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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바다별장의 추억
환상의 섬ㅡ제주
푸른 초원이 태초의 자연인양 손짓을 하고,
시원한 바닷바람과 푸른 물결, 하얀 백사장이 유혹 하는 곳.
해안선을 따라 어디나 올레길이 펼쳐지고,
태고의 신비가 널려 이방인을 설레게 하는 관광의 명소.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아침을 여는 성산 일출이나,
환상적인 금빛낙조의 해변을 거닐다보면 누구나 절로 시인이 될 것이다.
아이야, 누이야
꿈꾸어 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살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드가 읊었던 <여행으로의 초대> 한 대목이다.
제주는 어떤 곳인가?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란 속언이 있듯, 예전엔 별로 대접받지 못했던 서러움의 땅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운 산물은 사람살기 더없이 좋은 땅이련만, 옛사람들 생각은 그리 사람살기 적합지 못한 곳으로 천시받던 곳이다.
허나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선망의 땅이자, 환상의 세계로 급부상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땅.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三多島)ㅡ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는지는 명확히 몰라도, 까마득한 날, 땅속에서 고부량(高夫梁) 삼성이 솟아올랐다 하기도 하고,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에 쫒긴 몽골 인이 최초 이주해 왔을 거라는 설도 있는 그곳.....
제주도가 한반도에 종속되기 이전엔, 엄연한 하나의 독립된 나라였다.
이름 하여 탐라국(耽羅國)ㅡ
탐이 나서 탐라라 하였는지는 몰라도, 아름다움과 산물의 풍요가 제주도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가하면, 독특한 독자적 전통과 문화가 이어져온 이색적인 섬나라.
한반도에 병합된 이후 제주도는 숱한 눈물과 한을 곱씹어온 아픔도 있는 땅이다.
멀리는 고려 말 삼별초의 난민들이 진도에서 쫒겨 들어와, 몽골과 처절한 최후를 맞는 항몽 대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배객들이 통곡의 눈물을 쏟기도 했고, 해방직후 <제주 4,3사태>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발했던 질곡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제주도엔 아직 때가 덜 탄 자연이 숨쉬고, 순수가 남아 있는 그런 곳.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는 선망과 환상이 손짓하는 그런 땅이다.
제주도로 작은아들이 뜬금없이 이사를 가겠다는 통보를 해 왔을 땐, 그리 탐탁치 안은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우선 왜 하필이면 그 먼 곳까지 살러 가느냐 해서였기 때문이다.
두어 달 전쯤,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호주나 제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할 땐, 그건 순전히 농담인줄만 알았다.
하긴 둘째 아들이 지난 한 해 동안 마음고생이 적잖이 컷을 것이다.
충주주덕에서 학원을 경영하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겪었던 까닭이다.
그 사고의 여파로 심적 고통과 물적 피해도 컸지만, 그새 이사도 무려 세 차례나 하였다.
충주에서 주덕으로, 다시 당진 신평으로 갔다가 주덕으로 다시 옮겨 다녔으니, 그 고생이 오죽 하였으랴!
학원도 그만둔다고 했다가, 다시 또 문을 열고, 이러다보니 모든 일이 순탄치를 못했다.
그 사고가 작년 6월 달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틈나는 데로 손주들을 보살펴 주기위해 부지런히 쫒아 다녀야만 했다.
특히 두 달 밖에 안 된 갓 난 손녀는 내 손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사고당시 기적처럼 아무 일 없었던 우리 유빈이가, 더욱 귀하기도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그래서 충주로, 당진 신평으로, 그리고 주덕으로.... 오토바이와 열차편으로 열심히 달려가 주었던 것이다.
그런 손녀가 이제 돌을 지나고, 건강하게 자라 아장아장 걸으며 재롱을 떨 때면,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면 온갖 시름을 잊게도 해주었다.
손주 보는 재미란 경험하지 않고선 그 아기자기한 참맛을 알 수 없으리라.
아이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듯이, 아들딸 키울 때 보다 손자손녀가 훨씬 더 정이가고 사랑스럽다.
그래 손주 보는 재미가 황혼 무렵인 우리 나이엔 최고의 보약이라 하지 않던가!
커나가는 모습과 재롱부리는 손녀를 보면, 절로 엔돌핀, 다이돌핀이 솟는 느낌....
어느 심마니가 산삼 캐러 산에 오르지만, “산삼은 만나지 못한다 해도, 산에 오른 그 자체만으로 보약 한제를 먹었다”고 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런 행복을 빼앗고 제주로 떠나가겠다니, 얼마나 섭섭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큰아들 가족은 일본에 살다보니, 한번 보는 게 마치 견우직녀 만나듯 1년에 한번보기도 쉽지 않은 터에, 작은 아들마저 멀리 떠나간다니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런 저런 사연들을 뒤로하고, 드디어 떠나갈 그날이 왔다.
충주주덕에서 이삿짐을 싸서 화물차로 보내놓고, 우리는 청주공항에서 비행기 편으로 제주로 향했다.
제주에 도착한곳은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해변 가에 위치한 <꿈꾸는 바다별장>
신엄이란 새 엄쟁이란 말을 한자어로 바꿔 쓴 이름이란다.
미확인이지만 어떤 영문에서 인지 몰라도 도깨비마을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엄리는 본 마을만 370호가 자리 잡은 큰 마을로서, 전부터 면사무소를 설립하자는 요청이 있어왔지만 주민들이 한사코 반대하여 성사 되지 못한 곳.
이유는 “뒷간과 관청서는 멀리 두라”는 선인들 전언 때문이란다.
그런 때문인지 발전은 뒤져있어 구엄리보다 훨씬 땅값도 헐했는데, 요즘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크게 새로 각광 받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바다별장은 올레길 5번이 끝나는 지점이고, 6번이 새로 시작되는 그런 위치이기도...
아들이 임대한 주택은 별장인데, 년세 1500만원을 주기로 계약을 했단다.
제주에선 월세대신 년세를 주로 내는데, 년세를 <죽어지는 세>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별장주변에는 꽤나 넓은 초원이 있어 가축을 취미삼아 길러 봄직도 하고, 약초나 과수를 심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첫눈에 흑염소나 토끼, 오골계를 키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가로이 소가 풀을 뜯고 있는 풍경과, 수박과 참외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풍성한 모습은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아침마다 산 까치가 때지어 깍깍 문안을 하고, 꿩들도 꿩꿩하며 푸드등 나르는 정겨운 풍경도 별천지에 온 기분....
어디 그뿐인가!
새벽안개나 운무가 허리를 감싸고도는 앞산은 마치 일본 후지 산을 옮겨놓은 착각에 빠지게도 하고, 바다 해변 가로 눈을 돌리면 더없이 아름다운 경치가 시야 가득 들어온다.
제주도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한라산일 것이다.
나는 30여 년 전 딱 한번 정상에 올랐던 적이 있지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만해도 내 산행 실력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아 일행 중 맨 꼴찌로 출발했지만, 제일 먼저 정상에 도착하기도 했었다.
산 정상의 높이는 1950mㅡ
이 높이를 언제, 누가 측정했을까?
그 주인공은 독일 쾰른신문 기자였던 지그프리트 겐테라는 사람이었다.
그가 1901년 외국인으로선 최초로 한라산에 등정하여, 사진을 찍고 서양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산에 올랐던 그의 일행이 제주목사(도지사격)를 찾아, 고도 측정을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극구 반대를 당했단다.
이유는 한라산 산신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행이 고도측정이 허락되어 성사시켰다니, 그 대단한 공로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제주도는 신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신화를 쫒다보면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그럴싸한 설화가 흥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제주의 대표적 신화가 <설문 대 할망>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한라산 1100고지에서 영실로 가는 길가에 사람의 형상을 닮은 기암들이 서있다.
이 기암들에 얽힌 신화가 설문 대 할망이다.
설문 대 할망은 키가 50km에 달하였으며, 자식을 무려 500여명이나 두었단다.
그 할망이 제주도를 세웠고, 그 많은 자식들을 거둬 먹였는데, 어느 날 자식들이 한라산에 돌아와 보니 맛있는 팥죽이 한 솥 가득 끓여져 있더란다.
배가 고픈 참에 모두 달려들어 순식간에 팥죽을 다 먹어 치웠는데, 먹고 나니 팥죽 속에 설문 대 할망이 빠져죽어 있었다니..
이에 500여명 자식들은 통곡을 하다가 바위로 굳었는데, 그게 영실기암과 오백나한이 되었다는 이야기.
나는 제주도를 너 댓 차례 다녀온 적은 있지만, 실제 제주도의 실상은 제대로 아는바가 없었다.
그만큼 주마간산 격으로 수박겉핥기식 구경이나 하고 갔었기 때문이었다.
금번 제주도에 간 것은 어떤 여행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아이들 보살펴주고 이사를 거들며, 그곳 실정에 적합한 자문을 달라는 부탁에서였다.
나는 이곳에 온 이후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은 시간엔, 주로 정원손질과 텃밭일구기에 시간을 보냈고, 손녀와 놀아줄 시간이면 해변 가와 주변 골목길로 산책을 나섰다.
10여일 머무르는 동안 곽 지 해수욕장에 다녀온 시간 말고는 따로 구경할 시간은 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나대로 짭짤한 여행시간을 보내기로 작정을 했다.
내 성미 상 호기심이 발동하면 어디라도 가고야마는 천성 때문이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해변 올레 길을 따라 몇km씩을 걷기도 하고,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길을 샅샅이 돌아보기도 했다.
실은 정원손질을 마무리하면 2,3일정도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로운 여행시간을 갖고자 계획도 했었지만, 갑자기 태풍 너구리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그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을 내서 좀 더 세세히 곳곳을 돌아볼 예정은 변함이 없다.
제주도 체제기간 손주들과 보낸 즐거웠던 추억과,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준 보람은 매우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손녀를 거닐고 바닷가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고동이나 게를 잡던 쏠쏠한 재미는 잊지 못할 환상의 추억이다.
꿈꾸는 바다별장은 어쩌면 보들레드가 읊었던 가고픈 감미로운 그곳이 아닌가 싶다.
청산별곡이 떠오른다.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으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으리랏다.
ㅡ 중략 ㅡ
살으리 살으리랏다 바다에 살으리랏다.
나문재와 굴 조개먹고, 바다에 살으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첫댓글 꿈꾸는 바다에서 꿈 이루시고,,,꿈같은 생활하시는
파란하늘님 가정에 뭉게구름 같은 행복과 행운이 비칩니다
밑에그림 태양이 아우라 같습니다. 꿈꾸면 꿈 이루어 집니다
제주란 말에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답니다.
저희 언니도 30년 넘는 교직생활을 접고 여행갔다가 부랴부랴 제주도에서 귤 농사 짓고 있습니다.
생전에 해보지않던 농사를 ...그것도 무농약, 감귤을 재배한다고 무진 애쓰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제게도 자꾸 내려와 살아보랍니다.
그런데 저도 손주들이 못 미더워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매주 서울로 손주 돌보러 다닙니다.
어쨌던 언니덕에 가끔 제주에 가서 남들이 안가던 길도 걷고 ...그래요.
닉네임처럼 손주들이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추신 선생님은 시인이신가봐요
박선생님! 제주도에가셨군요. 손주본다고 하실때는 이해가 안되었습니다.남자분이 어떻게....
오늘 글을읽고 이해 되었습니다. 건강한모습으로 공대 인터냇실에서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