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님이 보여주신.... 깐마란신부님
저는 4월 25일에 대전에서 제가 젊은이들 행사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도저히 참석 할 수가 없네요.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신 추모 미사에 함께 하시는 회원님들께 제가 떠올렸던 생각 하나 나눌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사실 전 교구청에서 활동을 하는 신부라 부활 대축일이나, 성탄 대축일 등이 오히려 저에게는 여유가 있는 날이 됩니다.
마침 지난 부활 대축일에 여유가 생겨서 담양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그날 묘지에 가서 이 태석 신부님과 둘이서 미사를 드려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함께 동행을 해 주신 형제 자매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날 묘지 옆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강론 시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태석 신부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세 가지 기적이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첫 번째는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여 주셨던 예수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이미 이 까페를 통해서 말씀을 드렸던 내용이지만... 제가 톤즈를 방문했을 때, 어느날 신부님께서 말라리아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계셨던 한 분을 치료하셨었는데...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임종 전에 저에게 보여주신 얼굴이 바로 그 환자의 얼굴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환자들을 치료하실 때, 그들이 예수님이라 생각하며 치료하셨을 신부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신부님께서 임종 직전에 보여주신 얼굴이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돈보스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돈보스꼬 성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돈보스꼬 성인 주변에 있었던 그 많은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돈보스꼬 성인에게는 정말 구름떼처럼 많은 아이들이 함께 다녔을텐데요... 그 많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돈 보스꼬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사랑했다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누군가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표현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소외받게 될텐데... 이상한 논리가 생기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활동을 하셨기에 그 많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돈 보스꼬는 나를 가장 사랑했었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그 답을 저는 이태석 신부님에게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태석 신부님과 친분이 있으셨던 분들은 하나같이 이와 비슷한 표현들을 하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우리 집에 있을때 가장 편안하게 지내셨다고..." "이태석 신부님이 나와 특별히 가까이 지냈다고..." 이사장님이신 이재현 형제님의 가정은 이 신부님이 그 가정을 가장 사랑했다고 느끼고 계시고... 나이로비 공동체에서 오신 한 형제님은 당신의 가정을 가장 특별히 사랑하셨다고 느끼고 계시고... 살레시오 수도회 형제들은 이 신부님이 당연히 수도회 형제들을 가장 가까이 사랑하셨다고 느끼고 계시고... 다들 하나같이 비슷한 느낌으로 이 신부님을 만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저는 제가 이 신부님과 가장 가까웠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톤즈의 아이들은 또 어떨까요? 특히 존과 토마스...TV에 등장했던 13살 산토 브린지나, 다니엘, 산티노나, 신부님과 함께 1년을 고생했던 신경숙씨도 그렇게 생각을 했겠지요. 저는 여기서 이 시대 또 다른 돈보스꼬의 모습을 만나는 기적을 체험했다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사실 이 신부님이 휴가차 한국에 오셨을 때, 그 짧은 두 세달 지내시다 가시면서도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매 순간 전화를 받으셨고... 당신이 가지신 짬을 쪼개고 쪼개서 그 엄청나게 많은 분들을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만나셨던 기억을 떠올리면... 모두들 그 사랑을 느끼실만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는 부활 대축일 미사 복음에 있었던 빈무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담양에 있는 이 신부님의 묘지 안에 과연 누가 있는 걸까요? 전 그날 미사 중에 그 안에 이 신부님이 계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요.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들의 말처럼 그것은 빈무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안에는 이 신부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이 신부님이 생전에 입고 활동하셨던 옷! 육신이 묻혀 있을 뿐이지요. 그 곳은 이 신부님이 계시지 않는 빈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이 신부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물론 하느님 나라에서 또 뭔 일을 저지르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날 미사중에는 이 세상에 분명히 살아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하면... 부활 이야기입니다.
이 태석 신부님을 만난 사람들 뿐 아니라 생전에 직접 만나지 않았던 분들의 삶이 이태석 신부님 때문에 과거 이 신부님을 알기 전과 어떤 형태로든 달라진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면... 분명 그 누군가가 이 신부님의 모습으로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신부님은 돌아가신 후, 수백명, 수천명의 이태석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계신다는 생각 말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부활하신 이 신부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존과 토마스는 이 신부님의 계획대로 지금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신부님이 때로는 이사장님의 모습으로, 때로는 청주 가브리엘 형제님의 모습으로, 때로는 장 총무님의 모습으로, 존과 토마스 옆에서 그들을 돌봐주고 계시고요...
또 이를테면 저 멀리 톤즈에서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던 산토 브린지는 난데없이 찾아간 KBS 구수환 부장님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서 1년치 학비를 낼 수 있게 되기도 했었지요. 저는 이 세가지 이야기를 기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4월 25일 추모 미사에 참석하시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의 모습은 아마 그 자리에 계신 새로운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난 주일,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저 역시 TV 앞에서 한 시간 내내 울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런 말이 들리는 듯 합니다. "울지말고 가서 또 다른 예수님의 이야기! 또 다른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삶으로 살아라!" 그냥... 떠오른 생각 하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써 올렸습니다. |
첫댓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시며 나와 한형제인것에 오늘하루도 힘이 생깁니다...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하루를 돌아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