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울산 부동산스터디'
 
 
 
카페 게시글
부동산 및 지역소식 스크랩 [新택리지]철기문화와 해양관광이 어우러진 도시, 자동차산업의 메카 ‘울
킬리만자로 추천 0 조회 239 10.11.10 00: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新택리지]철기문화와 해양관광이 어우러진 도시, 자동차산업의 메카 ‘울산 북구’

삼한시대 지금의 울산 북구는 야철 생산의 심장부였다. 다시 말해 지금의 금속산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유명했다. ‘자동차의 메카’로 통하는 지금의 북구 모습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후 야철장이 자취를 감췄고, 울산이 급격히 산업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 주민들은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는 ‘반농 반어’에 종사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이 번창하고, 지방산업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울산 북구는 다시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체 주민의 70% 안팎이 자동차산업이나 연관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이거나 그 가족인 만큼, 울산 북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로자의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그림처럼 펼쳐진 동해의 해변과 기암절벽이 있고, 곳곳에 선조들의 얼이 서린 문화재가 산재하는 등 해양관광도시의 면모도 엿보인다.
무룡산의 가을/울산 북구의 정기 어린 무룡산의 가을풍경/구민 체력단련 및 휴양시설이 설치돼 등산애호가들의 인기가 높다

경북 경주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울산 북구에 이르러 가장 먼저 닿는 곳이 ‘관문성(사적 제48호)’이다.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관문성은 왜구가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경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총 3만9262명이 동원돼 이 성을 쌓았다고 기록돼 있다. 원래는 이곳이 ‘모벌군성’ 또는 ‘모벌관문’이라고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관문성으로 부르게 됐다. 관문성은 이 성이 경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만리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매우 긴 성이란 뜻이다. 이 성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속칭 치술령(해발 765) 남쪽에서부터 울산광역시와 경북도의 경계를 따라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아래까지 총길이 12㎞이다. 길이 40~50㎝로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다시 쌓아올렸는데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폭을 좁혀가는 ‘물림쌓기’로 축성됐다.

곳곳에 묻어나는 선조들의 항일정신
박상진생가/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숨진 박상진(1884년~1921년)의사 생가

국도를 따라 울산 북구 시가지를 관통해 약 20여분을 가면 송정동에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1884년~1921년)의 생가(울산시지저문화재자료 제5호)’가 나타난다. 박상진 의사는 1902년 허위(許蔿) 선생에게 한학을 배운 후 ‘양정의숙’에 진학, 법률과 경제를 공부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한 뒤 평양법원에 발령됐으나 사퇴했다. 그 후 독립운동의 길로 접어들어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 결성에 앞장섰다. 박 의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대한광복회의 총사령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1921년 38세의 젊은 생을 마감했다. 대지주였던 박상진 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다 집안이 쇄락했다. 생가도 남의 손에 넘어갔다가 울산시가 2002년 매입해 2007년 복원정비했다. 이 생가는 사랑채·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뤄진 기와집이다. 전체적으로는 ‘ㅂ’자 형태의 구조를 가진 조선후기의 양반집 형태다.

선사시대 철기문화 서린 ‘달천철장’
달천철장/삼한시대부터 야철을 생산한 달천철장.현재는 쇠부리(철을 제련하는 곳)터만 남았고,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차를 되돌려 북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동천을 건너면 아파트단지 사이로 선사시대 철기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달천철장터(울산시지정기념물 제40호)’를 만나게 된다. 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던 곳을 말한다. 이 철장의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문헌인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에는 ‘한·왜 모두가 이곳에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고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전해진다. 철이 당시 경제발달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달천철장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시대 세종때부터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만2500근이 수납됐다는 기록이 보인다. 철을 제련하는 곳은 ‘쇠부리(또는 쇠불이) 터’라고 불리는데, 달천 토철을 원료로 사용하는 쇠부리터는 가깝게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에서부터 멀게는 경북 청도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동해를 배경삼아 들어선 유적과 휴양지
몽돌해변/강동해변의 명품인 몽돌해변의 올망졸망한 몽돌.풍부한 음이온을 느낄 수 있는 맨발의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북구청을 끼고 동쪽으로 10여분을 나아가면 강동지구에 다다른다. 푸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잠깐 차를 남쪽을 돌리면 우가산 유포봉수대(울산시지정기념물 제13호)가 나온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듯 하지만, 그 체제가 정비된 것은 조선 세종 때였다. 왜적의 침입을 육지에 알리는 수단으로 써 온 이 봉수대는 1894년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됐다. 강동 해안의 중심인 강동 정자항 바로 아래쪽에는 ‘곽암’이란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곽암이란 미역바위란 뜻이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양반돌’ 또는 ‘박윤웅돌’이라고도 부른다. 1937년 간행된 ‘흥려승람’의 기록 때문이다. 기록에는 박윤웅은 고려 태조가 나를 세울 때 공을 세워 흥려백에 봉해졌다. ‘흥려’라는 말은 고려를 흥하게 했다는 뜻이다. 그는 동진(지금의 강동)을 하사받았고, 바닷가 사람들은 강동의 미역바위에서 생산되는 미역을 박윤웅의 후손 집안에 제공해왔다. 바위에는 ‘윤웅(允雄)’이란 두 글자가 새겨졌는데, 이는 박윤웅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어사 박문수가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면 ‘울산 12경’의 하나로 꼽히는 몽돌해변이 있다. 몽돌해변은 새알같이 둥글고 올망졸망한 돌이 널린 곳이다. 자연 그대로가 건강산책로가 되고 있다. 이어 더 북쪽으로 가면 ‘강동화암주상절리(울산시지정기념물 제42호)’가 버티고 섰다. 화암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 중신세(약 2000만년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식으면서 마치 큰 목재들이 수평 또는 수직으로 흩어진 것처럼 형성된 곳이다. 우리나라 동해안에 나타난 주상절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진화하는 강동 관광지구
강동개발/울산시와 울산 북구가 추진중인 강동권 종합개발사업 청사진

울산시와 울산 북구는 강동지구를 대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민자를 포함해 오는 2016년까지 약 3조원을 투입해 강동지역을 산하지구·관광단지·온천지구·해안지구·산악지구 등 5가지 테마별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가운데 산하지구 도시개발과 관광단지 조성사업에는 5000여가구 1만5000여명을 수용하는 전원 및 공동주거단지와 아쿠아리움·자동차박물관· 호텔·팬션·워터파크·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온천지구에는 온천휴양팬션과 실버온천타운 등이 조성되고, 천연 심층해수를 활용한 보양형 온천과 가족놀이센터 들이 유치될 계획이다. 총 13㎞의 강동 해안선 개발사업으로는 정자항 명소화, 해변 오토체험장, 화석지질판, 해변녹지 등이 준비 중이고, 산악관광사업은 무룡산과 동대산, 우가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를 친환경 체험·휴식공간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울산 북구가 주거 및 레저 복합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자동차산업의 요람,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 승용차 생산현장

울산 북구는 현대자동차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지금의 울산 북구를 존재케 하는 것도 현대자동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차 울산공장(495만㎡)는 단일 생산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울산공장 1공장부터 5공장까지 5개 생산공장과 엔진변속기공장·시트공장·소재공장 등이 갖춰져 있다. 대형 자동차운반선 3척을 동시에 접안 할 수 있는 전용부두까지 갖춰 명실공히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요람이다. 하루평균 13개 차종 5400대를 생산한다. 연간 최대 생산능력은 무려 153만대나 된다. 1967년 12월 회사설립 초기 미국 포드사와 제휴를 맺고 ‘코티나’를 처음 조립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만한 성과다. 현대차 연관업체만도 1차 협력사 400개, 2차 협력사 3000개 등 모두 4700개사에 이른다. 고용인원은 현대차 직접 고용 5만여명을 비롯, 협력업체 등에서 총 25만명의 직·간접 고용효과를 창출한다. 현대차는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순수 전기차 ‘블루온(Blue On)’을 공개한데 이어 2012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조기 실용화를 추진하는 등 자동차 개발의 선두주자로서 흔들림이 없다.

<경향신문 백승목기자 smbaek@kyunghyang.com>
가는 길/

서울·대전 방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방면으로 오다 울산고속도로로 바꾼 뒤 울산톨게이트로 빠져 나가 태화강과 중구 시가지를 거쳐 북구로 접어들면 된다. 경북 경주에서는 7번 국도를 타고 외동읍을 지나 북구로 접어드는 길이 가장 빠르다. 부산 방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또는 부산~울산 민자고속도로를 이용해 울산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울산시가지를 거쳐 북구로 진입하면 된다.

연락처/
울산종합관광안내소 (052) 229-6350
울산관광협회 (052) 275-2412
울산 북구청 문화홍보과 (052) 219-7553
정자 어촌계 (052) 295-3900
 
쇠부리축제/
북구 달천철장에서 비롯된 전통 민속놀이인 ‘쇠부리 놀이’ 재연 등 지역산업과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매년 열린다. 2005년 처음 개최된 뒤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단순 관람에서 벗어나 체험형 행사가 많다. 팔도대장간 마을 운영, 전통 제련 시연, 타악 체험, 쇠부리 마당놀이 등이 펼쳐진다. 쇠부리역사관과 홍보관, 현대산업전시관 등 산업문명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강동수산물축제/
2007년 강동권 종합개발사업과 정자항 리모델링사업과 병행해 열리기 시작한 축제다. 도시민에게는 어촌문화 체험을, 강동주민들에게는 미역과 생선회·대게 등 특산물 홍보와 관광지 이미지 개선의 기회가 되고 있다. 미역따기, 가자미·대게 잡기, 몽돌 마라톤·특산물 깜짝경매·수상레저 체험 등의 행사가 마련된다. 이 축제로 강동지역 상가의 수입이 20% 올랐다.

울산 북구는 이런곳이에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울산 북구는 옛 삼한시대 진한의 땅으로 굴아화촌이라는 촌락이 형성됐었다. 고려 태조에 이르러 흥례부로 승격, 고을의 기반을 갖췄다. 1914년 울산 북구는 당시 농소면·강동면·하상면·동면 등으로 개편됐다. 울산 북구는 이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1997년)되면서 울산 중구의 진장동·효문동·송정동·양정동과 울주군의 농소읍·강동면을 합쳐 기초단체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이어 1998년 울산 동구 염포동이 편입되고, 진장동과 효문동이 통·폐합 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행정체제(8개동)를 갖췄다. 면적은 151㎢이고, 인구는 17만4225명(2010년 9월말 기준)이다. 북쪽으로는 경북 경주시와, 남쪽으로는 울산 동구·울산 남구와 서쪽으로는 울산 중구와 각각 접경을 이루고 있다.


쇠부리축제/울산 북구의 대표적 축제인 쇠부리축제의 한 장면/ 북구는 삼한시대부터 야철 생산지로 유명했다


주상화암절리/신생대 제3기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주상절리/강동해안의 지질학습원으로 인기가 높다


신흥사/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창건된 신흥사 구 대웅전/신흥사는 임진왜란 때 울산지역에서 승군 동원기록이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우가산 봉수대/왜구의 침입을 육지에 알리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가산 유포봉수대


관문성/신라 성덕왕때 축성된 관문성/왜구가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로 침입하는 막기 위해 쌓았다


입력 : 2010-11-08 10:18:29수정 :

- Copyright ⓒ 1996 - 2010 . 이 페이지의 모든 저작권은 (주)경향닷컴에 있습니다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