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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대왕암 새해 해돋이
하늘이 희뿌옇게 젖어 금세라도 눈발이 날리거나 비라도 내릴 성싶은 하늘이다. 때마침 티브이에서는 신묘년을 보내고 임진년을 맞이하기 위한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카운트다운에 종소리는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환호를 하고 있다. 아직껏 잠자리에 들지 않은 줄을 알고 있는지 서울에서 큰아들이 새해 소식을 알리는 핸드폰이 울린다. 그래 한 해를 역사의 뒤안길에 다시 묻었으니 새해에는 꿈을 안고 펼치며 좋은 일이 많아보자고 건강하며 보람된 날들이 되자고 하였다. 분명히 시간상으로는 해가 바뀌었음에도 희뿌연 하늘은 변화된 것도 없으니 그게 그것으로 다름이 없지 싶다. 어디가 어제이고 어디가 작년이고 어디부터 오늘이었고 어디부터 새해인지 구분이 아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하게 획을 긋고 이제는 흑룡의 임진년이라고 크게 부풀어 나름대로 큰 꿈을 그리고 있다. 그냥 평범한 하룻밤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지 싶은데 한구석 마음은 들뜨는 듯 야릇하다. 그 아우성치는 시간에 새해 해돋이를 보겠다고 버스에 올라 대전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남쪽으로 유유히 내달렸다. 새벽 4시에 문무대왕릉이 있는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빈틈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미 차들이 꽉 들어차 있다. 일출을 보러가려면 아무래도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이다. 버스의 딱딱한 좁은 의자에 빼곡히 앉아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 해도 어디 쉬이 잠이 올 리가 없다. 다소 바깥 날씨가 쌀랑하지만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서성거려 본다. 바다에 바위가 보인다. 대왕암이지 싶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한 것이 떠나올 때의 기우를 깨끗이 씻어준다. 밤바다는 파도소리를 몹시 세차게 내지른다.
대왕암은 바닷가에서 손을 뻗으면 잡힐 듯싶은 거리에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암초로 수면에 살짝 솟아있는 느낌이다.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길을 터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화강암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어 그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편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중앙부가 거북등을 하고 있는 대왕암이 곧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의 능이다.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뿌리고 유골을 이곳 바위의 중심부 수중 못에 안장함으로써 용으로 환생할 것이고 수문장이 되겠다는 것이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끝내 골칫덩어리였던 왜구로부터 신라를 지켜내겠다는 강한 의지는 죽어서도 변함이 없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기 681년 일이니 1300년이 훌쩍 흘러간 셈이지만 아직껏 왜구의 나라 일본의 야욕은 독도를 사이에 두고 망발에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흑룡의 해인 임진년 새벽녘에 문무왕이 용으로 환생하여 지키고 있다고 믿는 대왕암 앞바다다. 어둠속이지만 파도의 물결이나 그 소리가 꽤나 요란스러운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수많은 무속인들이 찾아들어 텐트며 백사장에 밤 새워 촛불 밝히고 무언가 축원하고 있다. 방생할 고기를 판다는 안내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잡는 자는 누구이고 잡은 고기를 방생하는 자는 또 누구인지 헷갈리듯 고개도 마음도 갸우뚱해지기도 하지만 세상사 원인을 제공하는 자와 해결하는 자가 따로 있는 이치일 것이다.
먼동이 트고 환하게 밝으면서 바닷가 백사장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대왕암 너머 저 멀리 수평선까지는 막힘없이 잘 보인다. 갑자기 갈매기가 떼를 지어 모여 든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식전 행사를 하듯 숙달된 몸짓으로 군무를 펼친다. 물결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는가 하면 낮게 혹은 공중을 현란하도록 은빛 날개를 펄럭이며 수백 마리가 혼을 빼놓는다. 어쩌면 저들은 대왕의 시녀들이 아닐까 하며 엉뚱한 생각에 잠기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빵끗 솟을 새해 아침 일출을 목말라 한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기척이 없다. 다소 수평선 쪽이 붉게 젖었지 싶지만 너무 미약하다. 수평선에 구름이 회색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일출을 보기는 틀렸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발길을 돌리려는 사람은 없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이웃 울산 간절곶 일출시간이 7시31분이고 포항 호미곶이 7시37분이니 7시44분이면 아무래도 오륙 분쯤은 늦었지 싶은 시간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탄성이 튀어나왔다. 회색 구름을 뚫고 해가 혀를 날름거린다. 모두가 빨려들듯 지켜보는 가운데 해는 점점 밀어 올리면서 빨간 불덩이로 둥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위쪽에 환히 불이 켜지는 듯싶더니 점점 번져 전체가 황금빛으로 변하여 마침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드디어 임진년 새해가 밝아 온 세상에 밝음을 비추고 축복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관중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새해의 꿈을 기원하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멀리 달려와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해돋이 여행이었음을 확인 하였으리라. - 2012. 01. 01. 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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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방님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해돋이를 함께하게되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