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 선정…천명관 '고래', 한국 작품 네 번째
|'인터내셔널 부문' 쇼트리스트 6편에 포함…번역가 김지영 함께 올라
|심사위원회 "에너지에 휩쓸리는 작품,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고래'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 오른 천명관 작가/ 천명관 '고래' 표지[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천명관(59) 작가가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최종후보에 올랐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18일(이하 현지시간)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천명관의 소설 '고래'(2004)를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쇼트리스트) 6편 중 하나로 발표했다. '고래'를 영어로 옮긴 김지영 번역가도 함께 명단에 올랐다.
심사위원회는 '고래'를 호명하며 "이런 소설은 없었다"며 "읽어보길 추천한다. 에너지에 휩쓸린다.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다. 착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작품이 이 부문 최종후보에 선정된 것은 네 번째다. 2016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으며 2018년 그의 다른 소설 '흰', 지난해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2019년 황석영의 '해질 무렵'과 지난해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1차 후보에 들었다.
올해 최종후보에는 '고래'와 함께 프랑스 작가 마리즈 콩데의 '더 가스펠 어코딩 투 더 뉴 월드'(The Gospel According to the New World), 코트디부아르 작가 가우즈의 '스탠딩 헤비'(Standing Heavy), 불가리아의 작가이자 시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Time Shelter) 등 6편이 뽑혔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며 2019년까지 맨부커상으로 불렸다. 2005년 신설된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영어권 작가들의 영어 번역 작품을 대상으로 하며 작품에 공동 기여한 작가와 번역가에게 상금(5만 파운드)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1차 후보로 롱리스트 13편을 발표한 뒤 최종 후보인 쇼트리스트 6편을 선정한다. 올해 수상작은 5월 23일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고래'는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번 후보 지명으로 19년 만에 다시 주목받았다.
설화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세 여성(금복, 춘희, 노파)의 거친 삶을 통해 인간의 파괴적인 욕망을 스케일 있게 그린 작품이다. 살인, 방화, 폭력, 성폭행 등의 범죄가 난무하는 인물들의 폭풍 같은 서사가 민담, 전설, 동화, 초현실적 요소에 혼재돼 전개된다. 질펀한 해학과 풍자까지 더해져 낯설면서도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고래'에 대해 "사악한 유머로 가득 찬 소설"이라며 유머와 무질서로 전통적 스타일을 전복하는 문학 양식인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 동화라고 칭했다.
또한 "한국의 풍경과 역사를 관통하는 피카레스크(picaresque·악인이 주인공인 소설)식 탐구"라며 "생생한 인물들은 어리석지만 현명하고, 끔찍하지만 사랑스럽다"고 평했다.
천 작가는 영화 '총잡이'(1995), '북경반점'(1999), '이웃집 남자'(2009) 등의 각본을 쓰며 영화인으로 살다가 단편 소설 '프랭크와 나'가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며 문단에 발을 들였다.
'고래'를 비롯해 '유쾌한 하녀 마리사'(2007), '고령화 가족'(2010), '나의 삼촌 브루스 리'(2012),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2016) 등을 집필했고 지난해엔 영화 '뜨거운 피'로 감독 데뷔도 했다.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무력해질 때마다 작가로 소환해준 '고래'가 내 삶을 이끌었다"며 "이 작품이 없었다면 존재를 증명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지영 번역가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받았으며 김애란, 정유정, 김영하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는 부커상 심사위원회와 한 인터뷰에서 "'고래'를 2020년 팬데믹 초기에 10개월간 번역했다"며 "어린 시절 온갖 설화와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와 자라면서 좋아했던 한국 책들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 천명관 작가는 1964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골프용품 판매, 보험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30대부터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마흔 살에 처음 써 본 단편 <프랭크와 나>로 2003년 등단하였고, 2004년 장편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기존 소설에 빚진 것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천재 작가가 등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소설가로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뒤 영화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 <고령화 가족>을 본인이 직접 각색하고, <파이란>을 연출했던 송해성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출처: 연합뉴스 2023년 04월 18일(화) 이은정 기자
❁ 漢詩 한 수, 풋내기 풍류객
蒲萄酒, 金叵羅,(포도주, 금파라,)
포도주, 금 술잔.
吳姬十五細馬馱.(오희십오세마태.)
작은 말에 실려 온 열다섯 남방 미녀.
青黛畫眉紅錦靴,(청대화미홍금화,)
검푸른 눈썹 화장, 붉은 비단 신발.
道字不正嬌唱歌.(도자부정교창가.)
말소리 투박해도 교태로운 노랫소리.
玳瑁筵中懷裏醉,(대모연중회리취,)
이 화려한 연회에서 내 품에 취했으니,
芙蓉帳裏奈君何.(부용장저나군하.)
연꽃무늬 휘장 안에서 내 그대를 어찌할거나.
―‘술자리에서(대주·對酒)’ 이백(李白·701∼762)
◦ 金叵羅(금파라): 금으로 만든 술잔을 말한다. 《북제서北齊書 조정전祖珽傳》에 “神武宴寮屬, 于坐失金叵羅, 竇泰令飮酒者皆脫帽, 于珽髻上得之(신무 연간에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열었는데, 자리에서 금파라가 없어져서 두태가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모자를 벗게 하고 정의 상투에서 그것을 찾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정은 재물을 탐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람이다. 이로 보아 금파라는 술잔이라기보다는 술을 마시는 비녀와 비슷한 흡관吸管 모양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티베트에서는 아직도 이런 흡관을 이용해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 吳姬(오희): 오吳나라 땅에서 온 여인. 보통은 미인을 가리킨다. 소식 蘇軾은 「매화梅花」라는 시에서 “殷勤小梅花, 仿佛吳姬面(은근하고 작은 매화꽃, 마치 오에서 온 미인 얼굴 닮았네).”이라고 읊었다.
◦ 道字(도자): 중국 전통극에서 노래 또는 대사를 할 때 전통적인(정확한) 음으로 발음하는 것을 가리킨다(= 토자吐字, 교자咬字).
◦ 靑黛(청대): 푸른 빛이 나는 검은색 안료. 고대에 여인들이 눈썹을 그리는 데 썼다.
◦ 玳瑁宴(대모연): 호화롭고 진귀한 잔치(= 대모연瑇瑁筵)
◦ 芙蓉帳(부용장): 연꽃을 물들이고 그것을 붙여서 만든 장막. 보통은 화려한 장막을 가리킨다.
‘道字不正’을 잘못 풀어 쓴 것이 눈에 띄었다.
‘道字’라는 말이 중국 전통극에서 대사나 노래가사를 발음하는 것과 관계된 말이고 보면
‘道字不正嬌唱歌’의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직 풍류를 배우고 있는 어린 기생이라
어른들처럼 능숙하게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노래솜씨만은 기생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소리와 가락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던 모양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사내들 앞에 나서 술을 따르고 노래와 웃음을 팔아야 하는 어린 소녀가
술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 보는 아저씨 품에서 잠들어버렸다.
술판에서 제정신 온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딸 같고 손녀 같은 병아리기생이
술에 취한 채 자기 품 안에서 잠들어버린 것을 바라보는
시선 이백의 정신이 퍼뜩 나는 순간의 장면이 눈앞에 보듯 선하다
이백이 고향 쓰촨(四川)을 떠나 대륙의 동남부 유람을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 천하를 주유하며 견문을 넓히고 명사들과의 교유를 도모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궁극의 목표는 관직에 올라 자신의 웅지를 펼치겠다는 것. 물론 이 꿈이 결코 망상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탐독했고, 시문 창작에도 열성적인 데다 천부적 자질이 있었고 세상을 읽는 지혜와 담력 또한 유별났던 그였다. 관리로 성공하여 가문의 옛 명성을 회복하는 것은 무역업으로 부자가 된 부친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번화한 강남의 도회에 들어선 시골 청년, 수십만 재물을 손에 쥔 풍류남아의 눈에 금릉(金陵, 지금의 난징), 양주(揚州)의 거리는 별천지로 비쳤을 것이다. 젊음의 광휘와 격정이 탱천하던 시기, 넉넉한 재물과 무한의 자유, 청년 이백이 거리에 즐비한 청루를 무덤덤히 지나칠 수 있었을까. 포도주와 금 술잔, 가녀린 미녀의 화사한 단장, 투박한 남방 사투리조차 교태스러운 노랫가락에 묻히는 열다섯 앳된 가희의 접대. 오가는 술잔과 웃음에 젖어든 사이 문득 자기 품 안에 곯아떨어진 미녀 앞에서 시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풋내기 풍류객의 안절부절못하는 당혹감? 아니면 미녀와의 환오(歡娛)를 눈앞에 둔 젊은이의 혈기 방장? ‘연꽃무늬 휘장 안에서 내 그대를 어찌할거나’라는 말이 못내 아리송하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3년 04월 07일.(금)〉,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