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아름답다. 빛깔도 모양도 그 내음도 아름답다. 그래서, 그 이름까지들도 모두가 아름답다.
지금의 꽃이름들을 보면 한자로 된 것이 많으나, 우리 조상들이 붙인 꽃이름들 중엔 순수하게 우리말로 붙인 것이 많다.
'앉은뱅이꽃'이라고 하면, 지금은 아는 이가 별로 없으나, 한자로 된 '채송화(菜松花)'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꽃이 다른 꽃보다 키가 작기 때문에 '앉은뱅이꽃'이란 이름을 붙였다. 또, 땅에 달라붙어 핀다고 '땅꽃', '따꽃'이라고도 했는가 하면, 모여서 듬뿍듬뿍 핀다고 해서 '뜸북꽃'이라고도 했다.
이에 반하여 해바라기는 키가 크다고 해서 일부 지방에서 '키다리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선 해를 바라보며 돌아가는 꽃이라 해서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해바라기'로 부른다. '해자부리' 또는 '해자브래기'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해를 잡는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해바라기와 상대되는 뜻으로 붙여진 것에는 '달맞이꽃'이 있다. 빛깔이 달빛처럼 노란 데다가 해진 저녁에 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바라기처럼 어떤 천체를 따라 꽃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달맞이꽃은 우리 나라에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우리 꽃이름들은 이처럼 대개 그 모양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나팔 모양 같다고 해서 '나팔꽃'이 나왔는가 하면, 방울 같다고 해서 '방울꽃' 같은 이름이 나왔다.
'접시꽃 당신'이란 글로 유명한 '접시꽃'은 그 모양이 접시처럼 넓게 벌어져 있어 나온 이름이고, 배고픔과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는 있는 '밥풀꽃'은 그 모양이 밥풀과 같아서 나온 이름임을 누구나 쉽게 짐작한다.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싹 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이런 동요를 부르노라면, 꼬부라진 꽃대에 매달린 할미꽃이 머리에 금방 그려진다.
'양귀비꽃'은 그 꽃 모양이 중국 진시황의 애처인 양귀비의 요염함을 그대로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모양을 따서 지은 꽃이름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아주 많다.
맨드라미꽃은 '닭벼슬꽃'이라고도 했다. 줄기까지 닭벼슬처럼 빨간 데다가 몽톡하게 핀 모양이 꼭 닭의 벼슬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식 이름도 닭의 벼슬이란 뜻의 '계관', '면두'이다. 맨드라미꽃을 줄여서는 '맨드리'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꽃을 '방패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모양이 꼭 옛 로마 장수의 투구와 같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서양의 전설에선 이 꽃이 로마 장수 무덤에 계속 피어나 있었다던가?
머리에 쓰는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은 '패랭이꽃'은 우리 나라 자생꽃으로, 산야에 널리 자라고 있다.
고려 말 정몽주의 선조로서 강직한 성격을 가졌던 정습명(鄭襲明) 충신은 당시 임금인 의종이 방탕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즐기자 이를 꽃에 빗대어 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 그는 우리의 산과 들에 숨어 피듯이 자라는 평범한 자생화를 외국에서 도입된 모란, 작약, 모란, 양귀비꽃 같은 화려한 꽃에 비기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해서 정원에 많이 재배하지만, 저절로 자라는 패랭이꽃은 달 아래서나 바람 앞에서 운치가 있음에도 공자 왕손 같은 귀인이 오지 않는 후미진 곳에 피어 있어 평범한 야인이 그 아름다움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농촌에서는 이팝나무의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고, 꽃이 적게 피거나 쉽게 시들면 흉년이 든다며 꽃점을 치기도 했다. 이것은 그 꽃의 모양이 꼭 쌀밥 즉 이팝(이밥.쌀밥)처럼 생겼음에 연유한다.
붓처럼 생긴 '붓꽃', 은방울처럼 생긴 '은방울꽃', 구슬처럼 생긴 '구슬봉이', 초롱처럼 생긴 '초롱꽃' 등도 모두 그 모양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광대수염'이나 '범부채' 같은 꽃이름도 재미있다. '광대수염'은 광대의 긴 수염 같아 붙은 이름이고, '범부채'는 넓은 부채살 모양에다가 범가죽처럼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생각하다가 병이 나면 '상사병(相思病)'이라지 않는가. 꽃이름에 이와 비슷한 '상사화(相思花)'가 있다.
이 꽃은 늦여름에 피는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다. 즉, 잎은 피었다가 꽃이 피기도 전에 죽고, 그 자리에서 꽃대가 자라나 연분홍빛을 띈 자주색의 꽃이 핀다. 이처럼 잎은 꽃을 생각하다 죽고, 꽃은 잎도 못 보고 죽어 잎과 꽃이 상사병이 들 것으로 생각해 나온 이름이다.
꽃은 저마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그러면서 각자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며 향기를 내뿜는다. 사람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추구함은 꽃을 닮았음인가? 사람들 모두가 몸과 마음에 꽃같은 아름다움을 지닌다면 이 누리가 꽃의 내음만큼이나 향기로울 것을. ///
960300 70우리말 기고 16매 기고 대교(대한)05 우리말 고운말 `개나리 `진달래
개나리와 진달래
-봄이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꽃들-
일제 때, 서울 종로 YMCA 강당에는 어떤 행사나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형사들이 잘 모여들었다.
어느 강연회 때 일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사회를 보며 장내를 둘러 보고 나서 먼 산을 바라보는 체하며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어허! 개나리꽃이 만발했군."
장내에서는 금방 폭소가 터져 나왔다.
청중 속에 일본 형사들이 앉아 있었는데, 괘씸하게 생각한 이상재는 그들을 보고 '개나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일본 형사를 '개'라고 하였고, 순경을 '나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 '개나리'는 백합과 닮아 붙은 이름
4월 초쯤 되면 서울에서도 개나리꽃이 핀다. 남부 지방에서는 3월 중순부터도 이 꽃이 피기 시작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의 동요에 나오는 것처럼 '개나리'란 말은 '개'와 '나리'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옛 문헌에도 '개나리'로 표기된 것이 보이나 더러는 '개날이' 또는 '개너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개나릿 불휘를'(백합근.白合根)<구급간역방>
'번산단(番山丹) 개날이'<유씨물명고>
'개너릿곳'<역어유해>(하권)
'개나리'에서 '나리'는 나리과(백합과)의 참나리 계통에 딸린 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개나리'는 엄밀히 구분하면 참나리 계통 즉 백합과가 아닌, 목서(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백합과에 드는 식물로는 참나리를 비롯해서 옥잠화, 히야신스, 튜울립, 아스파라거스, 중나리, 하늘나리, 원추리, 달래, 처녀치마, 물구(산자고), 밀나물 등이 있는데, 이들 꽃 모양은 대개 개나리꽃의 모양과 비슷하다.
이것을 보면 '개나리'란 이름이 나리(백합)꽃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나리' 앞에 '개'를 붙였을까? '나리'는 나리인데, '나리'답지 못한 나리라는 뜻이다.
우리네 식물들 이름을 보면, '개'를 첫 음절로 하는 것이 무척 많다. 그런 식물들은 대개가 꽃송이나 몸체 자체가 작거나 품위있게(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다래', '개망초', '개물푸레나무', '개보리뱅이', '개비름', '개싸리', '개솔나무', '개양귀비', '개여뀌', '개지치' 등.
이에 반해 꽃송이가 좋거나 식물 자체가 좀 나아 보이거나 쓸모가 있으면 '참'자가 많이 붙는다. '참가시나무', '참갈퀴', '참나리', '참나무', '참단풍나무', '참싸리', '참억새', '참죽나무', '참피나무' 등.
열매 이름 중에 '참외'는 '참'와 '외'가 합해진 말이다. '외'는 '오이'의 뜻이니 '참외'는 '진짜 오이', '단(맛있는) 오이'의 뜻을 갖는다.
'좋지 않은'의 뜻으로 '개'가 앞 음절로 들어가는 예는 비단 식물뿐이 아니다.
대중 없이 여러 가지로 꾸는 꿈을 조롱하는 말에 '개꿈'이 있고, 남이 골내는 것을 욕하는 말로는 '개골'이 있다. '개기름'은 얼굴에 나타나는 번질번질한 기름을 나타내는 말이고, '개꼴'은 체면이 아주 말할 수 없이 엉망인 꼬락서니를 말한다.
이상재 선생이 일본 형사와 순경을 '개나리'라고 해서 장중을 웃긴 것은 우리말의 이런 점을 묘하게 이용한 멋진 웅변(?)이었다. '개'는 '나쁜(지독한)'의 뜻으로, '나리'는 '나으리'의 비꼬는 말이었는데, 일본 형사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그를 아마 그 자리에서 즉시 체포했을 것이다.
□ 진달래는 '창꽃'이라고도 불러
봄이면 온 산에 흐드러지게 꽃송이를 피워 대는 진달래는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산을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홀려 놓는다. 4월 초, 빠르면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4월 중순이면 중부 지방의 산마루까지 분홍빛의 빛잔치를 한껏 펼친다.
수줍어 수줍어 다 못 타는 연분홍이
부끄러 부끄러 바위 틈에 몰래 피다
그나마 남이 볼쎄라 고대 지고 말더라.
(1932.3.6 노산 이은상)
우리 나라의 어느 산이고 진달래가 피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몇 군데가 진달래 동산으로 손꼽힌다.
전북 무주의 적상산은 봄이면 붉은 진달래가 바위 절벽을 치마처럼 두른 모습이라 해서 '적상(赤裳)'이란 이름을 달았다.
그 밖에 경남 창녕의 화용산, 경기도 가평과 포천 사이의 운악산, 명지산도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곳이다. 서울과 과천 사이의 관악산도 진달래꽃이 많이 핀다.
진달래는 다른 말로는 '두견화'라고도 해서 이것으로 담근 술을 '두견주'라고도 한다. 또, '산척촉'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철쭉꽃이 '척촉'이기 때문에 그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진달래'는 거의 전국 어디서나 같은 말로 불리고 있으나 일부 지방에선 '진달리'(전북), '진달루'(함남 안변, 덕원, 고원), '전달래'(경북 경주), '쉰달레'(제주) 등으로 부르고도 있다.
진달래를 달리 '참꽃' 또는 '창꽃'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경기도의 안성 일부, 강원도 동해안 지방이 그렇고, 충북에서도 대부분 이렇게 부르고 있으며, 영 호남 지방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곳이 많다.
함북 지방에선 이 꽃을 '천지꽃'이라고 부른다.
'개나리'가 '개'와 '나리'라는 두 말조각으로 이루어졌듯이 '진달래'도 '진'과 '달래'라는 두 말조각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그러나, '진달래'가 '달래'란 말 앞에 '진'이라는 접두사가 덧붙어 된 말은 아닌 듯하다. 실제 '달래'라는 식물은 진달래와는 전혀 그 종류가 다르다.
'달래'는 '달'을 그 말뿌리로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달'은 무엇일까? '산(山)'의 옛말이 '달'인 것을 생각하면 '달래'의 '달'도 '산(山)'의 뜻을 지닌 말로 보인다. 즉, 산에 주로 피는 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달래'는 '달'에 접미사 '애'가 붙어 '달애'였던 것이 변한 말일 것이다.
달+애>달애>달래
'진달래'에서의 '진'은 '짙은'의 뜻을 지녔거나 아니면 '참(진짜)'의 뜻을 지녔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진달래의 다른 이름이 '참꽃'이라는 점에서도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보면 '진달래'는 '산에 피는 진짜 꽃', 아니면 '산에서 진한 빛깔로 피는 꽃'의 뜻이 아닐지?
'진달래'의 옛말이 '진달애'이기도 한 것을 보면 '달래'는 '달'을 뿌리로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봄 맞아
나른한 몸 가눌 길 없네.
진달래꽃 가지 아래 게을리 앉아
꽃수염 헤아리고 또 한 번 헤아리네.
(조선 중기, 이름 모를 여류 시인의 시)
어떻든 봄이면 개나리가 마을에서 노란 빛깔로 우리 마음을 홀리는데, 이에 뒤질쎄라 산에서는 분홍빛 진달래가 우리 마음을 흠뻑 사로잡는다. ///
방 안에서 책을 보고 있던 영이는 창문을 열어 보았다. 저만큼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서 꼬마들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돌담 여기저기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개나리꽃이 그 짙은 노란색을 뽐내고 있었다.
"나리 나리 개나리, ……"
영이도 방을 나오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영이 동생 현이가 들어왔다. 입에는 개나리 가지를 잔뜩 물고 있었다.
영이가 놀라 바라보는데, 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한 마디 하신다.
"아니, 현이는 너 어디서 그렇게 많은 나리꽃을 따 갖고 오느냐?"
"할머니, 이건 개나리꽃인데요."
"누가 아니라냐? '개나리'라고 하지만, 줄여서 '나리꽃'이라고도 한단다."
"그래요? 할머니, '나리꽃'은 또 따로 있지 않아요?"
"영이야, 이 꽃이름에 관해서 이 할미가 좀 얘기 좀 해 주랴?"
"예, 할머니."
영이는 할머니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당 빨랫줄의 옷들도 함께 들으려는가? 봄바람이 불어 오는가 했더니 널어 놓은 옷자락들이 갑자기 너풀거렸다.
4월 초쯤 되면 서울에서도 개나리꽃이 핀다. 남부 지방에서는 3월 중순부터도 이 꽃이 피기 시작한다.
'개나리'란 말은 '개'와 '나리'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꼭 '개나리'라고만 불러 왔던 것이 아닌 듯하다. 옛 문헌에 보면 '개나리'로 나타나 있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개날이' 또는 '개너리'로 씌어 있는 것이 꽤 보인다.
<구급간역방>이란 책에는 '개나릿 불휘를'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개나리 뿌리를'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를 '백합근(白合根)'이라고 한자로 써 놓은 것으로 보아 '백합을' '나리'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유씨물명고>란 책에는 '번산단(番山丹) 개날이'란 말이 나와 있다. 여기서의 '개날이'는 '개나리'를 일컫는다.
<역어유해>란 책에는 '개너릿곳'이라 씌어 있다. '개나리'를 이렇게 '개너리'로도 불렀다.
'개나리'에서 '나리'는 나리과(백합과)의 참나리 계통에 딸린 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개나리'는 엄밀히 구분하면 참나리 계통 즉 백합과가 아닌, 목서(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백합과에 드는 식물로는 참나리를 비롯해서 옥잠화, 히야신스, 튜울립, 아스파라거스, 중나리, 하늘나리, 원추리, 달래, 처녀치마, 물구(산자고), 밀나물 등이 있는데, 이들 꽃 모양은 대개 개나리꽃의 모양과 비슷하다.
이것을 보면 '개나리'란 이름이 나리(백합)꽃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나리'앞에 '개'를 붙였을까? '나리'는 나리인데, '나리답지 못한 나리'라는 뜻이다.
우리네 식물들 이름을 보면, '개'를 첫 소리마디로 하는 것이 무척 많다.
그런 식물들은 대개가 꽃송이나 몸체 자체가 작거나 품위있게(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다래', '개망초', '개물푸레나무', '개보리뱅이', '개비름', '개싸리', '개솔나무', '개양귀비', '개여뀌', '개지치'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좋지 않은'의 뜻으로 '개'가 앞 소리마디로 들어가는 예는 비단 식물뿐이 아니다.
다음을 보자.
`개꿈; 대중 없이 여러 가지로 꾸는 꿈을 조롱하는 말
`개골; 남이 골내는 것을 욕하는 말
`개기름; 얼굴에 나타나는 번질번질한 기름
`개꼴; 체면이 아주 말할 수 없이 엉망인 꼬락서니
아무 무렇게나 조리없이 지껄이는 말을 '개소리'라 하고,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를 '개판'이라고 한다.
일제 때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 종로 와이엠씨에이(YMCA) 강당에는 어떤 행사나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형사들이 잘 모여들었다.
그런데, 어느 강연회 때 월남 이상재 선생이 사회를 보았는데, 선생은 자리를 삥 둘러 보고 나서 먼 산을 바라보는 체하며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어허! 개나리꽃이 만발했군."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강연회 청중들이 모두 까르르 웃어 댔다.
강연회장에는 일본 형사들이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강연의 내용이 일본에 거스르는 것이 있을까 봐 지켜 보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몹시도 보기 싫었던 이상재 선생이 그들을 보고 '개나리'라고 했던 것. 그 당시 일본 형사를 '개'라고 하였고, 순경을 '나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상재 선생이 일본 형사와 순경을 '개나리'라고 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웃긴 것은 우리말의 이런 점을 묘하게 이용한 멋진 웅변(?)이었다. '개'는 '나쁜(지독한)'의 뜻이고, '나리'는 '나으리'의 비꼬는 말이었지만, 일본 형사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이것을 그 일본 형사들이 알았다면 그들은 그를 아마 그 자리에서 즉시 이상재 선생을 붙잡아 갔을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어디선지 살포시 날아들어 온 노오란 개나리 꽃잎 하나도 재미있다는 듯이 마당 한가운데서 빙그르르 나뒹굴었다. ///
010108 조선일보 만물상] 난 난초
난초
우리 선비들이 사군자로 사랑해온 매란국죽은 계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매화는 겨울이 가시기 전 눈발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봄의 전령 구실을 한다. 난초는 무더운 여름에 향기를 뿌리고, 국화는 서리내리는 가을에도 활짝 웃는다. 그리고 대나무는 깊은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래서 선비들이 그 지조를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란은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제주도와 일본의 중부 이서지방에서 자생하는 한란은 늦가을에서 초봄까지 꽃을 피워 그 은은한 향기를 자랑하기로 시인·묵객들의 더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집안에서 키우는 난은 그렇게 쉽게 발화하지 않는다. 주인의 깨끗한 마음과 정성이 꽃을 피우는 까닭이다.
예전에는 집안에서 키우는 난이 꽃을 피우면 친한 친구들을 불러 난꽃을 보며 술을 나누기도 했다. 난꽃 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고 그 향기가 일품이었기 때문에 좋은 것은 서로 나눠 가지려는 선인들의 넉넉한 마음이 녹아나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문향십리라는 말은 ‘꽃은 작으나 향기가 많은 난초를 과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학의 문을 연 호암 문일평은 “난화를 향초 또는 제일향이라 이름함이 어찌 이유가 없음이랴”고 그 표현을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난’에는 매서운 전설도 깃들여 있다. 지리산의 성모신 ‘마야고’는 사랑하는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짰다. 지리산에 나타난 반야는 마야고를 그냥 지나쳐 쇠별꽃밭으로 갔다. 화가 난 마야고는 만든 옷을 갈갈이 찢어 바람에 날리고 반야를 현혹한 쇠별꽃은 지리산에서 피지 못하게 했다. 이때 바람에 날린 실오라기들이 풍란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다.
요즘 생일이나 영전을 축하하는 뜻으로 이런 사연을 담고 있는 ‘난화분’이 애용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난분’을 보낸 모양인데 또 하나의 ‘분란’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니…. 엄동설한의 ‘난’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못된 세월의 각박한 풍토만 한탄했을 것 같다.
960300 70우리말 기고 15매 우기 새벗 우리말 교실 `진달래
진달래
'진짜 달래'란 뜻에서 나온 말
'달래'는 '산의 식물'의 뜻을 담은 듯
이른 봄이면 우리 나라의 온 산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꽃송이를 피워 댄다.
이 꽃은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산을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홀려 놓는다.
4월 초, 빠르면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4월 중순이면 중부 지방의 산마루까지 분홍빛의 빛잔치를 한껏 펼친다.
수줍어 수줍어 다 못 타는 연분홍이
부끄러 부끄러 바위 틈에 몰래 피다
그나마 남이 볼쎄라 고대 지고 말더라.
(1932.3.6 노산 이은상)
우리 나라의 어느 산이고 진달래가 피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몇 군데가 진달래 동산으로 손꼽힌다.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은 봄이면 진달래가 바위 절벽을 치마처럼 두른 모습이라 해서 '적상(赤裳)'이란 이름을 달았다. '적상'은 '붉은 치마'의 뜻을 갖는다.
그 밖에 경상남도 창녕의 화용산, 경기도 가평과 포천 사이의 운악산, 명지산도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곳이다. 서울과 과천 사이의 관악산도 진달래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하다.
진달래는 다른 말로는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이 꽃으로 담근 술을 '두견주'라고 한다. 또, '산척촉'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꽃이 '척촉'이기 때문에 그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진달래'는 거의 전국 어디서나 같은 말로 불리우고 있으나, 조금씩 그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는 곳도 있다. 전라북도 지방에선 '진달리'라 부르는데, 이 지방에서는 '래'의 음을 '리'로 많이 부르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북한의 함경남도 안변이나 덕원, 고원 지장에서는 '진달루'라고 부르고 있고, 경상북도 경주 일대에서는 '전달래'로도 부르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특별히 '쉰달레'로 부른다.
진달래를 달리 '참꽃' 또는 '창꽃'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경기도의 안성 일부, 강원도 동해안 지방이 그렇고, 충청북도에서도 대부분 이렇게 부르고 있으며, 영 호남 지방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곳이 많다. '창꽃'은 원래 '참꽃'이 발음상 변한 말일 것이다.
함경북도 지방에선 이 꽃을 '천지꽃'이라고 부른다.
'진달래'는 '진'과 '달래'라는 두 말조각으로 이루어졌다.
'진달래'가 '달래'란 말 앞에 '진'이라는 앞가지가 덧붙어 된 말이긴 하지만, 실제 '달래'라는 식물과는 그 종류가 전혀 다르다. '진달래꽃'이 철죽과의 꽃인 데 반하여 '달래'는 백합과에 딸린 식물이다.
'달래'는 '달'을 그 말뿌리로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달'은 무엇일까? '산(山)'의 옛말이 '달'인 것을 생각하면 '달래'의 '달'도 '산(山)'의 뜻을 지닌 말로 보인다. 즉, 산에 주로 피는 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달래'는 '달'에 뒷가지인 '애'가 붙어 '달애'였던 것이 변한 말일 것이다.
달+애>달애>달래
진달래는 그 꽃모양이 '달래'와 비슷해 '정말로 아름다운'의 뜻으로 앞에 '진'이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즉, '진'은 '짙은'의 뜻을 지녔거나 아니면 '참(진짜)'의 뜻을 지녔다고 보고 있다. '진달래'의 '진'을 '참(진짜)'의 뜻으로도 보는 것에는 진달래의 다른 이름이 '참꽃'이라는 점에서도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보면 '진달래'는 '산에 피는 진짜 꽃', 아니면 '산에서 진한 빛깔로 피는 꽃'의 뜻일 것이다.
진달래의 옛말은 '진달외' 또는 '진달뢰'이다. 따라서, '달래'의 '달'은 원래 '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봄 맞아
나른한 몸 가눌 길 없네.
진달래꽃 가지 아래 게을리 앉아
꽃수염 헤아리고 또 한 번 헤아리네.
조선 중기, 이름 모를 여류 시인도 이 노래에 나타난 것처럼 진달래의 꽃을 못 잊어 그 앞에서 흠뻑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이처럼 진달래는 봄이면 우리 마음을 온통 끌어 낸다.///
970400 70우리말 기고 15매 우기 새벗 우리말 교실 `꽃전설
꽃이름과 전설
대개 모양 따라 이름이 붙어
슬픈 전설 간직한 꽃도 많고
밖에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꽃씨를 심는다고 약속을 했기에 슬애는 언니와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언니, 내가 작년에 받아 뒀던 꽃씨 모두 찾아 갖고 나갈까?"
"그러렴. 난 먼저 나가서 꽃밭을 일구고 있을께."
둘이 서두는 것을 보신 할머니께서 건넌방에서 나오셨다.
"얘들아, 꽃씨 심으려구? 이 할미가 도와 주마. 꽃씨는 아무렇게나 심어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는 옷도 챙겨 입지 않으시고, 어느 틈에 마당으로 나가셨다.
"앉은뱅이꽃 씨는 어디 있느냐? 우선 그것부터 심자구나."
"앉은뱅이꽃요? 그게 어떤 꽃이죠?"
언니는 슬애가 갖고 나온 꽃씨 주머니 이것저것을 골라 보면서 여쭈어 보았다.
"앉은뱅이처럼 키가 작달막한 꽃, 그것도 모르냐?"
"아아, 채송화요? 그걸 채송화라고 하지, 왜 앉은뱅이꽃이라고 해요?"
"이 할미가 어렸을 땐 누구나 앉은뱅이꽃이라고 했지."
"그럼, 다른 꽃들도 할머니 어렸을 때는 모두 다르게 불렀나요?"
"다 그렇진 않았지만, 꽃이름은 지방에 따라서 달리 불리는 경우가 많았지."
"그럼, 할머니. 지금과 달리 불렀던 꽃이름들을 할머니가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채송화를 '앉은뱅이꽃'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참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이 할미가 뭘 그리 많이 알겠니? 그렇지만, 너희들보다야 낫겠지. 그럼, 몇 가지 꽃이라도 얘기해 주랴?"
"네, 할머니."
언니와 슬애는 꽃밭을 일구다 말고 할머니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나라의 꽃이름들은 대개 그 모양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나팔 같은 '나팔꽃', 방울 같은 '방울꽃', 접시같은 '접시꽃', 밥풀 같은 '밥풀꽃' 등이 모두 그렇다. 이것은 새 이름이 '꾀꼬리', '뻐꾸기'처럼 그 우는 소리를 따서 붙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모양을 따서 지은 꽃이름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아주 많다.
맨드라미꽃은 '닭벼슬꽃'이라고도 했다. 줄기까지 닭벼슬처럼 빨간 데다가 몽톡하게 핀 모양이 꼭 닭의 벼슬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식 이름도 '닭의 벼슬'이란 뜻의 '계관', '면두'이다. 맨드라미꽃을 줄여서는 '맨드리'라고 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방패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모양이 꼭 옛 로마 장수의 투구와 같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서양의 전설에선 이 꽃이 로마 장수 무덤에 계속 피어나 있었다던가?
붓처럼 생긴 '붓꽃', 할머니 등처럼 꼬부라긴 '할미꽃', 은방울같은 송이가 달린 '은방울꽃', 구슬처럼 생긴 '구슬봉이', 초롱처럼 생긴 '초롱꽃' 등도 모두 그 모양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광대수염'이나 '범부채' 같은 꽃이름이다. '광대수염'은 광대의 긴 수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범부채'는 범이 부치는 부채처럼 알록달록하고 넓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채송화는 다른 이름으로 '앉은뱅이꽃'이라고만 한 것이 아니다. 땅에 달라 붙어 핀다고 해서 '땅꽃', '따꽃'이라고도 했는가 하면, 모여서 듬뿍듬뿍 핀다고 해서 '뜸북꽃'이라고도 했다.
해바라기는 일부 지방에서 '키다리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에선 해를 바라보며 돌아가는 꽃이라 해서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해바라기'로 불리운다. '해자부리' 또는 '해자브래기'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해를 잡는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해바라기와 상대되는 뜻으로 붙여진 것에는 '달맞이꽃'이 있다. 빛깔이 달빛처럼 노란 데다가 해진 저녁에 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바라기처럼 어떤 천체를 따라 꽃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달맞이꽃은 우리 나라에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나중에 딴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생각하다가 병이 나면 '상사병'이라고 하는데, 꽃이름에 이와 비슷한 '상사화'가 있다.
이 꽃은 늦여름에 피는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다. 즉, 잎은 피었다가 꽃이 피기도 전에 죽고, 그 자리에서 꽃대가 자라나 연분홍빛을 띈 자주색의 꽃이 핀다. 이래서, 잎은 꽃을 생각하다 죽고, 꽃은 잎도 못 보고 죽는다 해서 상사병이 든 모양으로 비쳐 이 이름이 나온 것이다.
'백일홍'은 꽃송이가 백일(100날)을 정도 피어 있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방에 라서는 '백일초' 또는 '백일화'라고도 하는데, 이 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슬픈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마을에 밤마다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그 마을의 처녀를 하나씩 데려 갔다.
어느 날 밤엔 김첨지네 딸이 이무기에게 잡혀 가게 돼 있었다. 그런데, 한 왕자가 그 집에 나타나 그 딸 대신 자기가 이무기에게 잡혀 가겠노라며 처녀 옷을 입고 이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이무기가 나타났는데, 처녀 옷을 입은 왕자는 칼을 휘둘러 이무기의 머리 하나를 댕강 떨어뜨렸다. 이무기는 혼이 나 달아난 그 후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처녀와 왕자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 왕자에겐 또 하나의 임무가 생겼다.
그 마을에서 이무기에게 빼앗긴 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를 찾아와야 그 마을이 평안해진다는 것이었다.
왕자는 꼭 이무기에게 빼앗긴 보물을 찾아오겠노라며 이무기를 찾아 떠났다. 왕자는 떠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배를 타고 돌아올 때 내가 흰 기를 올리면 성공한 것으로 알고, 붉은 기를 올리면 내가 죽은 것으로 아시오."
처녀는 남편인 왕자가 성공해 돌아오기를 빌며 자주 바닷가로 나가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기다리던 배가 나타났다. 그러나, 배에 보이는 깃발은 붉은 기가 아니던가? 남편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처녀는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기는 붉은 기가 아닌 흰 기였고, 다만 이무기의 피가 얼룩져 있던 것이었다. 처녀의 죽음을 따라 왕자도 죽었는데, 그 둘이 묻힌 무덤에선 쪽두리같은 꽃이 피어 꼭 100날을 짙붉게 피어 있었단다.
꽃은 아름답다. 전설도 아름답다.
그 꽃의 모양을 보면서 꽃이름을 생각하는 사람, 꽃에 관한 전설을 생각하는 사람, 꽃말을 생각하는 사람, 이 모두도 꽃처럼 아름답다. ///
"그렇다 치고. 그런데, 넌 해를 닮았으면 왜 '해닮은꽃'이 아니고, '해바라기꽃'이냐?"
"늘 해를 바라보니까."
"왜 늘 해를 바라보지? 해한테 밥 달라고?"
"요게 그냥."
"해의 모양은 닮았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말없이 빛과 열을 주고도 자랑을 하지 않는 해의 으젓함은 하나도 못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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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라기-해를 잡는 꼴이라 해서 '해자부리'라고도
어떻든 '해바라기'는 '해'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일부 지방에서 '해자부리' 또는 '해자브래기'라고 하는 것은 해를 잡을 듯이 해를 바라보며 얼굴을 돌려 가기 때문이다. 즉, '해자부리'라는 이름은 해 잡는 다는 뜻의 '해잡으리'란 뜻의 이름이었다.
해바라기의 검은 씨는 껍질을 까서 직접 먹기도 하고, 옛날엔 기름을 짜서 등불 켜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
풀이름
960200 70우리말 기고 15매 우기 새벗 우리말 교실 `잔소리 `잔기침 `잔디
잔디
원래 '작은 풀'이란 뜻에서 나온 말
'잔'은 '작은'이나 '좁은'의 뜻
슬이는 아까부터 동생인 아기가 방에서 계속 기침을 하고 있어 몹시 신경이 씌었다.
어제도 약을 먹였는데, 좀체로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할머니가 또 약병을 들고 방에서 나오셨다.
"애기가 잔기침을 몹시 하는구나. 약 좀 더 먹여 봐야겠다."
슬이는 할머니가 들어가시는 아기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할머니는 아기에게 약을 먹이려고 작은 숟가락에 약을 따르고 계셨다.
"이렇게 잔기침을 해 대니 어디 애기가 고통스러워 배기겠니? 딱해 죽겠다."
할머니는 또 '잔기침'이란 말을 쓰셨다.
슬이는 그 '잔기침'이란 말이 어떤 기침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할머니, '잔기침'이란 게 어떤 기침을 뜻하는 거예요?"
"넌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도 뜻이 궁금한 말이 많구나. 우리말에 '잔'이란 말이 들어간 게 좀 많으냐? 한번 생각해서 그 뜻을 상상해 보려무나."
슬이는 잠시 '잔'이란 말이 들어간 우리말을 생각해 보았다.
잔말, 잔소리, 잔돈, 잔일, 잔심부름, ……
그러고보니 조금은 그 뜻이 생각날 것도 같았다. '작은'의 뜻이 들어 있는 것도 같고, '자주'의 뜻을 가진 것도 같고,…….
마침 겨울 방학 숙제에 어떤 낱말 하나를 선택해 그 말과 관련된 친척말을 모아 오라는 것이 생각나 슬이는 책을 토해서나 어른들의 도움말을 빌어 '잔'에 관해서 연구해 보기로 했다.
'잔'은 '작은'의 뜻이다.
이 '잔'을 앞소리로 하는 지금의 많은 말들 중에도 '작음'의 뜻을 가진 것이 적지 않다.
작은 솔은 '잔솔'이고 작은 별은 '잔별'이다. '잔뼈', '잔가시', '잔짐승', '잔돌', '잔가지', '잔글씨' 등에서의 '잔'이 모두 '작은'의 뜻을 갖는다.
'잔말', '잔소리', '잔돈' 등에서의 '잔'은 '작고도 많음'을 뜻하고, '잔손', '잔기침', '잔방귀', '잔걸음' 등에서의 '잔'은 '작고도 자주 있음'을 뜻한다. 또, '잔걱정'이나 '잔고기', '잔모래' 등에서는 '잔'이 '자질구레함'을 뜻하고 있다.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는 말에 '잔재비'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큰 일이 벌어진 판에서 잔손이 돌아가는 일 또는 자질구레하고 공교로운 일을 잘하는 짓을 뜻한다. 이 말은 작다는 뜻의 '잔'과 '잡다'의 이름꼴인 '잡이'가 합쳐진 '잔잡이'가 변한 말로 보인다.
잔+잡이=잔잡이>잔잽이>잔재비
벼과에 딸린 여러해살이의 작은 풀을 '잔디'라고 한다. 산과 들 또는 길가에 저절로 나는데, 뿌리줄기가 덩굴성으로 땅 위에 붙어서 퍼져 나가는데 마디마다 가는 뿌리가 내린다. 오월 쯤에 줄기가 나와서 이삭 모양의 꽃이 피기는 하지만, 뿌리가 흙에 잘 엉키는 성질이 있어서 정원에 많이 쓰고 있고, 벌거숭이산의 흙이 깎이지 않게 입혀 심기도 한다. 둑, 무덤 등에 입혀서 흙의 무너짐을 막는 것은 물론, 보기 좋게도 해 주는, 아주 쓸모있는 식물이다.
'잔디'라는 말은 '잔'과 '디'가 합해져 이루어진 말로 보인다. 따라서, 이 말의 말밑을 캐려면 '잔', '디'의 두 말을 따로 생각해 풀어야 한다.
'잔디'에서의 '디'는 '풀'의 뜻을 갖는다. '디'는 원래 그 음이 아닌 '뒤'또는 '뛰'였다.
그래서, '잔디를 덮을'의 뜻을 갖는 말이 옛날책엔 '뒤 두플'로 나와 있고, '작고 연약한 풀'은 '흰뛰'로 나와 있다.
지금 이 말의 '뒤'나 '뛰'는 '띠'나 '떼'로 변하여 원래의 뜻과는 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논둑에 띠풀이 많이 자라 있다."
"무덤에 떼를 입힌다."
국어사전에서는 '띠'와 '떼'가 다음과 같은 뜻으로 나와 있다.
띠; 벼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 이른 봄에 흰 털로 이루어진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옴.
떼; 흙을 붙여서 뿌리째 떠 낸 잔디
그렇다면 '띠'나 '디'는 '풀'을 뜻한다고 볼 수 있고, 여기에 '작다'는 뜻의 '잔'이 앞에 붙은 '잔디'는 '작은 풀'의 뜻이 된다.
이것을 더 확실히 캐기 위해서 '잔디'의 옛말을 찾아보았더니, 그 옛말은 '잔데' 또는 '잔뙤'였다.
'잔'은 땅이름에서는 '좁은'의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의 서쪽에 있는 들의 이름 '잔도랑'이나 경남 사천군 서포면 구랑리 남쪽에 있는 들의 이름 '잔드리' 등에서의 '잔'이 '좁은'의 뜻을 담고 있다. '잔도랑'은 '좁은 도랑'을 뜻하고, '잔드리'는 '좁은 들'을 뜻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도 '좁은 들'이란 뜻의 '잔다리'란 토박이 땅이름이 있다. 이 곳의 '잔다리'는 마을이 둘로 나뉘어 있어 지금의 동교동 쪽의 것을 '웃잔다리', 서교동 쪽의 것을 '아랫잔다리'라고 불렀었다.
'좁다', '잘다', '적다', '짧다', '조그맣다', '줄다', '졸다(쫄다)' 등이 모두 그 친척말이다.
그런데, 이 말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첫소리가 '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발음상으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말들이 모두 한 말에서 나왔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언어 학자들은 '작음'을 뜻하는 말이 모두 '잙' 또는 '잛'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다.
*잙>잙다>작다>적다
*잛>잛다>짧다
*잛>잛다>잘다>줄다
*잛>잛다>졻다>좁다
*잛>잛다>졻다>졸다(쫄다)
'자그맣다'나 '조그맣다'는 '작다'나 '적다'에서 발달한 말이다.
*작다>작+으마하다>작으마하다
*적다>적+으마하다>적으마하다>조그마하다
'잘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 '잔'이다. '작다'를 '작은'으로 바꾼다면 '잘다'는 '잘은'으로 바꿀 수 있는데, 이 '잘은'이 줄어 된 말이 '잔'이다. ///
971200 70우리말 기고 3~4매 우기 새웃 웃으며 배워 볼까요 `진짜 참새(미발표)
웃으며 배워 볼까요
진짜 참새는 뭘까?
참새를 잡아 구워 파는데, 그 옆에선 참새 같은 것을 구워 팔고 있었다. 그래서, 포장마차에 이렇게 써 붙였다.
"참 참새 있음"
그랬더니, 그 옆의 다른 포장마차에서 이렇게 또 써 붙였다.
"진짜 참 참새 있음"
이 포장마차에서도 질 수야 있나.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또 써 붙였다.
"정말로 진짜 참 참새 있음"
///
□ '참'은 '정말 제 모양'이란 뜻
'참새', '참비둘기', '참억새', '참나리'처럼 동식물 이름에서의 '참'은 '정말 제 모양'이란 뜻이다. 즉, '진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앞에 '진짜'라는 말이 또 붙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참기름'이 '진짜기름'이란 뜻인데, '참 참기름'이란 말이 또 있을 까닭이 없듯이.
가을은 역시 모든 것이 넉넉해 보였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누런 들판에선 벼포기마다 알알이 살진 이삭이 버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등산길에 나선 찬이는 삼촌을 따라 풀섶을 헤치며 산비탈을 천천히 올랐다.
"엇. 삼촌, 이게 뭐야?"
산을 오르던 찬이가 갑자기 바지 자락을 보며 물었다. 바지 아랫부분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식물의 줄기가 달라붙어 끌려오고 있었다.
"하하하. 그 식물이 찬이를 도둑으로 알았던 모양이구나."
"왜요? 이 줄기는 도둑에게만 붙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식물 이름을 알고 나면, 너도 내가 한 말의 뜻을 알게 될 거다."
"이 식물 이름이 뭔데요?"
"하여튼 재미있는 이름이지. 그럼, 오늘은 등산하는 김에 이 식물뿐 아니라 다른 가을풀의 이름도 공부해 보는 게 어떻겠니? 꽤 재미있을 거다."
"예, 삼촌."
삼촌은 산길을 오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산자락은 꼬까옷을 입은 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싹 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허리가 구부러진 백발 할머니처럼 머리를 푹 숙여 피는 할미꽃. 정말 할미꽃은 꼬부라진 할머니를 닮았다.
식물 이름에는 이처럼 그 모양을 따서 지은 것이 많다.
우선 물건(연장)의 이름을 딴 것들을 보자.
우리 농촌에서 많이 쓰는 연장에 '갈퀴'라는 것이 있다. 손바닥을 펴 무엇을 긁듯이 그 손가락들의 끝을 ㄱ자 모양으로 오무린 모양의 이 연장은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검불 같은 긁어 모을 때 사용한다. 식물들 중에는 그 잎이나 꽃잎의 끝이 이 갈퀴의 모양으로 갈라져 꼬부라진 것이 많은데, 이런 식물들 중에 '갈퀴'자가 들어간 것이 있다. '갈퀴나물', '살갈퀴' 같은 식물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나뭇잎이나 검불 같은 땔감이 잘 타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휘젓는 막대를 '부지깽이'라 하는데, 그 줄기가 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부지깽이나물'이 있다. '젓가락풀', '작두콩', '장대나물', '장대냉이' 등도 그 줄기가 젓가락이나 장대처럼 길어서 나온 이름들이다. '우산방동사니'라는 식물도 있는데, 그 꽃 모양이 꼭 우산을 활짝 펴 든 것 같은 모양이다.
'나팔꽃'은 그 모양이 나팔을 닮았고, '초롱꽃'은 초롱을 닮았다. '골무꽃'은 골무 모양이고, '금방망이'는 노란 방망이 모양이다.
식물 중에는 그 꽃이나 잎이 핀 모양이 머리에 쓰는 것과 같은 것이 참 많다. '패랭이꽃', '족두리풀', '투구꽃' 등의 이름은 바로 그러한 모양을 가진 식물들이다. '패랭이'는 대오리로 결어 만든 갓인데, 옛날에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가 썼던 것이다.
'은방울꽃'은 흰 빛깔의 방울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는 모양이고, '접시꽃'은 접시 모양, '놋젓가락나물'은 놋쇠 빛깔의 젓가락 모양의 줄기를 가졌다. '도깨비부채'나 '짚신나물'도 역시 그 모양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범부채'는 부채처럼 넓은 잎을 가졌다.
동물의 몸 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식물 이름도 많다. 용의 머리를 닮은 '용머리', 범의 귀나 꼬리를 닮은 '범의귀', '범꼬리', '흰범꼬리' 등.
'다리'나 '발톱'이란 말이 들어간 것에는 '병아리다리', '낙지다리', '매발톱꽃', '노랑매발톱' 등이 있다. '꿩의다리'라는 말이 들어간 식물도 많다. '금꿩의다리', '은꿩의다리', '참꿩의다리', '큰꿩의다리', '좀꿩의다리', '멧꿩의다리', '산꿩의다리' 등. '발'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에는 '매화노루발', '게발선인장'이 있고, '꼬리'를 넣어 지은 이름에는 '거북꼬리', '뱀꼬리고사리'가 있다.
'쥐'자가 들어간 식물도 있는데, 쥐의 손(발) 같다고 해서 이름붙은 '쥐손이', 열매가 쥐의 눈처럼 까맣고 작다고 해서 이름붙은 '쥐눈이콩', 쥐의 꼬리처럼 긴 줄 모양의 튀는열매를 가진 '쥐꼬리망초' 등이다. '튀는열매'란, 거죽이 터지며 씨가 튀어나오는 겹씨방열매를 말하는데, 나팔꽃씨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개수염', '까치수염'은 수염을 닮아 나온 이름이고, '벼룩나물', '벼룩아재비'는 벼룩 모양의 작은 튀는열매를 가져 나온 이름이다.
식물 이름중에는 '쇠'자가 들어간 것은 소의 어느 부분을 닮아 나온 이름이다. 소의 귀처럼 생겼다는 '쇠귀나물'이나 소의 무릎 같다는 '쇠무릎' 같은 것이 그런 보기에 속한다.
꽃이 꽃대에서 층층이 피는 것에는 '층층이꽃', '층꽃풀', '층층잔대'처럼 '층'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식물 이름 중에는 '나도밤나무', '나도강남콩', '나도닭의덩굴', '나도냉이', '나도송이풀'처럼 '나도'자가 들어간 것이 있는가 하면, '너도바람꽃', '너도개미자리', '너도방동사니', '너도양지꽃'처럼 '너도'자가 들어간 것도 있다. 이러한 식물들은 그 모양이 그것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즉, '너도바람꽃'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람꽃'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비교하면 형편 없다는 뜻으로 붙을 때는 '얼치기완두'처럼 '얼치기'라는 말이 붙기도 한다.
작은 식물일 때는 '애'나 '애기', '좀'이라는 말이 붙는다. '애귀리', '애기나리', '애기솔나물', '애기가두배추', '애기가지별꽃', '애기땅꽈리', '애기땅빈대', '애기똥풀', '좀딱취', '좀바위솔'처럼.
둥글거나 몽툭할 때는 '둥글레', '둥근잔대', '구슬냉이', '구슬바위치', '구슬갓냉이' 같은 이름이 붙고, 끝이 뾰족하거나 따끔한 가시가 돋아 있을 때는 '가시꽈리', '가시엉겅퀴', '도깨비바늘', '바늘골', '바늘명아주', '바늘여뀌', '도둑놈의갈구리'처럼 '가시', '바늘', '갈구리' 같은 말이 붙는다. '고슴도치풀', '고슴도치선인장'은 고슴도치의 털처럼 따갑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도둑놈의갈구리'란 이름은 아주 재미있다.
이 식물은 산이나 들에 흔한 콩과의 풀인데, 꼬투리 거죽에 갈고리 모양의 잔 털이 많아 스치면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는다. 식물 중에는 이런 것이 꽤 많은데, 이것은 그 식물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방법이다. 즉, 동물이나 사람이 그 곁을 지나면 그 몸에 달라붙어 어디론가 갈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바람 같은 것에 매이지 않고도 그 씨를 멀리 퍼뜨려 그 자손을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도둑놈의갈구리'라는 식물도 그런 식물이다. 스치면 여지없이 달라붙는다. 이 식물이 '도둑놈의갈구리'인 것은 도둑처럼 몰래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붙는 갈구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산에서 이 식물이 몸에 붙은 사람을 보고 '도둑'이라고 놀리는 것은 이 식물이 특히 도망가는 도둑들의 몸에 잘 달라붙는다는 옛 이야기를 생각해서이다.
그 줄기나 잎이 따가운 풀에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처럼 '며느리'라는 말이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이름은 시어머니가 집안의 어른이던 시절,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식물의 이름이다.
마디풀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인 '며느리밑씻개'는 그 잎이 화살촉꼴이고, 잎과 줄기에는 잔 가시가 많아 몹시 껄끄럽다. 이 식물은 길가에도 많이 나지만, 옛날 시골 뒷간(화장실) 울타리에도 잘 난다. 화장지나 종이가 귀했던 시절, 시어머니는 뒷간 옆에 따로 심어 놓은 부드럽고 넓은 호박잎으로 뒤처리를 했으나, 며느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호박잎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어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위해 그것을 언제나 몇 잎이라도 남겨 두어야 했다. 그래서,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호박잎 옆의 이 까칠까칠한 식물의 잎을 따서 써야 했다.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하며 뒷간 근처에서 고통스럽게 썼던 풀. 그것이 바로 이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었다.
열매 모양이 며느리의 그것처럼 미워 보여 나온 '며느리배꼽'이라는 풀도 있다. 또, '며느리주머니'라는 풀은 꽃잎 일부가 주머니 모양으로 되어 있는 풀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허리춤에 따로 챙겨 차는 빈 주머니 같아서 나온 이름이다.
'끈끈이대나물', '끈끈이장구채', '끈끈이주걱', '끈끈이귀개'처럼 '끈끈'자가 들어건 것은 겉이 끈끈한 식물이다.
또, '털장구채', '털여뀌', '털동자꽃', '털꼬리풀', '털질경이'처럼 '털'자가 붙은 식물은 그 겉이 보들보들하다. '강아지풀'은 그 이삭이 꼭 강아지의 폭신한 털을 닮았다.
사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한다. '개구리미나리', '개구리자리', '개미자리' 등은 주로 개구리가 사는 늪에서 산다. '올챙이자리'라는 식물도 올챙이가 사는 물가에서 난다.
'갯기름나물', '갯길경이', '갯나무재', '갯댑사리', '갯쑥부쟁이', '갯지치'처럼 '갯'자가 붙은 이름의 식물들은 거의 다 갯가에 나는 것들이다.
물에서 나는 것은 '물수세미', '물여뀌', '물억새'처럼 '물'자가 붙는다. '미나리'라는 이름도 '물에서 나는 나리'라는 뜻이다. '미'는 '물'을 뜻한다.
'갈대', '가라지(갈아지)'처럼 '갈'자가 들어건 것도 물가 또는 축축한 땅에서 나는 식물이다.
'두메바늘꽃', '두메분취', '두메꿀풀', '두메담배풀', '두메기름나물'(금강산특산)'은 깊은 산속에서 나고, '섬제비꽃', '점잔대', '섬자리공', '섬기린초'는 섬에서 주로 자란다.
'그늘바람꽃', '그늘사초', '그늘취', '그늘돌쩌귀' 들은 그 이름 그대로 그늘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고, '땅채송화', '땅빈대', '땅귀개', '땅토란', '땅콩' 등은 땅에 착 달라붙어 자라는 식물들이다.
어느 일정한 지역에서만 잘 보이는 것은 그 지역의 땅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광릉골무꽃', '광릉제비꽃', '광릉갈퀴' 등은 광릉 숲에서, '금강봄맞이꽃', '금강분취', '금강초롱'은 금강산에서만 주로 난다. '낭림투구꽃', '남산제비꽃', '명천바늘꽃', '태백제비꽃', '한라돌창포' 등도 각기 그 지역에서 많이 자생한다는 식물이다.
'일년감'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 식물에서 나은 열매가 바로 우리가 흔히 먹는 '토마토'이다. 그래서, 전에는 '토마토'를 '일년감'이라고도 했었다.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백일(백날)'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다는 뜻이다.
'달맞이꽃'은 밤중에 피어 나온 이름이고, '봄맞이꽃'은 이른 봄, 봄을 맞이하는 시기에 꽃이 핀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좋거나 나쁘다는 뜻을 드러낸 이름도 있다.
'참외', '참깨', '참나리', '참억새', '참명아주'처럼 '참'자가 들어가면 그 식물이 좋다는 뜻이고, '개똥쑥', '개마디풀', '개망초', '개맨드라미', '개비름', '개쑥갓', '개양귀비', '개나리', '개여뀌'처럼 '개'자가 들어가면 그 식물이 별로 좋지 않다는 뜻이다.
'독미나리', '독말풀', '독보리'처럼 '독'자가 들어간 식물은 독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산길을 오르며 가을풀 이름들을 하나하나 듣자니 찬이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름들을 붙인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감탄스러웠다.
만지면 금방 물이 번질 것만 같은 새빨간 단풍잎 하나가 찬이의 손등 위로 포르르 날아 떨어졌다. 화창한 하늘 아래 아까보다 더 아름답게 치장한 듯한 산자락들이 그 색깔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
여기서의 '새의'는 '풀의'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풀'도 '새'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말에 '억새'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새(풀)의 새(사이)에 새가 있다."
안 되는 말 같지만, 뜻을 잘 알고 보면 잘 되는 말이다. ///
열매
981100 70우리말 기고 16매 우기 `소년 아름다운 우리말09 `고추
고추
- '쓴 풀'의 뜻인 '고초(苦草)'에서 나온 말 -
그리 따갑지 않은 가을의 햇살이 마당 안에도 함빡 비치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서 고추 꼭지를 따고 계셨다.
"올해도 고초가 풍년이야. 이 고초 열매 좀 봐라. 좀 탐스러우냐."
"예, 어머니. 고추가 이만하면 올 김장 담그는 데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아, 충분하다마다. 이번에 시골에서 보내 온 이 고초 알갱이는 모두 큼직큼직하기도 한 데다가 매운 맛도 아주 강한 것 같아서 더 그렇지."
할머니와 엄마는 고추 꼭지를 따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영아는 대화 중에서 할머니는 '고초'라 하고 엄마는 '고추'라 하는 것이 이상했다. 왜 같은 열매를 두고 '고초'라 하기도 하고 '고초'로 하기도 할까?
"할머니, '고초'가 맞나요, '고추'가 맞나요?"
"아하, 우리 영아가 또 궁금한 게 있나 보구나. 표준말은 '고추'지. 그런데, 그 원래의 말은 '고초'였어."
"원래의 말이라는 게 뭔데요?"
"처음에는 '고초'라 했다 이 말이지."
"그런데, 그게 왜 '고추'가 됐어요."
"말은 조금씩 변한게 마련 아니겠니. 그게 궁금하다면 이 할미가 이야기를 좀 해 주마. 이리 곁에 와 앉아라."
"할머니, 고추가 너무 매워요. 그냥 여기서 들을께요."
"그래라, 그럼."
멍석에 널어 놓은 고추의 빠알간 빛깔이 무척이나 짙어 보였다.
'… 백설같은 면화 송이
산호같은 고추다래.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 명랑하다. …'
<농가 월령가> 8월령(음력 8월분)의 일부이다.
이 노래에서 '고추다래'는 '고추 열매'의 뜻이다. 고추를 처마에 널어 놓은 모양을 보고 '가을 볕이 환하게 밝다'고 했으니,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고추가 빠알갛게 널린 모습은 예나 오늘이나 가을의 멋진 풍경의 하나로 보였던 듯싶다.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고추이건만 맛은 그 빛깔처럼 아름답지가 못하다. 맛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고추는 그 좋은 빛깔값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추는 다른 열매들이 갖지 못한 맛을 혼자 갖고 있다. 매운 맛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어서 이 맛을 필요로 하는 음식인 김치 같은 것에 좋은 양념으로 들어가 주고 있다.
달고 고소한 것만 '맛'이 아니다. 혀를 놀라게 하는 자극적인 맛도 '맛'이다. 자극적인 맛에는 짠 맛, 신 맛, 쓴 맛 등이 있지만 매운 맛은 더없이 자극적인 맛이다.
고추가 이 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 조상들은 그 맛을 '맵다'고 하질 않고 '쓰다'고 했다. '맵다'는 말은 원래 '맛'의 한 가지로 쓰인 말이 아니라 '심하다'나 '독하다'는 뜻으로나 썼던 말이었다.
고추가 원래 '고초(苦草)'던 점을 생각하면 고추의 맛을 '쓰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쓸고(苦)자, 풀초(草)자. '쓴 풀'이라는 뜻으로 썼으니 말이다. 즉, 고추가 우리 음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심하다'는 뜻의 '맵다'는 말이 '쓰다'는 말 대신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 비길쏘냐.'
여자들의 시집살이가 심했던 옛날, 고추의 매운 맛을 이처럼 '심한 고생'에 비기기도 했다. '고초당초'에서 '당초(唐椒)' 역시 고추를 가리킨다. 고추가 중국(당나라)으로부터 들어와 이런 이름으로도 불렸던 것이다.
고추의 옛말이 '고쵸'임은 <훈몽자회>라는 옛 책에도 나와 있다. '초(椒)'자를 풀어 '당쵸쵸'라고 했다.
고추는 전부터 '지독함'을 나타내는 데 잘 이용되어 왔다.
'고추는 작아도 맵다'
'고추바람'(매우 쌀쌀한 바람)
고추처럼 작고 그 모양도 비슷한 것은 모두 '고추'자를 붙였다. '고추자지', '고추상투', '고추감'(작고 끝이 뾰족한 감) 등에서의 '고추'가 바로 그런 보기들이다.
그렇다면 '고초'라는 말이 왜 '고추'라는 말로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말에서 앞의 '오'라는 음이 있을 때 그 뒤에 따르는 홀소리의 '오'음은 곧잘 '우'로 바뀌는 말버릇에 의한 것이다. 즉, '대초'가 '대추'로, '호도'가 '호두'로 변해 온 것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고추'를 '고초'라 한다. 이것은 '고추'의 원말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쓰디쓴 풀'의 뜻인 '고초'는 '고추'가 되고, 이제 그 '고추'는 다시 된소리로 '꼬추'로 돼 가고 있다. ///
식물-나무
990300 70우리말 기고 20매 우기 새벗 우리말 교실 `나무
나무
'나다'의 뜻을 갖춘 '남'에 나온 말인 듯
옛말은 '나모', 사투리는 '남구', '남기' 등
삼월이 되니 나뭇가지도 한창 생기가 있어 보였다.
삼촌과 함께 공원에 나온 은솔이는 나무 가지마다 헤집고 나오는 파란 잎싹을 볼 수 있었다.
"벌써 싹들이 뾰족뾰족 가지들을 뚫고 나오고 있네요. 이제 이것이 파란 잎파리들이 되어 이 공원 안을 온통 파랗게 물들이겠죠?"
이제 그 싹들 중에는 아름다운 꽃을 내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을 홀려 주기도 할 것이고.
"은솔아, 그건 그렇고, 내가 묻는 대로 아주 빨리 대답해 봐라. 문제는 아주 쉬운 것이니까."
삼촌이 은솔이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밤나무엔 밤이 열리지? 그럼 감나무에는?"
"감이 열리죠."
"그럼 잣나무엔?"
"잣이오."
"배나무엔?"
"배요."
"그럼, 소나무엔?"
"소가……. 아 참, 삼촌한테 속았네."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소나무에서 어떻게 소가 열리겠니? 솔방울밖에 더 열리겠니. 내 언젠가 설명을 해 준 일이 있지. 소나무의 옛말은 '솔나무'라고. 그런데 말이다. '나무'라는 말이 옛날에도 '나무'였을까?"
"글쎄요. 어떻든 지금의 말 '나무'와 비슷한 말이 아니었을까요?"
"내 그래서 얘긴데, 오늘은 '나무'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줄 거다. 잘 들을 수 있겠니?"
"전 삼촌한테 늘 배우고 있잖아요?"
"알아 주어 고맙다. 은솔이한테는 이 삼촌 같은 자상한 선생님이 또 어디 있겠니. 하하하."
공원 어디선가에선 맑은 새 소리가 울려 왔다. 이른 봄의 햇살이 제법 따스하게 살갗에 다가와 주었다.
사람들은 나무의 '말없음'을 높이 산다. 언제나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자라는 나무. 복잡하고 말많은 세상 속에 묻혀 사는 이들에게 나무는 '침묵'의 교훈을 준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영문학자 이양하 선생님은 자신의 수필 '나무'에서 나무의 덕성을 이렇게 칭송했다. 그래서, 자신은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송나라 '형씨(荊氏)'라는 땅에는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되었다.
그 나무들 중에서 둘레가 서너 뼘 정도의 나무는 원숭이 잡아매는 말뚝감으로, 서너 아름의 나무는 큰 벼슬아치 집의 기둥감으로, 일고여덟 아름의 나무는 귀인이나 잘 사는 장사꾼들의 널판지 감으로 잘려 나갔다. 그 나무들은 이렇게 목숨을 다하지 못하고 도끼날에 죽어 나갔다.
그런데, 제나라 땅의 '역수'라는 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 늪을 가릴 정도였지만, 구경꾼들만 줄을 잇고, 그 나무를 잘라 가는 이가 없었다. 어느 물건도 만들 수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나무를 곧잘 사람에 비유하곤 했던 중국 장자의 글 <인간세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쓸 만한 사람은 자라지 못하는데, 쓸모 없는 인물들은 무성하게 자라 위엄과 세도를 부리는 그 당시의 세상을 풍자한 것이다.
우리 옛 문헌들에 보면 '나무'가 '나모'로도 나오고, ' '이라는 말로도 나온다.
'나무'나 '나모'는 원래 '난다(생겨난다)'의 뜻인 '남'이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나다'의 이름씨꼴(명사형)인 '남'과 뒷가지(접미사)인 '오'가 합쳐져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남+오=나모>나무
옛날 문헌에 보면 '나무'라는 말이 '나모'라는 말로 더 많이 나온다.
^ '나모 아래 안즈샤'
(나무 아래 앉으시어) <월인천강지곡>
^ '그 나못 불휘를'
(그 나무 뿌리를) <석보상절>
그러나, 문헌들에선 '나모'보다는 ' '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뮐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거니와) <용비어천가>
^ '성(城)엔 프른 남짓 내 얼의엿도다'
(성에는 푸른 나무에 연기가 서리었도다) <두시언해>
^ '향(香)의 얼구른 남기오.'
(향기의 얼굴은 나무요.)<법화경언해>
이 옛말 '남ㄱ'이 지금도 남아 '남구' 또는 '남그'라는 사투리로도 통하고 있다.
"남구에 올라가지 마라."
"남기 해 왔냐?"(나무를 해 왔느냐?)
"소남기 우거졌다."(소나무가 우거졌다.)
지금도 시골 사람들 중에는 '나무'라는 말을 '남구'라는 말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방언 '남그(남구)', '남기'가 '나무'의 옛말이 ' '이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
970600 70우리말 기고 15매 우기 새벗 우리말 교실 `나무 이름 `식물 이름
나무 이름
잎이나 꽃 모양 따라서 정해지기도
꼴 비슷해 '나도'자 붙은 것도 많고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일인 오늘은 날씨가 더없이 맑았다.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국립묘지에 나온 한솔이도 앞에서 안내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 손을 잡고 한 묘소를 찾았다.
"할솔아, 작년에도 와서 설명을 했다만, 네 할아버지 묘소란다."
할머니는 묘소에 닿자마자 묘비에 적힌 할아버지의 이름을 가리키며 먼저 입을 여셨다.
"네, 할머니 잘 알아요. 6.25 때 북한군과 맞서 싸우다가 철원에서 장렬하게 전사를 하셨다던……."
한솔이는 들고 온 꽃다발을 바치고 정중히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고개 숙여 참배를 했다. 참배를 하는 동안 할머니의 눈가에는 작년과 똑같게 눈물이 글썽하셨다.
참배를 마치고 나서 한솔이는 할머니, 아버지로부터 6.25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 묘소에도 사람들이 하나하나 찾아들고 있었다.
"한솔아, 이제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찾아 뵈었으니 우리 셋은 저쪽 솔나무 밑에 가서 좀 쉬었다 가자꾸나."
할머니도 기분을 돌리기라도 하셔야겠다는 듯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셨다. 한솔이는 걸어 가며 여쭈어 보았다.
"솔나무요, 할머니? 그런 나무도 있나요?"
한솔이는 조금 전 '솔나무'라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나무 이름에 생각이 묶여 있었다.
"허허허……. 한솔인 그런 말을 처음 들어 본 모양이구나. 지방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소나무'란 말 대신 '솔나무'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아니, '소나무'를 '솔나무'라고도 해요? 이상한데요."
"그렇지만, '소나무'는 나중에 나온 말이고, 원래 '솔나무'였지. 한솔아, 네 이름이 '큰 소나무'란 뜻의 '한솔'이지 않니? 아무래도 '솔'과 '솔나무'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 주어야겠다."
"예, 아버지. 이 기회에 자세히 좀 알아 두었으면 좋겠어요."
나무 밑은 다른 곳보다 한결 시원했다. 묘지 주위에는 소나무 외에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나무들이 초여름을 맞아 푸른 빛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맞춤법에선 'ㄹ탈락'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탈락 현상은 ㄴ과 ㄹ의 부딪침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ㄹ과 ㅈ의 부딪침, ㄹ과 ㅅ의 부딪침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불+집갱이=불집갱이>부집갱이
`쌀+전=쌀전>싸전(※쌀가게)
`불+삽=불삽>부삽
`풀+서리=풀서리>푸서리
'소나무'란 이름의 아버지격이 '솔나무'라는 사실은 '솔잎', '솔가지', '솔가래', '솔방울' 등의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잘 알 수가 있다.
'소나무'란 이름은 이처럼 그 가느다란 잎 때문에 이름이 나온 것인데, 잎 모양을 따서 이름을 얻은 나무에는 또 '팔손이나무'가 있다. '팔손이'는 '손이 여덟'이라는 뜻인데, 잎이 여덟 갈래로 나 있기 때문이다.
'삼지닥나무'라는 나무는 가지가 세 갈래로 뻗어 그 이름이 붙었다.
'함박꽃나무'의 '함박꽃'은 그 모양이 마치 속이 오목한 곡식 그릇인 '함박'과 같다.
'쥐똥나무'라는 나무도 있다. 이 나무에선 쥐똥같은 열매가 열린다.
식물 이름 중에는 재미있게도 '나도'라는 앞말이 들어간 것이 꽤 많다. '나도밤나무', '나도닭의덩굴', '나도개피', '나도수영', '나도송이풀', '나도옥잠화'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나도'라는 말은 모양이 그와 비슷하다는 뜻을 말한다. 즉,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비슷하고, '나도닭의덩굴'은 '닭의덩굴'과 비슷한 모양이다.
식물 이름 중에는 '참'자가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참가시나무', '참죽나무', '참나리', '참단풍나무', '참싸리', '참피나무' 등이 다 그런 나무인데, 이런 나무들은 그 모양이 모두 좋아 보여서 나온 것이다.
반대로 그 모양이 나빠 보이거나 작아 보이면 '좀'자가 붙는다. 예를 들어, '좀싸리', '좀복숭아나무', '좀회양목' 등이다. 작은 도둑질하는 도둑을 '좀도둑'이라 하고, 마음이 좁은 사람을 '좀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붙는 앞말 중에는 '개'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나리'. 이 꽃은 모양은 '나리꽃(백합)'과 비슷한데, 크기가 작아 '개나리'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개다래나무', '개물푸레나무', '개죽나무', '개가문나무', '개앵두', '개양귀비' 등이 그것이다.
우리 나라 식물은 아니지만 '빵나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도 있가. 이 나무는 열매가 20센티쯤 되는 열대 식물인데, 열매가 빵 맛이 나서 토인들의 식량으로 쓰인다.
'감나무', '밤나무' 등은 그러한 열매가 열어 그 이름이 나온 것이지만, '참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뽕나무' 등은 열매와는 관계 없는 이름이다.
나무심기에 쓰는 말들 중에는 순 우리말로 된 것이 많다.
"묘목을 5주 식목했다."
그러나, '묘목'이란 말은 '나무모'라는 순 우리말이 있고, '5주'라는 말은 '다섯 그루'라는 쉬운 우리말로 쓸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말은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
"나무모를 다섯 그루 심었다."
나무를 심을 때 그 심을 곳의 흙이 어떤 성질의 것이 중요하다. 이 때 어른들이 쓰는 '사토'니 '이토'니 하는 것도 '모래흙'이니 '진흙'이니 하는 말로 쓸 수 있다. '참흙', '거름흙', '속흙', '겉흙' 하는 것도 좋은 우리말 흙이름이다.
'다년생'이니 '1년생'이니 하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지만, '여러해살이', '한해살이'가 순 우리말이다.
"과수는 수종에 따라서 잘 선택하되, 접목을 잘 하고, 대목을 잘 받쳐 주어야 하며, 좀 성장하면 정지도 잘 해 주어야 결실이 좋다."
얼른 들어서는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다음과 같은 순 우리말로 바꾸면 알아 듣기가 훨씬 편할 것이다.
"과일나무는 나무 종류에 따라 잘 고르되, 접붙이기를 잘 하고, 버팀대를 잘 받쳐 주어야 하며, 좀 자라서는 가지치기를 잘 해 주어야 열매맺음이 좋다."
씨를 뿌리는 방법에도 '점뿌림', '흩어뿌림', '골뿌림', '무더기뿌림' 같은 좋은 우리말이 있다.
심은 나무를 보호하려면, 바람이나 눈, 모래로부터 잘 보호해야 하는데, 여기서 흔히 쓰는 '방풍림'은 '바람막이숲', '방사림'은 '모래막이숲', '방설림'은 '눈사태막이'라는 말로 쓰는 것이 더욱 좋다.
'나무'의 옛말은 '나모'이다. 그리고, 더러는 지방에 따라 '남긔'란 말을 써 온 곳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나무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국립묘지 안 묘역엔 참배객들이 더욱 많아졌다. 솔잎 사이로 불어 오는 솔바람이 한결 시원했다. /// 원고 작성 1997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