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분들의 영현을 안치한 국립묘지다.지형적으로는 관(官)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아
있다고 하는 관악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우리는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불리는 지세로
이루어져있다.풍수지리에서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동작진이라고 불렀다.뒤에는 뛰어난
산세에 앞에는 한강이 용틀임하듯 흐르고 있어 풍수상 가장 좋은 길지로 꼽힌다.

이 지역이 풍수가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명종시대의 일이다.
어느날이었다.중종의 후궁 숙용 안씨(선조대에 창빈으로 추증됨) 소생이덕흥군 이초의 집으로 지관을 자처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지관은 어떤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덕흥군이 지관을 살피면서 물었다.문정왕후의 서슬이 퍼렇고 명종이 보위에 오른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덕흥군은
중종과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의 이복형이다.명종의 이복형제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역모에 말려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숙용 안씨 묘를 이장하셔야 합니다."
지관이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방자하다.네가 감히 왕실의 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냐?"
덕흥군이 펄쩍 뛰었다.
"소인이 방금 조선 최고의 길지(吉地 풍수지리상의 명당)를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네놈들의 수작을 모를 줄 아느냐?길지가 어떠느니 풍수가 어떠느니 하면서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 아니냐?
금계포란(金鷄抱卵 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재물운이 생기고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 명당자리를
의미함)형이라도 보았느냐?"
"금계포란이요?그건 아무리 귀해도 닭이 아닙니까?"
"그럼 봉황이라도 보았다는 말이냐?"
"봉황은 보지 못했으나 공작을 보았습니다."
"공작을 보았다고?"
"그렇습니다.공작포란의 길지를 보았습니다."
공작포란은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을 말하는 것으로 풍수지리가들 사이에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허면 네놈의 조상 묘를 그곳에 쓰면 될 것이 아니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허나 그런 길지는 아무나 함부로 쓰면 오히려 화를 당합니다."
"그곳이 어디냐?"
"노들나루 위에 동작나루가 있습니다.옛사람들이 왜 그 자리를 동작나루라고 했겠습니까?"
"그러한 길지는 어찌 너만 알고 있는 것이냐?"
"길지는 쉽사리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허나 이 일은 누구에도 발설하지 마십시요.다만 숙용마마의 묘를 이장하는 까닭을 물으면
양주 묘에 물이 차고 흉한 꿈을 자주 꾼다고 하십시요.수십 명의 군왕이 나올 지경입니다."

지관은 절을 하고 떠났다.덕흥군은 지관이 떠나자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덕흥군은 평소에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남모르게 공부를 하였다.그러나 생모의 묘라고 해도 함부로 이장할 수 없었다.묘를 이장하려면 임금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이는 문정왕후의 의심을 살만한 일이었다.
문정왕후는 무서운 여인이었다.그러나 수십 명의 군왕이 나온다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래,내일 한번 내가 살펴보자.'
덕흥군 이초는 지관을 데리고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이튿날 종자 하나를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동작나루로 갔다.그는 정인지의
증손녀와 혼례를 올려 슬하에 세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아,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동작나루에서 바라보자 관악산 공작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들 사이에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길지가 있었다.지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땅이 천하의 명당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덕흥군은 하루종일 동작동 일대의 산을 돌아다녔다.그는 산의 자세에 깊이 감탄하고 어머니인 숙용 안씨의 묘를 이장할 장소를
물색했다.그러나 묘를 이장하는 것은 문정왕후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그는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 얼굴이 창백하게 되자
문정왕후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무슨 일이 있느냐?얼굴이 창백하구나."
문정왕후가 덕흥군을 살피면서 물었다.
"특별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나 흉몽을 자주 꾸고 있습니다."
"흉몽이라니...무슨 흉몽을 꾼다는 것이냐?"
"꿈에 생모가 자주 보입니다."
"숙용 안씨가 꿈에 보이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며칠째 계속 꾸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은 묘에 물이 차는 것이다.이장을 하도록 하라."
문정왕후가 흔쾌히 숙용 안씨의 묘 이장을 허락했다.이에 덕흥군은 다음 해에 묘를 동작동으로 이장했다.숙용 안씨의 묘는
이후 동작릉으로 불리게 되었고 선조가 즉위하자 창빈으로 추증하여 창빈능이 되었다.
칭반능의 묘역은 풍수지리가들에 의해 조선에서 가장 좋은 명당으로 꼽힌다.묘역에서는 바로 아래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남산과 북악을 지나 북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덕흥군의 어머니 숙용 안씨는 안탄대의 딸로 9세에 대궐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정숙하고 단정하여 중종의 모후인 정현대비의 총애를 받았다.
"아이가 참으로 예쁘구나.네가 글을 배워 보겠느냐?"
"천한 소녀가 어찌 대비마마께 글을 배우겠습니까?"
안씨는 처음에 사양했다.
"괜찮다.내가 할 일이 없어 그러니 글이나 배워 보거라."
정현대비는 안씨를 딸처럼 귀여워하면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안씨는 머리가 비상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달았다.정현대비는 더욱 기뻐하며 안씨에게 사서오경까지 가르쳤다.
"아이가 성품까지 얌전하구나."
정현대비는 안씨가 점점 마음에 들어 아들인 중종을 모시는 상궁이 되게 했다.미모도 뛰어나고 학식도 높은 안씨는
중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게 되었다.그녀는 승은을 입자 상궁에서 숙원,숙원에서 숙용으로 계속 품계가 올라갔다.
데궐에서는 해마다 친잠례를 행한다.뽕잎을 따고 누에에게 먹이는 이러한 행사는 왕비를 비롯하여 부인들이 하는데
안씨는 추호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어서 문정왕후마저도 그녀를 사랑했다.
중종이 재위 39년 만에 승하했다.후궁들은 모시던 임금이 죽으면 절에 들어가 칩거하는 것이 관례였다.

"대비마마,하직 인사올립니다."
안씨는 문정왕후를 찾아가 절을 했다.
"어디로 가기에 하직 인사를 하는 것이냐?"
"대행왕께서 승하하셨으니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면서 평생을 보낼 것입니다."
"어느 절로 가려느냐?"
"인수사로 들어가겠습니다."
문정왕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굳이 절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나하고 대궐에서 같이 지내도록 하게."
안씨는 인수사에 들어가 남은 생을 보내고자 했으나 문정왕후의 배려로 대궐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안씨는 명종이 즉위하고 4년이 지났을 무렵 사가를 방문하였다가 돌연 죽음을 맞아하였다.
그녀의 나이 42세였다.
그녀는 중종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영양군 이거는 아들이 없어서 양자를 들였고
차남인 덕흥군 이초는 3남 1녀를 낳았다.그러나 덕흥군은 불과 29세에 요절하였다.
명종은 이복형제들 중에서도 숙용 안씨 소생의 영양군과 덕흥군을 가까이 하였다.
아들이 없었던 명종은 덕흥군의 세 아들 중 3남인 하성군 균을 유난히 총애했다.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숙용 안싸의 손자 하성군 균이 즉위 하니 이가 곧 선조이다.
숙용 안씨는 창빈으로 추증되고 덕흥군응 덕흥대원군이 되었다.
덕흥대원군 이초가 생모인 숙용 안씨의 묘를 이장한 뒤에 그의 자손 중에서 왕이 14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름없는 지관의 말대로 동작릉은 천하의 명당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창빈 안씨가 묻힌 동작릉 일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 수많은 국군 전사자들을 위한 국군묘지로 조성되었다가
국립묘지가 들어서게 되었다.국립묘지는 처음에 국군묘지라는 이름으로 장충동 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전사자들을 안장시키기 위해 더욱 넓은 묘지가 필요하게 되자 국방부가 사당동과 동작동 일대 40만여 평을 확보하여
국립묘지라고 명명했고 다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바뀌었다.현재까지 무명용사를 비롯하여 약 16만 명 이상의 순국영령들이
잠들어 있고 이승만 대통령 부부,박정희 대통령 부부 김대중 대통령도 안장되었다.
16만 명의 영령들,태어나고 죽은 곳은 각자 다르지만,그들을 찾아와서 흘리는 가족들의 눈물로 한강의 수량이
더욱 풍부해졌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순국한 영령들이 잠든 동작동이 풍수지리의 길지여서인지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 숙에서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한강의 기적도 순국 영령들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은 겨레의 성역으로
국립묘지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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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서울특별시가 2014년 2월에 발간한 <한강이야기 30선 한강이 말걸다>에서 옮겨온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