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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언어의 행간을 밟고 징검징검 시를 찾아가리.
 
 
 
카페 게시글
+ 오늘 읽은시、 스크랩 이성복 시 모음
칼바도스 추천 0 조회 56 08.04.27 13: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든 유곽(遊廓)에서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雜草)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와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地下)의 잠, 한반도(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벌목(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임종(臨終), 병(病)을 돌보던

청춘(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일본(日本)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와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다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

 

 아, 입이 없는 것들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강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希望이라면

우리는 언제 絶望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未知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강가에서 3                                       

 

저렇게 밀려가면서도

당신은 제자리에 계십니다

저렇게 파랑치고 파랑치면서도

당신은 머물러 계십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밀려가고 밀려오면서도

나와 함께 계시는 당신


당신에게 이끌려 기어코

나는 흐르고야 맙니다

오, 한없이 떨리는 당신

 

 거리                                                      

 

내 사랑하는 것이 때로는 역겨워

짜증이 나기도 하였지요

흐드러진 꽃나무가 머리맡에

늘어져 있었어요


내 사랑하는 것이 때로는 역겨워

얼어붙은 거리로 나서면

엿판 앞에 서 있는 엄마의 등에

버짐꽃 핀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때로 내 사랑하는 것이 역겨워

떠날 궁리를 해보기도 하지만

엿판 앞에 서성거리는 엄마의 등에

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

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대 가까이 2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꽃피는 시절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비단길 1                                         

 

깊은 내륙에 먼 바다에 밀려오듯이

그렇게 당신은 내게 오셨습니다

깊은 밤 찾아온 낯선 꿈이 가듯이

그렇게 당신은 떠나가셨습니다

어느날 몹시 파랑치던 물결도 멎고

그 아래 돋아난

고요한 나무 그림자처럼

당신을 닮은 그리움이 생겼습니다

다시 바람 불고 바람 몹시 파랑쳐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새                                                

 

잠든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시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 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숨길 수 없는 노래 2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람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숨길 수 없는 노래 3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돌아

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은 두개의

다른 죽음 사이에 말이음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랜 저녁

빛에 눈먼 두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

대의 먼 길을 찾아서입니다.

 

슬픔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내가 그대에게 바랄까요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그대가 나에게 바랄까요

그래도 내 가는 길이 그대를 향한 길이 아니라면

그대는 내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계신가요

나를 미워하고 그대를 사랑하거나 그대를 미워하고

나를 사랑하거나 갈래갈래 끊어진 길들은 그대의

슬픔입니다 나로 하여 그대는 시들어 갑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1                              

 

 어두워가는 산을 가리키며 당신이 아니, 저기 진달래가..... 저기도, 저 너

머에도..... 당신이 놀라 가리킬 때마다 어둠과 피로 버무린 꽃이 당신 손끝

에서 피어났습니다

 

 그때 당신이 부르기만 하면 까마득한 낭떠러지 위에서 나는 처음 꽃피어날

것 같았습니다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이별 1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

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

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 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

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

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기시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

습니까

 

편지 1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 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 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

습 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편지 3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다고 나

는 말했지요 전설 속에서처럼 꽃이 피고 바람 불고 십리 안팎에서 바다는

늘 투정을 하고 우리는 오래 떠돌아 다녔지요 우리를 닮은 것들이 싫어

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가까워졌지요 영락없이 우리에게 버려진 것

들은 우리가 몹시 허할 때 찾아와 몸을 풀었지요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만남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골짜기마다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서시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류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노래의 기억                                            

 

 기억의 님쪽 바다 십자성과 야자수는 노래 속에 있다 진한 박하와 따뜻한

망고향 흐르는 노래 하얀 조개 껍질 같은 섬들 돈벌레처럼 미끄러지는 통나

무배들 수시로 끓는 납덩이 같은 노래의 추억은 내 속에서 해저 화산처럼

폭발한다 진흙을 싸 발라 구운 원숭이 두개골처럼 이승의 붉은 털이 다 빠

지고도 남을 노래, 그러나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승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

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 

 

 

 그 날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물이 밀려온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뒤집어놓는다

 

물새들은 어째서

같은 방향만 바라볼까

죽은 물새를 추억하는

자세가 저런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서럽지도 않은 것들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http://blog.naver.com/queensuk.do

(사진 펌질해 온 블로그)

 

이성복 李晟馥 (1952. 6. 4 ∼  )                                                                 

1952년 경북 상주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 참가하여 글쓰기 재능을 보였다. 1968년 경기고교에 입학했으며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학 불문학과에 입학,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다. 1976년 복학,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1999년 현재 계명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있다.

첫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는 혁명적이라 할 만큼 과감한 시 문법의 파괴와 번뜩이는 비유로 평론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시적 특징은 고통스런 세계에 대한 공격적 목소리,  화려한 수사, 연상작용을 통한 이미지 연결이다.
 
1985년부터 동양 고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남해금산》(1986)을 펴냈다. 이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그 여름의 끝》을 발표함으로써 김소월과 한용운의 뒤를 잇는 연애시인으로 평가되었다.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또한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또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받기도 했다.

그 밖에 시집으로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 저서에 《네르발 시 연구》(199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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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야기 
 
이 세계의 도착성과 타락성, 남루함과 가식성을 완전히 발가벗겨 내는 강한 실험 정신
지금껏 이성복 시인이 걸어온 길은 매번 독자의 기대 지평을 창조적으로 배반하는 험난한 정신의 고행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상상적 도정은 도식적인 궤도를 이탈한 자유로움을 펼쳐 보인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시인은 연상적인 방법적 힘에 기대어 이 세계의 도착성과 타락성, 남루함과 가식성을 완전히 발가벗겨 내는 강한 실험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선량하고 순진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큼 과감한 시적 문법의 철저한 파괴를 통해서 강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시풍을 선보였던 셈이다.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에선 앞의 시집보다 더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 경제'를 구사하면서 우리 시대의 개인적 혹은 사회적 상처의 가장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를 그려 보였다. 이 시집에서 그 내상(內傷)은 여린 햇살과 흔들리는 나뭇잎, 솟아난 꽃송이들, 우뚝 선 나무들에 투시되면서, 자연의 전존재와 교감하는 저릿한 합일에 맞닿고 있다. 이어지는 <그 여름의 끝>에선, 평론가 남진우의 지적처럼, 소월과 만해의 시적 계보를 잇는 연애시의 새 진경을 펼쳐 보임과 함께 보다 심화된 사유를 보다 명징하고 단순한 형태 속에 담음으로써 전통과 현대의 접목이란 쉽지 않은 경지에 올라서기도 했다.

 

그의 네 번째 시집에 해당되는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서 시적 화자는 좀더 서정적 자아에 밀착해 세계와 자연, 시적 자아와 사물의 사이에 내밀히 흐르는 생명의 에너지를 따뜻하고 애정 깊은 품으로 보듬어 안는다. 과거의 시집에 짙게 채색되어 있었던 고통, 어두움, 치욕, 절망, 회의와 같은 얼룩이 점차 퇴색되면서, 오히려 그곳에 삶의 의미와 현실의 잠재력을 폭 넓게 관조하는 현미(顯微)와 망원(望遠)의 알맞춤의 균형이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색상으로 부드럽게 칠해진다.

 

특히 파리 체류 시에 쓴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燈)을 세우고'란 이름의 일련의 연작시는 외국에 체류하는 중년의 이방인이 느끼는 외로움, 고독, 가족 사랑, 이웃과 세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찬찬히 되새겨 보는 인간적인 '나'의 성숙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시인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삶과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염탐하고 있는 것이다. (류신/문학평론가)

 

 

■ 대표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 문학동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문학동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문학과지성사 
   『정든 유곽에서』 | 문학과지성사 
   『남해 금산』 | 문학과지성사  

 

 

 

 

 

시여, 물 만난 물고기의 무념무상한 놀이여
              시인 이성복 인터뷰 / 강정

 

                                  

 




Nov 12. 2003 | 여러 번 약속이 번복된 끝에(대구행 기차표를 예매했다가 1분만에 취소하기도 했다) 결국엔 일요일 오전 한적한 종로 거리에서 만나게 된 시인 이성복은 주섬주섬 메모해간 질문지를 채 펼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역광이 든 커피숍 분위기 탓인지 어스름한 공간의 작은 틈을 열고 들려오는 그 소리의 진원지가 처음엔 정면이 아닌 측후방인 줄로만 알았다. 정면엔 예의 등(燈)빛 같은 눈망울만 형형할 뿐, 난 잠깐동안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득해졌다. 시인 이성복이라… 머릿속으로 곱씹어 본 그 이름이 생전 처음 만져보는 물질의 표면인 양, 으스스하게 깔깔했다. 그 느낌은 오랫동안 옷장 속에 방치해뒀던 옷을 꺼내 입는 것과도 같았다. 물질로서의 시인 이성복과의 두 번째 만남은 차갑게 언 시간의 각질 속에 담긴 온기를 확인하는 일에 다름아니었다.

힘을 빼라, 시를 의식하지 마라
“어느 순간 시를 쓰는 방법을 완전히 까먹어버렸어요. 도무지 어떻게 시를 썼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 하도 답답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대체 당신은 시를 어떻게 씁니까?’하고 물어 봤을 정도라니까. 그런데 내가 그렇게 물으면 황당해하는 게 대부분이고 심할 땐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시 좀 씁네 한다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물어보니까 ‘이 사람 누구 약 올리나?’싶었을 법도 하지. 헌데 정말이었거든. 도무지, 도통 시를 어떻게 써왔는지 알 수가 없었고,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하는지도 몰랐어.”

아침 일찍 동창들과 테니스를 치고 왔다는 시인(그는 감청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체득한 몸의 활기를 그대로 풀어내는 양, 활달하게 말을 이었다. 그 순간, 지하철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가는 어둠을 보면서도 시가 발생하는 지점과 글쓰기의 동력을 곰곰 헤아리고 있었을 시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요컨대 시인의 몸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든, 오로지 시와 만나는 접점을 향해 항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사전에 염두에 뒀던 의미를 보여지는 물상들에 대입해 불러일으킨 예고된 파장이라기보다는 즉물적으로 몸을 자극하고, 자극 받은 몸이 반응하는 시의 운동에너지에 가깝다. 의외성을 필연성으로 바꾸는 그런 운동은 지난한 관찰과 집중을 요한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을 읽으면서 떠오른 운동은 사방 벽을 맞고 튕겨 나오는 공을 맞받아 쳐내는 스쿼시였다. 물론, 시인이 테니스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내 멋대로 치환시킨 연상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한 지 넉 달만에 나온 이번 시집은 외국 시인들의 시구에 시인의 반응(또는, 덮어씌움?)을 일정한 형식 안에 자유롭게 담아낸 일종의 ‘별전(別傳)’이다. 이성복 시인은 외국 시인의 시를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렸던 시의 더듬이를 회복하는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야구에 비유하면 프리배팅에 전념했던 셈인데, 아무리 받아치라면서 슬슬 던져주는 공이라 해도 무조건 담장을 넘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배리 본즈든 맥과이어든.

홈런을 의식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비틀리면서 전체적인 중심이 흐트러져버린다. 본래의 힘을 그 자체로 두 배 이상 과잉투여할 경우 최소 열 배의 역효과가 일어난다. 그 때 발생하는 데미지는 심한 경우 홈런은커녕 더 이상 배트를 들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의 상태를 어떻게 항상적으로 만들어놓느냐는 것. 어떤 코스, 어떤 구질의 공이 들어오듯 자기 스윙을 유지하는 비결은 거기에 있다. 이건 비단 아시아홈런신기록을 코앞에 둔 이승엽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과 말에 산몸으로 반응하고자 애쓰는 모든 시인들의 근본문제이자, 삶을 영위하는 모든 것들의 핵심이다.

“열 개 중 하나 정도 건져내는 거지. 그렇다고 나머지는 버리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 그 열 개만큼의 노력이 결국 한번의 입질을 불러오는 거니까. 그게 백 번이어도 마찬가지예요. 완성하고자 하는 강박, 시를 만들려고 의식하는 데서 이미 몸이 굳어지고 힘이 들어가는 거라. 지네를 예로 들어 볼까? 지네는 다리가 스무 개가 넘어요. 그런데 지네가 움직일 때를 봐. 그 많은 다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아주 신기해요. 그런 지네한테 누군가 ‘야, 넌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 많은 다리를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지네란 놈이 그만 자리에 멈춰 서서는 꼼짝도 못하더란 거야. 그 지네처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거라도 그걸 더 잘 하려고 의식하게 되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지는 거예요.”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글쓰기 그 자체!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하나의 규칙 안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시인은 외국 시인들의 시구에 탄력 받은 자신의 심상과 언어를 한글 문서로 여섯에서 일곱 줄 안에 몰아넣었다. 임의로 정한 줄수를 넘길 경우엔 잘라내고 모자랄 경우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시집을 꼼꼼히 읽다보면 그 규격(?)을 넘긴 시가 딱 두 편 발견된다. 그런 경우는 애당초 거기에 맞는 ‘폼’을 미리 정하고 한번에 갔다고 한다. 시인은 그런 걸 운동선수가 훈련하는 어떤 과정에 비유해서 설명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안 난다. 그 대목에서 녹음이 이상하게 뒤틀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휘발성 강한 비유를 내 멋대로 변형하길 즐기는 못된 습관 탓이 더 크다.

유추컨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육상선수나 허리에 폐타이어가 매달린 줄을 묶고 백사장을 달리는 사람을 연상하면 틀리지 않을 듯하다. 고난을 자초한다고 해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를 부자유스럽게 만듦으로써 그 안에서 팽창하는 자유의 밀도를 더욱 생생하게 감득하려 했다는 게 더 옳을 것이다(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자유는 숨가쁜 고통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일거에 비워버리는 짧은 법열을 전해준다. 그건 참 ‘아픈 자유’다). 그러면서 길러지는 건 한계를 수긍함으로써 한계를 (저도 모르게!) 넘게 되는 시의 내구력이다. 앞뒤 다 트인 자유라면 오히려 널브러지기 쉽다. 의도적으로 갇힌 상태에서가 아니라면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공을 받아칠 수도 없지 않은가. 사방으로 트인 곳에서 공은 아무데로나 날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공을 주우러 가는 길은 너무 멀고, 너무 무의미하다. 그건 놀이가 아니다. 시는 애초에 존재의 궁극을 들춰내는 고달픈 유희이지 않던가. 이 말 역시, 스쿼시에서 이어진 연상의 산물이다.
  

“난 주로 테니스 가지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강형 말 듣고 보니 테니스보다는 외려 스쿼시에 더 가까운 것 같네, 시가. 테니스는 상대도 있고, 날아오는 공도 그만큼 정반사지만, 스쿼시는 완전 난반사거든. 살면서 시가 다가오고 그 입질을 받아 첫 문장을 쓰고, 첫 문장이 가는 대로 가다가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도 모두 난반사잖아? 내가 이 시집의 첫 시에서 ‘시의 첫 구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모른다.’(〈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 문장조차도 내가 의도했던 게 아니에요. 그저 하나의 문장이나 이미지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온 것뿐이라고. 정해진 한계나 조건이 있고 그 안에서 계속 반복하다 입질이 오는 순간 시가 저 스스로 얘기를 푸는 거지. 그거 일일이 따라잡고, 의미 부여하고 하다보면 다 놓쳐요. 잡히더라도 엉터리로 망가져 있을 테지.”

이성복에게서 사람들은 카프카를 떠올린다. 꼭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짙은 눈썹에 크고 깊은 눈동자와 날렵한 하관을 마주하면 외모부터가 카프카랑 많이 닮았다는 소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시집에서도 카프카의 문장은 제법 인용된다. 그건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말한다. 중요한 건 그저 글쓰기 자체라고.

크고 강렬한 의미를 선동하거나 도발하려는 문구는 시집의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저 일상에서 경험한 어떤 ‘입질’(외국 시인의 시구는 그러므로 시인에게 주어진 하나의 미끼다)에 관한 자연스런 반응으로 시인은 삶의 한 순간을 시라는 족자에 말끔하게 걸어뒀을 뿐이다. 때문에 삶을 이겨내는 특출한 잠언과 극적 감동을 미리 상정하고 시집을 펼쳤다간 실망할 지도 모른다. 시인은 누구나, 늘,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풍경들을 단촐한 언어로 마름질해놓았다. 그걸 찬찬히 따라가다가 이성복의 시에선 도저히 훔칠 수 있는 문장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특정한 문장을 아무렇게나 도용한다면 그건 사람의 몸에 지느러미를 떼어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극도로 힘을 뺀 상태에서 요리조리 물의 흐름대로 몸을 움직이는 물고기를 어찌 사람이 따라잡겠는가. 그렇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만나 물결의 흐름을 증폭시킨, 물 만난 물고기의 힘찬 요동이다. 제대로 된 물고기를 낚고 싶다면 몸이 물이 되도록 물의 흐름에 전신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물결의 움직임이 몸을 휘어잡고 두리둥실 이끌고 갈 때까지.

시인을 읽는 자, 그만의 입김을 뱉어라
“좋은 인터뷰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작품이에요.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 그런 걸 인터뷰이라 그러던가? 여하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재미있게 인터뷰를 해서 그걸 책으로 묶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서로 말을 들려주고 받다 보면 서로의 반응에서 또 다른 사유의 영역이 생겨나거든. 그 사람의 말에 의해서나 내 말에 의해서나 서로의 느낌이 이리저리 옮아가면서 다른 것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내 쪽에서 일방향으로 공을 치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쳐내는 공을 맞받아치면서 다른 생각, 다른 자세가 나오는 거지. 그런데 우리나라엔 그런 인터뷰 기록이 거의 없어요. 인터뷰는 너무 가볍다,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는 거지.”

마개만 열면 시원스레 쏟아지는 맛깔스런 술과 같은 얘기들. 이성복 시인은 딱히 타점이 정해지지 않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흘려놓으며 녹음 테이프를 오로지 자신의 육성으로만 가득 채웠다. 타이밍을 놓친 채 어설픈 추임새만 넣고 있는 내 목소리는 변방의 북소리처럼 시인의 육성 뒤로 자꾸 떠밀린다. 그럼에도 이 글은 시인의 말에 반응하는, 그리하여 다른 지평을 자꾸 넘보는 필사자의 본능에 의해 상당 부분 걸러진 채로 세상에 나선다. 그러니 이건 시인이 부어놓은 기름에 내 멋대로 질러버린 불과도 같다. 이 불에 데일 자, 과연 어떤 흉터를 속으로 감추며 그만의 입김을 내뱉을 것인가.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시인 이성복
  ***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철갑영웅이 된 지그프리드나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던 헤라클레스도 마음의 상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입는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이면서, 또 극약이다. 상처에 굴복하느냐, 상처를 딛고 이겨내느냐가 문제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상처를 문학과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다. 상처를 인생의 전기로, 또 삶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룬 문학·예술인들. 그들의 삶과 예술 속의 상처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시 ‘그날’ 중에서).

 

  시인 이성복은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상처를 얘기하면서 시인 이성복(56)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쓴 절절한 시편의 성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하 ‘뒹구는 돌’)는 벌겋게 곪아 벌어진 상처를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시어로 가득 차 있다. ‘내 구두발에 짓이겨',‘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 생산력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 그의 시집은 현실의 폭력성과 일그러진 가족사를 칼 끝 같은 분노로 헤집으며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이 지독한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평 반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시인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작은 전기히터만 힘겹게 찬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그는 “시는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첫 시집 ‘뒹구는 돌’과 두 번째 ‘남해 금산’은 그 제사상의 헌주고 헌사이다.

 

  그는 초기 시집의 상처 이미지는 “집단적 상처가 내면화된 것”일뿐, 나의 개인적 상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누이와 형에 대한 훼손된 감정은 뭐란 말인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떼를 써 서울로 유학을 갔다. 가난해도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고, 부모님도 사려 깊고 온화했다. 시 속에 보이는 폭력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실제 아버지는 시 속의 인물처럼 증오의 대상이거나, 상처를 준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폭력이 가족사로 구조화된 것”이라며 자신은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공명통일 뿐”이었다고 했다. 가족사로 사회의 폭력성을 은유했던 카프카적인 해석인 셈이다.

 

  그의 시 때문에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 아버지···X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극단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뱉는 욕설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중간에 끊어 줘야 되는데... 아버지한테 굉장히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야 많지. 겨울날 살얼음 낀 웅덩이의 물도, 추운 날 수족관 속 도다리도 상처라면 상처지”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불가피성, 원죄에 대한 상처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잉크 삼아 시 한 줄 쓰는 시인의 결벽증이 엿보이는 해석이다. 우리가 갓 핀 미나리를 보면 저걸 솎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상처, “결국 생명을 해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상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는 “육식과 초식은 오십보백보”라며 “나는 광합성이 제일 좋아”라며 웃었다. 그가 본 상처의 근원은 보들레르가 말하듯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도 있지만, 스스로 미성숙해 일어나는 상처, 자기 상처보다 남에게 저지른 상처를 기억하는 자기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그의 시 세계는 원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뒹구는 돌’)->어머니(‘남해 금산’)->당신(‘그 여름의 끝’)->가족(‘호랑가시나무의 기억’)->사물(‘아, 입이 없는 것들’)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초기의 격동은 가라앉고, 성찰적 그리고 영성적 태도로 사물을 쓰다듬는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선 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마저 연민의 대상이 된다.(‘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그럼에도 근원적 고통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다. 문학적 창작의 고통이다. 문학은 시체공시실의 시체를 덮은 시트를 벗겨 보는 것이다.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러나 벗겨 볼 수밖에 없어. 내 눈알이 휙 돌아가더라도...”라고 했다.

 

  상처는 감각의 깊이지, 상처의 중량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탐낼 수 없던 예수의 상처처럼, 그 상처를 기억하고, 껴안고, 곱씹는 것이 오히려 상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받는다. ‘뒹구는 돌’에서 그는 “상처는 ‘살아 있음’의 동의어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후기를 적었다.

 

  논어 등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시인이 최근 종교적인 성찰에 기대는 것도 상처를 껴안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과정은 아닐까. 아직 미발표된 시를 기자에게 음송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퍽 편안해 보였다. 손바닥만 하던 히터의 열기가 그제야 온 방을 가득 채웠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약력

  1952년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1977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1980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6년 ‘남해 금산’, 1990년 ‘그 여름의 끝’, 2003년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발표했으며,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1995-, 매일신문사

 


이성복(李晟馥)
직업 : 대학교수, 시인
출생일 : 1952년 6월 4일
소속 :
계명대학교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학력 :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대학원
 

      이성복 대담

 

 1. 근작시 <높은 나무 흰꽃들은 등을 세우고>

* 류 철 균: 선생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90년 봄 계간 현대시세계시 특집 때문에 뵈옵고 만 2년만인 것 같습니다.

* 이 성 복: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아 그래요, 그 때 류형이 군대에서 방위병 하고 있었으니까

* 류 철 균: 특별한 주제보다도 먼저 계간 문학과 사회에 발표된 선생님의 근작시 <높은 나무 흰꽃들은 등을 세우고>를 중심으로 대담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워낙 과작이신 선생님의 작품이라 저 자신 무척 반가웠고, 또 저희 젊은 세대의 다른 문인들도 많이 읽고 고평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제 3시집 <<그 여름의 끝>>에 모아진 선생님의 이전 시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당신>의 관계항을 주저음으로 하면서 '당신'이란 말의 있음과 당신이라는 현실의 부재, 거기에 내재한 삶의 비밀 등을 물어가는 사랑의 노래였다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나의 삶에는 부재하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같은 그리움이 삶을 흐르게 한다는 것, 흐르는 삶의 길 위에서 나는 당신에게 사랑 노래를 부른다는 것, 등등 3개의 다소 잠언적인 문장들이 선생님의 이전 시들의 발상법을 지배하는 중심 모티브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번에 읽은 <높은 나무 흰꽃들은 등을 세우고는>에서는 이전 시의 잠언적인 문장들이 가졌던 추상성이 사라지고 다소 감상적이면서도 현란한 이미지들, 힘있는 메타포들, 분명한 시적 상황과 메시지의 구체성들이 두드러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읍니다.

* 이 성 복: 글쎄요 그게 이전 시보다 더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는 저 자신은 잘 모르겠고 - - -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법하다는 생각은 드는군요. 프랑스에서의 느낀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엑조티즘이랄까,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의 이국 취향에 다소 호소하는 것이 있겠죠. 대체로 요즈음은 생각들을 거의 그렇게 짤막한 아포리즘 형식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요즘 저의 글쓰기는 시보다는 철학쪽으로 더 경도되는 것이 보통이지요. <높은 나무 흰꽃들은 등을 세우고>를 류형이 이전 시들에 비해 힘있는 메타포들이나 분명한 시적 상황을 갖고 있다고 고평하시는데 그건 실상 야구경기에서 배트에 공이 빗맞은 경우 같아요. 말하자면 철학과 사변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공이 빗맞아서 오히려 어떤 시의 본령(本領)이라고 할까 시의 정도(正道)에 가까운 쪽으로 날아간 거지요

* 류 철 균: 좋은 작품을 두고 공이 배트에 빗맞았다니 지나친 겸손의 말씀입니다. 다만 아포리즘 형식이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이전 시들에 비해서 어떤 시적 압축 같은 것을 좀 덜 생각하시고,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 어머님의 이야기 같은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인생론적인 통찰 같은 것을 좀 더 생각하신 창작의 태도가 그대로 시의 작법으로 이어져 그런 아포리즘 형식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 - -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읍니다. 이 작품에는 주로 어머님에 대한 회상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죽음에 대한 의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검은 리본" "하얀 발자국" "세상 끝까지" "깊은 잠" 이런 말들이 나오는 대목이지요. 이런 죽음에 대한 의식은 현실의 어떤 구체적인 체험에서 촉발된 것입니까.

* 이 성 복: 아닙니다. 그것은 시에도 조금씩 나오는 환화(幻化)랄까, 불교적인 환상 같은 것이지요. 사람은 가끔 자기 집을 나가 먼 곳에 있을 필요가 있읍니다. 꼭 집이란 무엇인가, 나의 '집'이란 것을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나를 담고 있던 그릇과도 같은 삶을 먼 곳에서 한 번 돌이켜 보는 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먼 곳에 나가 있을때 제일 그리운 곳이 집이지요. 프랑스에 있을 때 우리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늘 생각났어요. 노인들이란 언제 세상을 뜨실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나가 있으니까 나름대로 어머니 생각이 자꾸 들고, 꿈에도 안좋은 모습이 자꾸 보이고 하던 일들을 시로 써 본 거지요. 좀 더 의미부여를 하자면 나 같은 경우에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기댈 수 있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에요. 어머니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전부 상호작용적이지요. 때로는 내가 그 사람의 의지처가 되고 또 때로는 그 사람이 나의 의지처가 되어 내가 위로 받기도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하고 나하고의 관계는 내가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대는 일방적인 관계지요. 어머니의 현실적인 의미는 삶에서 뭔가 기댈수도 있고 돌아갈 수 있는 마치 캄캄한 우주의 우주 정류장 같은 그런 거요.

* 류 철 균: "집에 있으면 나는 남편과 아버지가 되지만 밖에 나가 있으면 어머니의 아들이 된다."라는 귀절이 그런 의미군요.

* 이 성 복: 그래요. 그건 정말 사실인 것 같아요. 밖에 나가 있으면 어머니의 아들이 된다 - - - 왜 그런 절박한 심정이 되느냐 하면 - - - 에, 그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흔들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라는 것은 무슨 고정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 나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그런 건데. 먼 곳에 나가면 일단 나의 가정이란 것이 없잖아요, 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구실을 다했는데 먼 곳에 나가니까 그런 저런 나의 의미들이 다 사라지고 옛날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던 나만이 오롯이 남는 거죠.

또 이건 프랑스에서 겪은 실제 체험인데 이틀 동안 한 마디도 한국 말을 못하니까.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왜 이렇게 무서울까, 나의 공포가 어디서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지금 이 곳엔 내가 없다 이거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가 없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내가 없는가, <나>가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면 마치 먼 이국 땅 프랑스에서 프랑스 말만 하고 하루를 보낸 나처럼 <당신>이 없기 때문에 내가 없는 것이예요. 이 시에서 내가 부르는 <당신>이란 존재는 환상이고 환화(幻化)이지요. 그러나 이 환상 때문에 내가 있고 진리가 있는 것이지요. 환(幻)이라는 것은 단순히 헛된 것, 거짓된 것, 진(眞)이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부차적인 것이 아닙니다. <환>이라고 하는 말, <환>이라고 하는 어떤 상태가 자리가 잡는 순간, 똑같이 나와 대상과의 관계가 자리잡고 내가 자리잡는 것이예요. 내가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바로 <당신>이라는 거죠.

2. 나와 당신 / 환상과 실재의 문제.

* 류 철 균: 죄송합니다. 제가 좀 우둔해서 무슨 말씀인지 잘 - - - 방금 하신 그 말씀은 아포리아 9번에 나오는 이 대목을 지적하신 것입니까? (시를 읽는다) "그대 집은 Place d'Italie, 내 사랑은 바람부는 강을 건너 그대 집에 닿았는가 내게는 바람 외에 다른 살이 없다. 꽉 찬 幻化여, 나는 이제 제정신이 들 것만 같다 육십 년 후 이맘 때 Place d'Italie 중국집 근처를 떠돌 幻化여, 지금 내가 울면 그대도 따라 울 것인가" 이 대목이지요? 여기서 선생님은 '그대'라는 환화, 환상을 부르고 계시군요. 그런데 문제는 "육십 년 후 이맘 때 Place d'Italie 중국집 근처를 떠돌 환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 같은데요 - - - 이 환화는 그대이면서 동시에 나이고, 또 동시에 그대와 나를 포함하는 세계 같기도 하구요 - - - 저로선 잘 - - - .

* 이 성 복: 그런 대목은 특정한 그대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대'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어떤 것, 나에 대해서 지워지지 않는 다른 비워있는 부분 일체를 '그대'라고 얘기한 것 같아요.

* 류 철 균: 그러면 그것은 결국 나의 실제와 환상의 문제, 진리와 환상, 있음(존재자)과 진정한 있음(존재)의 문제가 되는데요 - - - 저로선 선생님의 그런 문제의식이 이제까지 해오신 시작(詩作)과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묻고 싶네요. 지금까지 선생님께선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으로 이어지는 시쓰기의 도정에서 끊임없이 의식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질문해오셨읍니다. 이 질문은 1987년에 쓰신 엣세이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나타나지요.

요약하자면 선생님께선 깨어있는 의식의 편에서 볼 때 현실은 항상 부정적인 현실이고 진정한 현실의 부재로 떠오른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그런 부정적인 현실속에서 깨어있는 의식을 지키려는 진지한 인본주의자의 자세를 피력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환상과 실재를 실마리로 <<높은 나무들 흰꽃들 - - - >>을 돌이켜보면 이 시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하시던 그 깨어있는 의식의 단일한 자아, 의식의 어떤 단호한 자기 확신 같은 것들이 흔들리면서 자기 정체성이 분열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시적 자아뿐만 아니라 시적 상황으로 제시되는 현실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프랑스에서의 현실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잠들어 있는 한국의 현실, 이 두 가지가 제시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두 개의 현실이 이국 땅을 표박하는 외로운 나그네(시인)의 회상과 추억속에서 하나는 현실이고 또 하나는 환상이 되었다가 다시 그 반대가 되곤 합니다. 시인이 있는 프랑스가 현실이 되고 한국이 환상이 되었다가 다시 프랑스가 환상이 되고 한국의 추억이 현실이 됩니다. 그런 과정속에서 이전까지 선생님이 표백하시던 <깨어있는 의식>의 단일한 자아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 - . 말하자면 내가 있는 이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어떤 환상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환상으로 생각했던 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었으며,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는 그런 발상법 말입니다.

* 이 성 복: 지금 류형 말씀하신대로 불란서 갈 무렵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의 의식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 환상과 실재의 문제 입니다. 특히 방금 지적해 주신 환화(幻化)의 문제인데 - - - 이 환화란 것이 한번 변하면 정(正)으로 나타났다가 다시 한번 변하면 부(不)가 되고 다시 또 변하면 다시 정이 되고 - - - 이런 당혹스런 문제에 부닥쳐 저 자신도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처음 동양사상에 유교(儒敎)쪽으로 입문을 했던 셈이지요. 유교쪽에 보면 내가 했던 공부라는 것이 부끄럽기만 한 것입니다만 제가 본 유학의 특질이랄까, 특성이라할까 하는 것은 이같은 환상과 실재 사이의 흔들림을 일단 정지시키고, 정지시킨 다음에 그 흔들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과정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 빗대어 이야기하면 처음부터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는 형국이지요. 말하자면 의미부여의 근거를 먼저 기존에 존재하는 세상이나 사람들의 위치에서 구하고 그 후에 객관성이라할까, 당위성 같은 것을 자연의 이치에 비겨서 찾는 그런 태도 같아요. 그런데 저는 최근에 환상과 실재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이같은 유교보다도 도교 내지 불교로 더 경도되는 자신을 느꼈어요.

* 류 철 균: 환상과 실재라 - - - .

* 이 성 복: 환상이라는 것을 실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완전 뒤집어서 환상 아닌 실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저는 후자를 믿습니다. 우리가 흔들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결국은 환화 자체가 가진 속성 때문에 따라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 헛집게 만드는 그런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이런 생각은 사실 나뿐만 아니고 우리 같은 연배에 태어난 사람들이 다 이 문제로 씨름하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결국은 글쓰는 사람들이 모두 그 문제 붙들고 결국 평생 씨름하다가 가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황동규 선생님도 뉴욕 가 계실 때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이란 시집에 나오는 그런 생각을 피력하지 않으셨어요? 이게 허깨비라고 생각하면서 허깨비를 잡는데 실상은 허깨비일 뿐은 아니라는 그런 망설임이라 할까, 그런 표정을 저는 읽었거등요. 우리 연배엔 황지우씨가 그야말로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최승호씨의 최근 시들에도 그런 의식이 아주 놀라운 발상법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그런 분들의 시를 읽으면 참 놀랍게 느껴지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아요. 그런 점에서 황지우나 최승호 같은 분들은 제 동년배가 아니라 존경스러운 선배고, 또 존경스러운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저도 세번쩨 시집 후기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지요. "이제껏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던 슬픔이 이제 한 장의 덮개 그림처럼 떨어져 내린다"고 말이죠. "벽도 덮개 그림도 허깨비일 뿐이며 그것들이 비록 양파 껍질처럼 거죽이면서 동시에 속이 된다 할지라도 허깨비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허깨비가 온통 허개비 전체라면, 허개비 아닌 실체가 따로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학의 안심입명이란 선험적인 이치속에 세상에 있는 것들을 수렴하고 이치에 들어오지 않는것은 환상으로 짤라내 버린, 그런 안심입명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류형이 말씀 하신 의식과 현실의 관계 역시 재고되어야 했지요. 유학에서는 스스로 현실임을 주장하는 현실에 의식이 환상으로 짤려 들어가 안심입명의 논리가 강요되었다는 것, 그런 지점에서 삶과 죽음을 관찰하여 더 이상의 흔들림도, 더 이상의 괴로움 근심이 없는 경지로 나갔다는 것이죠. 그같은 유학의 틀 자체를 어느 정도까지 승인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제가 흔들리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내가 흔들리고 있는것도 내가 결국 내가 스스로 자초한 막다른 골목이라 할까 그런 느낌이 들어요.

말하자면 현실과 환화, 실재와 환상의 문제 자체를 처리하는 길에서 내가 흔들리면서 글쓰기를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거죠.. 글이란 틀을 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틀로써 취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문학을 유일하게 가능한 혹은 의미 깊은 문제 해결의 틀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점에서 또 흔들리는 셈이고 - - - .

3. 절대적인 진리란 무엇인가.

* 류 철 균: 최근 몇년 간이 환상과 실재의 문제와 관련해서 선생님께서는 정신적인 방황을 겪고 계시고 그런 방황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시는 그런 시기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어떤 너절한 글을 쓰면서 환상과 실재의 문제를 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진정한 실재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불교의 비유를 빌리면 마치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이 화살을 어느 놈이 쏜 것이냐고 자문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어느 것이 진리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가를 인식하고 그 명석판명한 인식에 의거하여 살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물음은 곧 죽음의 논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해도 좋다. 나라는 것이 설상 허깨비일지라도, 나라는 것이 한갓 환상일지라도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냥 살자는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필요한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저의 거친 결론과 관련시켜 선생님께 제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읍니다. 선생님 90년에 만났을 적에도 저에게 공부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셨고, 또 <성인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공부하는 자세란, 자기를 숙이고 굽힘으로서 세상을 이해할려고 하는 그런 자세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물론 그러한 태도의 아름다움, 그러한 태도가 가진 인생론적 시론의 유의미성에 대해서는 저도 깊이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그러시고 저도 또한 대학에서 근대과학을 배우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근대 인문과학을 배운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근대 이후의 과학은 테카르트가 질문을 하듯 진짜 명석 판명한 진리란 무엇이냐 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닙니까. 진짜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찾아서 거기서부터 하나 하나씩 정신과 물질의 제영역들을 연역해낸 과정들이 곧 근대과학, 근대 이후의 학문이었읍니다. 만약 선생님처럼, 그리고 제 글에 나오는 누구처럼 지금의 흔들림, 지금의 환상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가 근대적인 학문을 배우면서 생각해 왔던 인문주의가 과연 존립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이것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뇌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도 괜찮다. 나라는 것이 환상이라도 괜찮다고 했을 때 과연 우리가 지키고 가꿀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 이 성 복: 내가 환상이라고 할 때 환상이라도 괜찮다는 말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괜찮다 라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환상외에 다른 실체라고 할까 진실함이 있을수가 없다는 이야기죠. 코끼리의 다리 하나가 하나의 몸체라고 느껴지는 것은 빛속에서 보면은 환상일이지도 모르지만은 어둠속에서 보면은 진실입니다. 이런 빛속의 환상, 어둠속의 진실이 모여 빛속의 진실이 됩니다. 환 자체가 진의 모태가 된다는 의미이지요.

류형 식으로 반드시 절대적인 진리가 있어야 하고 환상은 그것보다 열등하고 부차적인 것인데 그 절대적 진리를 잡을수 없으니까 환상이라도 긍정하자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적인 사고가 아닙니까? 우리는 환상과 실재에 대한 데카르트적인 사유 체계 자체를 넘어서 혹은 근원적으로 올라 가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 류 철 균: 외람된 말이오나 저는 그런 생각이 참으로 편리한 상대주의자의 변명 같습니다. 선생님께선 지금 대학교수이십니다. 말하자면 생활인으로서 대학강단에서 근대 과학을 가르치는 분이라 이겁니다. 환상과 실재는 다른것이 아니다, 실재 자체가 더 큰 틀에서 보면 환상일 수가 있다 이렇게 하는 태도가 어떻게 근대 과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생활과 양립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이 성 복: 그러면 근대과학 자체가 내 생각에는 환화겠지요. 근대 과학 자체가 하나의 환상이 - - - .

* 류 철 균: 그러면 우리는 진리에 대한 어떤 절대주의를 인정을 할것인가 아니면 상대주의로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선 것이로군요. 선생님 말씀처럼은 우리의 삶이 하나의 거대한 환화(幻化)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국 진리 합의론,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공부해오신 어떤 공자의 학문관 역시 서구적인 시각에서 보면 진리합의론에 가까운 것이거든요.

* 이 성 복: 내 말은 진리와 환상을 그렇게 나누어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환상이다 진리다 하는 것들은 그것 자체가 독립해서 존재할 수 잇는 것들이 아닙니다. 예컨대 우리의 건강이란 것을 생각해 봐요. 건강할 때는 아무도 건강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병이 드는 순간 바로 <건강>이란 이미지가, 결핍된 그것이, 어떤 존재가 이미지로서 마련되는 것 아닙니까.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어떤 원리라는 것이 원리에 적합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들을 환상으로 배척하고 몰아낸다면 그것은 그 자신 <원리>라는 것이 갖는 어떤 의미라 할까, 그런 것을 스스로 목조르는 결과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류 철 균: 제가 질문을 너무 추상적으로 드려가지고 논의가 좀 추상적인 것이 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2년전과 똑같이 선생님의 말씀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군요. 저는 훗썰의 선험적 현상학을 잘 모릅니다만 최소한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만은 옳바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어떤 절대적인 진리의 추구를 포기했을때 우리 인문주의자들이 자연과학이 학문의 모든 것으로 이렇게 바뀌어져가는 현대의 위기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학문들을 분과(分科)학문으로 세분화, 전문화시키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의 대세와 그 파시스트적 속도 앞에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 물화되는 세계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꼭 훗썰처럼은 아니더라도 자연과학 이야기 하는 진리만이 진리가 아니며 새로운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의 인생관, 그리고 동양예술에 기대어 그런 절대주의적인 진리관 자체를 부정하시는군요. 저는 그런 인생론적인 시론이랄까, 진리 상대주의가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몹시 회의적입니다. 자칫 그것은 현자의 태도를 가장하여 변화하는 역사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곡학아세을 일삼던 조상들의 우(愚)를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우리 시대의 위기는 근대적 사유체계 내부에서 발생했읍니다. 그 해결 또한 근대적인 사유체계 내부에서, 그것을 극복하면서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 이 성 복: 내가 보기에는 내 쪽에서 하는 이야기와 류형이 주장하고 질문하는 이야기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류형 말씀은 류형 나름의 안경이라고 할까, 휠타를 통해서 보는 것이겠지요. 저는 류형의 이야기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 류형은 근대 이후의 인문, 사회과학이 담보했던 이성적인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둘 째 류형은 근대 이전에 삶에서 근대 이후의 삶으로의 변화를 하나의 발전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파악하고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를 하는 것이고, 그런 휠타를 통해서 본다면 그렇게 밖에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만약 우리가 휠터를 통 째로 바꾼다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그 앎이란 것도 초발심변전각(初發心變轉覺)이라는 말처럼 한번 발심한 그 마음이 바로 대원경지에 들어가서 완전히 깨달음에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데카르트 이후의 세계사 4-500년이라는 것을 저 인류역사 2백만년과 지구 역사 3억년이라는 그 긴 과정속에서 바라봅시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 보니까 이런게 있어요. 의성에 공룡 발자국이 있는데 공룡 발자국이 생긴 연대가 1억2천만년 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룡 발자국이 남으려면 공룡이 진흙 바닥을 찍는순간 강물이 범람해 가지고 진흙이 그걸 덮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알고 우리가 확인하고 하는 부분이라는 것은 거대한 진리속에서 보면 정말 1/100도 안되고 1/1,000도 안되고 천만분의 일도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류 철 균: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근작시 <높은 나무 흰꽃들은 등을 세우고>와 더불어 저의 생각들을 반성해보는 계기로 삼겠읍니다.

* 이 성 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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