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국보(國寶)엔 약수(藥水)도 있다.
“물은 사람을 평화스럽게 하고 순수하게도 하며, 사람의 기혈(氣血)을 맑게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물을 좋아한다. 천수(泉水)를...” 옛 중국 당(唐)나라을 대표하는 시인, ‘장한가(長恨歌)’로도 유명한 백거이(白居易)가 한 말이다. 시인이 말한 ‘천수’는 “샘에서 나는 물”이다. ‘약수(藥水)’는 “먹어서 몸에 약이 된다는 샘물”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2007년 6월 29일 ‘조선국보 56호’로 지정되어 있는 ‘강서약수’가 ‘근로자들의 위장병 치료에 특효를 보이는 등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보건성 강서요양소가 강서약수를 이용해 근로자들에 대한 의료봉사 사업을 잘 해 나가고 있다”며 오명환 강서요양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강서약수의 치료 효과를 소개했다.
요양소 소장은 “강서약수는 사람 몸에 필요한 각종 미량 원소들과 탄산가스가 포함되어 있어 치료 효과가 대단히 좋을 뿐 아니라 시원하고 마시기도 참 좋다”며 “특히 저산, 무산성염, 만성장염을 비롯한 불치병 환자들이 의사와 간호원들의 지극한 정성과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몸을 회복하고 건강한 몸으로 요양소의 문을 나서고 있다”고 밀했다.
강서약수는 평양 서남쪽 남포시에서 용출되는 세계최고 수준의 천연탄산수로 이미 고구려 문헌에는 7세기부터 약수로 이용되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강서약수에 칼슘, 마그네슘, 철분, 망간, 칼륨, 게르마늄, 아연, 나트륨 등 필수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동맥경화, 만성위염, 위. 십이지장 궤양, 숙취해소 등에 효능이 많은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홍보는 21세기 들어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천리마》 2005년 7월호에 실린 <민족의 자랑 우리의 샘물과 약수>라는 제목의 글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나라는 산천이 아름다울뿐아니라 이르는 곳마다에 이름있는 약수와 온천이 많습니다.》 산좋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불리우는 우리 나라!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건강에 좋은 이름난 샘과 약수가 많아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오석산줄기의 신덕수, 금강산의 금로수, 묘향산의 불로샘.…
우리 나라 샘물들의 수질이 좋은것은 특수한 지질조건과 관련된다. 우리 나라는 국토의 절반이상이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되여있는데 이것들의 풍화층은 물을 깨끗하게 려과시킬뿐아니라 맑게 정화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이런 지대의 샘물은 어데서나 맑고 깨끗하며 물맛이 매우 좋다. 금강산과 묘향산, 칠보산과 구월산 그리고 룡악산과 정방산 등의 물이 좋은것은 이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어느 한 학자는 우리 나라의 신덕수와 도꾜의 수도물을 비교분석하기 위하여 각각 1ℓ분의 용량을 10년동안 랭장보관하였다가 분석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에 의하면 도꾜의 수도물에서는 0.2mmg의 깡지가 앉아 수질이 변질되여 먹을수 없었으나 신덕수에서는 깡지가 없고 수질도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이름난 약수도 많다. 일반적으로 온천과 약수를 통털어 광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샘물(땅속에서 솟아나오는 물) 1ℓ속에 광물질성분이 1g이상 들어있는것을 말한다. 약수는 여러 종류의 약성분을 가진 찬 샘물(보통 7~15℃)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이름난 약수는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그리고 자강도, 강원도 등지에 많다. 대표적로 강서약수, 광명약수, 삼방약수, 옥호동약수, 검산약수, 모향산약수, 대동약수, 초정약수, 룡담약수 등을 들수 있다. 우리 조국의 자랑인 이 이름난 샘과 약수들은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는 온정속에 우리 인민들의 생활과 건강증진에 적극 리용되고있다.“(84쪽)
2006년 8월 28일 강서약수, 즉 ‘강서청산수’ 남북합작 조업식이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 소재 ‘강서청산수’ 남북합작 공장에서 있었다. 그 때 북측 민경련 관계자는 “강서청산수는 7세기 고구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며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 광물질이 적정하게 함유된 천연탄산수로서 1986년부터 국보56호(국가보물)로 지정된 민족의 보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당시 청산리농장 안내원은 ‘김일성 주석이 60년 2월초 청산리에 와서 보름 동안 농민들과 침식을 같이 하면서 이곳 사업을 지도했는데, 그 모범을 따라 위가 아래를 도와주고,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방도를 세우며,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워 대중의 자각과 창발성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청산리 정신, 청산리방법을 이북 사회의 운영원리로 일반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남과 북이 좋은 물이 공유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앞으로 물과 관계없는 말들은 아예 사라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