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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뮤지션들이 증언하는 NIRVANA
90년대는 물론, ROCK의 역사에 커다란 충격을 초래했던
NIRVANA.
1994년 4월 8일, 비극의 총성이 울려퍼진지 벌써 9년이 지났다.
이젠 그들이 세간에 미쳤던 영향력이 희미해져 갈만도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날이 갈수록 증대되어 가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침체된 락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Smells Like Teen Spirit"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영혼의 찬가」로써 울려퍼지고 있으며,
또한 너바나를 사랑하는 뮤지션/팬들은 그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작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미발표곡
"You Know You're Right"의 절박감도 현재의 락계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돌연변이 팝"으로서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너바나가 락뮤직에 남긴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1991년에 폭발한 「너바나 혁명」이란 무엇이었나?
100명의 뮤지션들의 증언을 통해, 21세기에도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는
너바나의 전모를 밝혀본다.
■ 출처 : CROSSBEAT 2003년 1월호
■ CAVE IN
▣ Steve Brodsky :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같은, 소위 훌륭한 곡을 썼던 밴드들에게서 느꼈던 매력과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외모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는것도(웃음).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은 점잔을 떨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유머센스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여, 그들이 들려준 음악에는
살아있는 인간이 있었다는 것을 간단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공적이
아닌, 진짜 사람의 냄새를 거기서 느낄 수 있었다.
■ INCUBUS
▣ Brandon Boyd : 어떤 면이 좋았는가 하면, 그 무관심함이다. 펑크적인 철학을 갖고 있었고, 그점이 멋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을 라이브에서 볼 때, 다음엔 무슨짓을 할지 모를 스릴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노래를 끝까지 부를까? 멤버중 누가 악기를 부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조마조마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경시했던 그 자세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 SPARTA
▣ Jim Ward : 고등학교 1학년 때, 등교중의 일이었다. 친구중에 한명이 SUB POP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고, 그는
너바나가 메이저 레코드사로 이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SUB
POP에 소속했던 밴드가 메이저로 갔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게 멋있는건지 어떤지는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친구는 나에게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려주었다. 「얘네들 끝내주는데!」하고 느꼈던 그당시의 기분을,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학교에서 좀 잘난척
하던 녀석이 카스테레오로 Smells~를 틀어놓고 차를 몰던 모습을 보고 왠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지만.
■ THE PROMISE RING
▣ Jason Gnewikow : 당시 나는 PET SHOP BOYS의 광팬이었는데, 너바나는 그들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친숙한 팝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하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부분도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사람들을 매료시킨
점이라고 생각한다.
■ BLACK REBEL MOTORCYCLE CLUB
▣ Peter Hayes : 너바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을 유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상깊었다. 물론 그건 다양한 각도로 미루어 본 것이지만, 아무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인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밴드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 GIRLS AGAINST BOYS
▣ Eli Janney : 우리들은 데이브 그롤의 친구였기때문에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다. 너바나가 레딩페스티벌(역자주:영국 READING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92년), 데이브가 나를 무대뒤로 데려다 줬는데, 거기서 크리스와 커트를 처음 소개받았다. 당시 커트는
상당히 우울한듯한 얼굴이었다. 무대 뒤 다른방엔 레코드 회사 인간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은 너바나가 유명인사가 된 것을 서로 칭찬하면서, 그 성공이 마치 자신들의 공인양 거들먹거렸다. 씁쓸한 상황이면서도 아주 웃기는 순간이었다. 커트가 제일 싫어했던 꼴들이었으니까. 커트는 가능한 레코드 회사 인간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 GOO GOO DOLLS
▣ Johnny Rzeznik : 커트 코베인은 정말 훌륭한 송라이터였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혼합하여 모든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데이브 그롤 또한 엄청나게 멋진 드러머였다. 과거 25년의 역사 중에 최고의 드러머였다. 너바나의 업적? 그건 액슬
로즈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거 아닌가?(웃음)
■ BEN FOLDS
진짜 로큰롤을 구현했다랄까.....우리들 시대에는 진짜 위대한 락밴드가 차츰 적어지는 추세였지만......너바나는 그런 드문 밴드 중 하나였다. 발매했던 작품은 얼마 안되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있어서 비틀즈와도 필적하는 존재였다. 그러한 사실 자체가,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결점같은 건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 THE JEEVAS
▣ Crispian Mills : 너바나는 밴드를 되살렸다. 내자신이 영국에서
경험한 것인데, The Stone Roses같은 라이브 밴드를 살려놓았다. 그러나 그 후, Stone Roses는 댄스에 빠져들었고.....DJ가 범람하며 또다시 기타밴드가 없어져버린 일때문에 너바나의 존재는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김빠진 매드체스터 계열보다 훨씬 파워와 임팩트가 앞섰기때문에 컬트적인 존재가 되었다. 젊고 악기를 든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NEVERMIND』가 나왔을 때 내가
16~17살이었다. 그때는 학생의 절반이 너바나를 들었다.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꼭 듣지 않으면 안될 음악이었던 것이다.
■ ELVIS COSTELLO
커트는 어쨌든 대단한 송라이터였고, 훌륭한 싱어이기도 했다. 그들의 힘은, 손길이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마음의 장벽을 부수고 손을 내미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래와 가사를 수단삼아, 자신들에게조차 미지의 세계였던 눈앞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 PRIMAL SCREAM
▣ Bobby Gillespie : 너바나의 매력은 커트다. 감정적인 부분말이다. 아무튼 훌륭한 싱어, 송라이터, 기타플레이어였고......세상을 떠난건 유감이다. 감성도 풍부했고, 어쨌든 재능이 있었건만.
■ TOOL
▣ Maynard James Keenan : 너바나의 등장은 불의의 사고였다.
마침 인디락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시기에, 너바나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하나로 통합했을 뿐,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다. 많은 밴드가 서로 아웅다웅하던 상태였기때문에 누가 너바나처럼 되던 이상할건 없었다. 너바나의 경우, 디센던츠, 리플레이스먼츠와 메탈리카, 멜빈스와 스완즈가 모두 함께 노력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타이밍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시애틀이라는 토지에 그 타이밍이 계속 쌓인 것이다.
애틀랜타도 동경도 런던도 아닌 시애틀에서. 그리고 너바나의 종말을
초래한 1등 공신은....코트니 러브였다(웃음).
■ THE FLAMING LIPS
▣ Wayne Coyne : 우리는 NIRANA와 같은 SUB POP레이블소속
시절때부터 알았고, 함께 라이브를 한 적도 있다(주:89년에 너바나는
플래밍 립스의 투어에서 서포트를 맡았다).
『NEVERMIND』가 나온 직후에 Dallas로 라이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공연장에는 언제나 악질적인 경비녀석들이 있었는데, 그놈들은 관객을 쓰레기 취급하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라이브에서
관객들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무대 가까이로 마구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 경비놈들이 어린 관객들을 차례차례 끌어내려 쓰러뜨리고는 아무 거리낌없이 때리고 밟아댔다. 아마 그 장면을 커트도 봤는지, 그
경비녀석을 후려갈겼다. 그런 행동을 했던 뮤지션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커트가 무대에서 관객들이 서 있는 곳으로 뛰어내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경비놈들이 커트를 붙잡으러 달려들었고, 커트가 그놈의 머리통을 기타로 후려쳤다. 그러자 그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고.....아무튼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 경비는 당연히 맞을 짓을 했기때문에 맞은거고, 멍투성이가 된 것은 솔직히 쌤통이었다. 드디어 응징을 당했구나 싶었다(웃음).
■ GERLING
▣ Presser : 1989년 『Bleach』를 산 것이 그들과의 첫만남이었고,
91년인가 92년에 빅데이아웃에서 봤던 라이브는 압권이었다. 결국
커트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난 그가 좀 더 살아서 작품을 계속
만들어주길 바랬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림프 비즈킷같은 짝퉁녀석들을 한방에 날려버렸을텐데(웃음).
▣ Burke : 『NEVERMIND』는 친구가 가르쳐줘서 들었는데, 그 자켓 아트워크는 인상적이었다. 너바나를 알고나서부터 그들의 음악을
수도없이 반복해서 듣곤 했다.
■ THE CHEMICAL BROTHERS
▣ Tom Rowlands : 너바나의 노래는 좋아한다. 특히 "Lithium"이
좋다. 영혼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으로부터 가식없이 호소하여, 듣는이와 확실하게 하나가 되는 그 느낌.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에는 모든 감정이 깃들어 있다. 그건 보통 밴드들에게는 드문 일이다.
■ ASH
▣ Tim Wheeler : 1992년에 너바나가 벨파스트에 왔을 때 라이브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내인생을 커다랗게 바꾼 계기였다. 사실 그전에도 난 헤비메탈을 좋아했었는데, 너바나의 「NEVERMIND」를 듣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라이브가 끝난
후, 나는 커트와 코트니, 데이브 그롤에게 사인을 받았다! 근데 그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줘버렸다(웃음). 그리곤 얼마 후 헤어졌지만(웃음). 사인을 받은 후, 거기 있던 한 젊은이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본 코트니가 『커트, 저 스웨터 너무 멋있지 않아요? 우리한테 팔라고
하죠!』라고 말한 뒤 그남자에게 30파운드(약 6만원)를 주고 사는 장면을 바로 곁에서 봤다. 그게바로 저 유명한 적과 흑의 줄무늬 스웨터였다!
■ THE VINES
▣ Craig Nicholls : 처음 들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헤비함은 물론이고, 지성적인데다 시적이기까지 했으니....『NEVERMIND』를 들었을 때 난 고등학생이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있어서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밴드를 결성하고나서
처음 연주했던 커버곡은 너바나와 킹크스의 곡들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 곡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게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렇게 했더니 다른 새로운 곡들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런식으로 시작했기때문에, 우리들에게 너바나의 냄새가 난다고 해도 그건 전혀 이상할게 없다.
■ ANDREW W.K.
▣ 특히 "Smells Like Teen Spirit"을 좋아했다. 처음 비디오를 본 순간부터 드러머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뮤직비디오를 잘 보면 심벌에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게 보일 것이다.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던 나머지, 우리밴드의 드러머에게도 흉내를 내게 해봤다. 테이프를 붙이면 분명 소리가 좋아질 줄 알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더 나빠졌다(웃음). 커트는 불쌍한 남자였다. 특히 유감스러웠던 것이,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게다가
어렸을 때 자신을 혼내던 존재에게 관용을 베풀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 세계에는 극히 제한된, 특수한 사람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더 평안한 안식의 땅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테지만.... ■
THE WALLFLOWERS
▣ Jakob Dylan : 그들은 침체됐던 음악계에 싱싱한 리얼리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당시엔 『음악을 더 듣고싶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부풀어올랐다. 그들이 현재의 음악계에 나타났다고 해도 상당히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리라 생각한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나왔을 때는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음악계에는
다양한 무브먼트가 있었지만, 그곡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이룩했던
노래는 없지 않은가?
■ SOMETHING CORPORATE
▣ Andrew McMahon : 얼떨결에 최근 처음으로 『NEVERMIND』를 샀다. 안갖고 있으면 쪽팔리지 않겠는가(웃음). 음악사의 금자탑이니까. 다시 들어도 감동을 받았는데, 왜 진작 이들을 알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밴드의 90%는 너바나에게 영향을 받았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추구하며 오리지널한 음악을 관철시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 THE WHITE STRIPES
▣ Jack White : 너바나에게 상당히 낙심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그
사건이란, 그들이 우리들의 본거지(디트로이트)에 라이브를 하러 왔을 때의 일로, 친구가 티켓 몇장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플레이하게
된 것은『미시건주 페어 콜로세움』이란 회장이었는데(93년 10월 29일), 거긴 이미 음향이 안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 라이브 도중에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엄청난 굉음이 시도때도 없이 울려퍼졌다(웃음). 그런 공연장에서 보는 것은 싫었기때문에,
결국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다음에 또 오면 보러가자. 그때까지 기다리자.』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시는 바와 같이 그들은 두번다시 오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가장 끌렸던 점은 커트 코베인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은 두명(크리스와 데이브)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품은 적도 없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웃음). 커트는 그 음악과 함께 어딘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그러한 커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남아 있는 그 두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런말 하면 안된다는건 알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그렇게 느껴졌다.
■ IAN BROWN
▣ 어쨌거나 커트의 노래는 훌륭했다. 존 레논 이래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아니었겠는가. 너바나와 STONE ROSES는 같은 Geffen레코드사 소속이었는데, 그가 사망한지 3일 뒤에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모두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정도로 사랑받았던 사람이 왜그렇게 고독감을 품고 살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내가 정말 화나는 이유는, 그런 어린 딸을 남겨두고 자살해버린 일이다. 진짜 그녀석을 한대 후려갈겨주고 싶을 정도다.
■ AMERICAN HI-FI
▣ Stacy Jones : 너바나의 라이브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분명
CMJ(College Music Journal)의 뉴 뮤직 세미나였을 것이다. 그때 마침 서스톤 무어(Sonic Youth의 보컬)가 회장에 도착했는데, 그새를 틈타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웃음). 정말 대단했다. 앞쪽에서 봤는데, 사람들이 발디딜 곳없이 꽉꽉 차서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려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지면에서 발이 떨어질 정도였다(웃음).
■ RED HOT CHILI PEPPERS
▣ Flea : 두말 할 필요없이 좋아했다. 그들은 사상 최고의 락밴드 중
하나로 일컬어져야 할 것이다. 락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이룩했다. 그들을 좋아하는 점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무엇보다도 그만큼 분노에 넘쳤던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동시에 연약한 부분도 지니고 있었던 점이다. 그들의 음악에는 언제나 매우 아름답고 시적인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의 락밴드는, 그것을 '앗' 하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하드"하게 "락"을 한답시며 어거지를 계속 부리게 되는데....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소위 '뉴메탈'이라고 불리는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하드하다는 것만을 강조하며 시적인 부분을 빼먹는다면, 그 음악에는 재미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내가 락뮤직에 바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게다가 커트는 분명 위대한 송라이터였으며, 밴드 자체에도 뜨거운 동료애가 있었고....
소위 "Grunge"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밴드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너바나 뿐이다. 다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그런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위대한 펑크밴드였다. 당시엔 "그런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녀석들이 꽤 있었는데, 너바나가 없었더라면, 팬들이 「그런지가 뭔데?」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SOUNDGARDEN, ALICE IN CHAINS같은 괜찮은 그룹도 있긴
했지만, 너바나 이상으로 중요한 밴드는 없었다.
▣ Anthony Kiedis : "Californication(역자주:1999년에 발표한 앨범
『Californication』에 수록된 노래 )"에는, 우리가 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부분도 있다. 그녀석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석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느낌으로 이곡을 쓰면서 커트를 생각했었다. 천국에 갔는지 안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석이 어느곳에 있던지간에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랬고, 만약 어딘가 다른 별에 산다면, 그별에서 만든 음악을 들려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들은 운좋게도 너바나와 함께 투어를 하곤 했으니까.... 그땐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커트가 『In Utero』를 썼을 무렵 살고 있던 헐리우드
거리가, 그녀석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고도 생각했었다.
■ BLINK 182
▣ Travis Barker : 너바나의 송라이팅 능력은 정말 훌륭하다. 커트의 재능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의 가사, 노래가 상징하는 것, 밴드의
자세 등..... 아무튼 정말 좋아하는 밴드였다.
■ QUEENS OF THE STONE AGE
▣ Josh Homme : 최대의 공헌은 "팝"이다. 그만큼 멋있고 매력있었다는 얘기다. 어떤 곡이라도 처음 듣는 순간 납득할 수 있고, 꽤 지저분한 면도 매력이다. 그들이 들려준 음악은 일그러진 팝송이랄까.▣
Nick Oliveri : Joey Division풍의 Cheap Trick같았다.
▣ Josh Homme : 칩 트릭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I want you to
want me, but I want to die』라는 느낌이었다.
▣ Nick Oliveri : 스튜디오 앨범은 불과 세장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중요한 존재로 남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중에 으뜸은 『NEVERMIND』겠지만, 『BLEACH』와 『IN UTERO』만큼 헤비한 앨범은 없다고 생각한다. "Rape
Me"나 "Penny Royal Tea"같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음악이다. 아무튼 꽤 음울한 음악이었다.
▣ Josh Homme : 하지만 가사가 아무리 음울했다 하더라도 멜로디엔 희망이 있다! 웬만한 밴드라도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들의 음악은 헤비한 팝이었다.
▣ Nick Oliveri : 어두운 부분은 마크 라네건의 덕이다. 그래서 우리밴드에도 참가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조쉬의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 Josh Homme : 하여간 나는 커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 PLEYMO
▣ Mark : 팝과 펑크가 공존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커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미국의 싱어들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노래하는 법,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작업, 자세, 마약 등 모든걸 알고 있었으니까.
■ THE ICARUS LINE
▣ Joe Cardamone : 『IN UTERO』가 나왔을 당시 받았던 엄청난
충격, 예측 불가능했던 점이 멋있었다. 또하나는 92년 MTV어워드에서, 크리스 노보셀릭이 플레이 마지막에 베이스를 공중으로 던진 것을 받지 못해서 얼굴에 그대로 떨어져버렸을 때였다. 괴로와서 스테이지 위를 뒹굴고 있던 크리스의 엉덩이를, 커트가 마구 걷어찼다. 『이런걸 기다렸단 말이다!』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 HAVEN
▣ Gary Briggs : 아버지는 너바나를 싫어하셨다. 아버지 또한 멋진
레코드를 많이 들었는데도 말이다. The Stooges나 The Velvets같은
옛날 그룹도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다. 너바나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득의양양하게 연설하시곤 했다. 혼을 느낄 수 없다면서. 하지만 1개월
정도 언플러그드 라이브가 방송되자 생각이 싹 바뀌셨다. 노이즈를
전부 제거하고 들으면 혼이 보였다. 너바나의 대단함은 바로 그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아주 간단하게 팬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던, 우리들 세대의 밴드였다.
■ BADLY DRAWN BOY
▣ Damon Gough :『NEVERMIND』는 대단한 앨범이다. 너바나를 듣기 전에는 PIXIES를 좋아했던지라, PIXIES쪽이 너바나보다도
중요한 밴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트가 사망하고 나서부터, 역시
그의 존재가 전설로써 거대화되어 버렸다. 그러고보면 데이브 그롤도
멋진 친구다. FOO FIGHTERS에서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 유명한 밴드에 있었던 경력을 등에 업고, 그 후에도 멋진 작품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커트가 인생의 고비를 넘을 수 없었던 것은 슬픈 일이지만, 너바나가 만들었던 레코드는 모든 세대의 사운드트랙이 됐지 않은가? 그것이 가능했던 밴드는 별로 많지 않다.
■ FEEDER
▣ Grant Nicholas : 우리들은 어지간히 POLICE(역자주:Sting이
멤버로 재적했던 70~80년대 유명 락밴드)에 빠져있었기때문에, 너바나를 처음 봤을 때는 POLICE를 연상시키는 동료의식같은 것을 느꼈다. 아무생각없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면이 있었고.... 엄청난 분노를
담은 노래에서조차 멜로디가 살아있는 점이 놀라웠다. 그게 가능했던
밴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 OASIS
▣ Noel Gallagher : 커트 코베인은 엄청난 송라이터였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제 2의 존 레논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음악에 대해
말했던 것, 음악업계에 대해 말했던 것은, 그 어떤 것이든 100% 다 들어맞았다. 실제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은 정말 유감이다. 그래도 그와 나는 같은 왼손잡이였고(기타는 오른손잡이), 나와 마찬가지로 푸른 눈이었으며,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은, 왠지 나와 무척 가까운 사이같이 느껴졌다. 어떤 점이 그들의 가장 큰
매력인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노래가 아닐까. 아니면 커트 자신일지도. 나는 그가 충분히 존 레논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Liam Gallagher : 커트가 사망하고나서야 조금 흥미가 있던 정도였다. 뭐 상관없지 않은가? MTV 언플러그드를 봤는데, 그게 처음으로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었던 때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빌어먹을
긴머리를 하고서 시끄러운 소릴 내뱉고, 구질구질한 옷을 입은 녀석들이라니. 난 비틀즈가 더 좋다. MTV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멋있다고는 생각했다. 몇몇 곡은 그냥저냥 들을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 QUARASHI
▣ Hossi Olafsson : 나를 능가할만한 너바나 팬은 아마 이세상에
없을 것이다! 난 그들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가사, 곡, 곡의 구성, 공연, 앨범에서의 플레이, 전부말이다! 그들은 스튜디오 음반에도 라이브에서나 들을 법한 느낌을 불어넣었다. 레코딩은 한번에 끝내버렸으며, 그 모두가 살아있는 생생함 그 자체였다. 또한 그들은 관객이나
팬을 속이는 짓 따윈 하지 않았다.
(역자주 : 뮤지션들이 음반을 레코딩할 때 각자의 악기를 혼자서 여러번 녹음한 후, 모든 멤버들이 녹음한 사운드를 합치고, 다시 그것을
다양하게 편집하여 최상의 소리를 찾는 방식이 일반적인 레코딩 작업이다. 그러나 너바나는 세명의 멤버가 녹음실에서 동시에 연주하며
녹음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것은 한명이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긴장감 있는 사운드가 나오게 되고,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방식보다는 라이브 느낌이 더 살아나게 된다.)
■ SUM 41
▣ Deryck Whibley : 그냥 단순하게 그들의 음악이 좋았다. 상당히
파워풀하지 않은가? 처음 들었을 때는 아직 13살인가 14살쯤이었기때문에 커트 본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순수하게 그 음악과
스타일에 끌린 것 같다.
■ UNDERWORLD
▣ Karl Hyde : LA에서 활동했을 무렵, 누군가가 너바나의 앨범을
건네주었다. 당시엔 전부 따분한 녀석(밴드)들 투성이었기때문에 너바나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랫만에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다. 커트가 살아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너바나는 훌륭한 앨범을
만들었고, 위대한 전설로 그 이름을 남겼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그리고 모든이들이 계속해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헨드릭스의,
빅 스카이 뮤직의 의미가 영원히 의문으로 남는것처럼, 너바나의 어쿠스틱한 사운드의 행방은 계속 풀리지 않을 것이다. 커트가 사망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우리들은 미래를 주시해야 한다. 만약 제2의 커트 코베인이 나타난다면, 그는 제발 자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Rick Smith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mells Like Teen Spirit"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노래를 엄청 좋아했다. 그들은 최고의 펑크밴드였고, 훌륭한 곡을 수없이 만든 밴드였다.
■ CATO SALSA EXPERIENCE
▣ Cato Salsa : 커트는 훌륭한 송라이터였다. 엄청난 정열과 에너지를 담아 노래했다. 바로 그점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자세까지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자살해버렸기때문이다.
■ DISTURBED
▣ David Draiman : 결코 아이디어가 풍부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강렬한 노래들을 썼던 것은 사실이다. 그 에너지 넘치는 생생한 사운드에 압도당했고, 곡을 만드는 재능, 멋진 코러스와 기타리프는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그 특유의 행동또한! 그 펑크적 자세는 음악계에 오랫동안 결여되어 있었기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LA메탈을 그들이 죽여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SIMPLE PLAN
▣ Pierre Bouvier : 너바나가 있었기때문에 지금 우리들이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린 14살때 첫 공연을 친구네집 지하실에서 했는데, 그때 연주했던게 너바나의 노래들이었다. 그당시엔 너바나 외에 SOUNDGARDEN, ALICE IN CHAINS, PEARL JAM 등도 들었었다.
■ RIVAL SCHOOLS
▣ Walter Schreifels : 너바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팝펑크 무브먼트도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GREEN DAY라던지
BLINK 182같은 밴드도 탄생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한다. SUM 41이든 QUICKSAND든 RIVAL SCHOOLS든 KORN이든간에, 너바나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음악계 전체를 완벽하게 뒤바꿔 놓았던 것이다.
■ DEATH IN VEGAS
▣ Richard Fearless : 사운드, 자세, 에너지, 거기다 완벽한 아나키즘과 분노가 너바나의 매력이었다. 분노를 표현했던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예가 너바나, 스투지스, 퍼블릭 에너미
등이지만, 극도의 분노로 넘쳤던 사운드는 정말 멋지다. 너바나는 그
분노를 레코드 속에 집어넣는 것이 상당히 능수능란했다.
■ IKARA COLT
▣ Paul Resende : 곡이나 가사나 모두 완벽한 밴드였다. 몇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로, 그런 밴드는 그렇게 자주 나오진 않는다.
『NEVERMIND』가 나왔을 때 나는 13살이었는데, 그게 나에게 있어서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RON SEXSMITH
▣ 추억이라면, 역시 그가 죽는 날이었다. 내가 첫 앨범제작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방에 들어와서 『커트
코베인이 죽었어』하고 가르쳐 주었다. 모두가 충격으로 말문이 막혔다. 실은, 그때 나는 그들의 음악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TV의 어느 채널에서건 커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들의 음악을 들었었다. 정말로 유감이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이 했어야 할 일들이 많았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WAXWINGS
▣ Dean Fertita :『NEVERMIND』가 발매되기 일주일 전에 라이브를 본 적이 있다. 그 라이브는 엄청난 흥분을 자아내게 했고, 지금까지 봤던 라이브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BLEACH』가 나왔을
무렵부터 그들의 광팬이었기때문에 어떻게든 라이브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 FOO FIGHTERS
▣ Dave Grohl : 커트는 항상, 멜로디를 가장 중시해서 곡을 썼다.
그녀석은 그게 최우선사항이었고... 그에 비해 기타 플레이는 무척 단순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멜로디도 극히 기본적이고 심플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가사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개 잠자기 전에
일기를 썼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NEVERMIND』나『IN UTERO』에 있는 곡의 가사는, 그 일기 중 일부분을 따와서 구성된 것들이다.
너바나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어디에서건 하모니를 넣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었다. 소절이든 코러스든간에 분별없이 하모니를 집어넣었다(웃음). 하지만 커트와 둘이 앉아서, 곡에 하모니를 넣으려고 하던
중에 나는 깨달았다.「잠깐만. 어설프게 하모니를 집어넣는 것보다도, 보컬 한명이 계속 부르는게 좋을 때도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너바나에 들어오기 전에 썼던 곡들은, 리프도 좀 어수선했고, 기타도 꽤
복잡했고... 하지만 너바나에 들어오고나서는 가급적 잔가지를 없애고 심플하게 다듬으려고 했다. '이것만은 듣는이에게 꼭 전하고 싶다'하는 포인트가 하나라도 있다면, 다른 잔가지들을 제거할 수 있는
곡제작 능력을 배운 것이다.
■ HOOBASTANK
▣ Douglas Robb : 너바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FOO
FIGHTERS다!(웃음). 나는 FOO FIGHTERS를 정말 좋아한다! 너바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너바나가 없어지지 않았더라면
FOO FIGHTERS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최대의
치적은 FOO FIGHTERS라고 굳게 믿고 있다.!
■ ...AND YOU WILL KNOW US BY THE TRAIL OF DEAD
▣ Conrad Keely : 89년에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다. 나는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MELVINS가 무대에 서기 전에 공연을 했다. 공연장은 부엌넓이처럼 작은 곳이었다. 그당시의 너바나는 아직 어설픈 헤비메탈 밴드일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뒤에『NEVERMIND』같은 작품이 나와서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은 분명, 따분한 음악 투성이였던 당시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한줄기 빛이었다. 당시엔 모든이들이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보편적이고 빛이 바랜 팝송을, 모두가 비상업주의라고 생각했던 표현형태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커트의 재능이었다. 그들이 만들었던 주옥같은 노래들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전성기때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시대의 상징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것이다.
■ THE SHINING
▣ Simon Jones : 너바나가 남긴 음악 모두가,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NEVERMIND』는 지금도 듣고 있고... 커트가 오랜 시간에 걸쳐 미쳤던 영향은 실로 방대한 것이었다.
■ RAGING SPEEDHORN
▣ Frank Regan : 너바나는 유명해지건 말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신념을 초지일관 와일드하고 강력하게 밀어부쳤고... 아마
그런 밴드는 두번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커트 코베인이 사망한지 몇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들의 자리에 도달했던 밴드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음악은 지금까지 인기가 시들지 않고 계속 팔리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팔려나갈 것이다.
■ MILLENCOLIN
▣ Mathias Farm : 일반적인 미디어에 등장했던 "펑크"란 것은, 너바나가 나에게 있어선 처음이었다. 당시 펑크소년이었던 나로서는,
그러한 펑크밴드가 미디어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 것을 보고 『죽여준다!』하며 박수를 보내곤 했다. 『TV에서 웬일로 펑크를 다 틀어주네!』하고 흥분하면서 봤던 기억도 난다.
■ MUSE
▣ Matthew Bellamy : 너바나를 듣고나서 나는 피아노 말고, 무턱대고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그게 13~14살 때였던 것 같다. 기타를
가지고『Bleach』에 수록된 곡을 자주 연주하곤 했다. 기타만으로 그렇게 격한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영국에서도 그런지의
영향은 대단했다. 너바나는 테크니션이라기보다, 오히려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사운드를 구사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열기에 이끌렸다.
■ LOW
▣ Zak Sally : 처음에 "Smells Like Teen Spirit"을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는 정말로 『모든게 변했구나.』하고 생각했다. 또한 『분명 뭔가 비극적인 일이 생길지도 몰라.』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곡은 명곡 중에 명곡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커트를 신격화 하지만 않았다더라면, 훌륭한 곡을 얼마든지 더 많이 남겼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FILTER
▣ Richard Patrick : 커트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무렵, 음악의 정통성이 드디어 인정을 받고 있었고, 드디어 정통성 있는 예술이 미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바로 그런 때, 차에 있는 라디오에서『커트 코베인이 자택에서 사망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라는 뉴스를 들은 것이다. 정말 암담했다.
■ LIFEHOUSE
▣ Jason Wade : 처음 들었던 곡은 "Smells Like Teen Spirit"이었다.
나도 시애틀에서 자랐지만, 사실 그런지 붐은 실시간으로 체험하진
못했다. 남들이 너바나의 노래를 틀어놓은 것을 처음 듣고, 정말 감동먹었다. 특히 나는, 그의 가사에 감명을 받았고.... 작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그 방법은 그저 놀랍다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커트의 빈정거리는 듯한 유머센스도 정말 좋아했지만, 역시 가장 끌렸던 점은 그 솔직함이었다.
■ GLASSJAW
▣ Daryl Palumbo : 내가 아는 사람중에 코트니 러브와 친했던 녀석이 있었는데, 커트와도 친한 사이였다. 실제로 그들을 잘 알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그가 슬픈 사람이었는가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감회가 더 새롭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밴드가 유명해져가는데도, '인기밴드는 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유명해질수록 세상과 멀어져 간 것이다. 커트는 순수하게 음악을 만들고, 밴드를 계속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사람이었다.
■ BECK
나는 너바나의 팬이었다. 그들이 성공하기 전부터였지만. 우리들사이에서는 좀더 메탈에 가까운 밴드로 인식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그당시 횡행했던 Guns N' Roses스타일과는 다른, 좀더 예전의 Black
Sabbath나 Cheap Trick 등과도 통하는 헤비한 메탈이었다. 게다가,
보다 더 예술지향주의였고.... 이른바 '아티스트'다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하고 마초적인 락과는 근본적으로 틀린, 다른 종류의 좀더
비뚤어진 취향을 갖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날,『NEVERMIND』가 발매됐는데.... 거의 팝앨범같은
결과가 되어버렸고, 처음과는 너무나도 달랐기때문에 우리들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조차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들이 기폭제가 되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이 이룬 업적은 어찌 그리도 참신했는지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든다. 우리들 세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몇년 동안이나 음악이나 영화, 그밖의 모든
팝 문화를 이것저것 모두 떠안게 되었고, 어거지로 그것들을 그대로
주입당했다. 우리들은 그게 너무나도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이나 세상에 대해 느꼈던 것들은, 당시 팝 문화에는 무엇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때에 너바나가 나와서 처음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음악을 연주했고, 폭발시켰다. 그랬더니 갑자기 세상이 방향을 전환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역시 아이들도 성장하고 있었구나.」라고. 우리들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나름대로의 자기표현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시대 어른들은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 VEX RED
▣ Nick Goulding : 어느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에
중년의 클래식 메탈팬이 있었는데, 그는 너바나를 아주 싫어했다. 그가 좋아했던 락계가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너바나는
바로 그런 음악을 했던 탓에 90년대의 음악을 완벽하게 바꾸고, 정말
새로운 요소들을 가져왔다.
■ SLEATER-KINNEY
▣ Janet Weiss : 나는 너바나를 무척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Sliver"이다. 정말 대단한 밴드였다. 그들이 최후를 맞게 된 원인은 싫었지만, 그외에는 전부 좋아한다.
■ MOBY
▣『NEVERMIND』가 마이클 잭슨을 밀어내고 1위가 됐을 때는, 정말 말도 아니었다. 세계가 바뀌었다는 걸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바나가 나오기 전에 인기있던 그룹은 머틀리 크루, 밴 헤일런같은
장발 스타일의 밴드뿐이었다. 나머지는 팝계의 밀리 바닐리 정도였고. 그누구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그렇게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와중에 너바나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허스커 듀'나 '픽시즈'같은 그룹들은 전혀 팔리지 않았음에도, 너바나가 정상으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음악계가 하룻밤새 바뀌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 MILLIONAIRE
▣ Tim Vanhamel : 너바나는 앨범을 세장밖에 내지 않았는데도, 라이브에서는 그것을 다음 레벨까지 끌어올려버리는 밴드였다. CD를
듣고『괜찮은 밴드군』하고 생각하며 라이브를 봤는데, "괜찮은 밴드" 그 이상의 레벨이었다는 것을 통감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밴드였음을 느꼈다.
■ THE MARS VOLTA
▣ Omar Rodriguez : 너바나가『Top Of The Pops』에 출연했을
때 봤는데, 정말 무지막지하게 끝내줬다! 진짜 멋있었다. 그들은 음악계의 주류에, 종래와는 다른 가치관을 도입했다. 내 자신이 좋아해서
들어왔던 아티스트는 Sonic Youth같은 밴드였는데... 뭐 보통 상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너바나의 등장은 충격적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 SIX BY SEVEN
▣ Chris Olley : 너바나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드러머인
데이브 그롤이 너무 과소평가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플레이가 곡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였다. Foo Fighters의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커트 코베인! 정말 바보같은 녀석이었다! 스스로 자기목숨을 끊다니!
■ SONIC YOUTH
▣ Thurston Moore : 가장 인상에 남았던 너바나에 대한 경험은,
아마 처음으로 그들을 봤을 때였을 것이다. 그땐 5인조 밴드였으며 채드라는 소년이 드러머였다. 동해안에서의 첫 라이브였는데, 아직
SUB POP에서 싱글 한장밖에 발매하지 않았던 무렵이라서 별로 유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별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흔히 보는 개리지(Garage) 밴드구나 하고.... 그런데, 정말 대단했다(웃음). 멋있고, 깔끔하고, 겉모습만 봐도 충격적이었다. 커트는 키가 작았고, 크리스는
엄청난 거구였고.... 세컨 기타리스트는 헤비메탈같은 사운드를 플레이했고. 아무튼 놀라웠다. 공연 막바지에는 기타를 빙빙 돌리거나 드럼세트를 때려부수기도 해서 깜작 놀랐다(웃음). 재밌고 거친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멤버들에게 『이렇게 기자재가 다 부서졌는데, 앞으로 투어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하고 물었더니, 커트가 『음, 고쳐서
다시 쓰죠 뭐』하더라(웃음).
그리고 91년에 유럽투어를 했는데, 그때도 그들과 함께 순회했다. 그당시엔 그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발의 기타리스트는 해고되고, 새로운 드러머 데이브 그롤도 가입했다. 그래서 예전처럼 멋진 밴드가 되진 못하겠구나 하고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투어 첫날밤 아일랜드에서의 공연에서 그들이 첫번째 연주하는 곡을 보고나서는, 그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보다 10배정도는 멋있어졌던 것이다. 당시 그곡은 곧 나올『NEVERMIND』에 수록된 노래였다. 그리고 그들은 대형 공연장에서 플레이하는 유명밴드가 되어갔다.
너바나는 어쨌든 솔직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진짜 밴드였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들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문화에서 누구도 표현하려 하지 않았던 부분을 표현했기때문이다. 당시엔 Guns
N' Roses같은 그룹이 큰 인기였는데(웃음), 그중에서 너바나는 리얼리티의 진수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Guns N' Roses들은 락계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었다. 너바나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레코드 회사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내는 락스타들의 넌센스적 구조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의미에서의 "얼터너티브"였다.
■ COLDPLAY
▣ Will Champion : 역사상 최고의 밴드이다. 전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울 따름이다.
▣ Chris Martin : 우리들이 믿고 있는 모든것을 말해주는 밴드이다.
■ THE (INTERNATIONAL) NOISE CONSPIRACY
▣ Dennis Lyxzén : 그들은 흡사 펑크락이 세상에 끼친 영향과 비슷한 역할을 이룩했다. 음악을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의미에서말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너바나는 언제나 펑크밴드였다. 나는 소위 그런지(Grunge) 밴드라는 녀석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때문이다. 너바나는 심플한 3코드만으로도 후세에 길이 남을만한 명곡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 MIDTOWN
▣ Gabe Saporta : 펑크를 처음 듣기시작했을 무렵에 Bikini Kill을
샀었는데, 그걸 산 이유는, 너바나가 그녀들이 마음에 든다고 잡지에서 말했기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 자극을 주며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들같은 음악을 더 듣고싶다면, 언더그라운드로 눈을 돌려보라』는 것을 듣는이들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 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
▣ Jon Spencer : 훌륭한 곡도 있었고 사운드도 괜찮았지만, 난 그들의 팬이라고까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놀라운 펑크적 자세를
지니고 있었기때문에, 그점에 끌렸던 것 같다.
▣ Judah Bauer : 그처럼 반체제적인 정신을 가진 펑크밴드가, 당시
팔려나갔던 많은 허접밴드와 섞여서 나온 것에 상당히 흥분했었다.
그리고 커트의 그 목소리. 때때로 행크 윌리엄스을 방불케할 정도로,
최고의 울부짖음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 THEORY OF A DEADMAN
▣ Tyler Connolly : 나도 처음엔 그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재능도 없으면서 소리만 질러대는, 그저그런 꾀죄죄한 그런지 밴드인줄 착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송라이팅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고, 노래또한 훌륭한 곡들뿐이었다.
■ RODDY FRAME
그들이 영국의 심야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기자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던 일이 인상적이었다(웃음). 그 후, 그들의 음악을 주의깊게 듣게 되었고,『괜찮은데!』하며 반하고 말았다. 그들이, 자신들이 일으켰던 현상에 탐닉하지 않았던 점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었다.
■ NEW FOUND GLORY
▣ Ian Grushka : 고등학생 때 나는 학교에서『기타』과목을 선택했는데, 너바나의 곡들이 연주하기 딱 좋았었다. 왜냐하면, 다른 밴드의 곡들에 비해서 연주하는게 더 즐거웠기때문이다(웃음). 기타수업을 받았던 어느날, 집에 돌아와서 너바나의 곡을 4~5개 정도 연주해봤지만, 제대로 치기 힘들었었다. 그리고 난 내방에 틀어박혀서 CD를
들으며, 그들의 곡을 열심히 연습했다.
■ THE DOVES
▣ Jimi Goodwin : 커트는 울분으로 넘치는 인간이었으며,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못했다. 그의 외곬수적인 삶이 결과적으로 그런 일까지 초래하게 된 것은 슬픈 일이었다. 남을 의심하면서 산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격하고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그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 TOM WAITS
▣ 나도 너바나를 좋아했다. 『Bleach』에 수록된 노래들이, 어느 10대 소녀의 방 창문으로 쾅쾅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녀가 머리를 흔들면서 춤추고 있던 모습을 창문너머로 볼 수 있었다. 자살한 것은 유감이었다. 사람이 그런 극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죽지않고 계속 활동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커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잖은가? 그가
남긴 최고의 유산이 그의 딸이길 바란다. 자식이야말로 평생 남는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레코드는.... 어차피 레코드일 뿐이니까(웃음).
■ HATEBREED
▣ Jamey Jasta : 그누구도 헤비뮤직이 이렇게까지 거대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에, 너바나는 헤비뮤직으로 이 업계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자기들 방식대로 모든 것을 했던 적지않은 밴드 중 하나였다. 그덕분에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제갈길을 나아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 CRAZY TOWN
▣ Bret "Epic" Mazur : 커트가 MTV에서 흥분된 상태로 여장차림을 한 채 출연했을 때가 인상에 남았다. 압도당한 점은, 그들의 작곡능력과 그 에너지, 그리고 성실함이었다. 분노와 아름다움이, 분개와
미묘한 멜로디가 하나의 노래에 공존하고 있었으니까.
■ EUGINE KELLY
▣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커트와 오랜 시간을 보낸건 아니다. 가까운 사이이긴 했지만, 사이좋은 친구였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생각나는 것은, 상당히 인간적이고 마음이 열려 있었다는 것,
다른 밴드들의 애로사항을 돌봐주었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자꾸 오버그라운드로 끌어올리려는 의지로 넘쳤고,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생각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 PHANTOM PLANET
▣ Alex Greenwald : 너바나는 "펑크"라는 개념의 상징적 존재였다.
락큰롤은 지금도 부모님을 짜증나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들은 분명 우리 어머니를 화나게 했다(웃음). 『어깨에 힘빼라. 이건 그냥 음악일 뿐이라구』하는 느낌이 정말 멋있었다.
■ FINCH
▣ Nate Barcalow : 『Fucking Everything!』이라는 메세지를 내새운 너바나 덕택에, 그 후에 나타났던 밴드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펄 잼도 비슷한 일을 했지만, 너바나만한 파워는 없었으니까.
■ JIMMY EAT WORLD
▣ Jim Adkins : 내가 좋아했던 점은, 노래가 교묘하게 만들어져서
일종의 팝송같은 느낌이 들었기때문이었다. 일부러 깔끔하지 않은 것들만 골라넣은 듯한.... 멋있으면서도 지적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자유분방하다고 해야하나, 시끄럽다고 해야하나. 팝송같은
이미지를 때려 부순것 같다.
■ OZMA
▣ Daniel Brummel : 너바나의 다큐멘터리 비디오인 『Live!
Tonight! Sold Out!』에서 어떤 소녀가 했던 말에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커트의 어떤 면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그의 외침은
본능적인, 훤히 드러낸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라서, 그런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라는 대답이었다. 정말 훌륭한 음악이란 그런 것이리라.
■ GREEN DAY
▣ Mike Dirnt : Grunge계통의 밴드중에서 너바나에게 가장 공감이
갔다. 그들이 모두를 위해 그 높은 벽을 허물어 주었다. 커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 Billie Joe : 너바나는 우리들과 가까웠다.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시작해서 화장실같은 더러운 곳도 질리도록 돌아다니고.... 그렇지 않은 밴드도 많았지만....
■ THE MUSIC
▣ Robert Harvey : 『MTV Unplugged Newyork』과 『NEVERMIND』는, 우리들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음악에 흠뻑 빠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눈을 보면 그사람을 알 수 있다지만, 커트 코베인, 데이브 그롤, 그리고 크리스 3명의 눈을 보면 거짓이 없다는 것,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 눈때문이었다. 또 커트의
심플한 기타 플레이도 정말 좋아했다. 기타를 격하게 치지 않는데도
효과적인 사운드를 들려줬고, 게다가 드럼도 훌륭했기때문에 대단한
밴드라고 생각했다.
커트는, 나를 포함하여 후배 밴드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자살하지 마라, 현상황에 불만이 있다면, 살짝 돌아가라, 마약에 손대지
마라,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그럴싸한 저항정신을
가르쳤다. 『무슨소릴 듣건 신경쓰지 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나아가라.』라는 것을. 그의 생전의 모습을 보면,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믿었던 것을 끝까지 밀어부쳤는다는게 분명하지 않은가?
■ PAPA ROACH
▣ Jacoby Shaddix : 그들은 음악 역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가슴속에 깃들었던 것, 자기자신을 투영한 것을 만들었다. 나는 그들이 음악을 통해 이룬 것을 좋아한다. 그들 자신을 위해, 음악을 위해 했던 일들 말이다. 그것은 과거 20년의 음악역사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 BODYJAR
▣ Cameron Baines : 너바나 최대의 업적은, 그들의 출연으로 헤어
메탈밴드가 멸망해버린 일이다. 그들 덕택으로 음악에서 거짓부렁이
제거되고, 진실성이 있는 음악만이 남았다. 또한 그들때문에 펑크락이 부활했다.
■ DJ SHADOW
대학교 2학년 무렵, 처음으로 "Smells Like Teen Spirit"의 비디오를
봤을 때 『와, 죽여준다』하고 놀랐었는데, Urban Radio라는 락이나
흑인음악 계열밖에 틀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국이 그곡을 틀어주었다.
그런 현상을 만든 것 자체가 놀라웠다. 지금도 그런 풍조가 일어나면
좋을텐데. 너바나의 매력은 퍼블릭 에너미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노래불렀던 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래서 커트가 죽었을 땐 무척 슬펐으며,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MTV같은데서 뉴스를 봤던 추억이 있다.
■ RICHARD ASHCROFT
▣ 너바나는 90년대에, 나를 멈춰서게 해서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케 한, 적지않은 밴드 중 하나였다. 커트는 위대한 송라이터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너바나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경험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분명히
있긴 있었는데, 지금 말하려니까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웃음).
■ J MASCIS
▣ 가장 인상에 남는 추억은.... 어느날 봤던 공연으로, SUB POP의
한 여성스탭이『(여성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좀더 소리를 줄여봐!』하며, 밴드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음악소리가 정말 컸기때문이다(웃음). 마침 그때 나도, 언제나 비슷한 불만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어떤 때는 자주『앰프소리를 좀더
줄여야 보컬 목소리가 들릴거 아냐!』하는 불평을 들었는데,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채 절대로 볼륨을 줄이거나 하진 않았다. SUB POP의 여성스탭은 계속 신경이 쓰였는지 무턱대고『좀더
소리를 줄여!』하고 너바나에게도 잔소리를 해댔다. 잠시동안 그녀가
말한대로 소리를 좀 줄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자 나몰라라 해버렸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볼륨의 음량같은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우리들이 너바나와 함께 공연을 했을 때인데, 그 라이브가 끝난 후 분장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는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내위에 커트 코베인이 느닷없이 날아와서 올라탔다. 그땐 엄청나게 아팠다... 정확히 어느 부위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너바나의 노래들은 역시 훌륭하다. 그리고 커트의 목소리도 마찬가지고. 그의 목소리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음.... 위대한 보컬리스트였다.
■ THE GET UP KIDS
▣ Jim Suptic : 16살 때, 너바나와 머드허니, 죠 브레이커의 라이브를 보러 갔었다. 보면서, 이게 바로 내가 하고싶었던 것이라는걸 느꼈다. 펑크같은건 전혀 몰랐지만, 너바나가 그길로 인도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로인해 Fugazi같은 언더그라운드 뮤직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너바나는 우리들 세대의 비틀즈였다.
■ JUSTINCASE
▣ Justin Tosco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경력이나 밴드의 방향성에 있어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들의 의지대로 계속해나간 그
용기였다. 그들의 이미지와 음악 그 자체보다도, 자신들의 방식을 절대 양보하거나 굽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장 존경한다.
■ JASON NEWSTED
▣ 90년대 초기, 너바나와 메탈리카가 미국에서 등장한 일로 인해, 헤비뮤직의 미래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날이 선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게 된 것도 이 시기였고, 그때까지 서양음악을 틀지 않았던 나라조차 라디오로 그 노래들을 틀게 되었던 듯 싶다. 이 두밴드가 커다란 족적을 남겼기때문에, 그들이 이룬 업적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 MEST
▣ Tony Lovato : 한사람의 남자가 그만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하다. 비교적 연약한 헤비메탈이었는데도, 느닷없이 평범한 줄만
알았던 녀석들이 훌륭한 노래들을 내세우며 나타나, 락계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 SLIPKNOT
▣ Corey Taylor :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두가지 있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커트가 자살했을 때다. 처음 들었을 때는,
데모인에 있는 할머니댁 거실에 있었다. 당시엔 헤어메탈이 큰 인기였는데, 대체적으로는 진짜 뮤지션이 아닌,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
놈들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TV를 보니 "Smells Like Teen Spirit"이
흘러나오길래...『끝내준다! 도대체 뭐야 이건?』하고 놀랬다. 그리고
곧장『Bleach』와『Nevermind』를 샀다. 『Incesticide』와『In
Utero』도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했다. 그들의 음반을 닥치는대로 손에 넣고 싶어서 좀이 쑤실 정도였다.
커트가 자살했을 때는, 아이오와주 워털루시에 있는 친구의 트레일러
안에 있었다. 마침 그친구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쿠스틱 라이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 갔더니 라디오에서『커트 코베인의 자택에서 신원불명의 사체발견』이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걸 듣고 커트가 누굴 죽였나 하고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라이브를 마음껏 즐기고나서, 워털루에서 데모인까지 약 두시간 정도 거리를 차로 달리고 있었는데, 또다시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다. 커트가 자살했다고.... 난 그자리에서 흐느끼고 말았다.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러면 이대로 끝나버리는건가....
결국에는 죽기전에 녹음한 노래들만 남는건가 하고 생각하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자리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서 울부짖었다. 『왜! 도대체 왜!....』
시간이 흘러, 그가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왔던 일 등으로 인해 헤로인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위대한 송라이터였음에도.... 하지만 잠시나마 우리 세대와 함께 있어주고, 경이로운 음악을
많이 남겨준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 Shawn Crahan : 어쨌든 세계는 그당시에 그런 밴드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뭔가를 배워야했다. 너바나가 모든이들의 마음을 대변했고,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사회속에서 수많은 문화적 오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런점으로 볼때
정말 위대한 밴드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작품을 전부 갖고 있고,
자주 분석하곤 했다. 내 견해로 본다면, 그들은 결코 완벽하진 않았다. 뭐랄까, 손이 덜간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세계는 바로 그런것을
원했던 것이다.
퍼온곳-http://cafe.daum.net/sadradio2net
첫댓글 잘났다.. 정말....
중간에 읽다 포기했다..
리암ㅎㅎㅎ
너바나......& 커트코베인............ 편안한 안식처에서 안녕히.......
와와와.오마다 오마! 요새 저러고 다니시는구나.
휴 -_-; 다 읽었당.. -_- ;무지 오래 걸리는 ㅋ 리엄 -ㅁ-;; 명멘트
ㅋ 형이 칭찬하니 바로 악담을;;
리암 짱 ㅋㅋ
짜증나..
어디서 이런말들은 짜집기해와가지고 ㅡㅡ;;;;왠지짜증난다...뭐 .. 너바나 좋아하긴하지만..
리암어쩔수 없다니깐.저 멋대로일수 있음이 가끔 부럽네...
저도 증언합니다. 20대 초반 나를 깨워주었던 너바나로써
내가 93년이나 그 때쯤에 적어도 중3이었다면 뭐랄까..너바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거 같다. 뭐랄까..그들의 힘이라고나 할까..그런걸 지금은 진실하게 느낄 수 없을 것 같다.90년대 초엔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학생이었으니..요즘 내가 70년에 태어났음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데..쩝
역시 리암은..-_- 하지만 언플러그드는 저도 참 좋아하는 앨범.
코리테일러 상당한 매니아인듯 하네요... 하여튼 커트코베인의 가식없는 보컬은 정말 최고.. nirvana!!
근데 커트코베인이 죽을때 쓴 총이 산탄총이었나요 그냥 권총이었나요?
이글을 보고 느낀건 아직도 저가 모르는 밴드들이 많다는것이군요...
히히, 리암. 애쉬의 팀은 너무 귀여워요 -_^
Jesus , god bless you. ㅋㅓ트.
내가 너바나를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건스앤로지스나 머틀리크루, 포이즌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희희락락하구 있을걸......
위대한 반드~!
여러 칭송 중에 리암의 멘트는 눈에 띠는군...ㅎㅎ...Nirvana의 팬으로서 맘에 들엄...
역시 나이 많은 톰 웨이츠의 대답이 걸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