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한가위 명절이라, 내일부터는 명절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예전같으면 오늘은 사무실에 선물꾸러기 한가득 쌓아놓고 상여금에 선물보따리 한아름씩 들려서 고향 잘 다녀오라며
직원들을 배웅했을 날인데, 사무실을 닫고부터는 오늘같은 날이 싫어.. 하루만이라도 훌쩍 속세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의 산행지는 속리산이다...속세(俗)를 떠나서(離) 가는 산 속리산(俗離山) ..속리산은 내가 사는 청주에서 가까운 산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속리산의 남쪽은 경상도의 상주땅이고 북쪽은 충청도의 보은땅이다.
천년쯤 전에는 남쪽은 신라땅이고 또 북쪽은 백제땅이었을 것이다. 산은 가만히 있건만 사람들이 선을 그어놓고
니땅이다 내땅이다. 하고 쌈박질을 하고 있었으니 지켜보는 산의 심정은 어땟을까..
조선조 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속리산을 두고 말하기를
도(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道)를 멀리 하였고,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낫네... 라 하였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俗離 俗離山
속리산의 주능선은 백두대간의 마루금과 겹쳐있다 ..하여 능선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흘러흘러 낙동강으로 모여
남해로 가게 되고, 북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흘러 흘러 남한강을 거쳐 한강으로 모여 다시 서해에 이르게 된다..
이 능선이 곧 분수령(分水嶺)이 되는것이다. 한뼘 사이로 떨어진 빗방울을 남해물와 서해물로 운명을 가르는...
각설하고...속리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는데 경상도땅 화북쪽에서 오르는 코스와 충청도땅 법주사에서 시작하여
문장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 두 갈래의 코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차를 가져가면 원점산행을 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싫어서
속리산을 갈때면 나는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신라땅 화북에서 속리산을 횡단하여 옛백제땅 법주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코스는 견훤산성을 거쳐 밤티재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문장대까지 오르는길을 좋아한다.
이 코스는 개방되지 않은 코스라 안전시설이 없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왕래가 적어 나만의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는 안성마춤인 셈이다.
며칠전 숨겨둔 나만의 코스로 산을 가겠노라 했더니 동행하기를 청하는 분들이 몇몇있어, 나까지 다섯명이 동행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근데 오늘 아침에 두명이 급한일로 취소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이쁜아짐마 두명만 데리고 산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출발하는 아침은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하늘이 잔뜩 흐렸다.
그렇지 속세를 떠날려면 날씨도 이쯤은 되야 분위기가 잡히지 화창하면 어찌 쉬이 속세를 떠날 수 있겠는가..
산행일시 : 2011년 9월 9일(금요일)
산행코스 : 화북-견훤산성-백두대간마루금-문장대-신선대-경업대-비로산장-세심정
산행시간 : 8 시간
청주에서 9시 30분 차를 타고 경상북도 상주 화북의 견훤산성 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11시다. 출발이 늦었다.
견훤 산성은 여러번 다녀 갔엇지만 작년에 오고 올 해는 처음인데,
그사이 등산로가 많이 정비되고, 성벽도 무너진 곳들이 상당부분 복원이 되엇다.
▼ 견훤산성
견훤은 상주 가은면(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아자개는 상주사람이다.
견훤은 신라말 신라의 장군으로 지내다 완산주(지금의 전주)를 거처로 세력을 넓혀 후백제를 창건한 인물이다.
견훤이 상주사람이라 이고장 지명들이 견훤과 연관 지어진 이름들이 많다.
견훤의 생가터도 있고, 견훤이 활을 쏘았다는 활터, 여기 이곳 산성도....
산성안에서 만난 무덤.. 제법 세력을 형성했던 호족의 무덤인듯 한데 묘비석에는 글씨하나 새겨져 있지 않다.
그보다 정작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무덤앞에 세워진 석상인데 얼굴 생김이 아무리 봐도 갸름하니 여성이다.
무덤앞에 여성석상이라니....필시 무슨 사연이 있음직도 한데....
성벽에 올라서니 상주 화북면 소재지도 한눈에 들어오고...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속리산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속리산을 이보다 더 잘 조망 할 수 있는곳은 아마도 없을듯 싶다.
산성 전면이 복원이란 이름아래 옛모습이 사라진데 반해, 뒤편은 손길이 닿지않아..오랜세월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다.
견훤산성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향해 가는 길은 등산로도 없고 사람의 왕래조차 없는 거의 토끼길이다.
▼ 행복소나무
산행중 묘하게 뒤틀린 소나무 한그루를 만났는데 뒤틀린 가지의 모양이 너무 힘들게 견뎌왔음이 단번에 느껴진다.
이제 앞으로는 행복하게 잘 살라고 발견자 행복이의 이름을 따서 행복소나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 아무런 표식조차 없어 제대로 가고 잇는지 걱정스러운 내게 틀리지 않앗음을 알려주는 먼저 간 이의 표시...고맙다..
▼ 13시 - 산행 두시간이 지나 백두대간 마루금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햇다. 샌드위치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막걸리도 한잔하고..
여기서 부터는 대간꾼들이 많이 다녀 등산로가 선명하다. 길잃을 염려는 없다. 그러나 등산로는 점점 더 가파르다.
산을 높이 오를수록 보여주는 멋진 조망은, 오르느라 수고한 이에게 산이 주는 선물이다.
▼ 쓰러진 고사목이 길을 막기도 하고, 뒤틀린 몸짓의 소나무가 삶이 어렵다고 웅변하기도 하고,
요염한 자세의 소나무가 유혹도 하는데..오늘 나는 세속을 떠난 몸이라 갈길을 재촉할 뿐이다....
▼ 외가닥 로프 한줄에 몸을 의탁하고 암벽을 오르 내리기를 여러번...
쉽게 생각하고 따라나선 두분이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씩씩하게 잘 따라온다.
▼ 바위암벽을 로프를 타고 오르다 그늘 진 곳에서 어렵게 꽃을 피운 귀한 바위취를 만났다.
잔뜩 흐렷던 하늘은 몇차례 가는 빗줄기를 흩뿌린다.산위에서 듣는 빗소리는 평지에서 듣던 소리와 사뭇 다르다.
온 산 계곡의 나뭇잎과 떨어지는 빗방울이 한꺼번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마치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처럼 웅장하다.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소리...세상에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 15시 30분 -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올라 올라 오다보니 3시가 훌쩍 지낫다.
산행 4시간이 지낫는데 ...정작 전망 좋은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운무에 가려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올라 왔나..?...문장대가 저만치로 보인다.
▼ 문장대를 오르기전 마지막 암벽구간이다..바위틈이 너무 좁아 빈몸 하나로도 겨우 빠져 나갈만큼 좁다.
여러번의 암벽구간을 기어기어 지났는데..정말 힘들었던 구간은 정신이 없어 정작 카메라에 담지도 못했다..
▼ 16시 30분 - 산행 5시간 30분만에 문장대에 도착이다. 그러나 주위는 온통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문장대 - 옛 이름은 큰 암봉이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감추어져 잇다 하여 운장대(雲藏臺)였다고 한다 - 해발 1054m
요즘 한참 뜨는 드라마 공주의남자에 나오는 나쁜임금 세조가 여기 속리산을 올랏다가,
이곳에서 글을 지었다 하여 이름이 문장대(文藏臺)로 바뀌었단다.
속리산은 세조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이곳 문장대가 그러하고, 세조가 목욕하여 피부병이 나았다는 목욕소,
세조가 지날때 나뭇가지를 들어주고, 비를 피하게 해줘 벼슬을 얻었다는 정이품소나무까지...
운무에 가렷던 주위가 문장대를 오르자 순식간에 운무가 걷히고 맑아지더니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일제히 탄성이 터진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보였다가 다시 운무에 감추이고..다시 모습을 드러내고..그러기를 몇차례...
그 어떤 말도.. 어떤 음악도 ..그 어떤 시로도 표현 할 수 없을 광경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래 이곳은 세속이 아니지...분명 이곳은 신선이 사는 세상이리라.
▼ 문장대 100회 등반 기념식수 - 문장대를 내려오면 군부대 건물 바로 아래 기념 식수한 주목 한그루가 보이는데..
1997년 5월 4일 청주 사시는 이상직 어르신이 문장대 100회 등반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나는 몇 해 전에 이분과 청주에서 버스를 같이 타고 와 문장대 등반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때가 2007년 즈음이었는데..그때 그분이 문장대를 670 몇 번째 등반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따져 보면 10년 동안 570회를 넘게 다녓는데 일년이면 57회..거의 일주일에 한두번은 빠지지 않고 다닌 횟수다..
이곳을 지날때면 늘 그분이 생각나고..지금도 건강히 등반 잘 하시는지 궁금하다..
건강히 계속 다니신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900회를 넘어 1000회 등반을 눈앞에 두고 계시지 않을까..
조만간 1,000회등반 기념수가 심어지기를 기다려 본다. 오른쪽 사진은 그때 찍어둔 사진이다...^^
▼ 17시 50분 - 신선대 능선에서 바라본 운해 - 여기서 부터는 하산길이다..
▼ 18시 10분 - 경업대
경업대에서 바라본 산 그리메..좋다..말이 필요없다...
▼ 관음암 입구
작은 암자 관음암이 하산길에 있는데...들어가는 진입로가 이렇게 몸하나 겨우 들어가는 바위틈으로 몇길을 지나야 한다.
▼ 18시 50분 - 산행이 8시간이 가까워 오자 몸은 지쳤는데 주위는 벌써 어둡다. 아직도 법주사 까지는 한시간도 더 남은 거리다.
▼ 19시 05분 - 비로산장 즈음에 이르자 랜턴으로 불빛을 밝혀야 앞이 보일만큼 주위는 금방 깜깜해 졌다.
법주사터미널에서 청주로 가는 막차가 19시 50분이라는데 아무리 서둘러도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을것 같다.
누구보고 데리려 오라고 할까, 안되면 청주까지 택시라도 타고 갈 요량으로 114안내에 물어 개인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엇더니
다행히 세심정까지 도로가 있어 택시가 올라 올 수 있단다. 그렇다면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덕분에 어두웟지만 맑고 시원한 계곡물에 하루종일 고생한 발을 담글 여유를 얻었다....
그렇게 8시간이 넘는 속리산 산행은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이동하는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짬에 감자전을 곁들인 동동주 한잔은 이곳이 다시 세속임을 깨닫게 한다.
운무에 쌓인 문장대의 환상적인 풍경은 아마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것이다.
경업대에서 바라본 마치 한폭의 수묵화와도 같던 첩첩의 산그리메도...
수줍게 핀 여린 바위취꽃도..
이렇게 좋은 산이 가까이 지척에 있음을 감사한다.
속리(俗離)는 세속을 떠남이고 다시 돌아옴은 환속(還俗)이다.
오늘 나는 세속을 떠낫다가 결코 떠날 수 없는 세속으로 환속한 날이다.
그래 내가 머물곳은 여기 이곳이거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더불어 뒹굴고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여기 이곳, 이 세상이,
내가 머물곳임을....
첫댓글 이쁜아줌마 두분과 동행하셨군요 저도 가고싶었어요 ..하지만 못생긴 처녀라서 감히.....맞아....여인은 무조건 이뻐야해....
안녕하세요?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그럼 3:1로 복 터지는근데...ㅋㅋ
나도 따라가고픈데.. 빨간등산복이 없다..쩝!
추석날 아침이네요..
명절날 눈떠 처음 만난 것이 이 글이에요..
읽으면서 알고 느낀 게 많아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근데 느낄땐 조금만 느끼세요...``-.-
알았어요..옵빠... 다음부턴 옵빠가 알아서 조절해주셔요...``-.-
네네네~~ㅋㅋㅋ
그런겨? 몰랏네.....``-.-
그래요? 그래도 뭐 잘 배워오실 거라 믿어요...``-.-
옵빠를 믿어야 되잖여요...
덕분에 잊지못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제노님 질문있어유 못하는것이 무엇이에요?
고생많으셧습니다...문장대 정상에 올랐을 때 .... 오늘 비로소 산행의 참묘미를 알 것같다던 말이 ...
그날을 압축한 한마디 엿어요 다시 생각해도 문장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너무 환상이엇어요..
다음엔 저두 꼭 같이 갈께요~^^
그럽시다..그럼 날 잡아서 한번 또 가자요~ 김양이 빨간옷 사면 또 2:1로..흐~~
제노님은 당연하고..ㅋㅋ 걸님...담에 만나면 내 사진도 근사한거 부탁해요!!! 청산도, 남해 바랫길서 만난 언니여요~
아하.. 그언니가이언니구나..^^
아

언니 
워요
`걸 칭구
청산도 바랫길에서 본 이쁜언니



언제쯤 볼수있으려나
행복의 향내가 나는듯 합니다....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이렇게 나마 섬님 안부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