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32.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병이 들어 죽고, 잔치를 벌이고,물건을 실어 나르고, 땅을 경작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첨하고, 고집을 부리고 오만한 행동을 하고, 의심하고, 음모를 꾸미고,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고, 현실을 탓하고, 사랑하고, 재물을 쌓고, 명예와 권력을 탐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모두 죽어 망자가 되었다. 이번에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때도 모두가 다사다난한 삶을 산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도 모두 죽어 망자가 되었다. 같은 식으로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살다 간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짧은 인생을 가련할 정도로 바동거리며 살다가 순식간에 먼지로 사라져버렸는가.
멀리 볼 것도 없이 내 주변을 둘러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소명을 완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황된 것들을 쫓아 바동거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여기서 우리가 보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의 가치와 비중은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허황된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낙담할 일도 없으므로 만족을 얻을 것이다.
48. 지금은 죽어 이미 망자가 되었지만 과거에 환자들을 돌보며 미간을 찌푸렸던 의사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처럼 다른 사람의 액운을 침통한 얼굴로 점쳐주며 살다 간 점술인은 또 얼마나 많으며, 죽음이며 영생과 관련해 끝없는 논쟁을 벌이다 죽은 철학자며, 수천 명을 죽인 뒤 죽음을 맞은 전쟁 영웅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만하게 군림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폭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헬리케,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처럼 전멸한 도시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세상을 떠나간 내가 알았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자. 한 사람이 죽어 땅에 묻히는가 하면, 이내 또 다른 사람이 죽어갔다. 이 모든 것들이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다. 결국 인간이란 허망하게 살다 죽는 덧없는 존재들이다. 어제는 정자(精子) 에 불과했던 것이 내일이면 미라나 먼지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매 순간 질주하는 동안 하늘의 뜻을 받들며 후회 없는 삶의 여정을 마쳐야 한다. 마치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을 열매 맺게 해준 나무에 감사한 뒤 대지에 떨어지는 잘 익은 올리브처럼 말이다.
제 6장
17. 모든 원소는 아래위, 또는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선행의 움직임은 다르다. 선행의 움직임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한쪽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초연하고 만족스럽게.
제 8장.
25. 루킬라는 베루스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녀 역시 머지않아 죽었다. 세쿤다는 막시무스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녀 역시 머지않아 죽었다. 에피틴카누스는 디오티무스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 자신도 머지않아 죽었고, 안토니누스는 파우스티나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 자신도 머지않아 죽었다. 켈레르는 하드리아누스가 죽은 것을 보았지만 그 자신도 머지 않아 죽었다. 카라크스를 비롯하여, 플라톤학파의 데메트리우스, 에우다이몬, 그 외에 그들과 비스한 현자들, 선경지명이 있던 자들, 기세가 등등했던 위인들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모두 짧은 일생을 마치고 오래전에 죽고 말았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고, 어떤 사람은 전설 속의 위인으로 남았으며, 어떤 사람은 전설로도 남지 않았다. 나의 육신 또한 언젠가는 해체될 것이고, 내 연약한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도 끊어지거나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옮겨져 갈 것임을 기억하라.
31. 아우그스투스가 궁궐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조부, 형제자매, 아내와 자식들, 친척, 친구, 아그리파, 아레이우스, 마이케나스, 의사, 성직자 등 그와 함께 한 모든 왕실 사람들은 죽고 없어졌다. 그 외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일개 개인의 죽음은 물론 폼페이우스 가문처럼 일가족이 전멸당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폼페이우스 가문의 비석에는 '마지막 혈육'이라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그처럼 대를 이으려고 애썼던 사람들고 결국 마지막 혈육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전 인류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