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팜파의 대평원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비행기가 고도를 낮춰 착륙모드로 접어들기 직전, 별안간 평원은 사라지고 거대한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공에 갑자기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물바다에 의아해 하는 순간, 아르헨티나령 이과주발 LA 4021편은 잔뜩 흐린 공항 활주로에 둔중한 기체를 내려놓고 있다.
2006년 1월 6일 pm 12시 25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역사적 착지를 한 이날,옅은 안개에 휩싸인 이 낭만적 도시는 바로 어제(1.5)였던 ‘동방박사 오신 날’의 연휴 무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저 유명한 ‘빨레르모 공원’(Parque 3 de Febrero)의 쾌적한 녹색지대가 펼쳐진다. 100ha의 면적에 꽃 조각상을 중심으로 장미공원,경마장,폴로경기장,골프클럽 등이 그림처럼 포진한 도심공원의 광활함과 훌륭한 조경에 감탄하는 사이, 학자풍의 엘리트 현지가이드가 사정 없이 백과사전식 설명을 쏟아 놓는다. 그제서야 아까 착륙 직전, 하늘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바다가 이 도시를 감싸 흐르는 ‘라쁠라따 강’(Rio de La Plata)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이 275Km, 최대 폭 220Km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강이라니 바다로 착각할 만도 하다.
명성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좋은 공기’라는 서반어 의미)의 신작로는 널찍하기 이를데 없고 메인로드 대부분은 일방통행이다. 그것도 차선이 거의 14차선 내외다. 아직껏 10차선 내외의 일방통행로를 별로 본 적이 없는 이방인의 가슴 속 체증을 시원히 훑어 주는 듯하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현지식 뷔페식당 ‘토론토’의 다양한 메뉴는 70년대 세계 5대 부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아르헨티나의 食道樂相을 인각시키기에 족하다.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는 만물박사 가이드의 청산유수 해설을 들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걸쳐져 있는 오후의 장막을 하나하나 걷어나갔다. 마치 학자가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듯 매사를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전문가적 달변에서 새삼 프로다운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이제껏 봐온 남미국가들과는 달리 유럽의 번화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시가풍경이 색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1536년, 이도시의 모태로 출발했으나 인디오의 저항으로 소멸되었다 50년 후에 재건되었던 옛 도읍터 산델모(San Telmo)의 칙칙한 발코니와 돌바닥길 사이로 도레고 광장(Plaza Dorrego)과 레사마 공원(Parque Lezama)이 모습을 보인다.
산델모의 구석진 거리 건너편으로 왕가위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1997년작 홍콩 영화 [해피 투게더]의 무대였던 탱고 바 <슐:Sur>의 초라한 자태가 스쳐 지나간다. 동성혼이 합법적인 이곳을 배경으로 동성 애인 보영(장국영)과 요휘(양조위)의 실연의 상처와 재회의 희망을 고혹적인 탱고 선율에 실어 전했던 영화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미로와 같은 산델모 거리를 한 바퀴 돌아 시가를 가로지르던 버스 옆으로 거대한 스타디움이 들어선다. 그 이름도 유명한 축구악동 마라도나의 소속팀이었던 프로 축구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인 보카 스타디움이다.
내가 마라도나를 처음 안 것은 1979년 동경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였으니 벌써 27년 전이다. 그 때만 해도 혜성처럼 나타난 손 아래 동생뻘 20살 천재소년의 기량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으나, 성인이 된 후, ‘신의 손’ 사건, 마약 중독, 어설픈 정치적 행보 등 갈수록 못된 망나니가 되어가는 그에게서 내 마음도 멀어져 갔다. 더구나 한국의 공영방송이 이미 상품가치가 없어진 망나니 마라도나의 복귀전을 보카 스타디움으로부터 단독 위성중계한다고 호들갑을 떨 때는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래선지 보카 스타디움 쪽으론 두 번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버스는 곧 탱코의 발상지인 보카 지구의 까미니또 거리에 멎었다. 남미의 유럽을 자처하는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묘하게도 남북의 빈부격차가 심각한 이태리 반도의 실상과 빼박듯이 닮아 있어 행인의 옷차림이나 길거리 건축물의 모양새에서 남북간의 격차가 상당하다. 이곳 보카 지구의 까미니또 거리도 남쪽에 속하는지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몽마르뜨’라는 별칭이 무색하리 만큼 궁색한 양태가 곳곳에 배어 있다.
예술가의 거리답게 울긋불긋 칠해진 양철건물 사이로 탱고의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온통 백색 밀가루를 덮어 쓴 행위예술가가 파라솔을 걸친 채 땡볕의 고통을 인내하는 사이로 남루한 차림의 꾀죄죄한 소년이 때가 시커먼 손바닥을 내밀며 적선을 요구한다.
스페인에 의해 식민지로 개발된 이래, ‘기회의 땅’으로 알려지면서 이태리와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계 유럽빈민들이 근 1달간의 대서양 항해 끝에 이곳 보카지구와 맞닿은 리아츄엘로강을 통해 정착한 후, 망향의 외로움을 율동으로 달랜 춤이 바로 탱고(Tango)이다.
스페인 발음으로 ‘땅고’인 탱고는 그러니까 망향의 외로움을 겪는 이민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무하는 동시에 현지에서 여인들을 유혹하기 위한 ‘마초’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춤인 셈이다.
약 40분의 자유시간 동안, 리아츄엘로강에 접한 까미니또 거리를 가로질러 逍遙하며 오리지널 탱고거리의 낭만을 느껴 보고자 했으나 그러기엔 남반부의 한여름 태양이 너무 뜨겁다. 1불을 주면 남녀가 엉겨 탱고 춤사위를 보여주는 광경을 멀찌감치 구경하다 버스로 돌아왔다.
리아츄엘로강 연안의 보카지구가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그 역할을 물려받은 라쁠라따강 연안의 마데로 항만(Pto. Madero) 지구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다. 일찍이 영국인들에 의해 개발된 곳이라 영국풍의 건물들이 연이어져 있는 사이로 선상 박물관(Fragata Sarmiento), 여인의 다리, 레티르 역사 등 추억의 명소들이 스쳐 지나간다. 100년은 족히 되었을 듯한 벽돌건물들의 古風愴然함이 퍽 인상적이다. 이름난 식당가와 호텔가가 즐비한 이곳 중,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투숙했다는 호텔과 식사를 했다는 식당을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다시 널찍한 대로를 지나 우리가 다다른 곳은 레꼴레따(Recoleta)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음산함과 엄숙함, 고요함으로 대변되는 ‘死者의 幽宅’이란 이미지를 불식시키고도 남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음산함보다는 화려함이, 엄숙함보다는 발랄함이, 고요함보다는 유쾌함이 돋보이는 이 묘지는 마치 예쁘게 단장한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관을 땅 속에 매장하지 않고 방부처리해 지상에 안치해 두는 점이 퍽 이색적이었는데 후손이나 가족의 성의가 각 묘역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묘역 유리창이 깨지고 거미줄이 처진 채로 고양이의 놀이터가 된 곳이 있는가 하면, 깨끗이 정돈된 주변에 정성스런 꽃다발이 놓여지고 고인을 기리는 사진, 문구,그림등 각종 판넬이 즐비하게 게시된 곳도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곳은 마돈나의 “Don't cry for me Aegentina"로 유명해진 페론의 미망인 에비타의 묘역.
살아 생전 빈민들의 대모였다는 그녀의 대중적 인기도를 반영하듯 국민들 마음 속의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를 기리는 숱한 판넬과 꽃다발들이 놓여져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대의 쇼핑몰, 플로리다 거리(Calle Florida)엔 이 매력적인 도시의 풍성한 낭만이 넘실대고 있었다. 보행자 전용의 이 거리엔 세계적 명품샵들이 줄지어 있어 마치 빠리나 뉴욕을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곳의 맥도날드에 들러 소변을 본 후, 노상 카페에서 콜라를 마시며 알젠틴의 서정을 동공에 담아보았다. 이곳의 명품백화점 ‘패시픽 갤러리’(Galerias Pacifico)와 외양이 너무 멋진 ‘네이비 클럽’(Navy Club)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플로리다 거리에 접한 도심의 드넓은 녹지대 공원 잔디밭 둔덕엔 젊은 청춘 남녀들이 매스게임을 하듯 널부러져 볼을 비비는가 하면 머리카락를 쓰다듬으며 키스를 나누는 등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아르헨티나의 청춘들이 남반부의 정열을 불태우는 사이, 버스 안의 우리 일행은 피곤한 여정을 이기지 못해 거의가 차창에 머리를 부딪히며 두부 강도(頭部 强度) 실험 중이다.
잦은 쿠테타로 인한 정정 불안과 택시를 타고 내릴 동안 환율이 바뀔 정도로 심한 인플레, 끊임 없는 노사 갈등 등 악재가 겹쳐, 80년대 이후 국가 위상이 대폭 하락해 현재 GNP가 4,000불(인구; 3600만, 면적; 한반도의 12.5배)에 불과한 ‘별 볼 일 없는 나라’로 전락했지만 1913년에 이미 지하철이 건설되고 70년대에 남미 최부국으로 유럽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아르헨티나의 과거 榮華는 차창 밖, 대로 곳곳에 묻어나 있다.
바둑판처럼 일사불란하게 정돈된 가로 환경, 14~16차선의 넓은 대로를 일방통행 및 차선변경제에 의한 가변차선으로 활용하는 선진 교통시스템, 중앙분리대에 녹지대를 확보해 도심공원을 삽입하는 뛰어난 조경 안목, 기하학적 조형미를 살린 예술품에 가까운 고층건물들과 도심의 각종 기념 조형물들, 가히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의 심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우리의 버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심장부로 접어들며 가장 먼저 부딪친 곳은 ‘5월광장’.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약화된 스페인 식민정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현지 출생의 백인 ‘크리오조’세력이 중심이 되어 1810년 5월25일, 당시의 ‘요새 광장’(Plaza del Fuerte)에서 봉기한 이래, 이곳을 ‘5월 광장’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광장 주변엔 대통령궁(Casa Rosada), 까빌도(Cabildo; 시의회),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등이 운집해 있다.
계획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탄생의 시발점인 5월광장을 남북으로 종단해 내려가는 길이 바로 이 도시 최초의 대로로 건설되었던 ‘5월대로’(Av. de Mayo),
대통령궁이 위치한 5월광장에서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과 ‘원점’ 비석이 위치한 국회의사당(Congreso Nacional)을 거쳐 시 문화원 건물(La Prensa), 까페 ‘Tortoni', ’돈 키호테‘ 조각상을 차례로 연결하는 5월대로가 중간에서 마주치는 동서방향의 거대한 대로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7월9일 대로‘(Av. 9 de Julio)이다.
폭 144m, 약 18차선에 가까운 이 거대한 도로의 서편에 눈에 익은 건축물이 얼핏 보이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바로 이 도시를 상징하는 으뜸가는 조형물 '오벨리스크'(Obelisco)!
1978년 자국에서 개최됐던 월드컵 축구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자 5월광장과 이곳 오벨리스크 주변에 몰려든 군중들이 광란의 밤을 보내는 것을 해외토픽에서 본 적이 있는지라 이곳을 실제로 대하는 감회가 무량하기 그지 없다.
이어서 우리의 버스는 세계적으로 손꼽는 매머드 공연이 끊임 없이 펼쳐졌던 ‘세계의 보석’ 혹은 ‘알젠틴의 자존심’으로 불려지는 ‘콜론 극장’(Teatre Colon), 멋진 조형미의 법원청사와 ‘세르반테스’ 극장을 거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브로드 웨이라 일컬어지는 극장가, 꼬리엔떼스 대로(Av. corrientes;잠들지 않는 거리)를 지나갔다. 그러나 ‘동방박사 오신날’ 신정연휴를 맞아 ‘잠들지 않는 거리’의 대부분의 극장들은 문을 닫고 잠들어 있었다.
꼬르엔떼스 대로 부근의 숙박지 Bauen 호텔에 도착했을 때, 마침 호텔 정문 주위의 대로변에선 어린이를 위한 간이연극이 공연 중이었는데 거리를 차단한 경찰차의 에스코드 속에 숱한 군중들이 흥미롭게 이를 관람하고 있었다.
잠시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한 우리는 어둠이 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로를 다시 가로질러 한식당 [해운대]에서 오랜만에 맛깔스럽고 푸짐한 한식으로 포식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곤 이날의 피날레를 장식할 탱고쇼 옵션을 감상키 위해 [체 땅고; Che Tango]극장으로 향하였다. 저녁식사가 지연되는 관계로 늦게 도착한 우리가 웨이터의 안내로 극장에 들어섰을 땐, 한 쌍의 白衣 男女가 열정적인 탱고 율동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우리는 2시간에 걸쳐 여러 스테이지의 탱고 춤과 열정적인 악단의 연주, 그리고 영혼을 실어 부르는 노래들을 본바닥의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웨이터의 와인 서비스를 받아가며 감상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 탱고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였던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유명한 탱고 곡 '피안또'(crazy)를 분위기 있게 불러대는 백발의 노가수 ‘라울라비’의 열창이 이날 밤 가장 돋보였다.
공연을 마치고 보카 지구의 극장을 나서니, 이미 자정을 넘긴 남반부의 밤 하늘엔 별빛만이 총총하다. 마른 때가 밀리는 손목시계는 2006년 1월 7일 0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54년 전, 남미 여행을 위해 자신의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출발한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남부의 해양 휴양지, 미라마르에서 애인 치치나와 함께 ‘밤 별놀이’를 즐기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