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를 다녀온 후, 영주에서 자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반 기질을 갖고 있으며 흑백논리가 강한 측면이 있는 친구다. 간혹 연락을 하며 허심한 마음을 주고받는 처지의 친구다. 젊은 날부터 함께 운동하고 산에 오르고, 아주 가끔( 이 분야는 익숙하지 못해) 당구도 치고, 저녁을 나누고... 그러다 늦게 나의 사진 문하생이 된 친구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수많은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다. 우선 성품이 유순하고 매사 긍정적이라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강한 면도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감싸 안는 편이라 별 탈 없이 수십년 지기로 교우하며 지내는 소중한 친구다. 언젠가 자전거를 함께 타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나의 사정으로 약속이 취소된 후 아직도 이행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메시지가 온 것이다. " 아직도 점심을 드십니까?" 나는 이 말의 뜻을 안다. 당시 약속을 할 때 나는 마침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점심을 챙긴 후 13시 30분경 팔당 땜 부근에서 조우하기로 한 것을 약속을 깬 것이다. 그래 즉답을 보냈다. " 아이쿠 죄송, 꾸벅. 이왕지사 말 나온김에 만나죠. 시간은 14:00 경, 점심 챙긴 후 가겠습니다. 다리밑에서 만납시다.
점심을 먹은 후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우선 가장 작은 nap- sack을 챙긴 후, 윈드재킷, 사과 한 알, 커피 내린 물, 선글라스, 스카프, 손수건, 떡 두 개, 스마트 폰, 생수를 챙겨 가지런히 넣었다. 등에 매자 약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은 후 강변을 달렸다. 가로수 부근을 지나자 시원했다. 양달을 지날 땐 뜨거운 햇살이 느껴졌다. 목에 감은 보호 스카프 끝자락에 속도가 붙자 펄럭 거린다. 역풍이 속도를 잡아당긴다. 가슴에 안고 가야 하는 풍향은 장애가 분명하다. 허리를 굽혀 장애 면적을 줄이려다 금방 취소하였다. 왜? 별안간 우리들의 삶 속에 무수한 장애가 생각난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운명, 또는 숙명이라 표현할 만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승부하며 이겨내야 하는 것이 운명이나 숙명이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 모른다. 바람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꽃이 피고 지는 대로 .... 지세에 따라 저항도 변화가 많다. 안으로 굽은 길을 달리자 저항은 순항으로 바뀌더니 벗어나자마자 다시 페달에서 더 큰 힘을 요구해 온다. 끙 하며 힘을 가하자 엉덩이를 통해 허리에 힘이 걸린다. 나는 빠르게 핸들 좌우에 붙어 있는 기아 변속기 변환을 시도하였다. 한결 쉬운 결과가 나를 만족시킨다. 그제야 달릴만 했다. 살처럼 달려 삼각산 정수리가 보이는 곳에서 만났다. 반가움의 표시로 손을 들어 환호하듯 흔들고 감속시킨 후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코스를.. 북한강변을 달리기로 한 애초 계획을 취소하고 꽃 길을 투어 하기로 하였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늦은 백일홍, 벌개미취, 등등 꽃 길 따라 달리기로 한 것이다. 두미강을 건너 두물머리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한강 북쪽 길 따라 달리기로 한 것이다. 여러 번의 굽은 길을 휘몰아 나가자 백일홍 군락지가 나왔다.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백일홍, 꽃말은 그리움과 수다, 그리고 전설은 슬프다. 우리나라 동해, 파도가 사나운 곳이다. 그래 간혹 뱃길이 닫혀 어부들은 조업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을 어부들은 해신께서 노여움이 크셔서 생긴 일이라 했다. 그래서 해신에게 받치는 제물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바로 동내 처녀 중에 간택하였다. 어느 해 몽실이가 뽑혔다. 몽실이는 바우란 총각과 열애 중,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제물로서 간택, 바우는 결심한다. 싸워서 이기리, 몽실과 이렇게 약속한 후 바다로 떠난다. 몽실아~ 내가 돌아올 때 뱃머리에 흰 깃발이 꽂히며 승리, 붉은 깃발이 꽂히며 패해 내가 죽은 것이니 도망쳐라, 아주 멀리멀리, 그 후 몽실이는 오매불망 약혼자를 기다린다. 저 멀리 수평선 뱃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몽실이 가슴은 콩 딱콩 딱.. 배가 가까이 오자 깃발은 붉은빛, 몽실이는 자결해 버린다. 아뿔싸~ 배에서 늠름하게 내린 바우, 몽실이 찾는데 몽실이는 이미... 그만 울부짖으며 바우는 뱃머리를 보자 붉은빛, 왠일? 처절한 싸움에서 해신이란 구렁이 피가 깃발에 튄 것이라는 슬픈 이야기, 바우도 그만 몽실을 따라 떠난다. 상여를 맨 모든 사람들 울음바다, 사람들은 둘을 양지바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묻어 준다. 그러자 묘소에 붉은 꽃이 피었는데 백일동안 지지 않아 사람들은 백일홍이라 불렀단다. 이 전설을 생각하며 꽃밭을 어정쩡 오고 가는 친구 모르게 살짝 사진을 찍어 주었다.
햇살이 철 늦은 백일홍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젠 시간은 오후로 치닫는다. 빛의 파장도 길어질 것이다. 붉은빛이 더 많이 섞이는 시간이 오후 시간이다. 느릿한 빛은 역광으로 피사체를 잡았을 때 만족도가 더 높다. 퇴락해 가는 백일홍 꽃밭, 삶의 여러 형편을 떠오르게 한다. 피고 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생과 사 안에 걸터앉은 시간들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다. 그 삶 안에는 기쁘고, 슬프고,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오만과 겸손, 억압과 자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도록 양면이 존재한다. 어느 길을 가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선택만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삶의 본질이다. 자신도 모르게 섞여야 하는 것도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선각자나 구도자, 성직자들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그 안에서 벗어나 세상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며 바른 진리의 길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종교란 선택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야 할 등대 같은 필수다. 삶의 길을 안내해 주는 밝은 빛! 우리들이 바르게 살아야 할 곳은 천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종교를 통하여 얻으려 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오히려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려면 무수한 자기의 것을 버려야 한다. 버린 후 얻으려 하였을 때 종교적 성찰과 종교적 양심과 종교적 축복은 나에 것으로 완성되다. 완성 후 모든 일은 천국화 된다. 샬롬!
우린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멈추면 쓰러지는 은륜처럼, 자유로운 평화의 심성을 얻기 위해 달려야 한다. 어느곳으로? 진리의 길로 힘차게 달려야 한다. 그것만이 평화를 얻고 자유를 얻는 길!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처음 계획한 대로 우거지 국밥이 구수한 강변 식당 오동나무 그늘에 앉았다. 이곳은 늦은 오후 아차산 능선으로 지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저녁으로 챙긴 우거지 국밥, 마지막 수저를 놓을 때 즈음 친구 아내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이야기인즉슨 명절 장를 보자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젠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조상님들 모시는 일이니 장 잘 보시게, 그리고 강변 자전거 길을 달렸다. 생각대로 해의 꼬리가 강물에 길게 드려졌다. 멋지다. 노을이 살짝 비추더니 쟁반 같은 붉은빛이 이글거리며 산을 넘는다. 하루 또 하루 감사할 일이다. 또 나에게 새로운 하루가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