글
동감합니다. ARS 안내 정말 싫습니다.
나이드신 분께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좋습니다.
온라인이 젊은 사람앤 좀 빠르고 편한지 모르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너무 빠르게 변모하니 어지럽고 현기증이 납니다. 유유자적하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윤권 선생님,
고맙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공감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