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의 삶”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의 삶은 축복이었다. 비록 40년을 광야에서 빙빙 돌았지만, 그들은 일직선 선상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영적 여백을 통해 삶의 맛을 누렸다. 삶의 여백은 반드시 그 값어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줄 밖에 없는 외길, 그 직선은 삶의 여백이 없다. 때론 위태로우며, 단조롭기만 하다.
{2절, ...이 사십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광야에는 물이 없다. 먹을 양식꺼리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성경은 말한다. 신9: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광야에는 끊임없이 돌 바람이 불어 닥치는 것처럼, 의식주 문제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아말렉 정착민들과의 전투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문제만 생기면, 포기하려는 흔들리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그때 불평하기도 하고, 탄식과 원망도 하지만, 그래서 삶의 모습이 울퉁불퉁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광야의 고난의 훈련이 끝나면 언제나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불러주셨다. 그 추억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복음대로 살기 위해서 앞뒤보지 않고 성공을 위하여 직선으로 달려온 것도 사실이다. 결국 삶의 여백과 공간이 없어 무미건조하기도 하고, 인내와 사랑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곤 했다. 변화 없이 달려온 길의 결과였다. 베드로도 늘 흔들리곤 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직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의 삶은 늘 단조롭다. 율법적이다. 명령조다. 그러나 위아래로의 흔들림, 그것은 곧 곡선을 그리며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변화는 살았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변화가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이다.
그 곡선으로 직선을 그리며 가는 삶이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삶의 여백은 비록 거북이처럼 늦는다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반드시 그 값어치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거북이처럼 빙빙 돈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