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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通] 귀촌·귀농 전문강사 겸 체험놀이창작연구소장 송종대 씨 | |
◆농촌은 나의 운명 이달 1일 경북 의성군 안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송 소장을 만났다. 대뜸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게 잡으셨다”며 인사한다. 딱 10년 전인 2003년 4월 1일 이곳에 정착했다는 설명이었다. “마흔이 되면 농촌에서 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요. 제가 반(反)도시적 성향이 강한 편이거든요. 아직 자동차 운전면허도 없을 정도랍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집사람도 ‘차라리 이혼하자’고 할 정도로 귀촌을 반대했습니다. 솔직히 어려움이 적지않았지요.” 안계가 그의 고향은 아니다. 합천 묘산면 관기리에서 태어나 묘산초교`묘산중학교`야로고를 졸업할 때까지 합천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구로 대학 진학을 해서도 농업`농촌과는 거리가 먼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안계를 ‘제2의 고향’삼아 ‘귀촌 전도사’가 된 것은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인연은 YMCA였다. “군 제대 후 복학하면서 YMCA에서 활동했습니다. 사회교육부 간사를 지냈던 2002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에는 캠코더를 들고 현장을 누비면서 낮에는 지하철화재시민단체대책위 활동, 밤에는 가칭 ‘시위문화연구소’ 활동에 몰두했죠. 모든 생각과 에너지가 지하철 화재사건에 집중돼 있던 어느 날 집사람이 화두를 던지더군요. ‘가정은 돌보지 않으면서 왜 밖의 일은 새벽까지 열심히 하느냐, 가족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있느냐’는 하소연이었습니다."
밤을 새워 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즈음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농촌 폐교를 리모델링한 ‘교촌농촌체험학교’ 사무국장 자리였다. 마침 청소년수련원에 근무한 경험과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딱 1년만 가족을 위해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학교 교실에서 혼자 몇 달 동안 숙식을 해결했는데 어느 날 집사람이 도저히 따로 못 살겠다며 이사를 오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뜨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얼마 전 옛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1998년 12월에 쓴 일기에 ‘농사캠프, 농군캠프, 땀 캠프’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결국 시골에서 살 팔자였나 봅니다.”
◆생생한 체험이 명강의 밑천 그는 요즘 전국을 누비고 있다. 연간 100여 차례에 이르는 강의 요청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온 경력도 화려하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농식품부 농산어촌체험지도사 과정의 집필진`강사, 농산어촌종합자문사업 전문가, 대구 남부교육청 교육복지우선사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또 2005년 경북도지사 표창, 2007년 농림부 장관상에 이어 2008년에는 도농교류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교촌마을에는 치킨이 없다’‘체험 삶의 현장으로 놀러 오세요’ 등 생생한 귀촌 경험담을 담은 몇 권의 저서도 냈다. “제가 아직 운전을 배우지 않아서 강연은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닙니다. 횟수가 많다 보니 수입은 웬만큼 되는데 차비`여관비로 많이 쓰게 돼 넉넉하지는 않고요. 그래도 시골에선 씀씀이가 많지 않다 보니 네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삽니다.” 송 소장에게 연구소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자신의 머리만 가리켰다. 이해는 됐지만 다시 한 번 설명을 부탁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몸담았던 체험학교 사무국장을 그만두고 나니 마땅한 직함이 없는 거예요. 원래 레크리에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도시민들을 위한 체험놀이를 제대로 연구해보자는 뜻에서 하나 지어봤습니다.” 하지만 그가 체험학교에 있을 때 개발(?)했던 ‘리어카 면허증’ 놀이는 이 마을을 찾았던 방문객이라면 한 번쯤 떠올리게 되는 ‘히트 상품’이다. 그의 강의는 지루하지 않다는 평을 듣는다. 현장 경험이 자연스레 녹아있는데다 원래 말솜씨가 뛰어난 덕분이다. 대학 전공을 선택한 과정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는데 대학생 개그콘테스트에는 꼭 나가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평소 소질 있다는 얘기를 듣던 미대를 가게 됐습니다. 군대에서도 문화선전대를 자원해 공연 때마다 사회를 봤지요. 결국 개그맨 지망생이 마이크를 잡다가 강사가 된 셈이네요.”
◆농촌에 맛을 더하는 역할에 만족 그는 평생 두 가지는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자동차 운전과 스키 타기였다. YMCA에서 만난 동갑내기 아내 정은주 씨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구호나 사회운동 차원에서가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으로서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겠다는 다짐이다. “시골에서는 자전거만 있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스키는 산의 아픔을 대가로 인간이 즐기는 운동이라 내키지 않았어요. 그런 점을 보면 아버지의 영향도 적지않았던 같습니다. 지금은 대구에 계시지만 젊은 시절에는 새마을운동`4H운동 군(郡)협의회장을 지낼 만큼 농촌계몽운동에 깊이 관여하셨거든요. 늘 든든한 저의 버팀목이시죠.” 그는 정부가 200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체험마을 사무장 제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전국에 조성돼 있는 체험마을의 실무 담당자가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월 12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제도다. “2003년 10월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도시민이 찾아오는 살기 좋은 농촌마을 만들기 TF팀’이 저희 마을에 왔습니다. 밤늦게까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농림부 사무관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더군요. 그해 12월 농림부에서 펴낸 책자에 제 이름이 모범사례로 소개되면서 제도화됐지요.” 마을주민과 그의 노력으로 교촌마을은 1도1촌 우수마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우수 사례로 선정된 바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넌지시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떠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시민단체 활동 시절 경험하지 못한 유명세가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제겐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치열한 열정도 없습니다. 저는 농촌에 맛을 더하는 설탕`간장과 같은 첨가물에 불과합니다.” 글`사진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 송종대는=경남 합천 출신으로 야로고`대구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대구YMCA에서 간사로 활동하다가 2003년부터 7년간 의성 안계면 교촌농촌체험학교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전국에서 예비 귀농인`관련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집필활동도 하고 있다. 도시민들에게는 성공한 인생 2모작으로서의 귀농`귀촌을 꿈꾸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대안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 |
기사 작성일 : 2013년 04월 0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