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조선 경종4년(1724) 호는 둔파재(遯坡齋), 휘(諱)는 숙(璹)이 진보면(眞寶面) 합강(合江)에 이거(移居)하면서 먼저 둔파재(遯坡齋)를 신축하고 영정각(影幀閣)을 이건(移建)하였으며, 그후 돈파재의 장손(長孫)인 휘(諱) 종열(宗烈)(호(號):안분당(安分堂))이 영조(英祖)20년(1744)에 대청(大廳), 별묘(別廟), 안분당(安分堂)(서당(書堂))을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의 가계(家系)는 고려(高麗)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18대손(代孫) 현(賢)이 영해군(寧海君)으로 봉해짐에 따라 평산신씨(平山申氏) 영해파(寧海派)로 분파(分派)하였고, 그후 대동보규(大同譜規)에 의하여 현(賢)의 손(孫)이며 판례빈사사태복판사(判禮賓寺事太僕判事)인 21대(代) 신득청(申得淸)을 분파조(分派祖)로 정하고 판사공파(判事公派)로 분파(分派)하였다 |
종목 : 시도민속자료 89호 분류 : 가옥 수량 : 일곽 소재지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76
18세기 초반에 지은 평산 신씨 판사공파의 종가이다. 신숭겸 장군의 15대손인 신득청 선생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 평산 신씨 판사공파는 조선 전기 이후 진보면 합강에서 살다가 임진왜란 후 종가를 비롯한 일족들이 중평으로 옮겨와 지금의 종택을 세웠다. 불훤재 종택이라고도 불리는데 구조상으로는 조선시대 사대부가를 대표하는 주택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솟을대문 옆에 좌우 행랑과 곡간 을 두고 있고 넓은 안마당에 ㅁ자형의 안채·별실·정자·사당·영정각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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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서원이 언제까지 지금 이대로 보전될까 사진이라도 있으니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