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은 호반의 도시 항저우에서 뱃전에 머리를 기대고 술잔을 들어 풍류를 만끽했다. 아마 그의 고향이 경북 울진이었다면 산중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보름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온천스파월드의 노천온천, 그중에서도 히노키탕에서 태백의 흉내를 내어봄직하다. 응봉산(999m)을 뒤로하고 고개를 젖히면, 멀리 길게 뻗은 동해의 해안선 너머로 달이 떠오른다. 달은 가끔씩 노천탕 지붕 위에 걸려 있기도 하고, 동쪽 응봉산 자락에 걸려 있기도 하다.
저녁 8시 문 닫는 시간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덕구온천은 전국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가든’, ‘모텔’, ‘회센터’ 하나 없이 산 아래 단 두 곳의 온천만 포근하게 자리 잡았다. 그 호젓한 ‘몸 지짐’생각에 겨울이 되면 으레 울진 덕구로 발길이 향하게 된다.
서울 근교의 시설 좋다는 워터파크형 온천을 마다하고 굳이 먼 길을 달려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울진 ‘온천동’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하룻밤 자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 두 밤 이상 자고 나면 서울 가는 길이 가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의 체험으로는 믿어볼 만하다.
하늘로 솟구치는 자연용출천, 덕구온천
울진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중앙고속도로 영주IC로 나와 봉화를 지나가자니 구불구불한 도로가 현기증을 일으키게 할 것이고, 뻥 뚫린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를 거쳐 가자니 왠지 돌아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도 저도 피해갈 수 없는데다 두 가지 길의 단점도 여행길에서는 종종 장점이 된다.
봉화로 가면 그림 같은 산천을 벗 삼을 수 있고, 7번 국도로 가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도로를 달릴 수 있다.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는데 편한 운전을 원한다면 후자를 추천한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한다면 한밤중에 덕구온천에 도착하게 되므로 숙박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아침 7시, 응봉산 자연용출천으로 가는 가벼운 트레킹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덕구온천의 정규 코스다.
6시 40분이 되면 객실 전화를 통해 일괄적으로 트레킹 안내 음성이 나오고 호텔 로비에서 간단한 설명 후 직원의 인솔하에 출발한다. 겨울이라 7시가 되어도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 않다.
트레킹 후 온천욕 할 것을 감안하면 옷만 입고 나오면 된다. 노인이나 아이도 쉽게 갈 수 있는 완만한 코스다. 거리는 4km, 느린 걸음으로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눈비가 오지 않는 한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된다.
덕구온천스파월드에서 사용되는 물이 100% 온천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연용출천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탕에서는 41.8℃의 온천수가 하루 4,000t씩 자연용출되는데 덕구온천지구에서 하루 소비되는 온천수의 양은 2,000t, 남은 2,000t은 그냥 흘려보내는 지경이다.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려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용출장에서 그저 솟아나는 것이므로 굳이 잠글 필요도 없다. 온천수는 자연용출장이 있는 해발 400m 지점에서 스파월드가 있는 183m까지 수압을 통해 자연적으로 흘러내려오며 단열 파이프가 온천수의 온도를 유지해준다.
원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각각의 전설을 간직한 선녀탕, 용소폭포, 신선샘, 산신각 등이 있다.
금문교, 노르망디교 등 세계 유명 교량을 100분의 1로 축소해 놓은 열두 개의 미니 다리가 있어 볼거리도 제공한다.
7년째 매일 아침 응봉산 자연용출천 트레킹 코스를 안내하는 민경철 씨(45)에게서 응봉산과 온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울진 태생인 민씨는 어릴 적 온천이 흐르는 계곡에서 놀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제가 어릴 때는 원탕에서 직접 온천을 했어요. 온천물이 있는 주변을 돌로 쌓아 놓고 합판 같은 것으로 대충 막아서 목욕을 했지요.
봄 소풍으로도 자주 왔어요. 물에 뛰어들어 놀면 자연스럽게 겨우내 묵었던 때가 씻겨졌죠.”
자연용출천에 도착하면 누구든 환호하게 된다. 화산 분출이라도 하듯 뜨거운 온천수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원래는 물줄기가 4~5m까지 올라가지만 평소에는 수압을 1m 내로 조절해놓는다. 족욕을 할 수 있는 작은 탕도 있다.
온천수를 마셔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 무색, 무미, 무취의 온천수는 약수와 다름없다. 온천수 한 사발 마시고 뜨끈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면 응봉산의 상쾌한 기운이 온몸으로 흡수된다. 이 맛에 매일 적어도 스무 명의 관광객이 민씨를 따라 응봉산 산책에 나선다.
산행 후의 온천욕이야말로 운동 후 먹는 밥처럼 달콤하다. 실내 스파풀과 노천탕을 오가며 신체 부위별 안마도 받고 반신욕도 즐긴다. 실내는 기포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테라쿠아와 액션스파, 어린이슬라이더, 가족온천실, 물안개사우나 등의 시설이 있으며, 야외노천온천에는 맥반석사우나와 물안마폭포탕, 레몬탕, 자스민탕, 히노키탕, 야외선탠장 등이 있다.
노천탕 시설은 아담하지만 주변이 응봉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상쾌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특히 노천의 히노키탕에서 나무 향을 맡으며 하는 반신욕이 그만이다. 머리는 차고 몸은 노곤해지는 가운데 시선은 자연스럽게 응봉산을 향한다. 절로 신선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