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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1> 비만 2
복부비만을 보는 일반적인 방식
앞에서 필자는 비만의 원인이 자세에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서 비만의 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요즘 비만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복부비만이다. 온몸이 골고루 살이 찌면서 배가 나와 있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부위는 정상이거나 오히려 삐쩍 말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만 뽈록 나와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온몸이 살이 찐 사람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배만 뽈록 나와 있는 사람에 대해서 그 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그러면 왜 다른 부위는 살이 찌지 않는데, 유독 배만 나오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복부비만을 정의하는 방식을 인용해서 보도록 하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이 복부비만을 설명하고 있다.
중년의 직장인 남자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비만의 형태
잘못된 식생활과 무절제한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결핍 등으로 인하여 기초대사량이 저하되어 있는 중년의 직장 남성에게서 쉽게 나타난다. 특히 음주와 흡연, 그리고 고지방 음식 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내장층의 지방이 2~3배 많으며, 대개 흡연과 음주를 하는 경우가 많아 복부에 비만이 생기기 쉽다."
복부비만은 중년의 직장인 남자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비만의 형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맞는 것인지는 차치하고, 원인규명이 너무 두루뭉술해서 왜 배에만 살이 찌는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게 돼 있다. 우선 중년의 직장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혼 여성에게도 나타나고, 심지어 요즘에는 청소년들에게도 복부비만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왜 중년의 직장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지 그 원인도 밝혀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어쨌든 결국 복부비만은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온다는 얘기인데, 이는 한마디로 말하면 흡수한 에너지의 양보다 소비한 에너지의 양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에너지가 남아돌아 복부비만이 된다는 얘기인데, 왜 다른 부위에는 살이 찌지 않고 배에만 살이 찌는 것일까? 이에 대한 원인 설명은 없다. 에너지가 남아도는데, 왜 배에만 살이 찌는 것일까? 턱에도 찌고, 얼굴에도 찌고, 등에도 찌고, 허벅지에도 쪄야 정상이 아닐까? 그래서 전신비만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 배에만 찌는 특별한 원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흡연과 음주를 하는 경우 복부에 비만이 생기기가 쉽다고 했는데, 흡연과 음주는 어떤 이유로 해서 복부비만을 불러오는 것일까? 과도한 알코올 섭취와 과도한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떻게 해서 복부비만과 연결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스트레스가 기초대사량의 저하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나열돼 있다.
필자의 생각을 얘기해 보면 복부비만은 허리가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현상일 뿐이다. 앞에서 발목이 끊어진 멧돼지의 예를 들었지만, 생명체는 무엇인가 몸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강구하게 돼 있다. 이것이 생명의 깊은 원리이고 이치이다.
현생 인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직립을 완성했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어야 편하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이때 허리는 만곡(彎曲)을 그어야 한다. 이는 포유류의 진화과정에서 이미 완성된 틀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일 분이다. 예컨대 고양이가 기지개를 켤 때 고양이의 허리는 만곡을 긋고 있다. 개도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면 허리가 만곡을 긋고 있다. 물론 허리가 만곡을 그어야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1자로 된 허리는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리가 굽어 1자로 되거나 후만(後彎: 뒤로 굽는 것)이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이것도 스스로 자세를 잡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앞으로 굽는다. 허리를 세우면 몸이 수직으로 서지만, 허리가 굽으면 허리 위에 있는 상체가 앞으로 쳐지면서 굽게 된다. 그 상체가 앞으로 굽으면 또 어떻게 될까? 상체의 무게를 받쳐 줄 무언가가 필요하게 된다. 받쳐 주지 않으면 허리는 더 굽게 되고, 급기야는 꼬부랑 허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돼서는 정상적인 생명유지 활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때 우리 몸이 자구책으로 내놓는 것이 배에 살을 찌워 상체의 무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뱃살은 에너지가 과다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굽어 상체가 앞으로 쏠릴 때 이 잘못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나온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배가 나온 사람은 한번 실험을 해 보자. 허리를 곧추 세워 보자. 그러면 배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 보자. 그러면 다시 배가 원래의 상태대로 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복부비만의 원인
이런 원리를 가지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복부비만의 원인에 대해서 평가해 보도록 하자.
우선 직장인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것은 반은 맞는 말이다. 복부비만은 직장인 남성 중에서도 사무직에서 많이 나타난다. 현재 사무직의 노동은 대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형태인데, 이때 컴퓨터 모니터가 낮게 돼 있기 때문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하게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책상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게 된다. 허리를 구부리면 배는 나오게 돼 있다. 그래서 필자는 모니터 밑에 책이나 벽돌을 받쳐 놓아 20~30cm 정도 높이는 게 좋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허리가 저절로 펴지는 것은 아니지만, 허리를 펼 수 있게 하는 조건은 갖출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금만 이해해도 별로 중요한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굽는다. 반대로 몸이 굽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이 심장도 뛰고 가슴도 답답해진다. 허리가 굽으면 가슴이 앞으로 굽고 어깨가 쳐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이 심장이 뛰고 가슴도 답답해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더욱더 가슴을 움츠리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가슴을 쭉 펴고 기지개를 한번 켜 보자. 금방 시원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대개 비만의 원인이 아니라 허리가 굽은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대책은 비만에 대해서 쓴 이후에 애기해 보도록 하겠다.
술을 마시면 우리 몸의 자세는 심하게 흐트러진다.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면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허리부터 굽는다. 이 글의 독자들도 허리를 펴고 술 마시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이 배가 나오는 이유는 술 마실 때 더 자세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이 복부비만이 오기 쉽다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담배 연기의 성분은 자동차 배기가스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유독한 성분을 밖으로 배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은 해를 입지 않지만, 그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해가 된다. 그래서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때 살이 많이 찌는 것은 입이 심심해지니까 군것질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 것은 단순하게 몸에 붙어 있는 습(習) 때문일 뿐이다. 이때에도 실은 몸이 반듯한 사람은 별로 살이 찌지는 않는다. 굽어 있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다.
고지방 음식을 먹는 사람이 복부비만이 오기 쉽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 과다섭취가 복부비만의 원인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특별히 배에만 살이 찌는 원인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비만에는 전신비만과 부분비만이 있는데, 왜 전신비만이 안 되고, 부분비만, 그 중에서도 복부비만이 되는지 설명을 해 주지 못한다. 몇 번이고 반복하는 얘기지만, 흡수한 에너지와 소비한 에너지의 차이가 모든 비만의 원인이라면서 얼버무리는 설명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원인을 규명할 때에는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흡수한 에너지의 양보다 소비한 에너지의 양을 더 많게 하라.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비만 해소책이다. 덜 먹어서 흡수한 에너지의 양을 적게 하고, 더 운동해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을 많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비만 해소책인 것이다. 소식(小食)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헬스를 하고 산에도 오르고 뛰기도 한다. 복근운동을 하면 뱃살이 빠진다고 열심히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이렇게 해도 안 되니까 지방 덩어리를 긁어내는 수술까지 한다.
필자는 이런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이 나오는 것인데, 원인도 모르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얼버무리고는 이것으로 다 됐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뱃살이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소식을 하고 운동을 해도 뱃살은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다한 소식은 영양결핍증을 가져오거나 요요현상을 불러일으키고, 과다한 운동은 오히려 근육을 경직시키기 때문에 몸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음과 같이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실제로 소식을 하거나 운동을 해서 뱃살을 뺀 사람도 있는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다. 덜 먹거나 많이 운동하면 살이 빠지기는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뺀 살은 다시 제대로 먹거나 많은 운동을 중지하면 도로 찐다. 특히 뱃살은 허리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운동을 해도 거의 빠지지 않는다. 복근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근육은 생겨나지만 뱃살은 빠지지 않는다.
필자는 허리를 세우는 것만이 뱃살을 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틀어진 허리로 인해 생긴 문제를 자기 자신이 해결하려고 자구책으로 내놓은 방법이 뱃살을 찌운 것이므로,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고 허리를 세워 문제를 해결하면 뱃살은 저절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허리를 세우려면 밑으로 쳐져 말려 들어간 골반이 제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골반이 제자리를 잡으면 허리근육이 강화되면서 허리가 세워진다. 몸살림운동에서 권하는 걷기숙제든 방석숙제(뱃살을 빼는 데는 2번보다는 1번 방석숙제가 좋다)든 모두 뱃살을 빼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물론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사람은 그것부터 바로잡아야 제대로 허리를 세울 수 있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필자가 복부비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깍지를 끼고 걷는 걷기숙제를 권해 본 결과 네 사람 중 세 사람은 한두 달 안에 5kg 이상은 몸무게를 줄였다. 많이 줄인 사람은 12kg이나 줄인 사람도 있었다. 살이 빠지지 않은 사람은 자세를 잘못 잡아 몸에 너무 힘을 주고 또 몸을 너무 뒤로 틀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걷기 숙제를 하면 뱃살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턱살, 등살, 허벅지살도 함께 빠진다.
또 다른 비만에는 또 다른 해법을 사용해야 하겠지만, 이는 다음번에 쓰도록 하겠다. 다만 여기에서는 복부비만과 혼동되는 것 하나만 더 얘기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여자분들 중에는 아랫배가 아주 조금만 볼록 튀어나와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복부비만이 아니다. 왼쪽 치골(癡骨: 앞골반)이 틀어지면 골반의 공간이 넓어지게 되는데, 이때 위에 있던 장기가 밑으로 쳐지면서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로 인해 아랫배가 튀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분은 치골을 바로잡고 공명(公明)을 틔워 주면 장기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볼록 나온 배가 금방 들어간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2> 비만 3
전신비만의 원인
예전에 없던 현상 중의 하나가 요즘 청소년들에게 급격하게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비만 중에는 전회에 썼던 복부비만도 많이 있지만, 오히려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신비만이다. 어느 한 부위에만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체지방이 쌓이면서 살이 찐다. 동년배들보다 키도 월등하게 크고, 몸무게가 수십kg이나 더 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아이들의 공통된 현상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금 밥을 먹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또 과자도 먹고 빵도 먹는다. 또 우유를 마시고 음료수도 벌컥벌컥 마셔 댄다. 너 배가 부를 텐데 그렇게 먹어 대도 괜찮겠느냐고 걱정이 돼서 물으면, 씩 웃으면서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리고 또 뭐 먹을 게 없나 두리번댄다.
어른들의 경우에도 어느 날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미 성장이 멈추었으니 더 이상 키는 자라지 않는데, 살만 득실득실 쪄 간다. 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살이 찐다. 심한 사람은 200kg을 훌쩍 넘는다.
저번에 TV에 방영이 된 사람은 30대가 지나서 갑자 살이 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 저울로는 170kg까지밖에 재지 못해 정확한 몸무게를 몰랐는데, 병원에 가서 재 보니 230kg이나 나갔다. 이 분은 밤새 문을 여는 음식점 자영업을 하면서 엄청나게 많이 먹게 됐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밤새 눈을 비비면서 일을 한 것인데, 그때 먹은 것 때문에 몸만 망치고 만 셈이 되고 말았다. 물론 전신비만 때문에 음식점은 더 운영을 할 수 없어 문을 닫았다. 이제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져 당연히 운동은 하지 못하고(억지로 조금씩 한다고 한다), 관절이 틀어져 무릎이 아프니 쌍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그러면 이렇게 살이 찌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 역시 원인을 알아야 해법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을 모르고 무조건 이제는 그만 좀 먹어라, 이제는 운동 좀 하라고 권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당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을 노릇인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법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배고픈 것은 위(胃)에서 느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배가 고프니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배가 부르니까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뇌의 지시에 따르는 반응일 뿐이다. 우리 몸은 전체가 중추신경계를 중심으로 하나로 돼 있어, 이를 중심으로 정보가 가고 또 이곳에서 지시가 내려진다.
음식을 먹은 지 일정한 시간이 지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비하고 나면 혈액에 들어 있는 당(糖)의 양이 줄어드는데, 이때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섭식중추(攝食中樞, feeding center)가 반응하면서 당의 양을 늘려야 하겠다는 지시를 내려보낸다. 이것으로 인해 위에서 산이 분비되면서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음식물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혈중 포도당의 양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만복중추(滿腹中樞, satiety center)에서 감지하면서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두 중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또한 위장과 연결돼 있는 신경이 막혀 있지만 않다면, 사람은 너무 많이 먹지는 않게 돼 있다. 몸이 알아서 잘 조절해 주게 돼 있는 것이다. 중추신경계에서 이제 배가 부르니 그만 먹어라, 이제 배가 고프니 식사를 해야 한다고 정확하게 지시를 하게 돼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절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우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많이 먹고 나서도 금방 배가 고프다고 느낀다. 먹고 또 먹어도 금방 배가 고프다고 느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원인은 뇌의 만복중추가 고장이 났든지, 만복중추에서 척수를 통해 위와 연결돼 있는 신경이 고장났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만복중추에 고장이 났다는 것은 포도당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추가 그것을 느끼고 지시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신경이 고장났다는 것은 만복중추에서 보내는 배부르다는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뇌가 고장나는 일은 없다. 뇌의 이상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은 신경의 이상, 즉 신경의 기능이 약해졌거나 막혀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경이 잘 연결되지 않으면 뇌가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뇌는 이에 대해 반응을 보인다. 예컨대 어느 한 부위가 검어진다든지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신경이 풀려서 살아나면 머지않아 사라진다. 뇌가 고장난 게 아니라 신경이 고장났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복중추가 고장났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식증이란 척추의 척수에서 위로 연결되는 신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과식증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이 척수에서 위장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흉추 4번이 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세가 있는 사람을 눕히고 이 지점 오른쪽을 누르면 심한 통증을 느낀다. 자지러지게 아파하는 것이다. 이는 흉추가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있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이 경직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직 그 어디에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지만, 근육이 아픈 것은 근육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그 근육이 관계하고 있는 뼈가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대가 늘어났다고 해서 인대만 가지고 치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렇게 해서는 시간만 걸릴 뿐 낫지를 않는다. 낫게 되는 것은 우연히 뼈가 들어맞았기 때문일 뿐이다. 이는 뼈가 접질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접질린 뼈를 빼고 찬물로 식혀 주면 면 낫게 돼 있다.
그렇다면 '이에 속하는 전신비만'의 원인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흉추가 틀어져 신경이 막혀 있기 때문에 배고픈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원인을 알았다면 해법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덜 먹고 많이 운동하게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이 전신비만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흉추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흉추를 바로잡아 주면 과식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과식증이 사라지고 나서 적당히 운동을 하면, 더 이상의 비만은 오지 않고 퉁퉁하게 쪘던 살도 적당한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몸이 알아서 스스로 살을 빼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의아해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절대로 경험해 보지 않고 함부로 아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무애스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다. 실제 사례는 많이 있지만, 몸살림운동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범씨의 막내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작년 6월에 데리고 왔을 때 6학년 어린이였는데, 흉추를 잡고 나서 3~4개월 만에 비만에서 정상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이 공연히 폼을 잡고 다니느라 허리를 구부려 약간 배가 나오기는 했었지만, 전신비만 상태에서는 완전하게 벗어났다. 근래에는 허리를 펴게 했더니 다시 뱃살이 빠졌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신비만, 이것은 병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할 때 '이에 속하는 전신비만'이라고 하면서 또 다른 전신비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했는데, 실제로 이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전신비만이 있다. 이 경우는 위에서 말한 비만처럼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살이 찌는 것을 말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만이 왜 생기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위에서 말한 전신비만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몰라 이름도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필자도 그냥 또 하나의 전신비만이라고 이름할 수밖에 없다.
이 비만에 걸려 있는 사람은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은 많이 찐다.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말한 전신비만처럼 그렇게 많이 찌는 것은 아니다. 마치 살이 많이 부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기분 나쁘게도 거무튀튀하게 쪄 있다. 많이 먹지 않고도 살이 찌니 위에서 말한 비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공통적으로 흉추 5번이 틀어져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갈라져 나오는 말초신경이 막히면서 우리 몸에 좋지 않은 변화가 온다. 우리 몸에 불필요한 물질, 예컨대 불필요한 단백질 같은 것을 분해하고 걸러서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분해하는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이 기능이 떨어지면 불필요한 물질이 체내에 쌓이게 된다. 그러면 신장에서 걸러서 내보내는 데에도 한계가 오기 때문에 우선 신장에 무리가 온다. 요로결석 같은 증상부터 생기게 된다. 불필요한 물질이 체내에 많이 쌓이면서 이것이 살이 되고 온몸을 돌아다니게 되므로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전신비만은 병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비만에 걸려 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흉추를 바로잡고 가슴을 펴면 다시 기능이 원상으로 회복돼, 우리 몸이 체내의 불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알아서 분해하고 알아서 내보내게 된다. 그러면 기분 나쁘게 거무튀튀하게 찐 살도 저절로 빠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 두 가지 전신비만은 모두 흉추가 틀어져서 오는 것인데, 그러면 흉추는 왜 틀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거의 다가 고관절이 틀어져 골반이 기울어지고, 이로 인해 그 위에 놓여 있는 척추가 비틀어지면서 흉추까지 틀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 몸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고관절이 틀어지면서 기둥의 역할을 하는 척추가 틀어졌던 것이다. 저번 회에 다룬 복부비만도 마찬가지이다. 고관절이 틀어져 골반이 밑으로 말리면서 쳐져 허리가 원래의 모양대로 있지 못하고 1자나 후만이 되면서 복부비만이 생긴 것이다.
물론 흉추가 틀어진 원인은 대개가 고관절이 틀어졌기 때문이므로, 이 비만을 잡으려면 고관절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려는 노력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 이것 역시 몸살림운동의 방석숙제와 걷기숙제만으로 충분하다. 사실 이들 숙제만 매일 하면 비만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오는 병의 90% 이상은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병이 왔다고 해도 너무 많이 진행된 것만 아니라면 이들 숙제만으로도 대개는 나을 수 있다.
이렇듯이 비만도 결국 자세가 틀어지면서 그것이 원인이 돼서 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음 회에 다룰 턱이나, 허벅지, 팔, 등의 비만(이것을 가지고 비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필자도 편의상 이렇게 쓰도록 하겠다)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뼈대가 틀어져서 오는 잘못된 자세가 비만까지도 가져오는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3> 비만 4
허벅지에 살이 찌는 이유는?
요즘 여자분들 중에서는 미용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허벅지에 살이 쪄서 고민이라고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허벅지 비만'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데, 비만은 치료해야 할 병이니 당신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만이 정상보다 체지방이 많은 경우를 의미한다면 이런 표현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허벅지가 굵어지는 것은 체지방이 쌓인 것이 아니라 근육이 굵어진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허벅지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것이 소위 '허벅지 비만이라는 병'의 증상인 것이다. 체지방이 쌓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허벅지 근육은 왜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는 것일까? 앞에서 예로 든 발목 잘린 멧돼지를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허벅지가 비대해지는 것 역시 생명체인 인간의 자구책인 것이다. 고관절이 틀어져서 골반이 밑으로 말리면 정상적일 때보다 허벅지 근육에 더 많은 힘이 간다. 뼈가 받아야 할 힘을 근육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힘을 받으려면 정상적일 때보다 근육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서거나 걷거나 뛰거나 할 수 있다.
다만 이때 근육은 살이 더 쪄서 비대해진 것이 아니라, 엉덩이에 있는 근육이 밀려 내려와서 두툼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볼록하게 튀어나와 예뻐야 할 엉덩이는 민짜가 돼 있다. 한쪽 고관절만 틀어져 있으면 한쪽만 민짜가 돼서 짝궁둥이가 되고, 양쪽 다 틀어져 있으면 양족 다 민짜가 돼서 아예 엉덩이가 죽어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그 퇴치법도 간단하게 나온다. 남자야 허벅지가 굵어져도 별 관심이 없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우선 고관절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여자분들 중에는 치골이 틀어져서 고관절까지 틀어진 경우가 많이 있는데, 물론 이런 경우에는 치골부터 바로잡고 다음에 고관절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고 나서 걷기숙제를 꾸준하게 하면 굵어진 허벅지는 대개 한 달 안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비싼 돈 들여서 약 먹을 필요도 없고 얼굴 찌푸리며 아픈 침을 맞을 필요도 없다. 고관절을 바로잡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더구나 허벅지가 굵어질 정도로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면 이런 사람은 대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몸의 균형이 많이 깨져 있기 때문에 어딘가 아픈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고관절을 바로잡으면 몸 전체가 균형을 잡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허벅지가 굵어서 고민하는 분에게는 허벅지보다는 자기 건강부터 걱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권하고 싶다. 고관절이 들어맞아 몸이 균형을 회복하면 다른 병이 사라지면서 허벅지는 덤으로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턱에 살이 쪄서 이중 내지 삼중의 턱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다. 턱살이 너무 많은 사람은 보기가 흉하다. 이것도 원인을 알면 쉽게 뺄 수가 있다. 목이 앞으로 숙여져 있어서 턱살이 붙는 것으로 보면 된다. 고개를 들고 멀리 보는 자세를 취하면 턱살은 저절로 없어진다. 더구나 이런 자세를 취하면 목뼈가 쉽게 틀어지지 않으니, 경추가 틀어졌기 때문에 오는 온갖 질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보기 흉할 정도로 턱에 살이 쪄 있는 사람은 고개만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신비만 증세가 함께 와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사람은 얼굴까지 퉁퉁하게 살이 쪄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개는 뱃살도 많이 쪄 있을 것이다. 이미 고관절이 틀어져 있어 허리가 굽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고개만 들어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고관절을 바로잡고 허리를 세우고 흉추를 펴서 전신비만과 복부비만 증세를 함께 잡아야 한다. 그 방법은 고관절을 바로잡고 앞에서 얘기한 대로 걷기숙제와 방석숙제를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다.
등살은 건강의 적신호
등살은 목이 앞으로 숙여져 있고 등 역시 앞으로 굽어 있기 때문에, 머리와 목, 등을 잡아 주기 위해, 그 무게를 받아 내기 위해 찐 살이다. 등살이 찌는 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른 살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러나 등살이 찌는 것은 다른 살이 찌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므로 더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서 빼도록 해야 한다. 등살이 쪘다는 것은 등과 목이 굽었다는 것인데, 특히 등이 굽으면 인간 중추신경계의 핵심으로서 생명의 원천인 흉추 3, 4, 5번이 틀어지면서 신경이 막혀 온갖 나쁜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간장병, 폐질환 같은 것이 이로 인해서 올 수 있다. 고혈압인 사람은 예외 없이 등과 목이 굽어 등살이 두툼하게 쪄 있다. 등살이 많이 쪄 있는 사람일수록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등살은 최소한 이 살을 엄지와 다른 손가락(검지나 중지)으로 잡아 보았을 때 아프지 않은 정도가 될 때까지 빼야 한다. 등살이 쪄 있는 사람의 등살을 두 손가락으로 잡으면 자지러지게 아파한다. 잡힌 사람은 왜 꼬집느냐고 화를 내기까지 한다. 사실은 꼬집은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꼬집은 것으로 느낄 만큼 심하게 아픈 것이다. 더 심하게 등살이 찐 사람은 손가락으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를 않는다. 살이 많이 쪄서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등살을 빼는 방법도 간단하다. 걷기숙제와 2번 방석숙제를 꾸준하게 하기만 하면 저절로 빠지게 돼 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면 등살도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평상시에 등살이 찌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한다.
특히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저번에 "컴퓨터 앞에서 앉는 자세"에서 썼듯이 책이나 벽돌을 쌓아 모니터의 높이를 올려 주어야 한다. 또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은 최소한 독서대를 이용하여 고개를 들고 책을 읽어야 한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의 구조도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고 공부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엉덩이에 살이 찌는 것은 엉덩이가 뒤로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고관절이 앞으로 틀어지면 골반이 뒤로 말리면서 엉덩이가 뒤로 올라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살이 찐 것이 아니라 뼈가 뒤로 말리니까 이에 따라 근육이 위로 올라와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에도 고관절을 바로잡고 뒤로 빠진 엉덩이를 제 자리로 돌려놓으면 올라온 근육이 밑으로 내려가 정상이 된다. 그 방법은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동영상을 만들어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고관절 자가교정과 엉치 자가교정).
팔에 살이 찌는 것은 어깨가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깨가 틀어지면 팔을 잡아 주는 힘이 약화되기 때문에 살을 찌워서 잡아 주는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 몸의 자구책인 셈이다. 이 살은 틀어진 어깨를 바로잡아 주면 머지않아 빠진다. 이 방법 역시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실어 놓았다(어깨 자가교정).
절대로 굶지는 말자
지금까지 비만의 원인과 그 퇴치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비만 역시 몸이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즉 몸이 틀어졌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신비만은 모두 흉추가 틀어져서 신경이 막히고, 이로 인해서 우리 몸의 정보전달체계가 깨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고, 부분미만(분명히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은 뼈가 틀어지거나 잘못된 자세를 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만은 사회적인 문제가 돼 있다. 사회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니, 개인적으로도 비만은 병으로 여겨지면서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그런 만큼 비만 퇴치법도 '다이어트'라고 해서 다양하게 나와 있다. 먹는 것을 제한하거나 특별한 음식을 먹는 다이어트에는 덴마크식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에다 요즘에는 청국장 다이어트, 김치 다이어트, 다시마 다이어트 같은 것도 유행하다 사라지고 다시 유행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필자는 청국장이나 김치, 다시마 같은 것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먹으면 몸에 불필요한 물질을 체내로 배출해 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물질을 배출해 내는 만큼 살은 빠지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다이어트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살이 빠지는 효과보다는 불필요한 물질을 배출해 내는 효과가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살을 빼는 효과도 있지만 여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불필요한 물질을 배출해 냄으로써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좋다는 말이다.
요새 필자를 찾아오는 여자분들 중에서 필자를 심히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명이 심하게 막혀 있지 않은데도 기력이 고갈돼 운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개 다이어트를 한다고 굶으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흡수한 에너지와 소비한 에너지의 차이가 살로 가거나 빠진다는 현대 인체학의 '신화'만을 믿고 날씬해지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한 것이다.
필자는 굶는 것만은 절대로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굶으면 몸에 필요한 물질이 부족하게 되므로 기력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음식물이 들어오지 않아 위가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가 무력해지면서 소화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 아는 것이지만, 굶은 후에는 요요현상이 일어나 더 많이 먹으면서 살은 더 찌게 돼 있다. 요요현상이란 굶어서 영양부족을 경험한 우리 몸이 미래에 다시 영양부족이 올 때를 대비해서 몸에 미리 영양분을 쌓아 놓는 일종의 자구책인 셈이다 이것 역시 생명체인 인간이 보이는 반응인 것이다. 굶어서 흡수한 에너지의 양을 줄임으로써 살을 뺀다는 것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아주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아주 잘못된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4> 비만 5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하지 말자
운동을 많이 하면 살이 빠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운동을 중지하면 살은 다시 찌게 돼 있다. 예를 들어서 서너 시간 산을 타고 땀을 쭉 빼고 나면 1kg 전후로 몸무게가 줄어든다. 그러나 이렇게 줄어든 몸무게는 분명히 하루 이틀 안에 다시 늘어난다. 산에 많이 올라 운동을 한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운동해서 빠진 살은 운동을 중지하면 다시 찐다.
운동을 많이 해야 살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세를 바로 해야 살이 빠지는 것이다. 예컨대 마라톤을 해서 살을 뺀 사람이 많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마라톤을 할 때에는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라고 강조하는데 이를 잘 지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고 뛰면 힘이 더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하고 뛰면 깊은 호흡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숨도 훨씬 덜 차고 힘도 덜 든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운동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동의 목적을 살을 빼는 데 두지 말고 즐기는 데 두라는 얘기일 뿐이다. 예컨대 산에 올라갈 때에는 도심의 콘크리트 장벽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는 데 주안점을 두자는 것이다. 침침한 인공에서 벗어나 맑은 자연과 함께 하면, 그리하여 흙냄새, 나무 냄새를 맡으면 우리 몸은 이를 금방 알아차린다. 자연을 반가워하는 것이다. 원래 진화할 때의 그 좋은 환경을 접하고는 몸이 활짝 웃는 것이다. 그러면 몸이 쭉 펴지면서 피로가 한꺼번에 풀린다. 1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자연과 벗하면 우리 몸이 스스로 즐거워한다. 오늘은 꼭 이만큼은 올라가야 되고, 적어도 몇 시간은 산을 타야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라는 것이다. 의무감을 가지고 억지로 올라가면 오히려 근육이 굳으면서 몸을 상하게 된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그 운동이 즐거워서 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이 즐거워서 해야 하는 것이다. 운동이 즐거우면 몸이 펴진다. 몸이 펴지면 바른 자세가 된다. 이런 운동이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운동이 괴로우면 몸이 굽는다. 몸이 굽으면 병이 생긴다. 운동량을 늘려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 살이 빠진다는 과학을 빙자한 낭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살을 빼는 것은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기본인 것이다. 자세가 바르면 우리 몸이 스스로 알아서 불필요한 물질은 다 밖으로 배출해 버리고 필요한 살만 남겨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만도 실은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기 몸을 바르게 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 그 방법은 스스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지방흡입 수술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얼마 안 가서 다시 찌기 때문이다. 이런 수술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세가 틀어져서 살이 쪄 놓고는, 해결은 의사에게 해 달라고 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이 연재물의 제목을 "우리 몸은 스스로 낫는다"로 정한 것은, 실제로 우리 몸에는 스스로 나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스스로 나으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약이나 수술 등 타력(他力)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랫동안 자세가 틀어져 있어 이미 병이 너무 깊은 상태로 진행돼 있는 사람은 약이나 수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타력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스스로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합병증의 원인: 비만은 그렇게 위험한 병인가?
현재 비만은 필요 이상으로 위험한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여러 부위에 살이 찌는 원인을 알아보았지만, 살이 찌는 데는 분명히 찌는 원인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살이 찌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 원인이 정말로 위험한 것일 수도 있고, 별게 아닌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일률적으로 신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BMI, 카우프지수=체중(kg)/[신장(m)]2)에 의한 비만도 계산법을 사용하여 체지방의 비율이 높으면 과체중이니 비만이니 하면서 규정을 하고 있다. 비만도가 높은 사람뿐만 아니라 낮은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병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이런 비만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는 사실 사람들이 비만으로 인해서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같은 많은 합병증이 따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만을 더 무서운 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서운 난치병이 비만 때문에 오는 합병증이라면 정말로 비만은 무서운 병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병은 비만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서 보도록 하자. 건강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허리디스크의 원인 중의 하나가 신장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에 많이 실려 있다. 이것이 아주 대표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혼동한 경우이다. 고관절이 틀어지면 골반이 기울면서 위에 놓여 있는 엉치와 요추가 틀어질 뿐만 아니라 신장도 아래로 쳐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때 요추가 틀어지는 것과 신장이 쳐지는 것은 고관절이 틀어져서 골반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골반이 기울어지면 엉치가 틀어져 허리가 아플 수 있고, 신장이 아래로 쳐지면서 그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픈 것과 신장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다. 관계가 있다면 둘 다 같은 원인으로 인해서 생겨났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신장이 나쁘기 때문에 허리가 아프다는 인과관계로 설명을 하는 난센스를 범하고 있다. 그 결과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장을 치료해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치료법이 버젓하게 행세를 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이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얘기한 대로 복부비만이든 전신비만이든 살이 찐 사람은 거의 대부분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 건물로 치면 주춧돌에 해당되는 고관절이 틀어져서 기둥인 척추에 문제가 발생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흉추가 틀어져 정보전달체계가 무너져서 오는 것이 전신비만이고, 허리가 굽어서 무게를 받아 내기 위해 생기는 현상이 복부비만이다.
마찬가지로 흉추 11번이 틀어져서 췌장으로 가는 신경이 막히면 췌장에 있는 랑게르한스섬에서 인슐린을 생산하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것이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흉추 3번이 틀어져서 심장의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신경이 막히면 고혈압이 된다. 뇌졸중 역시 고관절이 틀어지고, 이로 인해 흉추와 경추가 틀어졌을 때 오는 현상일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만이든 당뇨든 고혈압이든 뇌졸중이든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동렬의 결과인 것이다. 허리디스크라는 잘못된 병명을 가진 증상도 마찬가지로 고관절이 틀어져서 오는 동렬의 결과일 뿐이다. 비만으로 인해서 합병증으로 다른 병이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병이 동시에 올 수도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인 것이다. 동시에 올 수도 있다는 것은 동시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한 가지 병이 있는 사람에게 다른 병이 함께 오는 것은 대개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경험적으로 보면 비만인 경우 이러한 병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현상을 관찰하고서는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춧돌이 기우니까 기둥도 기울고 서까래도 기우는 것인데, 주춧돌이 기운 것은 보지 못하고, 이 서까래가 기울어서 다른 서까래도 기울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本)은 보지 못하고 말(末)에만 매달려 실제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비만이라는 것도 우리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오는 것일 뿐이다. 합병증이라고 부르는 다른 병도 우리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오는 것일 뿐이다. 비만과 다른 병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원인에 의해 동시에 올 수도 있고 또 동시에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증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현대의학이 원인을 추구하지 않고 현상에만 매달리는 대증요법을 중요한 방법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대증요법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그렇다면 어쨌든 이제는 '비만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만 자체보다는 비만의 원인이 되는 것에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이 틀어져 있어 비만도 생기고 다른 병도 생긴다. 문제는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대인은 삶의 방식이나 노동의 형태가 고관절이 틀어지면서 잘못된 자세를 갖기 쉽게 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현대병이라는 것은 이것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병이 비만으로 인해 올 수 있다는 합병증에 대한 우매한 지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나 노동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몸살림운동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운동을 벌려 나가고 있다.다음 회에는 만병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다루려고 하는데, 스트레스 역시 대개는 잘못된 자세에서 오는 것임을 미리 말해 두고 싶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5> 스트레스 1
스트레스는 생명체의 위기에 대한 반응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모든 게 경쟁이고 모든 게 인공(人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원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자급자족하며 자연과 더불어 단순하고 한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를 지어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해야 하고, 유기농도 있지만 농민들은 대부분 농약을 치고 있으니 이제는 농촌도 목가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여기에다 농민들은 농가부채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현대라는 시대는 스트레스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때 뚜렷한 병의 원인이 발견되지 않으면 "아, 신경성이군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군요"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처방전을 하나 써 준다. 약방에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며칠 전에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던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픈 것이었구나. 또 한편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받은 스트레스라는 게 별것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몸이 아프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든 의사 선생님께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니, 이제는 지어주는 약 잘 먹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아야지 하고 결심을 한다. 화를 안 내면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될까? 나는 별로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살아야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 있는 것인지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이것이 일반 사람들이 평소에 겪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스트레스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툭 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하는 것일까? 스트레스에도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로서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방도가 없게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생체에 가해지는 여러 상해(傷害) 및 자극에 대하여 체내에서 일어나는 비특이적인(특이하지 않은) 생물반응"이라고 스트레스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생물체가 상해 및 자극에 대해 보이는 일상적인 반응이라는 말이다. 이는 대체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적으로 쉬 피로해지고 맥박이 빨라지며 소화가 잘 안 되고 때로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머리가 띵해지고 얼굴에서 열이 나면서 빨개지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는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떨어지고 불안해지며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럴 때에는 안절부절못하기 때문에 손톱을 깨물거나 발을 떨기도 하고 많이 먹거나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를 보통 '스트레스의 요인'이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소음이나 강력한 빛, 심한 더위, 좁은 공간 등을 들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직업이나 승진 기회의 상실, 조직사회의 억압이나 왕따 등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생활의 측면에서는 가난으로 인한 생활고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고, 정신적으로는 정신적 충격, 비관적인 생각,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 일에 대한 완벽주의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요인은 어느 것이든 몸에 직접 영향을 줌으로써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트레스의 요인'은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사람마다 그 정도에 크게 차이가 난다. 어떤 사람은 크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작게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사람의 정신상태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즉각적으로 몸에 반응이 일어난다. 이는 생명체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적인 반응과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생명체가 크든 작든 위험에 닥쳤을 때에는 이에 대처해서 싸우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도피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방과 맞서 싸우려고 하든, 그 상황에서 도망을 가려고 하든 일단 몸을 잔뜩 웅크려야 한다. 그래야 단숨에 큰 힘을 내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방어하거나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할 때에도 웅크리고 있어야 처음부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100m 단거리를 뛸 때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야 빠른 스퍼트가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때 근육은 급작스레 행동하거나 큰 힘을 가하려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도망을 치든 적극적으로 대처하든 많은 운동에너지를 모아서 몸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위기상황이 끝날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몸은 평상시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선 근육, 뇌, 심장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낼 수 있도록 맥박과 혈압을 증가시키고, 더 많은 산소를 얻기 위해 빨리 호흡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또 상황을 빨리 판단하기 위해서 정신은 더욱더 명료해지고 감각기관은 더욱더 예민해져야 한다.
위험에 대비할 때 중요한 장기인 뇌, 심장, 근육으로 가는 피의 양은 증가한다. 반대로 위험한 시기에 혈액이 가장 적게 요구되는 곳인 피부나 소화기관, 신장, 간으로 가는 혈류는 감소한다. 추가 에너지를 보충받기 위해 혈액 속에 있는 당, 지방, 콜레스테롤의 양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외상을 입었을 때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혈소판이나 혈액응고 인자는 증가한다.
이는 그야말로 크든 작든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됐을 때 한판 싸움을 벌이려고 긴장하는 자세이다. 이런 자세를 한번 취하고 나면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쉬 피로를 느끼게 된다. 또 소화기관으로 가는 피의 양이 감소하면서 위장의 운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웅크린 자세에서 목 주변의 근육이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머리 뒤가 당기듯이 아픈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몸을 웅크릴 때 가슴 주변 근육이 긴장되면서 앞으로 굽어 있었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압박감이나 통증을 수반한다. 이로 인해 등도 앞으로 굽어 있다. 이는 또 어깨가 앞으로 처지는 가장 나쁜 자세를 갖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1회로 끝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면, 불안한 심리와 그에 따른 자세의 변형 때문에 우리 몸의 내부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지는 정서적 질환을 겪기도 하고, 오장육부에 큰 질병이 올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면역계 및 내분비계나 신경계 등 몸의 내부에도 흔적을 남기지만, 외형적으로는 등뼈를 구부리고 어깨를 처지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율신경계를 압박하게 된다. 이는 또 몸 내부 장기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이는 재차 몸의 자연치유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자세 때문에 온다
그러면 현대인은 복잡한 생활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원인이 우리 몸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외부 환경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영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전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하게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방법을 이용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히 현대문명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가적인 농경사회로 되돌아가서 살 수도 없다. 물론 앞으로 인류 문명은 가능하다면 현재의 인공적인 환경을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할 때의 자연적인 환경으로 되돌리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단시간 내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원인을 외부로 돌리면 실제 해결책은 나오기가 어렵다.
오히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 외에 실제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내부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만을 다룰 때에 썼지만, 비만이 원인이 돼서 합병증이 오는 것이 아니라 고관절이 틀어지면서 나쁜 자세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비만과 함께 많은 성인병이 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때문에 만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자세 때문에 스트레스와 '함께' 만병이 온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의 몸은 잔뜩 웅크러져 있다. 이때 사람은 크든 작든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머리가 휙휙 빨리도 돌아간다. 머리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적당한 스트레스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 능동적으로 타개책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대로 계속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웅크린 자세가 상시화된다는 데 있다. 일시적으로 웅크린 자세는 다시 펴면 아무 문제도 없게 되지만, 항상적으로 웅크리면 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 중에는 항상 웅크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은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웅크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현대인들이 몸을 웅크리고 사는 원인에 대해서는 현대병을 다룰 때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어쨌든 이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한번 실험을 해 보기 바란다. 거듭되는 얘기이지만 우리 몸에 대해서는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지식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 스스로 해 보아야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또 그래야 바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고, 스스로 바른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좁히고, 어깨를 앞으로 처지게 하고, 등을 앞으로 굽히고, 허리를 뒤로 처지게 해 보자. 당장 먼저 일어나는 게 숨이 가빠지는 현상일 것이다. 이는 긴 복식호흡에서 짧은 흉식호흡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슴과 배가 답답해질 것이다. 이는 오장육부가 공간이 좁아지면서 눌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느낄 수 있는 증상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실험을 하기 위해 잠시만 해야지,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자세가 만병을 부르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몸을 쫙 펴 보자.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허리를 세우고, 두 팔을 뒤로 올려 최대한 젖히면서 가슴을 펴 보자. 당장 긴 복식호흡이 가능해질 것이고, 답답했던 느낌이 사라지면서 몸이 시원해질 것이다. 평소에 일하거나 공부하다가 몇 번씩 이런 자세를 취해 주면, 몸이 펴지면서 신경도 풀려 몸이 상쾌해지기 때문에 능률도 많이 올라갈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병원에서 스트레스성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다음 회에는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6> 스트레스 2
몸을 펴야 스트레스는 풀린다
스트레스는 심리적인 작용이지만,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평상시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살고 있다. 몸을 구부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고개는 숙여져 있고, 어깨가 앞으로 처지면서 가슴은 좁아져 있고, 허리는 뒤로 굽어 있다. 병원에 가면 이러한 사실은 전혀 모르면서도,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겼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살라고 한다. 별 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사람한테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라고 한다.
필자는 이와 반대로 얘기하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데, 왜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살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 스트레스를 풀라고 권하기보다는 왜 몸을 펴고 살지 않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가슴이 좁아져 있어 심장이 수축할 때에는 문제가 없으나 팽창할 때에는 제대로 팽창하지 못하니 가슴이 답답다. 마찬가지 이유로 허파가 눌려 있어 흉식호흡을 하다 보니 숨이 차다. 위가 눌리거나 밑으로 처져(이것을 위하수라고 한다) 있으니 위가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해 소화가 안 된다. 등이 굽어 있어 위로 가는 신경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니 먹어도 배가 부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많이 먹어 대기도 한다. 오른쪽 목이 틀어져 있으면 항상 머리가 띵하고, 왼쪽 목이 틀어져 있으면 항상 눈이 침침하다.
현대인은 이런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옛날 사람들 사진 찍은 것을 한번 유심하게 살펴보면, 대개가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거꾸로 진화(퇴화가 정확한 표현이다)하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은 허리를 뒤로 굽히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한번 실험을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허리를 펴 보면 고개도 함께 당당한 자세로 들어 올려진다. 반대로 허리를 뒤로 굽히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찾으려는 듯한 자세로 목도 앞으로 굽는다.
이런 사람에게는 몸을 펴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몸을 펴는 방법은 누차 얘기한 대로 너무나 간단하다. 방석숙제와 걷기숙제를 꾸준하게 하기만 하면 몸은 저절로 펴지게 돼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너무 딱딱해서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 놀면서 몸을 펴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한국 사람처럼 노래방에 많이 가는 족속은 없다고 하는데,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수처럼 멋있게 보이려고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좁히면서 예쁜 모양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몸이 굽게 되므로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는다. 성악가가 가곡이나 오페라를 부를 때처럼 가슴을 펴고 고개를 쳐들고 불러야 몸이 펴지면서 스트레스 받은 자세가 교정이 된다. 또 이렇게 노래를 불러야 공명이 트이면서 고음도 나온다.
이것은 지나가는 얘기이지만, 고음(高音)이 안 나오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성대의 길이가 달라 고음이 잘 나오는 사람도 있고 저음만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음의 폭이 좁아 고음이 전혀 안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몸을 펴면, 특히 고개를 쳐들고 노래를 부르면 현재 상태보다는 훨씬 더 고음이 나온다. 고음을 내려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던 사람도 몸을 펴고 부르면 부드럽게 고음에 도달할 수 있다.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을 하면 일상에서 찌든 마음이 풀어진다. 그러면 몸도 펴지게 된다. 몸과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는데, 마음이 편해지면 몸 또한 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 몸이 펴지면 마음 또한 편해지는 것이다. 여행 중에서도 자연과 벗을 하는 여행이 스트레스를 풀거나 몸을 펴는 데는 더 없이 좋다.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인 인간은 자연에 다가가면 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게 돼 있다. 기분이 좋아지면 몸은 펴지게 된다. 인공의 장벽에 갇혀 있는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처져서 살게 돼 있는 셈인 것이다.
웃고 떠드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다(또는 수다를 떨다) 보면 몸은 저절로 펴진다. 웃음은 우리 몸과 관련해서 참으로 좋은 작용을 한다. 웃음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것인데, 이때 우리 몸은 저절로 펴지게 된다. 세상에 웃을 때 몸을 구부리고 웃는 사람은 없다. 고개를 숙이면 벌어지던 입이 다물어지면서 웃음은 쏙 들어가게 돼 있다. 그래서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고 하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구부리게 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필자는 정말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복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웃으면 몸이 펴지면서 좋은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건강에 도움이 되는 복이 온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몸을 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취미생활이든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만 하면 몸은 저절로 펴지게 된다는 것만 말해 두고 싶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고, 입고 싶은 것 있으면 입고, 갖고 싶은 것 있으면 가지면 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몸은 저절로 펴지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몸과 마음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사람은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스스로 편해지게 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아질수록 이룰 수 있는 것은 적어지게 되고, 그러면 몸은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가한 마음에 건강한 몸이 올 수 있는 것이다.
화병은 스스로 자초한 것
여자분들 중에는 화가 차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스트레스가 엄청 쌓여 있는 셈이다. 이런 분들은 대개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이렇게, 시어머니는 저렇게, 또 시누이는 어떻게 해서 자신을 못살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중에는 자식까지도 원망하게 된다. 이렇게 힘이 들어도 자식 하나 보고 살아왔는데, 그러니 이렇게 원통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자식만은 알아주어야 하는데, 자식까지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몸은 무지무지하게 괴롭다. 항상 가슴은 답답하고 배에는 뭔가 꼭 맺혀 있는 것 같다. 도통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너무나 아프기도 하다. 항상 몸이 피곤하고 맥이 빠져 있으니 만사가 귀찮아진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가면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아무 병도 없다는 결과만 내놓는다. 조사하는 동안 링거 꽂고 며칠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 보아야 병에는 전혀 차도가 없다. 이렇게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몇 번 하다 보면 이제는 사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이렇게 몸이 아픈데 더 살아서 무엇 하나.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런 병을 우리나라에서는 화병이라고 부른다. 미국의사협회에서 발간하는 사전에는 이 병이 hwabyung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유독 한국의 여자들에게만 이 병이 많이 나타난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한국인에게 특유한 병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무애 스님께서는 우리 어머니들이 화병에 많이 걸리는 이유를 어머니들이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키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요즘에야 아이 둘 키우는 것도 싫어서 하나만 낳거나 아예 안 낳고 말지만, 예전에는 대여섯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열둘까지 낳아서 키우는 어머니도 심심찮게 있었다. 더군다나 분유가 없던 시절이니 그 낳은 아이들을 모두 젖을 먹여서 키웠다. 요즘에는 보통 우유를 먹여서 키우지만, 모유를 먹이는 경우에도 요즘 어머니들은 허리를 굽히고 아이에게 다가가서 먹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끓어 올려 아이의 입을 젖에 갖다 대고 먹인다. 이때 잘못하면 흉추나 경추가 틀어지거나 꺾여 아이에게 치명적인 병이 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의 어머니들은 이런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굽혀 젖을 아이의 입에 가져다 대고 먹였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몸을 굽혀 젖을 먹였으니 어머니의 몸이 굽을 수밖에 없다고 보신 것이다. 아이를 위해 몸을 굽히는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들은 화병에 많이 걸린다고 보신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화병은 이런 이유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몸이 굽어서 걸린다는 점은 똑같지만, 몸이 굽는 이유가 아이 때문은 아닌 것이다. 일상적으로 몸을 구부리고 살고 있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화병에 걸려 있는 사람을 보면 대개는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 특히 치골이 틀어져서 이로 인해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좌와 우의 치골이 붙어 있어 이로 인해 고관절이 틀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여자는 잉태할 때 아이의 머리가 나오게 하기 위해 양 치골이 붙어 있지 않아 쉽게 틀어질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치골이 틀어져 있는 여자분들이 평상시에 몸을 완전히 앞으로 굽히고 살고 있는 것이다.
몸이 완전히 굽어 있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를 생각해 보면 화병의 증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심장이 눌리니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밑으로 처져서 무기력해져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니 소화가 잘 될 리가 없다. 신장 또한 밑으로 처져 있으니 기능이 떨어져 몸에 불필요한 물질을 잘 걸러내지 못한다. 그러면 조금만 일을 해도 금방 피로를 느낀다. 이것이 심해지면 손과 다리가 붓는다. 신장이 더 많이 처져 있게 되면 방광을 눌러 자주 오줌이 마려운 요실금 증세가 올 수도 있다. 오장육부가 밑으로 처져 공명이 막혀 있으니 늘 맥이 빠져 있다. 장은 굳어 있으니 변비가 오거나 설사를 자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밑에 무언가 꽉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보고 화가 차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화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다. 막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은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공명이 막혀 있으면 위와 아래가 하나로 소통이 되지를 않는다. 불두덩이까지 내려오는 깊은 호흡이 되지 않고 가슴만 들썩이는 얕은 호흡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공명을 트여 주면 바로 깊은 호흡이 가능해져 불두덩이까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렇다면 화병을 퇴치하는 방법도 곧바로 나오게 된다. 몸을 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치골이 틀어져서 고관절까지 틀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우선 치골과 고관절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몸을 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화병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세가 잘못돼서 오는 것이다.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자주 한국의 어머니들이 몸을 펴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어머니가 몸을 펴야 건강하고, 어머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짜증을 내면 그것이 아이에게 느껴지고, 그러면 아이는 위축이 되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 이런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뀔 수 있다. 한국의 어머니여,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자. 그래야 한국 사회가 건강해진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7> 몸과 마음의 관계 1
몸과 마음은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왕 스트레스에 화병까지 다룬 김에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내친 김에 다음에 전에 쓰겠다고 약속했던 중요한 문제 하나를 여기에서 풀어 버리고 나서, 그 다음에 우리 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결국 이 연재의 목표는 몸을 살리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인데, 몸에 대해 마음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그 역 또한 그대로 성립한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고 몸의 병이 마음의 병이 된다고 했을 때, 또 이를 뒤집어서 보면 몸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을 가져오고 마음의 건강이 몸의 건강을 가져온다고 했을 때, 이미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할 얘기는 다 한 셈이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은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3~4회에 걸쳐 이 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몸이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어차피 몸이라는 것은 죽어서 썩으면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 이 헛된 것에 망상을 가지고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것이다. 몸은 썩어도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든 윤회를 하든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 썩어질 육신에 매달리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사람에게 '영'(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마음과 영혼을 구분하지 못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사람이 몸과 마음, '영'으로 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어서 이견만 분분할 것일 뿐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함께 경험하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문제만을 다루기로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몸이 너무 아프면 하느님께 호소하려고 해도 기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우선 몸부터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무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마음이 나지 않으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몸'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얘기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하여"라고 하지, "마음과 몸을 다하여"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라는 것이다.
몸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론이 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몸의 문제든 마음의 문제든 모두 우리가 경험하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다루게 될 때에는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장만 있을 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게 된다.
우리 민족은 경험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왔다. 경험이라는 것은 몸으로 직접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미경이나 망원경 같은 도구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진전된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어떤 탁월한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경험일 뿐이다.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지 않은 것은 확실한 지식이 될 수 없다. 특히 몸과 마음을 다룰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벌이고 있는 몸살림운동의 방법도 우리 민족이 수천 년간 경험을 쌓으면서 수정하고 보완해서 여기까지 발전시켜 온 것이다.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면서 잘못 알고 있고 잘못하고 있는 것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하나하나 만들어 온 것이다. 서양적인 방법에 밀려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고 아예 무시를 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경험을 통해 이룩한,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너무나 많이 널려 있다.
몸에 관한 예를 들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대의학이 들어오고 나서야 당뇨병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예전에는 이 병을 헛헛증 또는 허갈증이라고 불렀다. 속이 헛헛해서 자주 물을 마시는 증세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증세가 있는 사람은 산에 올라가 나무에다 허리를 부딪치게 했다. 쿵쿵 울리면서 허리를 부딪치다 보면 척추가 맞아 들어갔고,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러면서 '신경이 살아나' 이런 증세가 없어졌다. 몸살림운동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이어받아 흉추 11번을 바로잡아 줌으로써, 그리고 1번 방석숙제를 통해 허리를 바로 세우게 함으로써 이러한 증상을 없애는 데 이용하고 있다.
또 예전에는 할머니들이 어깨가 아프면 "이놈의 어깨야!" 하면서 그 아픈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치다 보면 통증이 사라졌다. 오십견이라는 병명이 붙어 있는 이 증상이 요즘에는 아주 난치의 병이 돼 있지만, 우리 민족은 이렇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낫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몸살림운동에서 말하는 어깨 자가교정인 셈이다. 우리 민족은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 하면 낫는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몸살림운동에서는 역시 이러한 경험을 이어받아 틀어진 어깨를 주먹의 말려 있는 부분으로 툭 쳐서 맞추어 준다.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약을 먹고, 더군다나 수술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퇴행성관절염이라는 이상한 병명을 가진 무릎의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 할머니들은 무릎이 아프면 주먹으로 아픈 무릎 안쪽을 쳐 주었다. 열 번 치다 보면 한 번은 잘 맞아 틀어진 무릎이 바로잡히게 돼 있다. 무릎 자가교정을 한 셈이다. 이 증상은 무릎 아래에 있는 종아리뼈가 바깥쪽으로 틀어져 있는 것인데, 치다 보면 그 뼈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몸살림운동에서는 이 방법을 이어받아 퇴행성관절염이라는 아주 잘못된 병명을 가지고 있는 무릎 통증을 아주 간단하게 사라지게 한다.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경험을 통해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몸살림운동에서 제일 첫 번째로 내세우는 슬로건 "가슴을 펴면 마음이 열린다"를 검토해 보자. 가슴을 웅크리면 오장육부가 눌리고 밑으로 처지면서 가슴만 답답한 게 아니라 속도 답답해진다. 신장이 처져 방광을 누르면 신장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불순물을 걸러내지 못하니 맥이 빠져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방광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소변에 문제가 생긴다. 또 가슴을 웅크리면 등이 굽게 되는데, 등이 굽으면 오장육부로 연결되는 신경이 약해져 역시 오장육부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뇌로 연결되는 신경이 약해지면서 몸이 긴장한다.
이런 사람은 몸이 좋지 않으니 마음이 예민해지면서 보통 사람보다 더 세상에 대해 짜증을 낸다. 우리는 병자가 짜증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특별히 밖으로 드러나는 병은 없을지라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도 역시 쉽게 짜증을 낸다. 이런 사람은 선천적으로 성질이 못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대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도 몸을 펴게 되면 짜증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가슴을 펴면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발휘하면서 기운이 나고 몸이 상쾌해진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예민해져 있던 신경이 가라앉으면서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또 사람들에게도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된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고 대하게 되는 것이다. 급한 것 없이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라는 것도 대개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 자체로도 움직이지만 몸의 상태, 즉 몸의 좋고 나쁨이나 욕구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도 크다. 자기 마음이 일어나고 자는 것을 잘 관찰해 보면, 즉 마음을 경험해 보면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면, 몸을 알면 스스로 건강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건강도 찾을 수 있다.
몸을 떠난 마음은 없다
그런데 정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도대체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 사람도 도통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고 한다. 제일 어려운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 도대체 마음이라는 게 어떤 것인데,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딸린 모든 것을 말하고, 그리고 마음은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으면서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정신활동을 하는 것 또는 그 바탕이 되는 것을 말한다. 분명히 마음은 우리 몸에 깃들어 있다. 도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상식적인 선에서 마음은 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몸이 변하면서 마음도 변한다. 태어나서 나이가 들면서 몸이 성장하고 지각이 생겨난다. 사춘기가 되면 예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성(異性)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성인이 돼서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 보면 예전에는 그렇게도 커 보이던 학교가 이제는 조그마한 장소로 변해 있다.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서 살다가 넓은 바다나 높은 산으로 가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힘이 들면 쉬고 싶고, 재미있으면 더 하고 싶어진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알아서 몸이 특정한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노인이 돼서 병에 걸리면 그렇게 의욕적으로 하던 일에 대해서도 시들해진다. 마음이란 이렇게 몸의 변화에 따라서 변하게 마련이다.
이와 반대가 되는 측면도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민족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투옥과 고문의 경험에 몸을 떨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행을 하면서도 신에게 다가가거나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가족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묵묵히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몸이 싫어할 만한 일을 마음이 나서서 하려고 한다. 몸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이를 극복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경우에도 마음은 몸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몸이 불이익을 받거나 잘못되는 것을 감수하고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기 몸을 잘 통제하고, 약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혹시 몸의 형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번에는 이와 관련해서 마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욕구(혹은 욕망)의 형성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8> 몸과 마음의 관계 2
욕구는 우선 몸이 바라는 바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우리 마음은 무엇인가를 바라다가 중지하고 또 바라다가 중지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우리 몸은 그러한 바람=욕구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마음이 바라는 것은 실은 대개는 몸이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몸이 욕구한다는 것을 모르고 마음만 탓하는 게 마음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인간의 몸이 이 지구라는 자연 속에서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한 결과 탄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욕구라는 것도 실은 몸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을 잘 되짚어 보면 우리 마음에서 일었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이는 욕구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먹을 때가 되면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무엇을 먹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대개가 바로 전에 먹은 음식은 피하고 다른 것을 먹으려고 한다. 점심에는 자장면을 먹었으니까, 저녁에는 면 종류 말고 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음식을 계속 먹으면 물리는데, 이것은 우리 몸이 알아서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을 찾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에야 삼시 세 때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만, 조금 살 만해지게 되면 음식을 바꾸어 가면서 먹게 된다. 때가 되어도 먹지 않으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서 먹으라고 몸이 성화를 부린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기운이 빠진다. 몸에서 당이 부족해져 힘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배고픈 설움보다 더한 설움은 없다고 했다. 생명체는 자기 몸에 필요한 물질을 흡수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인간처럼 복잡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경쟁이란 대개가 먹을것을 두고 벌어지게 마련이다. 전에 전신비만 중의 하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지 모르는 사람에게 온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몸이 틀어지고 신경이 막혀 몸이 배부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먹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은 먹은 것을 가지고 직접 이용하기도 하지만, 다시 분해하고 합성해서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인슐린은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물질인데, 신경이 약해져 인 물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당뇨병에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 내고도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는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기도 하고 밖으로 버리기도 한다. 몸으로 흡수하지 않은 것은 변으로 만들어서 버리고, 몸으로 흡수한 것 중에서 불필요한 것은 오줌으로 만들어서 버린다. 이러한 행위도 인간의 욕구를 통해서 몸으로 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욕구를 배설의 욕구라고 한다.
이때 밖으로 버리지 못하면 탈이 난다. 똥 누러 갈 때 마음하고 밑 닦고 나올 때 마음하고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배설은 이렇게 마음이 바뀔 만큼 중요한 것이다. 몸에 흡수한 물질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일은 신장이 담당을 하는데, 신장이 밑으로 처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불순물이 쌓이면서 몸에서 기운이 떨어진다. 인간은 배설을 하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異性)에 눈을 뜨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놓고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이나 심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누군가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겠지만, 이것 역시 생명체의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 암(陰)과 수(陽)가 갈려 둘이 결합을 하지 않으면 후대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에는 가슴 찢어지는 애절한 사연도 많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황홀한 경험도 많이 있겠지만, 이 모두가 반갑든 반갑지 않든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새끼를 낳으면 자기 새끼가 그렇게도 예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를 예뻐하는 것은 아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까고 죽지만, 그래서 새끼를 예뻐할 시간도 없겠지만, 어류의 단계까지는 최대한 부화할 때까지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세상에 나온 새끼를 예뻐하지 않는다. 진화의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새끼를 기르기 시작하는 것은 척추동물 중에서도 파충류의 단계를 넘어 조류와 포유류에 이르러서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의 새끼가 성인이 돼서 독립할 때까지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돌보게 된다. 새끼를 돌보면서 새끼를 예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자연이 준 일종의 본능인 셈이다.
조류나 포유류는 자기가 낳은 새끼를 기른다. 새는 낳은 알을 정성껏 품고 부화를 시킨다. 부화된 새끼를 열심히 먹여서 키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법을 가르친다. 날을 수 있게 되면 새는 드디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 가족관계는 끊어진다. 여기에도 분명히 먹이고 가르치는 부양과 교육의 사회생활이 존재하는데, 이것 역시 자연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일 뿐이다.
포유류는 배 속에 새끼를 가지고 있다가 세상에 나오면 젖을 먹여서 키운다. 젖을 떼게 되면 육식동물은 사냥을 해서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고기를 먹여서 키우고, 초식동물은 어미를 따라다니게 하고 함께 풀을 먹으면서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해 준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면 각 종의 사회형태에 따라 같이 살거나 독립하거나 한다.
사회적 욕구도 진화의 산물이다
후대를 낳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기까지 하면서 가족이 생기고 초보적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같은 종끼리 일정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후대를 기른다는 것은, 특히 교육한다는 것은 원래 본능적으로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치지 않으면 새끼 새는 날지 못한다. 원숭이는 4년을 가르쳐야 독립적인 개체가 되고, 사람은 성인이 되려면 사회에서 18년은 배워야 한다. 진화의 과정, 바로 자연이 사회를 형성하게 한 것이다.
개는 누군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거나, 침범하지는 않고 주변에 나타나기만 해도 짖어 댄다. 자기의 영역이라는 것이 실은 자기 주인의 영역이다. 어쨌든 짖어 대는 것은 자기 영역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나가지 않으면 혼이 날 것이니, 좋게 말할 때 나가라는 것이다. 개에게 누군가가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일종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개가 야생동물일 때에는 그 가족의 영역이 있었다. 그 영역에는 먹이가 되는 동물이 살고 있었다. 그 영역을 빼앗기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자기 영역을 지켜야 한다. 그러한 본능이 가축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서 주인의 영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알고 짖어 대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 있어 왔다. 물론 가장 작게는 가족과 집이 자기의 영역이겠지만, 크게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 영토가 자기의 영역이다. 공동체의 영역은 역사가 진행돼 오면서 크게 바뀌어 왔다. 씨족사회일 때에는 씨족과 그 영토가, 부족사회일 때에는 부족과 그 영토가, 마찬가지로 민족국가 시대에는 민족과 그 영토가 영역이다. 사람도 개와 마찬가지로 자기 영역, 특히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침범을 당하면 함께 죽든지 노예가 되든지 하였다. 남의 영역을 침범해서 약탈을 하는 경험도 하면서 살아왔다. 아직까지는 안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나와 내 공동체가 죽지 않고 번영하려고 하는 생명체의 속성인 것이다.
2002월드컵 때 우리 대한민국은 4강신화를 이루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좋아서 밤새도록 거리를 누비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버스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휘두르고 발을 구르면서 좋아했다. 맥주잔이 깨지라고 부딪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좋아한 것은 일본 강점에서 벗어난 1945년 8ㆍ15광복을 제외하면 없었던 것 같다. 이는 우리 공동체가 승리를 하면서 공동체의 한 성원인 나까지도 공동체와 함께 승리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권력욕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자. 사회를 형성했는데, 나서서 사회를 통솔하려는 욕구가 없는 개체만 있는 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누구도 지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종은 뿔뿔이 흩어져서 개별적으로만 행동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회는 사회로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를 형성한 것은 사회를 형성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 이유라는 것은 그 종이 살아남는 데 사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가 무너져 버리면, 그 종 역시 멸종하고 말 것이다. 권력욕 역시 사회를 형성한 종이 사회를 유지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체가 최고권력을 향해서 질주하기만 한다면 그 종은 매일 싸움만 벌이다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진화의 과정은 이러한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었다. 한번 권력의 질서가 형성되고 나면 권력을 두고 싸웠던 개체들도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 몸에 체질화되게 한 것이다. 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힘이 미치지 못하는 개체는 아예 권력을 둘러싼 투쟁에는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장류로 진화하면서부터 권력투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숭이들은 권모술수를 부리고 합종연횡을 하면서 권력투쟁을 한다. 영장류로서 진화한 인간도 마찬가지로 권력투쟁을 해 왔다.
이렇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도 기본적으로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쌓인 것이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고안해 낸 기제일 분이다. 우리의 마음이 복잡한 것 같아도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은 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욕구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욕을 넘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9> 몸과 마음의 관계 3
핵심은 두뇌가 아니라 척수
욕구는 기본적으로 몸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욕구의 발전과정을 진화의 과정과 연결시켜서 조금 더 자세하게 보도록 하자.
이 지구상에서 척추동물이 탄생했다는 것에는 진화의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포함돼 있다. 단세포동물(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동물)에서 다세포동물(여러 개의 세포로 구성된 동물)로 진화하면서부터 각 세포가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통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신경이 필요해지게 되었다. 세포와 세포, 기관과 기관이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종의 정보전달체계로가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정보전달체계가 바로 신경인 것이다.
더 복잡한 동물로 진화하면서 느슨하게 연결돼 있던 신경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신경절(神經節) 또는 신경군(神經群)을 이루게 된다. 이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데, 척추종물에게 있는 중추신경계의 기원이 되는 셈이다. 척추동물이 되었다는 것은 신경절이 발전하여 드디어 중추신경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생명체는 중추신경계를 중심으로 생명활동을 하게 되었다.
중추신경계의 형성은 동물이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자율성을 획득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추신경계가 형성되면서, 특히 두뇌가 발전하면서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을 기억할 수 있게 되고, 기억이 가능해짐에 따라 전에 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경험이 생기게 되고, 많은 기억을 가지고 비교를 하여 판단도 하게 되고, 경험과 판단에 따른 행동까지도 가능해지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인간에게 나타나는 복잡한 감정도 만들어지게 된다. 포유류에 이르면 새끼가 죽었을 때 슬픈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이 갖는 복잡한 감정의 전단게인 것이다. 척추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은 이제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진화의 정도에 따라 점점 더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해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개체발생(個體發生)은 계통발생(系統發生)을 반복한다고 하는데, 이는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전 과정을 다 거치고 나서야 태어난다는 말이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후 단세포동물에서 다세포동물로, 그리고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다 거친다는 말이다. 이는 중추신경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일단 척추동물이 되고 나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먼저 형성되고 덜 중요한 부분이 나중에 형성된다.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이 붙어 있고 나서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죽고 난 이후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중추신경계 중에서도 가장 먼저 형성되는 것이 흉추(胸椎) 1번부터 7번까지의 척추이고 그곳에 들어 있는 척수(脊髓)이다. 이곳이 형성되고 나서 그 밑의 흉추와 위에 있는 경추, 따라서 척수가 형성되고, 마지막으로 머리와 그 안에 들어 있는 두뇌가 형성된다.
중추신경계 중에서 마지막으로 두뇌가 형성된다는 것은 바로 핵심이 두뇌가 아니라 척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뇌는 척추 안에 들어 있는 척수가 형성되고, 이것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자신이 떠맡을 수 없는 것을 지부(支部)를 내서 그곳에서 담당하게 하는 셈이다. 컴퓨터로 치면 척수는 CPU(중앙처리장치) 또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해당되고 두뇌는 하드디스크에 해당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전신 내지는 반신마비가 왔다면,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두뇌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현대의학에서는 두뇌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렇게 보는 한 마비의 문제는 절대로 풀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하겠다.
두뇌가 중추신경계의 핵심이 아니라고 해서 두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로서 인간의 생명현상을 볼 때에는 기본적으로 척수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척추동물의 진화과정에서는 소화기나 호흡기, 순환기 등 각종 기관도 진화를 하지만 한 측면에서는 두뇌의 진화과정이라고 단순화시켜서 보아도 될 정도로 두뇌는 중요하다. 두뇌의 진화과정에는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어류가 물에서 나와 육지에 적응하는 과도기가 양서류의 단계이다. 어류는 물에서밖에 살 수 없지만 양서류는 물과 뭍을 오가면서 살 수 있다. 파충류의 단계에 오면 물에서도 살 수 있지만 뭍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변온(變溫)동물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육지에서 살 수 있도록 적응한 것은 아니다. 파충류에서 진화한 조류나 포유류가 되면 이제는 항온(恒溫)동물이 되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뭍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뭍에서 살다가 물로 돌아간 고래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포유류로 진화한 이후의 일이다.
사회적 욕구는 가족이 생기면서 형성된다
조류에 대해서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생략하기로 하고, 포유류의 진화과정에 대해서만 알아보도록 하자. 이렇게 진화의 과정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도 굉장히 신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연의 산물(産物)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자연에서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지금의 인간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자연적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오히려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인간은 더욱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앞에서 썼듯이 포유류로 진화했다는 것은 사회를 형성하고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복잡한 사회이든 단순한 사회이든 간에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새끼를 나아서 성숙한 개체가 되어 독립할 때까지 보호하고 먹여 주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사는 가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은 가장 오래 전에 형성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사회적 동물인 것이 아니라 포유류(조류도 마찬가지이지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은 인간 이전의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사회를 이어받아 자신에게 맞게 나름대로 변형시켜서 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에게도 가족이 소중한 것은 바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정상적으로 클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체온에서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사회를 이루려면 사회적 욕구가 생겨나야 한다. 파충류인 악어는 일부 잠시 동안 새끼를 보호하는 경우도 있는데, 포유류처럼 그렇게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포유류가 되고부터 어미는 새끼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고 한다. 사회적 욕구의 기본은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려는 욕구와 새끼가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새끼가 예쁜 것은 새기가 보호를 받고자 어미한테 매달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다른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는 등 일체가 포함된다.
다음에는 새끼가 독립된 개체로서 살아가려면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새끼는 세상에 태어나면 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 배우려고 한다. 몸을 놀리면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어미가 먹는 것을 보고 무엇이 내가 먹을 것이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육식동물은 사냥하는 법을 배워야 독립할 수 있다. 새끼가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는 반면 어미는 새끼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새끼의 호기심(=학습욕구)과 어미의 가르침(=교육욕구)으로 종속적이던 개체는 독립된 개체로 성숙해 간다. 인간만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포유류는 기본적으로 교육을 하고 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같이 모여서 살 때에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도자가 되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도자에게 복종하고자 하고 실제로 복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번성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몸이 욕구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썼으므로 생략하고, 육식동물의 경우에는 좀더 서열이 분명하다는 것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초식동물은 널려 있는 풀이나 나뭇잎을 먹으면 되니까 먹는 것을 두고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육식동물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경우 서로 협력해서 사냥을 해야 하므로 역할분담도 비교적 세분화되어 있고,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굶어죽지 않게 되므로 서열관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없다. 먹는 순서는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
권력투쟁은 두뇌가 발달할수록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 순한 양도 발정기 때가 되면 수컷은 목숨을 걸고 박치기를 한다. 최종적인 승자가 모든 암컷을 차지한다. 물론 여기에는 적자생존의 법칙도 작용을 한다. 영장류로 진화하면 서로 합종연횡을 하면서 권력투쟁을 벌이게 되는데, 인간이야 훨씬 더 머리를 잘 쓰니 얼마나 치사하고 교활한 방법을 쓰겠는가.
육식동물에게 '영역'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초식동물은 풀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개체수가 조절되면서 종이 살아남게 되고, 또 풀이 부족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식량난을 해결한다. 그러나 육식동물은 사냥감이 있는 곳을 일정한 넓이로 지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그곳에도 같은 종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육식동물에게는 자기의 영역을 지키는 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잡식동물 역시 육식동물과 궤를 같이한다.
이렇게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성하게 하려고 하는 본능적 욕구(=1차적 욕구)만 있었던 생명은 조류나 포유류의 단계에 오면 사회를 구성하게 되면서 사회적 욕구(=2차적 욕구)를 함께 갖게 된다. 1차적 욕구와 2차적 욕구가 함께 공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인간과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동물 간에 큰 차이는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냥 동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바로 직립을 하면서 동물과는 다른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새로운 욕구(=3차적 욕구)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두뇌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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