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얼음꽃 그리고 순백의 설산 장수덕유산행기-물사랑

[무중]

2005년 2월 21일 물사랑

금주에는 경남 거창군,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 사이에 우뚝선 우리나라에서는 해발고도 제4위를 자랑하는 덕유산 능선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남덕유산에 가기로 일정이 잡혀있다.
애시당초 2월 산행 계획이 나오면서 덕유산 일정이 잡혀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지 하는 의지를 굳힌바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염려하던 무슨 일이 토요일 생기고 말았다.
겨울 방학 내내 시간만 나면 스키장에 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들 성화를 어떻게 어떻게 넘기고 있었는데 대학 동창회에서 회비가 많이 저축되어 있으니 가족들과 함께 스키장이나 가자는 연락을 받고는 도저히 거절할 명분이 서질 않아 일요일은 도저히 안되니 토요일에 가자고 날짜는 변경하여 충북에 있는 사조 리조트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일정상 토요일은 스키를 타고 저녁에는 수안보에서 1박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통보에 상당히 난감해졌지만 일단 참석하고 기회를 봐 올라와야 남덕유산 산행에 참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튼 토요일 열심히 놀아준 댓가로 1박은 면하고 저녁 늦게 귀가하여 잠을 자는둥 마는둥 일어나 배낭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서툰 스키 실력 탓에 얼마나 애를 썼는지 설악산 대청봉에서 백담사 코스를 완주하고도 다리에 알이 배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걷는 걸음이 종아리 뒤쪽과 엉덩이 부분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산에 가서 땀을 흘리면 풀리겠지 하고 기대하며 오늘은 모처럼 참석하는 유달산님과 같이 탑승하기 위해 천년뷔폐 앞으로 간다
집의 위치상 천년뷔폐도 좋고 계양구청도 좋고 월마트 앞도 차를 탑승 하는 데는 거리차가 별로 나질 않는다.
잠시 기다린 후에 도착한 유달산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곧이어 바로 앞에 정차하는 청송에서는 항상 최대장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는데 오늘은 윤대장님이 나오셔서 상당히 의아해 하며 탑승 하여 물으니 오늘은 차가 두 대로 간다고 한다.
역시 명산이다 보니 산꾼 들이 많이 들 좋아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아쉽지만 겨울산행의 색깔을 초록이 움트고 꽃이 피는 봄 산행으로 바꾸어야 할 텐데 마지막 가는 눈꽃 축제를 즐기기 위함도 상당한 이유일거라 짐작해본다.
나 역시 올 들어 겨울 산행은 처음인데 제대로 된 겨울 산을 밟아 보지 못하고 그냥 봄을 맞나 싶어 몹시 아쉬웠던 참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정말 필사의 노력을 다해 참석한 터이기 때문이다.
두 대로 나누어 약60여명이 참석한 일행은 옥산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육십령 휴게소 조금 지난 공터에 차를 세운다.
오늘 1팀은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거쳐 능선을 타다 서봉(장수 덕유산)을 지나 월성치에서 황점 매표소 쪽으로 가는 약6시간 코스를 타기로 하고 2팀은 영각사에서 덕유 교육원 앞을 지나 남덕유산에 오른 후 월성치를 거쳐 1팀과 같이 황점 매표소까지 가는 약 4시간30분 코스를 타기로 되어 있다.
욕심 반 공명심 반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1팀이다 라고 생각을 굳힌다.
사실 어느 코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경관은 어느 코스가 좋은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 결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욕심은 1팀으로 가더라도 먼저 출발하는 미래 관광버스를 탑승하고 싶고 또 2팀을 추월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그래도 얼핏 잡아 40여명의 산우님들이 1팀과 동행하는 듯 하고 육십령 고개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저절로 몸이 굳어지는 듯 하여 이리 저리 몸을 풀며 다른 산우님들이 산행 채비를 마치기를 기다린다.
온몸을 파고드는 차가운 한기로 인해 잠시 서 있는 것도 불편하여 일단 통로를 가로 막은 듯 보이는 2개의 나무사이를 덕유산 그 웅장한 산세로 집입 하기에 앞서 절하듯 깊이 고개를 숙여 겨우 통과 한 후 본격적인 산행으로 접어든다.
그토록 매섭던 바람이 산의 품으로 접어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걸 보니 금방 절한 효과가 있는 건가?
등로는 가랑잎과 눈이 섞여 꽁꽁 얼어 있는 형상이고 계단처럼 만들어진 발자국 길은 매끈매끈 얼어 있어 아차하면 미끄덩 넘어질 판이라 조심조심 다리에 힘을 주고 스틱에 체중을 실어 의지하며 진행 한다.
포근하던 첫인사도 잠시 우렁차다고 밖에 표현 할 길이 없는 거선 바람이 계곡을 훓고 올라와 주위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잡목들을 잡아 흔든다.
그 웅장한 산세의 영향인가 아니면 오늘 따라 특이한 날씨 탓인가 아직까지 들어왔던 겨울산의 쌩쌩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는 사뭇 다르게 성능 좋은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오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깊고도 넓은 소리처럼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잠자던 그 어떤 혼을 흔들어 깨우는 듯 가슴을 시원하게 치고 들어온다.
뭐랄까 마치 감당키 어려운 천둥소리 같다면 조금이나마 표현될까.
아무리 추운 겨울산도 처음에만 조금 춥지 걷다보면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걸 경험했기에 오늘은 아예 모자도 벗고 출발했는데 천둥치듯 불어대는 덕유산의 강풍은 금방 귀를 꽁꽁 얼게 만들고 볼마저 잠시 후에는 감각이 없어진다.
그럴수록 다리에 힘을 주고 속도를 내며 걷고 있는데 앞서 가던 정빈씨 “오늘 작정하셨나 봐요” 하며 내 속과는 다른 말을 하는데도 입이 얼어 대답도 못하고 그냥 끙끙대며 올라갈 뿐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 매섭던 추위는 간곳없이 사라지고 다만 돌출된 귀만 시려워 왼쪽 손으로 감싸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작은 능선에서 바라본 전방은 지난 가을날 대둔산 마천대에 오르기 위해 능선에서 바라본 까마득한 절벽산을 연상시키게 하고 짙은 회색의 절벽에 드문드문 흰눈으로 장식한 정말 보기만 해도 가파르고 위태로워 보이는 할미봉이 가로막고 서있다.
아니 저산을 어떻게 올라 간다지 내심 속으로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그런데 땅만 바라보며 묵묵히 걷다가 무심코 올려다 본 나무 가지에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얼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청량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영롱하기 그지없게 반짝거리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조금 지나 다른 나무에는 그간 말로만 듣던 상고대가 두껍지는 않아도 가지마다 하얗게 피어나 차가운 주위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결하고도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아직은 고도가 낮은 탓인지 바람에 떨어지는 상고대가 나풀나풀 땅이고 하늘이고 가득하다.
아이고 힘들다 로 가득 차있던 마음에는 어느덧 고통의 그림자는 완벽하게 사라지고 그저 멋있다 아름답다의 감탄사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어려워 보이던 가파른 고갯길을 활홀경에 취해 올라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산행지도에 표시된 위험지역으로 할미봉 정상에 있는 난코스임을 직감하고 다가가 보니 거의 칠 팔십도의 급경사에 울퉁불퉁한 바위에는 꽁꽁 언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야 이거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앞서 가는 산우님들이 내려가길 기다리며 전방을 바라오니 오른쪽으로는 남 덕유산이 정상에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마치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를 연상시키듯 뾰족하면서도 장대한 기품을 풍기며 자리하고 있고 정면으로는 서봉이 남 덕유산처럼 웅장한 맛은 덜하지만 삐죽삐죽 솟아오른 바위들로 정상이 장식된 매우 험하고 강한 느낌을 풍기고 서있다.
서봉과 남 덕유산 사이에 깊게 파인 계곡은 말 못할 기운이 가득 차 있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미 하이드로미더리의 호스는 관리를 잘못하여 꽁꽁얼어 있기 때문에 정체구간에서 앞선 산우님들이 내려가기를 기다리며 나무 가지에 매달린 얼음을 따먹으며 갈증을 달랜다.
어릴적 처마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을 따먹던 생각이 불현듯 지나간다.
도심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을 수정처럼 맑은 얼음을 보자 그냥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알싸한 맛이 옛 기억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막상 위험구간을 지나면서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닥친 상황에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위축되어 있으면 그로 인해 더 위험질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어지는 능선 길은 흰 눈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길옆으로 자생하는 산죽들만이 진녹색으로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그 잎에 살짝 내려앉은 눈들이 처연하도록 슬픈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비탈길 위에 위태로운 절벽 옆으로 가느다란 로프가 하나 쳐져 있고 손바닥 폭정도의 좁은 돌 틈을 딛고 지나가야 하는 위험한 길이 나타났다.
앞서가는 두 분이 조심스럽게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옆으로 절벽에 바짝 붙어서 한발한발 지나다가 그만 앞선 발이 주루룩 미끄러지고 말았다.
찰라 지간 바위벽에 더욱 바짝 달라붙어 미끄러진 곳 밑에 조금 돌출한 돌부리에 의지하고 겨우 통과하고 나서 밑을 바라보니 정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이 보이고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강풍이 배낭에 달린 줄을 스치면서 쌩쌩 소리를 내고 있다.
한숨 돌리고 나서 그저 무난한 능선을 타고 산행은 계속되고 조그만 언덕을 넘자 앞서간 선두팀 들이 옹기종기 몰려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서봉 근처에서 하기로 했는데 너무 바람이 강하고 추워서 여기가 좋을 듯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잠시 앉아 있는데도 추위로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고 뜨근한 라면 국물에 꽁꽁언 밥을 넣어 한술 떠먹으려고 하니 세상에 거지가 이것보다 나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뒤따라 올라온 유달산님과 합석을 하여 소주를 반주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후미팀을 기다리려다 너무 추워 먼저 일어선다.
오늘 처음 나오신 듯한 여성 산우님을 앞세우고 유달산님과 함께 이제는 서봉을 향해서 걷는데 금방 밥을 먹어서 그런지 옆구리 땡겨온다.
걷다가 문득 되돌아보니 지나온 할미봉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고 칼처럼 아슬아슬한 능선길이 이어져 우리가 과연 저 길을 지나 왔던가 하는 생각을 유달산님과 같이 한다.
그런데 앞서가는 여성 산우님의 발걸음이 아무리 봐도 예사롭지가 않아 산에 다니신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니 잠시 망설인 끝에 백두대간 종주도 마쳤다고 한다.
유달산님과 거의 동시에 “아이구 선배님” 소리가 나오고 “무릎꿇어요”하며 “이제 우리는 겨울 10개월 밖에 안 되었습니다” 하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소리에 한바탕 산중에 웃음을 내려놓는다.
점차 산행은 고도를 높여가며 서봉은 가까워지고 주위로는 더욱 현란한 상고대와 얼음 꽃들이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그저 꿈결 같은 환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거의 정상쯤인가. 마주 오는 다른 산우님 세분이 듣기 좋게 경상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말투로 ‘이건 그림도 아닙니더.“ ”조금 더 가면 거기가 대학생이면 여기는 이제 걸음마도 못 뗀 애기니더“ 아니 얼마나 아름답길래 이토록 찬탄을 금치 못하는 풍경을 이리도 비하 표현한단 말인가.
그저 산꾼들의 뻥으로 듣기에는 속내가 있을 듯 하여 “아 그러습니까” 로 답하고 잠시 후 드디어 서봉 정상에 섰다
해발 1510미터 남 덕유산1507.4미터 거의 같은 높이의 남 덕유산이 저 앞에 머리 가득 흰눈을 뒤집어 쓰고 딱 벌어진 어깨로 위풍도 당당하게 서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산이 덕유산 향적봉인 듯 하고 어떤 이는 까마득하게 보이는 산이 지리산이라고도 한다.
역시 고지는 고지인 듯 저 아래 펼쳐진 평지가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땅처럼 아득하게 멀리 보인다.
다시 한번 유달산님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더듬으며 감탄을 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어 증명사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추위로 더 올래 머물지 못하고 하산한다.
하산길 바로 앞에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가며 본 주위풍경은 정말 아직까지 보아온 상고대 풍경과는 판이하게 격이 다른 모습으로 순백의 세상을 연출한다.
또한 좌 우로 길게 가지를 펼치고 있는 고사목에 내려앉은 눈꽃은 그냥 첫사랑을 만났을 때 이유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처럼 공연히 심장이 쿵쾅거리며 감당 못할 감동으로 콧날마저 시큰해져 온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산행 로는 차라리 꿈속 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밤새 내렸던 된서리로 산이 온통 하얗다. 천년세월을 버텨왔다는 주목, 잎새에 파란 구슬방울을 달고 있는 구상나무,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나무의 마른 잎새에도 상고대가 피었다.
금강 줄기와 구천동 계곡에서 올라오는 습한 안개로 축축하게 젖은 나무. 매서운 북풍에 얼어붙어 순식간에 서리꽃을 피웠다. 가지만 가리는 눈꽃과 달리 밑동부터 잎새까지 한치의 틈도 없이 하얗게 덮인 서리꽃. 순백의 상고대가 반짝반짝 햇빛을 반사한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배꽃을 보고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화야 앞으로는 절대 이 눈꽃 앞에선 꽃이라 말하지 마라.
힘들여 올라온 고산 장수덕유를 지나면서 만난 순백의 세상 아마도 신의 실수로 봐서는 안될 천계의 모습을 훔쳐본 듯 아직까지 살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과 그 어떤 유명한 예술가가 창조한 조형예술품중에 이보다 나은 것은 보질 못했다.
등로 역시 쌓인 눈으로 온통 하얗고 주위도 티끌하나 없이 새하얀 서리꽃으로 가득 차있고 그나마 간혹 보이는 나무줄기의 갈색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은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흰색이 이리도 아름다울 줄은 일찍이 선녀의 흰색 날개옷을 보지 못해 모르고 있었는데 아마 선녀의 날개옷이 이와 같으리라.
그 안을 걷고 있는 산우님들의 표정이 아무리 읽으려 해도 무념무상의 보습들이다.
이래서 산꾼들이 그 추위와 그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겨울 산을 찾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처음으로 맞아보는 겨울산행 사실 기대가 컸기에 그간 적잖은 실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오늘 이후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겨울 산을 가슴속 깊이 묻어 놓을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할 뿐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도 그날 그때를 생각하니 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다.
꿈속을 헤매다 남덕유를 넘어온 2팀이 식사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흰눈으로 양탄자 깔고 서리꽃 가득한 나무로 병풍을 둘러치고 푸르고 푸른 하늘로는 지붕 삼아 들어 앉아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산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여 힘들게 지고 온 여러 음식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여 도저히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옆에 슬그머니 붙어 오가피주 한잔 얻어 걸치니 이는 분명 신선들이 마시는 천상주임이 틀림없다.
이어지는 하산로는 월성치까지 약 30여분 감탄사도 누구와의 대화도 필요치 않고 그냥 활홀경에 취해 걷는 발걸음도 의식하지 못한채 마치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 그렇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을 밀듯이 차며 걷는 길은 최고급 양탄자보다 더 푹신하고 녹을 듯 간지러운 감촉이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오니 제법 넓은 길이 나타나고 그 길 역시 눈으로 덮여 있어 아차 비료푸대를 가져올 것을 그냥 온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점차 고도를 낮추어 가며 변해가는 풍경에 이제야 비로소 현실세계로 돌아 왔음을 느낀다.
되돌아 생각하니 어떻게 산행을 이어 왔는지 정말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아예 꿈 이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할 듯 하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주위를 덮고 있어 조금은 삭막한 현실을 느끼게 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직 길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꿈결의 여운을 느끼게 하여 위안을 삼아본다.
산을 찾아 건강을 되찾고 마음의 안정을 이루었으며 짧은 삶을 살아가며 거쳐야할 갖가지 어려운 일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건널 수 있는 여유로움도 생겼고 그런 노력에 대한 하늘의 선물로 푸짐한 상을 오늘 받은 듯 하여 기분은 그저 하늘을 날아갈 듯 하다.
그래도 장장 6시간의 눈 속 산행으로 뻐근한 통증이 현실 감각이 되살아나자 느껴지기 시작한다.
고갯길 비스듬히 서있는 청송과 미래관광 버스에 도착하니 하늘은 회색빛으로 잔뜩 흐려있고 간혹가다 한송이 두송이 눈발이 비치기 시작한다.
미리 출발하는 미래관광버스를 타고 4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고 중간에 정차한 옥산 휴게소에서는 제법 강한 눈발이 날리고 있다.
돌아오는 길도 막힘없이 달려 저녁 8시 조금 넘어 계산역에 내려 아름다운 사연 가슴에 가득안고 귀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름다운 산행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