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 저희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간절한 갈망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고, 얻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갈망으로 나타납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찾고 배고픈 사람은 먹을 것을 찾듯이 자신의 이익과 안락함을 위해서 많은 것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욕구를 충족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하는데 갈망은 인간의 삶이 계속되는 동안 언제나 삶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매 순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의 물으심에 내 욕구를 말씀드려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그분께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내 욕구의 수준은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으며 나는 그 갈망을 어떻게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묻고 계시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오늘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리고의 소경은 주님께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그의 간절한 소망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엄청난 소망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소망을 들어주실 유일한 분이시라고 완전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이고 기회는 오직 단 한 번뿐임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 기회를 잡고 싶은 것입니다.
61년이나 지난 옛날 얘기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술에 취하여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대문간에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밤새워 하혈을 하셨습니다. 하혈의 원인은 독한 술로 장출혈을 일으키신 것으로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며칠 고생하시면 멈추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그 날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지요. 그 당시에는 택시도 없고, 이십 리가 넘는 읍내에 갈려면 큰 고개를 다섯 개나 넘어야 하는 시골에서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급한 응급처치의 방법으로 가마솥 밑의 끄름을 긁어서 삼키시고 물을 마시면 상처에 달라붙어 지혈이 될지 모른다고 그렇게 했는데도 전혀 진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새벽에 동생과 나는 생각다 못해 이불 호청을 뜯어 들것을 만들었고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린 동생과 같이 들것에 아버지를 눕히고 이십 리를 뛰다 시피 병원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가는 내내 “하느님,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병원에 도착할 무렵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긁기 시작하셨고, 온 몸은 백지장과 같이 하얗게 변해져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힘들다고 고개를 저으며 열여섯 밖에 되지 않은 내게 각서를 내밀면서 이제 아버지는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볼 수 없어서 병실을 나와 정원에 심어져 있는 큰 소나무를 부둥켜안고 하느님으로 느끼며 애원하였습니다. “주님,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그 소나무 껍질에 눈물과 콧물이 젖을 때 그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에게 수혈 할 수 있는 피가 요청하는 대로 배달된 것입니다. 그날 아버지는 여덟 병의 피를 수혈 받으시고 기적처럼 살아나셨는데 그 병원이 개원 이래 두병 이상의 피가 배달된 적이 없었고 피가 없어서 수술을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저희들을 붙잡고 “너희들의 믿음이 기적을 일으켜 너희 아버지를 살렸다.”라고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어린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읍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왜 예수님께서 예리고 소경의 간절한 갈망과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는지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옛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어린 것들의 기도도 가벼이 듣지 않으시고, 소나무 껍질처럼 단단히 침묵 하셨던 주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간절한 갈망이 주님께 전달되고 있는지 의심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욕구로 가득 채워진 나의 소망에 주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고 자주 섭섭해 하고 있습니다.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렸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10-15.41-43.54-57.62-64
그 무렵 10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41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62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축일 11월 20일 성 펠릭스 (Felix)
신분 : 신부, 은수자, 설립자
활동 지역 : 발루아(Valois)
활동 연도 : 1127-1212년
같은 이름 : 펠리체
프랑스 태생의 성 펠릭스는 어려서부터 자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의 이름 앞에 발루아라는 지명이 붙은 이유는 그의 출생지가 발루아 지방이라는 의견과 발루아 왕가의 인척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체로 출생지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학을 배워 사제가 되었으나 평소 동경하던 은수 생활을 위해 파리 북동쪽에 있는 모(Meaux) 교구 내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고행하며 기도와 관상 생활에 전념했다. 그가 세속을 등지고, 세상도 그를 거의 잊어갈 무렵 마타(Matha)의 성 요한(Joannes, 12월 17일)이 그를 찾아왔다. 성 요한은 파리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갓 사제품을 받은 귀족 출신의 젊은 신부였다. 성 요한은 첫 미사 중 탈혼 상태에서 본 환시를 통해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모슬렘에게 노예로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을 해방하는 일에 헌신하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원 설립을 위해 먼저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며 성령의 이끄심을 찾고자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성 펠릭스는 성 요한을 제자로 받아들여 그를 지도하며 함께 수도회 설립에 관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어느 날 성 펠릭스와 성 요한이 샘 근처에서 영적 문제와 노예가 된 신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숲속에서 큰 사슴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슴의 뿔 사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십자가가 빛나고 있었다. 수도회 설립 의지를 더욱 굳힌 두 성인은 1198년 로마에 가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게 수도회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것이 ‘삼위일체 수도회’(the Order of the Holy Trinity for the Redemption of Captives)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았던 십자가는 수도복의 상징이 되었다. 초대총장으로 뽑힌 성 요한은 교황의 축복을 받고 파리로 갔고, 이미 고령이었던 성 펠릭스는 파리 북쪽에 있는 세르푸와(Cerfroid) 숲에 설립된 삼위일체 수도회의 첫 수도원에서 수련원장으로서 지원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성 요한이 주로 에스파냐와 북아프리카에서 활발히 노예 해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할 때, 성 펠릭스는 세르푸와에서 수도자를 양성하고 파리에 성 마투리누스(Maturinus) 수도원을 세우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1212년 11월 4일에 세르푸와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성 펠릭스가 선종한 지 채 30년이 지나지 않은 1240년경 삼위일체 수도회에는 6백여 명의 수도자들이 있었으니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회원들은 성 펠릭스와 성 요한이 1262년 교황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에 의해 시성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166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가 그들에 대한 공적인 공경을 승인했다. 성 펠릭스의 축일은 1679년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면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11월 20일로 변경되었다. 이는 그의 선종일인 11월 4일이 밀라노(Milano)의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축일과 겹쳤기 때문이다. 1969년 제2차 바티칸(Vatican)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후, 다시 그의 축일을 선종한 날인 11월 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펠릭스 (Felix)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