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못 전설’에서 禁忌의 의미
다음은 황해도 장연군 용정리에 전하는 ‘용소(장자못) 전설’입니다.
1. 장자 김 첨지가 수백 석 하는 부자인데 깍쟁이라서 시주하러 온 도승에게 쇠똥을 주었다. 2. 이를 본 며느리가 대신 사과하고 쌀을 시주하였다. 3. 도승은 며느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지니고 빨리 불타산 쪽으로 도망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4. 며느리는 아들을 업고 명주 도투마리를 이고 강아지를 데리고 불타산 쪽으로 가다가,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5.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김 첨지의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해 있었다. 6. 그 찰나 며느리는 아들을 업고 도투마리를 이고 강아지까지 거느린 채 화석이 되었는데, 아직도 불타산에는 이런 형상의 바위가 남아 있다.
이 전설은 ‘뒤 돌라 보지 말라.’는 禁忌(금기)와 그 위반에 따른 징벌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오늘은 이 금기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전설에서 장자 집터가 뇌성벽력과 함께 순식간에 연못으로 화하여 버리는 현장은 하늘의 징벌[天罰(천벌)]이 행해지는 공간입니다. 부분적인 天地創造(천지창조)의 현장입니다. 육지를 못으로 변화시키는 하늘의 은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天機(천기)의 현장입니다. 俗世(속세)의 평범한 인간은 천기가 행해지는 장엄한 순간을 결코 봐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도승이 며느리에게 ‘뒤돌아보지 말라.’는 禁忌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금기를 어기고 천기의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民間에 전하고 있는 禁忌語에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며느리는 천기를 목격한 자로서 천기를 누설할 수 있는 위험인물입니다. 며느리를 그냥 살려 두면 천기가 누설될 염려가 있습니다. 결국 도승이 금기를 부여한 것은 ‘천기’누설에 대한 예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설의 며느리는 아무에게도 천기를 누설하지 못하게 돌로 변하는 天罰(천벌)을 당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편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부인은 불타는 멸망의 도시를 뒤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천기의 현장을 목격한 며느리는 이러한 예방책의 희생물이 되어 돌로 굳어지며, 등에 업힌 죄 없는 아들은 물론, 머리에 인 도투마리, 뒤따르던 강아지까지 모두 동반하여 化石으로 화하고 맙니다. 이처럼 금기 위반에 대한 징벌은 매우 가혹합니다.
이러한 한 토막 전설 속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작성 : 전통문화연구회 배원룡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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