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전봉준' 압송 사진 새로 발견
기존 사진과 구도 동일
가마꾼 얼굴 방향 달라
동학 탄압 조병식 사진도
경향신문 | 임아영 기자 | 입력 2015.04.24 06:01 | 수정 2015.04.24 06:16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의 모습으로 유일하게 알려져 있던 사진의 이본(異本)이 23일 공개됐다. 기존 사진은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사진가 무라카미 덴신이 촬영한 것으로 전봉준이 1895년 2월27일 서울에 있는 일본 영사관에서 법무아문으로 이송되기 직전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기존 사진과 정황은 거의 같으나 뒤편 가마꾼의 얼굴이 돌려져 있어 몇 초의 차이를 두고 촬영된 사진으로 보인다"며 "두 사진에 담긴 전봉준의 표정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의 <그리피스 컬렉션>에서 이 사진을 찾아냈다. 24일은 전봉준 서거 12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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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차이왼쪽부터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의 새로 공개된 사진(위)과 기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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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유수(정이품 관리) 조병식의 50대 초반 사진. |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 제공
강화유수 조병식의 젊은 시절 사진도 발견됐다. 조병식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8촌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 강화유수로 부임했다. 이 사진은 강화유수로 부임하던 조병식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그리피스는 '한국의 지방 관리'라고 적었다. 사진 우측에는 "가산대부 강화유수 겸 진무사 조병식 정복지도"라고 적혀 있어 사진의 주인공이 조병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0대 초반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조병식은 1876년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했는데 동학교도들이 교조의 신원청원서를 보내오자 탄압했고 사태가 악화돼 정부는 조병식을 경질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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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은 2차 봉기 살패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잠적해 있었는데 조선사람이 현상금을 탈 목적으로 신고하여 체포하여 잡혀가 다음해 사형에 처해졌다.
조병식은 방곡령 당사자이다.
조병식뿐만 아니라 최익현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생들이 동학농민운동을 크게 폄하하고 무시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人死留名
새노두장군을 노래하는 새야새야 파랑새야
이 노래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동학 농민 운동(1894) 때에 일본군이 푸른색 군복을 입어 파랑새는 일본군을 뜻하며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 불리었던 점을 보아 녹두밭은 전봉준,동학농민군을 상징하고 청포장수는 백성을 상징한다는 것이 유력하다.
또 다른 설로는있는데, 전봉준은 전(全)자를 파자하여 팔(八)왕(王) 이라고도 불리었고 이것이 변형되어 파랑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에게 널리 불리는 동요이기도 한데, 아이들의 입을 빌린 어른의 동요라고도 볼 수도 있다. 이 노래는 조수미 등 몇몇 성악가들이 부르기도 하였다.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죽지꺾어 누운새야
녹두꽃이 다지도록
녹두밭에 누운새야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