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언어에 대한 분석
1. 어려운 우리 보도 언어
'약물' 용어풀이 했으면
4일자 37면 '글사랑으로 수학문제 만들기' 기사는 무척 유익했다. 그런데 기사중에 '약물 만들어 넣기'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데 '약물'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것으로 간단한 용어풀이를 덧붙여 주었더라면 한결 좋았을 것이다. 기사에서 전문적인 용어가 나올땐 간단하게나마 풀이를 해주는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조선일보, 1994년 2월 5일, 최상태).
처음 최상태씨의 글을 읽었을 때 "약물(藥物)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했다. 다 큰 어른이 이런 말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다른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가 있나 하고 사전을 찾아 보고 나서야 자신의 무식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약물(約物)이란 +, -, ×, /, =, ㎞, ㎡ 등의 숫자용 기호와 단위 기호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정말 최상태씨의 말대로 간단하게나마 풀이를 해주었더라면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보도 언어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속어, 비어, 은어, 유행어 등 세상 사람들이 사적인 대화에서나 사용하는 비교적 품위가 낮은 말이 자주 쓰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문용어나 난해한 한자말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래서 쉬우면서도 품위 있는 우리말은 아직도 보도 언어의 한쪽 구석에 밀려 "구름 낀 볕늬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신문 경제면을 펴들기가 겁날 정도다. 모르는 말이 하루 평균 하나 꼴은 되기 때문이다. '대중신문'에 나오는 말조차 제대로 모르니 남보다 공부를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학생들은 신문에 나오는 말을 더 모르고 있다하니 위안은 된다. 1991년 국한문을 섞어 쓴 신문 제목 10개를 대학생들이 얼마나 해독할 수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인문대학 1학년 300명 가운데 모두 해독한 학생은 1명도 없었고, 10개 가운데 5개를 맞힌 학생도 30%가 못되었다고 한다(진태하, 1995).
최근에는 달라진 것이 있나 해서 필자들도 비슷한 조사를 해 보았다. 신문에 나오는 한자말 가운데 자주 쓰이면서도 어려운 것을 골라 대학생들이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조사하였다.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경제면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한자 용어는 1997년 6월 11일자 동아, 조선, 중앙, 한국 4개 신문의 사회면과 정치면에서 뽑았다. 독자층이 가장 광범위한 지면이 사회면이고 그 다음이 정치면이기 때문에 사회면에서 6개를 골랐고, 정치면에서 2개를 골랐다. 신문에 한자를 함께 표기한 것은 조사지에도 그렇게 표기하였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2학년 학생 39명을 대상으로 이 용어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문제가 '4지선다형'이었는데도 정답을 맞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정답 비율을 보면 물류 51%, 갈취 62%, 무고(誣告) 74%, 근치(根治) 23%, 편취 26%, 고사시키다 64%, 오수 31%, 모두발언 49%로 평균 47%였다.
글이 수행하는 기능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다. 읽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도구가 바로 글이다. 그런데 표현이 어려워 읽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모르거나 뜻을 잘못 헤아리거나 아예 읽기조차 포기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좋은 글은 아니다.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은 예외겠지만, 정보제공과 설득을 주목적으로 하는 논리적인 글은 쉽게 쓰는 것이 좋다. 더욱이 보통 사람들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는 신문 기사는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써야 한다.
2. 쉬운 글과 어려운 글
다양한 '수질기준' 용어 이해 쉽게 설명해줬어야
하나의 사안에 대한 기사가 계속되면서 어려운 용어들이 자주 나올 때는 별항으로 이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낙동강 식수오염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수질기준 용어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어 독자들이 음용수 판정기준에 관한 사항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과학적 기준으로는 '암모니아성 질소'와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에 이어 14일 이후에는 불암물질이라는 벤젠과 톨루엔이 거론됐다. 그런데 그것들이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찿아볼 수가 없었다.(중략)전문가가 아닌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졌더라면 오염의 정도나 그 위험성을 짐작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다. 즉 음용수의 판정기준에 무엇이 있는지, PPM이란 어떤 단위인지, BOD나 COD등은 어떤 용어이고 무슨 의미를 가지며 그것의 측정치가 지니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또 선진국의 음용수 판정기준으로 볼 때 우리의 기준은 합리적인지 등등에 관한 설명기사를 한 번 정도 마련해주는 것이 어땠을까 한다….동아일보, 1994년 1월 23일, 김덕수외 2명).
쉬운 글을 한마디로(absolutely) 정의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 글이 무슨 글이고 누가 읽을 것인가에 따라 쉽고 어려움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화책은 글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낱말과 표현을 사용해야 쉽다고 할 수 있다. 글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들끼리 쓰고 있는 고급학술지는 일반인들이 들은 적조차 없는 전문용어를 사용해야 의사소통이 쉬워진다. 학자들은 구체적인 일반 용어보다 추상적인 학술용어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학자라고 해서 무턱대고 학술용어를 써라는 말은 아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을 쓴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쉬운 말의 기준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는 말이 된다. 쓰는 사람이 스스로 쉽다고 생각하는 것과 읽는 사람이 실제로 쉽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언론계에 종사하다 보면 언론계가 사용하는 전문용어에 익숙해진다. '○○파일', '○○리스트', '○○사태', '경색', '국면' 등은 짧고 함축적이기 때문에 한 번 배우고 나면 정말 편리한 것들이다. 이런 '좋은' 용어들이 있는데도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맥빠진'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바보 멍청이'나 할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글을 쓸 때 학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부분은 전문용어로 정리되어 있는 생각을 쉬운 일상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고가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말로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쉬운 학술용어로 자기 지식의 틀을 짜고 그 틀을 '기억속에 저장'해 둔다. 보통 사람을 상대로 하는 글을 쓸 때는 이 틀을 보통 사람들의 말로 바꾸어 표현해야 하는데 학자들에게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언론계 전문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전문용어로 정리되어 있는 생각을 보통 사람들의 말로 바꾸어 놓기는 쉽지 않다.
'○○파일', '○○리스트', '○○사태', '경색', '국면' 등이 어째서 전문 용어냐고 따지고 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좀 유식한 표현일 뿐이지 전문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론계에 전문용어라니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들은 물론이고 이외에도 수백개의 용어가 언론계 전문용어로 분류될 수 있다. '전문용어는 전문가가 쓰는 말'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특정 직업인들이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거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떤 말을 사용할 때 이 말을 전문 용어라 한다.
언론은 자신에게 편리한 말보다는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말을 써야 한다. 자신의 주요 독자층 또는 시청자층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보통으로 쓰는 말과 표현, 그리고 그들에게 익숙한 문법과 묘사법을 찾아 써야 한다. 그래야 홀(Hall, 1978)이 주장한대로 "공중의 관용어(public idiom)"가 보도 언어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3. 쉽게 고쳐 써야 할 어려운 말
언론이 사용하는 어려운 말은 크게 용어와 구문으로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다. 용어는 낱말 또는 낱말처럼 쓰이는 말을 가리키며 구문은 낱말이 두 개 이상 모여 있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최재완(1997)은 전자를 어휘 요인, 후자를 문장 요인이라 불렀는데 둘 다 기사의 '읽기 쉬운 정도'(讀易性, readibility)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 언론의 문장은 비교적 일기 쉬운 편이다. 다른 전문가들의 글에 비하면 한결 간결하다. 우리 나라 언론 문장의 문제는 어려운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르지 못한 데 있다. 따라서 언론 문장의 문제는 제9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어려운 용어만 논의하기로 하겠다.
(1) 전문용어
특정 분야 전문용어는 풀어 써야
2일자 15면에 실린 '격정의 독창 20여분에 탄성' 기사는 오페라 '루치아'의 주역 신영옥씨의 연습 표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등장해 읽어나기기에 부담스러웠다.
기사 가운데는 '신씨는 플루트 반주가 무색할 정도의 초절기교와' '웬만한 콜로라투라는 소화하기 힘든' 등에서 보듯 '초절기교', '콜로라투라' 같은 음악사전을 찾기 전에는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그대로 쓰여지고 있다. 특정분야의 전문용어는 가능한한 풀어쓰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꼭 그대로 써야 할 경우라도 괄호안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 독자에 대한 친절한 배려라고 하겠다.(동아일보, 1993년 11월 14일, 김선열).
우리 언론은 과학, 학술, 예술, 경제, 국제정치, 법, 행정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그대로 채택해 쓴다. 독자 김선열씨가 지적한대로 '초절기교'나 '콜로라투라'는 어지간한 음악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말을 설명도 없이 그대로 쓰는 것은 무책임한 보도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문 용어는 주로 서양말이나 한자말로 되어 있다. 옛날부터 쓰던 전문용어는 주로 한자말이고요즘 새로 들어온 전문 용어는 서양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많다. 물론 새로 들어온 서양말을 한자말로 번역한 것도 적지 않다. 서양말 전문용어는 외래어 문제를 다룰 때 자세히 논의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주로 한자말 전문용어를 다루도록 하겠다.
1997년 10월 4일 어느 일간 신문에 "국가 신인도(信認度) 27위로 급락"이라는 제목이 등장했다. 무슨 말인가 해서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유러머니紙'의 신인도 평가에서 우리 나라가 22위에서 27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정도를 '급락'이라 묘사한 것도 문제지만 '신인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신인도'라는 말은 없고 '신인'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믿고 인정하여 의심치 않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쓰는 '신뢰'란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신인도'라는 생소한 말 대신 '신뢰도'란 말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다.
1997년 9월 20일에는 "분식결산 눈감아주기 '철퇴'. '부실 회계감사' 주식투자자에 배상판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업들의 결산보고서를 부실 감사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은 주식투자자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도였다. '분식결산'이란 말이 하도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경영학' 전문용어이고 그 뜻은 '이익을 실제 이상으로 계상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었다. 결국 '분식결산'이란 '이익 부풀리기'란 뜻이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껍데기가 벗겨지면 이미 상당수의 피부 조직들이 화상을 입어 괴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97년 7월 17일 어느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말이다. '괴사(壞死)'란 쉽게 말해 '죽었다'는 뜻이다. 취재원인 의사가 '괴사'라고 하니 그대로 쓴 것 같은데 의학 관계자가 아니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피부조직들이 화상을 입어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고쳐도 뜻이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관련 법률용어도 많이 쓰인다. "이번에 검찰이 입건한 무고사범 중 금품갈취 목적이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자신의 형사처벌을 면하거나 부동산 등 재물을 편취하기 위해 허위고소한 사람이 각각 7명으로 나타났다."(1997년 6월 11일, 중앙일간지). "은닉한 全씨 비자금 '현금화 움직임--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는 3일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이 채권과 양도성 예금증서(CD) 형태로 은닉한 비자금을 빼돌리려 한다는 첩보에 따라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997년 8월 4일, 중앙일간지). "서울 관악경찰서는 20일 관악구 K병원 가정의학과장 구모(47·인천 부평구)씨가 환자인 문모(37·여·의류점 종업원·관악구 봉천7동)씨를 강제로 성추행한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기록 일체를 서울지검에 송치했다."(1997년 8월 21일, 중앙일간지)
'갈취(喝取)'는 '으름장을 놓아 억지로 빼앗다'는 뜻이고 '편취(騙取)'는 '남을 속여 재물이나 이익을 빼앗다'는 뜻이다. 둘 다 범죄관련 법률용어로 범죄 기사에 자주 쓰인다. 이런 말들은 우리말로 적든 한자로 표기하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갈취'는 '겁주어 빼앗다', '편취'는 '속여 빼앗다'라 표현하면 쉬워진다. '은닉(隱匿)'은 싸서 감추다는 뜻이다. 역시 범죄 기사에 자주 쓰이는데, '은닉하다'를 '감추다'로 바꾸어 쓰면 지면도 절약되고 뜻도 명확해진다. '송치(送致)하다'는 '보내서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냥 '보내다'라고 쉽게 쓰면 된다. 우리 법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어려운 한자말을 많이 쓴다. 대법원이나 법제처에서 쉬운 말로 고쳐 쓰려고 노력하지만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언론에서 이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받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경제관련 법률용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한신공영-채권단 채권변재에 합의. 법정관리를 신청중인 한신공영이 채권단과 채권변제에 합의함으로써 한달 이상 중단됐던 한신공영 건설현장의 공사가 곧 재개될 전망이다"(1997년 7월 8일, 중앙일간지). 밑줄친 두 '채권변제' 중에서 앞에 나오는 '채권변재'는 '채권변제(辨濟)'를 잘못 쓴 것이다. '변제'란 '빚을 갚는다'는 뜻으로 경제 기사에 흔히 쓰인다. 그러나 빚 갚는 일은 경제인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흔히 겪는 일이다. 그러니 편집자도 잘 몰라 '변재'라고 틀리게 적는 이 어려운 용어는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냥 '갚다'라는 우리말로 쓰면 된다.
요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 전문용어도 자주 나온다. "이 때문에 열차에서 뿜어대는 매연과 경적, 분진 등으로 인해 무더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고 있다."(1997년 7월 8일, 중앙일간지). "음식쓰레기는 현재 모든 매립지에서 유독성 침출수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1997년 1월 6일, 중앙일간지). '분진(粉塵)'이란 원래 티끌, 곧 먼지다. 위 기사에서도 먼지라는 뜻으로 쓰였다. 분진이라는 어려운 말보다 먼지라고 하면 독자들이 훨씬 잘 알아들을 것이다. '침출수(浸出水)'는 국어 사전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용어이다. 잔뜩 쌓인 물건들에서 흘러나온 물이라는 뜻인데, 요즘엔 '쓰레기 침출수'라는 말이 특히 자주 쓰인다. '침출수'는 '스며나온 물'이라고 하면 되고 '쓰레기 침출수'는 '쓰레기에서 스며나온 물'이라 하면 된다. 꼭 한 단어로 쓰고 싶으면 교열기자회가 펴낸 '보도용어 순화자료집'에 나오듯 '잠긴물'이라 하면 된다(한국교열기자회, 1996a).
환경부는 1996년 8월 환경법령용어 가운데 일본식 표현과 어려운 한자어 31개를 우리말로 순화, 정비했다. 이렇게 해서 고친 용어로는 오니(汚泥, 더러운 찌꺼기) 오수(汚水, 더러운 물) 유분(油分, 기름성분) 도관(導管, 물관) 투영(投影, 비추다), 침전물(沈澱物, 앙금) 따위가 있다.
최근 밖에서 들어온 물고기나 개구리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블루길'이 호수를 망치고 있고 '황소개구리'가 뱀까지 잡아먹는다고 한다. 이들은 강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황소개구리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고 아우성들이다. '개체수'란 생물학에서 쓰는 전문용어인데 그냥 '수'라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치계 전문용어도 자주 쓰인다. 정치인들은 각종 당직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여는 회의를 '연석회의'라 한다. 그냥 '합동회의'라 하면 될 것을 구태여 '연석회의'라 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최근에는 뜻도 확실하지 않은 '연찬회'란 말까지 쓰고 있다. "연찬회 앞둔 신한국 주류-비주류"(1997년 9월 8일)라는 기사를 보면 '연찬회'란 "당직자와 당무위원들이 (청와대에서) 함께 하는 만찬"을 뜻한다. 그렇다면 '합동 만찬회'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전문용어인지 단순한 조어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뜻조차 불분명한 '연찬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이 아무 생각없이 편리한 때로 기사를 쓰다 보면 취재 대상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그대로 받아 쓰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쓴 기사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감명도 줄 수 없다. 어렵고 귀찮더라도 독자들이 알 수 있는 바꾸어 쓰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특히 한자로 된 전문 용어들 대부분이 일본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문 용어는 반드시 풀어써야 할 것이다.
(2) 어려운 한자말
① 지식층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는 아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어려운 한자말들도 많다. 어떤 것들은 뜻도 짐작하기 힘들 정도이다. "고육지책끝에 공천자를 결정했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보인 자민련의 내홍은 대선을 앞두고 우왕좌왕하는 당내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지적이다."(1997년 8월 9일, 중앙일간지). '내홍(內訌)'은 대학원을 나온 사람조차도 잘 모르는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다. 사전에는 '내부에서 저희끼리 일으키는 분쟁'이라고 나와 있으며 '내분'과 같은 뜻이라 한다. 그런데 왜 '내분'처럼 잘 알려진 말이나 '집안 싸움' 같은 쉬운 말을 쓰지 않고 이 어려운 말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변화도 구해보고 싶었을 것이고 유식함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독자들이 모르는 말을 신문이 쓰는 것은 즐거운 변화도 지성의 잔치도 되지 못한다.
"식사때 밥알을 흘리는 광경이 목도되면 설거지는 물론 그날의 '전투'에서 된통 '피박'을 쓴다."(1997년 8월 14일, 중앙일간지) '목도'는 여러 모로 '내홍'과 비슷하다. 우선, '내홍' 못지 않게 어렵고, '내홍'처럼 잘 쓰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내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목도'보다 익숙한 동의어가 있다. 바로 '목격'이란 말이다. 위에 나오는 '내홍'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기사에 나온 '목도'는 문맥을 통해 그 뜻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목도되다'는 '목격되다' 또는 '들키다'로 바꾸어 써야 한다. '목도되다'란 표현 자체가 우리 문법체계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은 제5장에서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이 기사는 "식사때 밥알을 흘리는 광경이 들키면 설거지는 물론 그날의 '전투'에서 된통 '피박'을 쓴다." 또는 "식사때 밥알을 흘리는 광경을 다른 이들이 보면 설거지는 물론 그날의 '전투'에서 된통 '피박'을 쓴다."는 식으로 쓰면 좋다.
1997년 9월 15일 어느 신문은 대통령 후보 5인 사이의 "짝짓기", 즉 "연대 시나리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반DJ-범여 '접점' 가능성 이회창-조순. 두 사람의 대선연대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연대에 대한 '접점'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조총재 등 민주당 쪽에서는 조총재의 지지도가 계속 3,4위권에 머무는 등 당선가능성이 '물건너' 갈 경우, 마지막 선택으로 신한국당과의 '제휴'등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해 돌파구가 열린다면 여기서 시작될 전망이다." 우선 '연대(連帶)'란 말부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주 써왔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익숙할 것이라 치자. 그러나 이 기사의 중간 제목과 본문에서 나오는 '접점'이라는 말은 더욱 어렵다. '접점'이란 말은 고등학교 기하책에 나오는 수학 학술용어이다. '곡선 또는 곡면과 접선(接線)이 닿는 자리'가 접점인데 이 말뜻을 알려면 '접선'이란 말을 알아야 한다. 사전에 나오는 '접선(tangent)'의 개념을 여기에 옮겨 적어 보았자 그 뜻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접점'은 원래 전문 용어이지만 기사에 쓰일 때는 전문 용어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일반 현상을 기하학적 현상에 '은유적'으로 빗댄 표현이다. 대부분의 독자가 수학 용어 '접선'과 '접점'을 알고 있다면 대선 주자들간의 편묶기가 시작되는 계기를 '접점'이라 부른 것은 멋진 은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사는 문학 작품이 아니다. 멋진 은유를 만들어내고자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외에도 이 기사에는 '제휴', '염두에 두고' 같은 일본식 한자가 쓰였다. "신한국당과의 '제휴'등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해"라는 표현 대신 '신한국당과 손잡는 것도 미리 계산해 둔 듯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위에서 지적한 한자말들은 한자교육을 잘 받은 50대 이상이 보아도 잘 알지 못하는 말들이다. 지금 50대나 60대들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우리 나라 한자 교육 정책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때로는 한자교육이 필요없다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빼기도 했고, 때로는 필요하다고 다시 집어 넣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규교육 과정 속의 한자교육은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20대 이하는 물론이고 30대도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들은, 한자 교육 축소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자를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한자말도 어려운 것은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들은 다르다. 오래된 기자들은 물론이고 젊은 기자들도 한자 실력이 보통을 넘는다. 언론사에 들어가려면 한자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또래는 물론 정식으로 한자교육을 받은 중장년층보다 훨씬 한자말에 익숙하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말도 쉽게 느껴질 것이다.
아느냐 모르느냐를 떠나서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말들 때문에 쉬운 우리말들이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말로 토착한 한자말은 출신성분을 떠나 우리말이라 보아야 한다. 물론 어떤 한자말이 우리말로 토착했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한자말, 그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이 없는 한자말은 이미 우리말로 토착했다고 보면 된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지만 아직 우리말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없는 한자말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하루치 신문에도 수백, 수천개가 사용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특별히 관심이 가는 몇 가지 중요한 사례만 다루기로 하겠다.
"高速鐵터널 4곳 침하위험"(1997년 7월 8일, 중앙일간지). "이대표의 원려(遠慮)가 담긴 포석으로 이번 인사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민주계의 심정은 일면 수긍할 만하다."(1997년 8월 9일, 중앙일간지). 첫 기사에 나오는 '침하(沈下)'는 가라앉아 내려간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낯선 한자말은 음만 우리글로 적어서는 뜻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한자로 적으면 아예 읽지 못할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한자와 한글을 같이 적자니 지면이 낭비된다. 이래저래 골치다. 차라리 '高速鐵터널 4곳 내려앉을 위기'라 하면 이해도 쉽고 뜻도 분명해진다. 두 번째 기사에 쓰인 '원려'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이란 뜻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기사 가운데서도 주로 정치 기사에서만 쓴다. 그냥 '깊은 생각'이라고 바꾸면 뜻도 통하고 읽기도 쉽다.
"금명 改閣 단행.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4일 또는 5일중 8∼9명 정도의 각료를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3일 알려졌다."(1997년 8월 4일, 중앙일간지). "올 연말 대통령선거를 피해 공공요금 조기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올해의 마지막 공공요금 조정작업으로 의료보험 수가와 시내-공중전화요금, 우편요금을 금명간 인상키로 했다."(1997년 8월 12일, 중앙일간지). "차제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비행기에 탈 수 있도록 완벽한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1997년 8월 7일, 중앙일간지).
'금명(今明)'은 '금명간'의 준말로 '오늘 내일 중'이라는 뜻이다. 중국과 일본은 오늘을 '금천(今天)' 내일을 '명천(明天)'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를 본뜨서 '금일', '명일'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금명'은 '금천과 명천 간'의 준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잘 쓰지도 않고 뜻도 모호한 말을 '짧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글자수가 좀 많더라도 '오늘내일'이라고 쓰든지 아니면 '곧'이라고 쓰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 기사에 나오는 '금명간'이란 말은 잘못 쓴 것이다. 이 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만간(早晩間)'과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금명간'은 아무리 늘려잡아도 '몇일내'란 뜻이며 '조만간'은 경우에 따라 '몇달내' 또는 '몇년내'까지로 늘릴 수 있는 말이다. 둘다 시기를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인 말이다. 즉 정확한 시점을 이야기 했다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지게 될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계산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이런 표현을 언론이 즐겨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세 번째 기사의 '차제(此際)에'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이다. 해방직후에는 많이 썼으나 오늘날에는 잘 쓰지 않는다. 고식적 표현을 즐기는, 유식한척 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말이다. '이 기회에'나 '이를 계기로' 등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
너무 한자말을 좋아하다 보면 기자 자신도 잘 모르는 말을 써서 말도 안되는 기사를 써놓는 수가 있다. "그는 작년 말쯤부터 영입파로 당내세력이 전무했던 이후보에게 자신의 계보원을 단계적으로 방면(放免)-합류시켜 세를 몰아주는 작업을 진행시켰다."(1997년 7월 22일, 중앙일간지). "'학생운동은 더 이상 변혁의 중심세력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공안당국의 과잉탄압과 한총련의 반민주적 운영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한총련의 발본적 혁신을 위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1997년 7월 8일, 중앙일간지). 첫 기사에 나오는 '방면'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여 풀어주거나 형기를 마친 재소자를 풀어준다는 뜻으로 쓰는 법률 용어이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무슨 특별한 은유를 노렸는지 아니면 기자도 그 뜻을 정확히 몰라 틀리게 썼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튼 결과는 같다. 엉터리 표현을 쓴 것이다. 잘난척 하려다 망신만 당하는 꼴이 되었다.
'발본'이라는 말은 어렵지만 간혹 쓰는 말이다. 그러나 '발본적'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그리고 "발본적 혁신"이란 도데체 무슨 뜻인가? '발본'이란 '발본색원(拔本塞源)'의 준말으로 '어떤 것이 생겨난 원천(源)을 찾아 그 근본(本)부터 뽑아 버린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뿌리 뽑는다'와 마찬가지로 아예 조직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혁신'은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조직은 그냥 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니 "발본적 혁신"이란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표현이다. '발본적 혁신'이 아니고 '근본적 혁신'이라 해야 말이 된다.
② 고대 중국어 문법에 따라 만들어 쓰는 한자 조어
"선원38명 탄 北화물선 스리랑카 반군에 被拉". 1997년 7월 9일 어느 중앙일간지에 난 기사다. '被拉(피랍)'은 납치(拉)를 당했다(被)는 뜻이다. '○○당하다'는 뜻을 나타낼 때는 被자를 쓰는 것이 고대 중국어 또는 한문의 문법구조이다. '피해' '피살' '피격' '피습' '피폭'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피랍' '피살' '피격' '피습' '피폭'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피해'란 말은 많이 쓴다. '피해'는 '피랍' '피살' '피격' '피습' '피폭' 등과 달리 이미 우리말 낱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말로 귀화하는 과정에서 '해를 당하다'라는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손실'과 비슷하게 '피해입은 결과'를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살' '피랍' '피격' '피습' '피폭' 등은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두 낱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당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최근 우리 언론이 만들어 쓰기 시작한 '피안타율'도 이런 식의 한자구(漢文句)이다.
한자말 중에서 우리말이 된 것은 많지만 한자(Chinese character) 자체가 우리말이 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말로 된 한자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문을 배우는 것이지 한문체계에 맞추어 모든 한자를 자유로이 쓰고자 한문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일본과 우리의 차이점이다. 따라서 '일본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자꾸 한자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 글자수의 제약을 많이 받는 신문 제목을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언론 자신의 편의를 위해 독자나 시청자들이 잘 모르는 용어를 만들어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스리랑카 반군에 피랍'을 '스리랑카 반군이 납치'라고 바꾸어 쓰면 글자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고대 중국어 문법체계에 맞추어 만들어 쓰는 한자 조어는 매우 많다. "孔외무 오늘南美향발", "'不正은 절대 不容' 안정속 변화"(1995년 8월 21일, 황정인, 1995에서 재인용), "서울 문화시설 '태부족'"(1997년 8월 21일, 중앙일간지)에서 쓰인 '向發' '不容' '太不足'도 언론이 곧잘 쓰는 말이지만 우리말이라고 할 수 없는 한자조어들이다. 물론 큰 우리말 사전에는 나온다. 그러나 이런 사전들은 대부분 일본어 사전을 번역한 것이어서 일본식 한자조어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큰 우리말 사전에 나온다고 모두 우리말은 아니다.
③ '유식한' 사람들이 쓰지만 순화해야 할 한자말
일상생활에서 제법 잘 쓰는 말이지만 아직 우리말로 토착하지 않은 한자도 많다. 이런 말들은 친근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 "洪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고 부연했다."(1997년 8월 14일, 중앙일간지). "국가 주요시설과 다중 이용 시설에 대한 검문 검색과 요인 보호 활동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습니다."(1997년 7월 19일, 텔레비전 뉴스). '부연(敷衍)하다'는 말은 연설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덧붙여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다'는 뜻으로 '덧붙여 설명하다' 또는 '덧붙이다'라고 바꾸어 쓰면 된다. '다중(多衆)' 역시 썩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음성다중' 따위에 쓰는 다중(多重)이란 말과 혼동하기 쉽다. 또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에 느낌도 매우 어색하다. 그러니 '다중 이용 시설'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우리말로 토착한 한자말이라 할지라도 이들을 합쳐 합성어로 만들면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1997년 7월 18일 어느 신문은 "러 우주정거장 '미르' 기능마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능'이나 '마비'는 흔히 쓰는 말이고, 둘 다 우리말로 토착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합해 '기능마비'라고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고장'이란 또 다른 토착 한자말이 있는데 굳이 '기능마비'란 합성어를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
(3) 고사성어
한때 토사구팽( 死狗烹)이란 말이 유행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초기, 김 대통령 당선을 위해열심히 일한 한 여당 국회의원이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자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쓴 고사성어이다. 웬만한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지만 당시 상황에 잘 맞는 말이었기에 금방 널리 퍼져 유행어가 되었다.
한자 고사성어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으며 의미를 압축해서 전달할 수 있다. 또 많은 고사성어들이 우리말처럼 쓰여 우리말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고사성어 사용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사람들이 잘 모르면 말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다. 아는 몇몇 사람들끼리 아무리 멋진 표현이라고 칭찬해대도 대중이 모르는 것이라면 보도 언어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엇갈린 성적표. 박노준이 앙앙불락, 칼을 갈았지만 이듬해엔 무승."(1997년 8월 12일, 중앙일간지). "이들은 자기 당의 대선주자인 이회창(李會昌)대표가 야당측의 '병역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과정에서도 吾不關焉(오불관언)의 자세들이다."(1997년 8월 4일, 중앙일간지). '앙앙불락(怏怏不樂)'은 마음에 차지 않아 즐겁지 않다는 뜻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고사성어를 열심히 욀 때 한 두 번 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무슨 뜻인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말이다. 하물며 대학 가기 위해 고사성어를 외지 않아도 되던 세대야 오죽하랴. '성이 차지 않아'라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불관언'도 마찬가지이다. 고사성어라기 보다는 사자성어(四字成語)인데, 한문문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쓰지 않던 말이라 그 뜻이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차라리 '나몰라라 한다', '강건너 불구경하는 자세들이다'라 하면 더 잘 와닿을 것이다.
"당 대선후보 경선을 40일 앞둔 시점에서 주자간 합종연횡의 연결고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1997년 6월 11일, 중앙일간지). "진퇴유곡(進退維谷)인 상황에서 여권이 구상할 수 있는 돌파카드로 대선전 여권주도의 정계개편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이 또한 여의치 않다."(1997년 8월 21일, 중앙일간지). '합종연횡(合縱連衡)'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특히 많이 썼다. 정책이나 신념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후보들이 마구 생겨나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편을 짜는 모습을 빗대기 위해 쓴 말이다. '진퇴유곡'은 '진퇴양난(進退兩難)'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합종연횡', '진퇴양난', '진퇴유곡' 등은 아주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감각에 잘 맞지 않는다. 기성세대야 익히 아는 말이고 옛날에 대한 향수도 있으므로 이런 표현을 즐길지 모른다. 그러나 한자를 멀리해온 젊은 세대는 고사성어에도 익숙하지 않다. 고사성어가 우리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는 우리말 표현을 개발하고 우리 속담을 적극 활용하여 그 자리를 메꾸어야 할 시대가 된 것 같다.
(4) 어려워서 엉터리로 쓰는 한자말
어려운 한자말을 쓰다 보니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터리로 써온 것도 적지 않다. 이런 한자들은 '피해'처럼 우리말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뜻이 바뀐 한자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양', '반증', '진통', '치하' 등은 유식한 사람들이 글이나 문어체 연설에서 많이 쓰지만 보통 사람들이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① 지양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직 겸직 지양. 국회의장 당적이탈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1997년 8월 23일, 중앙일간지). '지양(止揚)'은 '어떤 것을 그 자체로서는 부정하면서도, 도리어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이것을 살리는 일'이란 뜻을 지닌 헤겔의 변증법 용어 'aufh ben'을 일본 학자가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이수열, 1993). 추상적인 철학 용어이므로 뜻을 쉽게 풀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단순히 '금지' '멀리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언론을 비롯해 일상 생활에서 '금지'나 '멀리 함'의 뜻으로 쓰인다. 위 기사에서도 지양이 단순히 '금지'의 뜻으로 쓰였다.
② 반증
"일단 단독 승부를 시도해 보되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兩金이든, 여권이든 어느 한 쪽과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金大中총재가 11일 趙시장의 서울시장 재공천 보장을 언급한 게 이를 반증한다."(1997년 8월 12일, 중앙일간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 대표가 강하게 발언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1997년 8월 12일, 중앙일간지). '반증(反證)'은 사실과 반대되는 증거라는 뜻이며, 법적으로는 상대방이 신청한 사실이나 본증을 반박하기 위한 증거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보기를 들면, "사건 현장에 철수가 없었다는 사실은 철수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반증한다." 따위에 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입증하다'나 '방증하다'라고 써야 할 자리에 쓰인다. '방증(傍證)'은 원래 법률 용어로서 '직접 증명하는 증거는 아니지만 주변 상황을 명백하게 하고 이것을 굳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증거'라는 뜻이다.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반증'은 대부분 '방증'이나 '입증'으로 바꿔 써야 할 것들이다. 위 기사들도 '방증하다'나 '입증하다'로 바꿔 써야 옳다.
③ 노고 치하
"한편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7일 이대표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던중 강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과거 총선을 치르면서 고생한데 대한 노고를 치하하면서 다시 한번 총장을 맡아 대선을 치러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1997년 8월 8일, 중앙일간지). '치하(致賀)'는 '남의 경사에 대해 축하, 칭찬의 뜻을 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공로를 치하하다' 따위로 쓰는 것이고, '노고'와는 어울릴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에서는 '노고를 치하하다'가 관용적으로 쓰인다. 그것도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랫사람의 노고에 대해서만 쓴다.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노고'는 위로해야 맞다. 위 기사도 "... 노고를 위로하면서 다시 한번 ..."으로 고쳐야 한다.
(5) 일본식 한자
일본식 한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조어가 많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체계를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식 한자의 문제점은 제4장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4. 어려운 말을 쓰는 이유
(1) 관행
옛부터 우리 언론은 한자말을 비롯한 어렵고 유식한 표현들을 많이 썼다. 보도 행위는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 공공적인 행위이므로 어디에 내놓아도 번듯해 보이는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언론의 주 소비자는 지식인들이므로 이들에게 맞는 유식한 말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 언론은 어려운 말들을 많이 사용하였고 그 전통이 남아 아직도 한자말과 어려운 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① 공공 영역의 한문 사용 전통
우리 사회가 중국에서 한자를 빌려온 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까지 우리 나라는 한문 또는 한자를 공식언어로 생각해 왔다. 모든 공공 영역에서는 한자말을 사용하였으며, 우리말밖에 없는 경우에는 억지로 한자 조어를 만들어 썼다. 한자 사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공공 문서와 공공 담론이였다. 제도나 규정을 새로 만들 때마다 그것을 기록하는 공공 문서는 새로운 한자말을 만들어내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제도화할 때마다 우리말의 한쪽은 잘려나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명사는 한자어로 대체되었고, 심지어는 산과 강의 이름, 사람 이름, 마을 이름까지도 한자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공공 문서가 한자어로 쓰였기 때문에 공공 문서를 바탕으로 하는 공공 담론--정치적 대화, 공식 교육, 법이나 행정과 관련된 대화, 사회 각 집단간의 공식 대화--역시 한자어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공 담론을 중개하는 매스 미디어도 한자어를 중시하게 되었다. 보도 내용을 순 우리말로 써 놓으면 공공 담론이라기보다 사적인 대화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래서 같은 현상도 한자어로 쓰려 하고 순 우리말밖에 없으면 일본한자라도 빌려 쓰려 한다.
한자말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우리말로 토착한 한자말들이야 자주 쓰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말들은 언제 들어도 그 느낌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② 권위지 전통
우리 언론은 오랜 '권위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옛부터 신문은 상류층과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지식욕이 높아 어려운 말과 글을 읽고 싶어 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어려운 한자말을 즐겨 쓴다. 그래서 언론은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 즉 우리가 흔히 유식한 말이라고 하는 한자말, 서양말, 전문 용어 등을 많이 쓰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언론은 '정론지'에서 '정보지'로, '권위지'에서 '대중지'로 탈바꿈하였다. 그 결과 독자층도 일반대중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보도 언어도 대중들이 쓰는 말로 바뀌었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지 시대에 쌓아온 관행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서 독자는 대중화하였지만 보도 언어는 대중화하지 않고 있다.
(2) 지면 절약의 필요성
한자가 우리말에 대해 갖는 장점이 하나 있다. 한자는 뜻글자기 때문에 우리말보다 적은 글자수로 오히려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문 제목 같은 데서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한자말이 같은 내용의 우리말보다 무조건 간결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말이 오히려 더 짧은 경우도 적지 않다.
또 간결성이 보도 언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니다. 특히 요즘 신문은 수많은 지면을 가지고 있다. 4면이나 8면을 발행하던 옛신문과는 처지가 다르다. 그런데도 "짧게, 짧게"를 부르짖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우리 신문에 비하면 영어 신문의 제목들은 정말 길다. 우리가 짧은 제목을 원하는 이유는 제목이 짧을수록 더 큰 활자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눈길을 더 많이 끌기 위해 제목을 크게 인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목이 짧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자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니 보통 걱정이 아니다.
(3) 취재 대상의 언어 수용
언론이 취재 대상을 따라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 학자나 지식인들의 견해를 보도할 때는 이들이 쓰는 어려운 용어를 그대로 받아 쓰고, 기술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이 영역 전문가들의 용어를 따라 쓴다. 또 법률, 행정, 경제,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어려운 한자, 그것도 일본에서 만든 한자를 많이 쓴다(신각철, 1995). 그러다 보니 이 분야를 취재 보도하는 언론도 그런 말을 따라 쓰게 된다.
이런 경우 언론은 수용자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상대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어렵더라도 그 분야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언론의 수용자는 언론이 제공하는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access)가 있다. 따라서 어떤 기사도 특정 수용자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써서는 안된다. 상식을 갖춘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언어로 기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외국 언론학자들은 흔히 독이성(讀易性)이라고 번역하는 '읽기 쉬움'(readibility)을 기사의 기본 조건으로 보고, 신문을 읽기 쉽게 만드는 방법들을 연구한다(차배근, 1988a). 읽기 쉬워야 독자들이 신문을 더 많이 볼 것이라는 장사속에서 이루어진 연구지만 널리 읽히는 신문을 만들려는 노력은 우리 언론이 배워야 할 점이다.
5. 대책
한자 용어를 비롯한 어려운 말은 방송보다 신문이 더 많이 사용한다. 방송은 신문보다 더 광범위한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권위를 의식하지 않고 쉬운 말들을 골라 쓴다. 또 방송은 말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므로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골라 쓰려 노력한다. 신문은 아직도 지식 권위주의와 문어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갈수록 신문을 멀리 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읽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무식해서 신문 읽기를 싫어한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읽기 쉬운 신문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보도 언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 언론인들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보도 언어의 사진은 2,30년 전에 찍어 놓은 것이다. 신문은 격식을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자말을 비롯한 문어체 언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오늘날의 젊은이들, 즉 미래의 기성세대들을 신문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의 언론은 자신의 권위보다 독자의 이해를 중시해야 한다. 그래서 권위 높은 존재로 우뚝 서 있기 보다는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과 독자를 가까이 끌어들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독자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바닥에 깔고 있다. 자기 좋을 대로 자기 편리할 대로 그리고 자기가 해오던 대로 하되, 독자들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을 뻗쳐 그들을 가까이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을 택하는 대신 그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외국어나 원색적 표현을 쓰는 것은 젊은층에게 다가서는 행위가 아니고 그들을 꼬드켜 모으는 행위라 할 것이다.
(2) 언어 선택의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
과거 우리 신문의 독자상은 대학졸업 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4,50대 남자였다. 신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편집을 했든 아니든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문체로 신문을 만들어 왔다. 이런 사람들이 여론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표적인 독자라 할 수는 없다. 한국일보 스타일북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년 정도 사회 경험을 쌓은 남자를 기준으로 해서" 글을 쓰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신문들은 이 기준보다 훨씬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기준도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사실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8년이나 지나야 겨우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보통 어려운 글이 아니다. 중학교 졸업생의 처지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유치원 2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이면 십년이 넘는다. '십년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도 분수가 있어야지 앞으로도 고등하교 3년, 사회생활 8년, 모두 11년을 더 공부하라는 것이다.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8년만 지나면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8년 중 4년은 대학에서 더 배우고 나머지 4년은 전문성이 높은 직장에서 보낼 수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신문이다.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한지 22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글이 있다니 교육이 잘못된 것인가 글이 잘못된 것인가?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을 7년 더 다니고 최고전문직 생활을 10년이나 한 사람도 모를 용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그 글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제 보도 언어의 기준을 크게 낮추어야 할 때가 왔다. 신문은 중학교만 졸업해도 80% 이상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라면 전문성이 높은 기사를 제외하고는 신문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껴서는 안된다. 그리고 대학교육을 마친 사람이나 고등학교 졸업후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면 자신이 게을러 배우지 못한 몇몇 시사용어를 제외하고는 용어해독에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3) 대표적 독자에 맞추어 글을 써야 한다
중학교 졸업자에게 기준을 두든 대학 졸업자에게 기준을 두든 기사를 쓸 때는 항상 이 기준에 가장 걸맞는 사람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어야 한다. 다른 글을 쓰는 이들도 그렇지만 언론인도 자기중심적 생각에 빠지기 쉽다. 자기나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언론인들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유식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자신을 대표적 독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언론인이 "이쯤이야 웬만한 사람은 알겠지" 하는 생각으로 쓰는 표현들 가운데 상당수는 웬만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건 너무 쉬운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써야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4) 글은 독자 중심으로 써야 한다
① 의미전달행위의 기본 원칙은 '수용자 중심'이다
모든 의미전달행위(communication)는 수용자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연설은 청중을 중심으로 해야 하고 글은 독자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청중이나 독자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의 이론이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정보원을 중심으로 의미전달행위를 해왔다. 상대가 알아듣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방식대로 하는 것이 우리의 공공 담론 방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멍청한 일반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권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미전달행위는 우리 사회에서도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사회가 민주화한 것이다. 이제 언론인들도 청중을 중심으로 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그들의 위치에 서서 그들이 쓰는 말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인들이 버릇처럼 쓰는 말이나 취재대상들이 사용하는 말은 일반인들의 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
② 취재대상의 전문용어를 수용해서는 안된다
언론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 용어의 상당수는 취재대상들이 주는 것들이다. 검찰, 경찰, 법원에서 나오는 법률용어, 각급 행정부서에서 나오는 행정용어, 경제 전문가들이 쓰는 경제 전문용어, 학자들이 쓰는 학술용어, 정치인들이 쓰는 권위주의 용어 등을 그대로 받아 쓰면 아무리 쉽게 쓰고 싶어도 쉽게 쓸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용어가 나오면 그 풀이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좀처럼 상대가 쓰는 전문용어의 뜻을 묻지 않는다. 알면 다행이고 모르면 미루어 짐작하고 그래도 영 모르면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체면을 잃지 않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 용어의 뜻을 묻는 것은 무식함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의미전달행위를 연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 영역의 전문용어를 쓰는 행위가 더 무식한 행위이다.
미국 사람들은 전문 용어에 대한 뜻풀이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영어로 합시다(speak in English)'라는, 뜻풀이를 요구하는 관용어까지 생겨났다. 독자들은 어려운 용어의 뜻을 몰라도 그 용어를 쓴 사람에게 뜻을 물을 길이 없다. 언론인들은 독자를 대신해서 그 뜻을 물어주어야 한다.
(5) 한자말 한글 표기가 해결책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과 글을 혼동하여 언론이 한글만 쓰게 되면 보도 언어도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자말도 무조건 한글로만 적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보도 언어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자를 쓰지 않으면 읽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음독'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한자를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한글만 사용하는 글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이것이 추세라면 구태여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글 전용과 어려운 한자말 사용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한글로도 어려운 한자말을 쓸 수 있고 한자로 써도 쉬운 말은 얼마든지 있다.
① 말과 글은 별개의 존재이다
한글날이 되면 '우리말이 오염되고 있다', '우리말을 순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가 많이 실린다. 그러나 왜 하필 한글날 이런 기사를 실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한글날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澎?'(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말을 만들어낸 날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우리말은 한글창제 수천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설사 한글이 없어져버린다 해도 따라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한글이 아무리 번창해도 사용자들이 한글로 표기한 다른 나라 말을 많이 쓰게 되면 우리말은 죽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한자와 한자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자말이란 한자에서 유래한 낱말이나 용어를 가리키는 것이고 한자(Chinese character)는 그 표기문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자를 쓰지 않는다고 어려운 한자말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한글은 우수해서 어떤 한자말도 모두 표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② 한자가 아닌 한자말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한자말이다. 우리말로 토착한 한자말이 아닌 아직도 생소하고 어려운 한자말을 버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고대 중국어 문법을 이용해 어려운 한자말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을 중지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으면 우리말 체계를 이용해서 만들면 된다. '먹거리' '동아리' '새내기' '도우미' 등 새로 만들어 쓰는 우리말이 얼마나 듣기 좋고 정겹게 느껴지는가? 이 책에서는 일부러 '패션모델'을 '보이미'로 번역해 써 보았다(제3장 참조). 이왕에 도우미란 말이 나왔으니 남에게 옷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주는 사람을 '보이미'라 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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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언 어 론
임 태 섭 · 이 원 락 공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썩은 술 찌꺼기가 남아 있는 헌 부대에 부으면 금방 제 맛을 잃고 만다. 김영삼 정부가 이룩하려고 했던 교육개혁도 헌 부대에 부은 새 술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수학 능력 시험과 논술 고사를 중심으로 하는 새 대학 입시 제도는 중심을 잃어버린 우리 나라 중고등학교 교육에 새로운 축을 세워줄 수 있었다. 수학 능력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력와 언어 이해 능력이며, 논술의 핵심은 언어 구사 능력이다. 따라서 옛 입시제도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느냐를 재려 했다면 새 입시제도는 대학 공부에 필요한 언어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를 평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새로운 제도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갖지 못했다. 수학 능력 시험의 뜻을 충분히 살리는 문제를 낼 수 있는 사람도, 논술 답안지를 제대로 채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의 글로써 모범을 보여줄 사람도 없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사, 글을 통해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여러 전문인들, 그리고 학생들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교수들이 헌 부대로 남아 있는 한 우리 학생들의 글에서 썩은 술 찌꺼기 냄새를 빼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요, 학생은 전문인의 스승이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듯 학생이 자라서 전문인이 되고, 교사가 되고, 교수가 된다. 말 못 하고 글 못 쓰는 학생이 자라서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될 리 없다. 이들도 결국 지금의 교사, 교수, 전문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사회의 헌 부대가 되어 새로 담글 술 맛을 그릇치는 노릇이나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이들이 가르칠 미래의 학생들도 그 다음 시대의 헌 부대가 되어 우리들이 물려준 썩은 술 냄새를 자랑스럽게 풍기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제대로 된 사회를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글쓰기 전통을 세워야 한다. 학생들에게 어떤 글이 바르고 좋은 글인가를 보여주어야 하고, 학생들이 쓴 바르고 좋은 글을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교수 그리고 전문인들부터 먼저 글 바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남이 써 놓은 것을 보고 이렇게 쓰면 되는구나 하고 따라 쓴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방해 온 그 글들이 정작 좋은 글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가 쌓아 온 글쓰기에 대한 지식도 정확하지 못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지성인들이 먼저 자기 글을 혁신할 때 비로소 우리 교육과 우리 사회가 바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쓰기 혁신은 두 쪽에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한 쪽은 공식적인 교육 마당인 학교이고, 다른 한 쪽은 사회 교육 마당인 언론이다. 학교에서 아무리 바로 가르쳐도 언론이 다르게 쓰면 '허울 좋은 이론'이 되고, 언론이 아무리 바로 써도 학교에서 다르게 가르치면 '빗나간 실제'가 된다. 따라서 학교 선생과 언론인이 함께 나서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글쓰기 전통을 수립할 수 있다.
이 책은 두 교육 마당 중에서 사회 교육 마당인 언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언론이 사명감을 가지고 바르고 좋은 글을 쓰는 데 앞장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글같은 글을 쓰는 사람은 언론인들 뿐이다. 그러나 언론인들의 글조차도 절대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크게 부족하여 외국말과 외국문법을 마치 우리말이나 우리문법 인양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말의 정체성을 중시하였고 보도 언어도 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말의 정체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이 책을 국수주의적이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저자들은 외국과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인다'는 것이 남의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사실이다. 남의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따라 가는 것이다. 외국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우리말 체계 속에 녹여들여야 비로소 받아들인 것이 된다. 그렇지 못하고 외국말을 들임으로써 우리말 체계가 바뀌어버린다면 그것은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외국말을 따라가는 것에 반대한다. 이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라 사대주의의 배척일 뿐이다.
이미 일반화한 말도 문제가 있으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쓰는 말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이란 변하기 마련인데 그 변화를 어떻게 막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말은 변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말이 혼자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쓰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말이 스스로 바뀌어버리기라도 한 듯, 이제 세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은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는 좋은 방향으로 키워 나갈 수 있다. 우리가 모두 글을 바로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스스로 배우는 자세를 가진다면 우리말도 발전하고 우리의 언어 능력도 크게 나아질 것이다. 특히 언론이 이런 운동의 중심에 선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는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을 후원해주신 삼성언론재단과 연구에 참여하여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제 1 장: 보도 언어의 중요성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도 언어의 기능과 보도 언어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논의한다.
1. 보도 언어의 기능
2. 바른 보도 언어 정립의 필요성
보도 언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도 언어가 갖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우리 나라 보도 언어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본다.
1. 보도 언어에 대한 기존 연구
2. 전문가 집단 면접(focused group interview)에서 지적된 보도 언어의 문제점
3. 신문과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분석(content analysis)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어 남용 현상을 분석하고 그 폐해와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1. 우리말과 보도 언어
2. 외래어
3. 쓰지 말아야 할 서양말
4. 외래어를 쓰는 이유
5. 언론의 외래어 정책
일본식 한자말과 일본식 영어 남용 현상을 분석하고 그 폐해와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1. 일본말과 보도 언어
2. 일본말의 종류
3. 쓰지 말아야 할 일본말
4. 일본말 사용의 이유
5. 언론의 일본말 정책
제3장(외래어)과 제4장(일본말)이 용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 장은 표현방식과 문장구조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어나 일본어의 문장구조와 표현방식을 그대로 직역하여 쓰는 관행의 문제점을 논의한다.
1. 우리말과 외래 표현
2. 쓰지 말아야 할 외래 표현과 외래 구문
어느 한 쪽을 좋게 또는 나쁘게 묘사함으로써 보도의 공정성을 떨어뜨리는 권위주의 언어, 특정집단의 언어, 사람을 차별하는 언어 등의 문제점을 논의한다.
1. 보도 언어와 공정성
2. 권위주의 언어
3. 특정집단이 만들어낸 보편성이 낮은 언어
4. 인간을 차별하는 언어
독자나 시청자의 눈부터 끌고 보자는 선정주의 편집방침이 낳은 극단적 표현, 성적 표현, 비속어의 문제점을 논의한다.
1. 선정주의와 보도 언어
2. 지나친 과장과 극단적 표현
3. 성적 표현
4. 비어, 은어, 유행어
언론, 특히 신문이 사용하는 어려운 전문용어, 한자말, 일본식 한자 등의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1. 어려운 우리 보도 언어
2. 쉬운 글과 어려운 글
3. 쉽게 고쳐 써야 할 어려운 말
4. 어려운 말을 쓰는 이유
5. 대책
언어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용어 선택, 틀린 표현,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 잘못된 띄어쓰기 등의 문제를 논의한다.
1. 언론인과 언어능력
2. 잘못된 표현과 틀린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