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煩惱)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는 불교 심리용어이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다고 보아 이를 3가지 독(三毒)이라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인식기관인 눈·귀·코·혀·몸·뜻의 6가지 문을 통해 항상 흐르는 번뇌에 의해 마음은 산란되고 갈등을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 경전에서는 이 번뇌의 다른 표현으로 미혹함· 잠듦· 물듦· 흐름· 얽매임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근본번뇌와 이에 따라 일어나는 게으름· 불신· 경망스러움· 교만 등 20가지 정도의 수번뇌가 있으며, 결국 불교의 이상은 이러한 번뇌를 극복함으로써 평온한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다고 보았다.
이러한 번뇌 종류가 수없이 많음을 팔만사천번뇌라 하며 6가지 감각을 중심으로 삼세에 걸친 3가지 선택지로서 계산한 108번뇌는 보다 철학적으로 정리된 번뇌로서 알려져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 하여 번뇌의 성품이 비었음을 깨우치는 것이 번뇌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의 첩경임을 설명하며, 수많은 번뇌 가운데서 깨우치는 대승적 해결로서 초기 불교에서의 번뇌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와 이의 세세한 대치보다는 마음의 걸림 없음을 통해 보살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번뇌(煩惱)는 중생의 심신을 혼돈시키고 불교의 이상을 방해하는 장애이다. ‘혹(惑)· 진로(塵勞)· 염(染)’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사물을 대할 때에 그것을 욕심내어 소유하려 하고, 본능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게 되며, 경쟁하고 싸움하고 심지어는 살생까지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여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 모두를 번뇌라고 한다.
그러나 번뇌의 정체를 확실히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을 물을 것 없이, 큰 문제는 큰 번뇌를 일으키고 작은 문제는 작은 번뇌를 일으켜서 인생 전체를 번뇌 속으로 빠뜨린다.
따라서,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는 논리까지 전개되었다.
따라서, 번뇌의 깊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파악하여 해결한다는 것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참다운 길이며, 그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법문은 이 번뇌를 다스리는 교훈이며, 번뇌가 다할 때 거기에는 해탈이 있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번뇌(煩惱)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말에 ‘수면(隨眠)’이 있다.
번뇌(煩惱)는 주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마음 속에 사악한 성격과 성벽(性癖)으로 잠재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면화되기 때문에 마음을 뒤따르며 잠자고 있다는 뜻으로 ‘수면’이라 한다.
또한 잠재적인 경우와 구별하여 표면에 나타나는 번뇌를 전(纏)이라 하였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12지(支)는 혹(惑)·업(業)·고(苦)의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혹이 곧 번뇌이며, 무명(無明)과 애(愛)와 취(取)의 3지가 있다.
이와 같은 번뇌가 바탕이 되어 노사(老死)의 고(苦)가 생긴다는 것이 십이연기의 해석이다.
이와 같이 마음 속에 있는 아집을 중심으로 하는 그릇된 생각이나 성격을 모두 번뇌라 한다.
이 번뇌(煩惱)의 분류법은 약 20여 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혹설(二惑說)과 이번뇌설(二煩惱說)이다.
2혹은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이다. 견혹은 이론적이고 지적인 미혹이며, 주로 후천적인 것으로서 바른 이론을 듣고 잘 이해하기만 하면 즉시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사(利使:날카로운 번뇌)라고 한다.
수혹은 사혹(思惑)이라고도 하는데, 습관적이고 정의적(情意的)인 미혹으로서 선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그릇되어 있는 것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좀처럼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습관과 성벽에 의한 끈질긴 미혹으로서 오랫동안의 수행 노력에 의해 점차 조금씩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둔사(鈍使:그 성질이 둔한 번뇌)라고 한다.
또, 2번뇌는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로 분류된다.
각 번뇌(煩惱)가 갖는 뜻은 다음과 같다.
① 탐(貪=貪欲)은 애(愛)와 동의어이다.
욕계의 탐욕을 색탐(色貪), 무색계의 탐욕을 무색탐이라 하며 이 두 가지를 유애(有愛)라고 한다. 탐욕은 바람직스러운 대상에 대한 애착이다.
② 진(瞋=瞋恚, 성냄)은 바람직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반발· 거부· 배척이다.
소수번뇌(小隨煩惱)에서 설해지는 분(忿)·한(恨)·해(害) 등은 진에의 부류에 속한다.
분은 심한 분노이고, 한은 진에가 마음속에 생겨 계속되는 원한이며, 해는 진에가 행동화되어 타인을 가해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③ 만(慢)이란 스스로를 높이고 타인을 멸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심정이다. 이 만은 다시 3만·7만·9만 등으로 분류된다. 이 만과 비슷한 소수번뇌로는 교(憍)가 있다. 가문·재산·지위·권세·건강·지식·미모·능력·성장 등에 대한 교만이다. 그러나 근본번뇌의 만은 타인과 비교하여 생기는 교만인 데 비해 수번뇌의 교는 비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단순히 교만하다는 점이 다르다.
④ 무명(無明)은 우치이며 가장 근본인 번뇌이다.
이는 자기 중심으로 인해 공평, 정확한 진실된 지견(知見)이 없는 것이다. 아집에 의한 삿된 분별성이 무명이며, 삿된 마음가짐이 무명의 몸이다. 일체의 사악과 번뇌의 근원이 무명에 있다.
⑤ 견(見)은 일체의 사악한 견해로서 넓게는 62견으로, 종합적으로는 5견으로 분류된다.
첫째인 신견(身見)은 오취온(五取蘊)에 대해 이것을 자아 또는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실체적인 견해이다.
둘째의 변견(邊見)은 세상의 현상에 대해 극단적인 그릇된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또 고락(苦樂)을 변견이라고도 한다.
셋째의 사견(邪見)은 선악도 업보도 삼세인과(三世因果)도 인정하지 않는 그릇된 견해이다. 이것은 인과와 인연을 설하는 부처의 교법(敎法)과 수행에 의해 깨침을 얻은 부처와 승보(僧寶)를 인정하지 않는 삼보(三寶) 부정의 견해이기도 하고 인과를 부정하는 사견이기도 하다. 이는 결코 불교의 가르침에 들어갈 수 없는 가장 나쁜 번뇌로 지목된다.
넷째의 견취(見取)는 자기 중심의 악견으로서, 자기의 설은 절대 확실한 진리이고 다른 설은 모두 그릇된 것이라는 견해이다.
다섯째의 계금취(戒禁取)는 외도(外道)가 해탈과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서원을 일으켜서 지키는 그릇된 계율과 고행 등으로, 이것으로는 결코 해탈과 천상에 태어나는 일을 바랄 수 없는 그릇된 견해이다.
⑥ 의(疑)는 삼보, 선악업보, 삼세의 인과, 사제(四諦)와 연기(緣起) 등의 도리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인색한 것을 간(慳), 마음 속에 부끄럽지 않은 것을 무참(無慚), 외부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것을 무괴(無愧)라고 하며,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을 혼침(惛沈), 반대로 마음이 들떠서 침착하지 않은 것을 도거(掉擧)라고 한다.
또, 정진의 반대인 해태(懈怠)는 이상을 향해 노력하지 않는 것 또는 이상에 어긋나는 일에 힘쓰는 것이며, 방일(放逸)은 방자하여 규칙을 무시한 생각과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번뇌는 성스러운 도를 방해하는 것이며, 바른 지혜를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에 의해 번뇌를 단제(斷除:끊어버림)하게 되는데 이것을 해탈이라 한다.
마음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법에 맞는 이상적인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를 열반(涅槃)이라 하며, 거기에서 이상적인 지혜의 활동이 잠재적으로나 표면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리(菩提)라고 하는 것이다.
번뇌(煩惱)는 산스크리트어 <클레사(klésa)>는 <고통스럽다>, <더럽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더러워진 마음>, <괴로운 마음>이라는 것이 번뇌의 원뜻인데 우리들을 괴롭히고 해쳐서 오류로 이끄는 불선(不善)의 마음을 번뇌(煩惱)라고 한다.
불교의 경론에는 다양한 종류의 번뇌를 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①탐(貪), 진(瞋), 치(痴)의 3종.
②탐, 진, 치, 만(慢), 의(疑), 악견(惡見)의 6종의 근본번뇌와 분(忿), 한(恨), 복(覆), 뇌(惱), 질(嫉), 견(견), 광(誑), 첨(諂), 교, 해(害), 무참(無慙), 무괴(無愧), 혼침(昏沈), 도거(悼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의 20종의 번뇌.
이중 탐(탐욕), 진(분노), 치(무지)의 세 가지는 3독(三毒)이라고 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럽혀서 독을 주는 3대 번뇌이다.
또한 번뇌로 업이 전개되고, 번뇌와 업이 원인이 되어서 생(고통스러운 생존)이 결과한다는 생사윤회의 인과를 불교는 주장한다.
한편 번뇌 중에서도 치(痴)는 무명(無明)이라고 하며,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지적인 마음의 더러움이며, 이것이 근원적 원인이 되어서 다른 번뇌가 생긴다고 보는 것에 불교의 번뇌론의 특징이 있다.
불교의 경전은 번뇌를 상세하게 분석하는데, 불교는 번뇌를 다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고, 해탈과 보리와 열반을 획득하는 종파이다.
즉, 번뇌는 방황이며 당혹이기 때문에, 이 번뇌를 끊는 것이 방황의 <차안>에서 <피안>에 이르는 도피안(到彼岸, 바라밀다)인데 그 방법으로서 육바라밀이 주장된 것이며 이것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이다.
이렇게 해서 번뇌를 다해서 욕망을 끊고 정각(正覺)을 연 성자가 아라한으로, 다시 윤회의 고통에 빠지지는 않지만, 이를 소승의 각(覺)이라고 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대승에서는 번뇌 즉 보리라고 하며, 번뇌에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 중에, 살아있는 보리가 있다고 하는 것으로, 악인정기(惡人正機)라는 주장도 나와 있다.
번뇌(煩惱)심중의 악인일수록 아미타여래의 구제에 가장 먼저 관계된다는, 상식과 모순 등의 교리는 번뇌 즉 보리와 마찬가지로 대승불교의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위험한 구멍도 있기 때문에, 신앙의 확립과 중생제도의 보살행 실천이라는 대승불교의 존립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또한 밀교는 번뇌를 긍정한다고 하며, 애염명왕(愛染明王)은 번뇌 즉 보리를 표시한다고 하는데, 이는 즉신성불해서 이 몸채로 불이 된 입장에서의 번뇌긍정으로, 엄격한 수행과 금욕의 실천 없는 번뇌긍정은 좌도밀교(左道密敎)로서 배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