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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글나루> 4호> 인문학의 고향 --- 문화사랑방 인서점
-온라인 판과 오프라인 인쇄판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1. <글나루 문예> —진달래--한태근 곡----앞 표지
2. 이제, 너희들의 묘비명을 준비하라.-------3
3. 역사의 반동기,를 준비하자. –김동찬 칼럼-------6
4. 서평1. 스님과 시인의 ‘열흘간의 만남’ --------9
5. 서평2. 소설 ‘동굴’---주제 사라마구---------14
6. 수필--<백골단 부활, 잘 버텨얄텐데…>자운영—20
7. 수필—중국 심천에서 온 정병철님의 편지-----23
8. 알림—인서점 강변문화제--------------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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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루>의 인사말-
인간이여!
이제, 너희들의 묘비명을 준비하라.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렇게 우쭐댔지만, 조류독감 에이아이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아! 살 처분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과연 인간이 뭇 생명에 대해 살 처분이라는 처분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는 것인가.
오늘의 이 찬란한 문명은 우리 인간이 이룩한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그 현대문명 앞에서 자연을 회유하는 보잘 것 없는 철새들의 감기 바이러스 왜 이토록 우리 인간은 참담한 무력감에 빠져야 하는가. 그래서 그 무지에서 오는 무력감을 이런 ‘살 처분’이라는 악마의 결정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슬픈 일이다.
2003년, 2006년에 이어 이번 전라 충청지역은 물론 일부 경기지역을 휩쓸고 있는 조류 독감 에이아이 바이러스에 의해 이미 오백만 마리가 넘는 축산농가의 피해가 있었다. 이미 이 지역의 축산업은 초토화 되었고 농민은 상실감을 너머 무력감에 빠졌다.
이는 두 말 할 것 없는 재앙이다. 그런데 이 재앙 앞에서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 당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재앙이 점차 더 도를 높여 우리 인간을 향해 공격을 감행 해 올 것이라는 엄연한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경고 위해 인서점아저씨는 한겨레신문 세상 읽기 칼럼 통해 ‘살 처분 영혼님께!’라는 글을 써서 우리 모두의 경각심을 높이고 했지만… 그리고 이 글을 보내는 이의 이름을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로부터’라고 표현함으로써 현대 문명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지적하고 했지만…
지금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해 우리인간은 본질적인 어떤 변화를 만들어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그리고 그 답은 다 나와 있다. 아주 빤한 사실이다. 이미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물질들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 그것은 문명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나무와 풀과 새와 동물과 곤충과 아주 작은 미물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새들처럼 말이다. 철새는 자신들의 감기 바이러스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서로가 생존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리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인간의 삶을 이어가는 답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조금은 괴로움을 동반하는 그런 삶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삶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키워가기 위해 심오한 불교철학을 아주 잔잔한 이야기로 설파한 ‘열흘간의 만남’과 자본주의에 대한 심각한 비판과 함께 아주 오래된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했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동굴’을 선정했다. 두 권의 책은 만물이 소생하는 이 새 봄의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 두 책은 님들이 늘 자신의 영혼을 맑게 씻고자 하는 그 마음의 성찰성에 충분히 다가가리라고 본다.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의 도사공 아저씨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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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루 칼럼>
역사의 반동기, 지도자를 준비하자.
뉴욕유권자쎈터 사무총장 김동찬
* 이 글은 08. 4. 25일 다음까페 ‘인사모’의 꼬리말로 올라온 것을 <글나루> 편집부가 선정 약간 수정해서 올린 것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이, 역사의 역동 이후 반동은 맞을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마치 인생이 그렇듯이…, 그 역동과 반동의 틈새는 조정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현명하다면 욕심을 내지 않고 내실을 다지면서 훗날의 또 다른 역동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준비가 없이 욕심을 내거나 나태해 지면 결국 내리막을 걷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그 승리의 공간을 보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손에 잡힌 권력 공간에서 지나친 욕심을 내거나 나태했던 것은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필연적 규칙을 몰랐다기보다 닥쳐온 역사의 역동기 안에서 과욕을 부리거나 나태한 나머지 이후 역사에 대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좀 더 현명했었더라면 지난 시기 그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그 승리의 공간 안에서 미래에 닥쳐올 역사의 반동기를 대비한 준비로서 후비대와 지도력을 키워나갔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좀 더 확실하게 현실이 장악될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반동 또한 제압됨으로써 모처럼의 승리를 놓치지 않고 역사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로 살려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집권 초기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역사의 역동기에 진영진영에 주어졌던 권력의 정당성을 가지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서 사회를 통합하고 그 막강한 힘으로 친일 친미 등 역사의 반동적 외세를 제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조중동에게 면제부를 주었고 여당으로서의 진보진영이 지도력과 통합능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한없이 애석한 문제였습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을 때 잘났다고 하던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라던가 몽골로 피난을 했거나 아니면 중국으로 투항을 한데 비해, 오히려 갈 곳이 없었던 이 땅의 민중들은 그 잘난 자들이 버리고 간 이 땅을 살아 내면서 지켰고 끝내 다시 나라를 세우고 또 이 땅의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일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심기일전해서 보수 반동에 의해 장악된 이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 그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 인식과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역사의 현실이 요구하는 희망과 이상을 모아 미래를 계획하고 이에 대한 실천주체로서의 조직과 지도부와 지도자들을 창출해 나간다면 우리의 그런 뼈를 깎는 노력에 대해 지금 이 현실의 반동은 또 다시 우리의 역동적 기회의 시기를 안겨주리라고 봅니다.
그러지 않고 패배주의에 빠져서 엉뚱하게도 민초들을 원망하면서 야속하다 타령을 한다면 결국 이땅의 미래는 계속해서 반동의 나락으로 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민초들은 진실과 정의로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지도자와 능력있는 주도세력에게 박수를 보내고 선택의 손을 들어 줄 것입니다.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봅니다. 진보와 계혁, 민주주의와 자주, 그리고 통일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는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봅니다. 이러한 일을 하지않고 변화만을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문화사랑방 인서점>의 인문학 읽기 운동 <글나루> 머슴아저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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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그 동안 이 소식지를 파지를 모아서 제작해 왔으나
환경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 가짐도 중요하지만 <글나루> 소식지를 모아 두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새 종이로 제작해 달라는 여러분의 요청이 있어서
이 달부터는 새 종이로 깔끔하게 만들었습니다.
* 다만 복사 수준이 떨어지는군요…. 죄송….
*** 현대사회, 그 신자유주의 세상을 살아가자면, 꾸준히 지식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날엔 가 님의 걸음이 늦어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은 현대인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입니다. 우리의 머리와 뇌는 지식을 요구합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에너지는 지식이라는 먹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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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08.4월 <글나루> 서평1
잠시, 스님이 되고 시인도 돼보자.
<열흘간의 만남> 신경림시인과 오현스님 지음
그렇다. 소 머슴이 중이 되고 강 마을의 철없는 소년이 시인이 된 것처럼, 잠시 일손을 놓고 청정한 자연으로 돌아가 두런두런 노스님과 노 시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 발길을 따라 스님이 되어 보고 또 시인이 돼보면 어떨까. 스님 오현이나 시인 신경림은 여기서 문득 스님과 시인이라는 자신의 본령조차 서슴없이 내려놓고 상대의 세계를 넘본다. 우리도 그런 외도의 재미에 빠지는 쏠쏠한 재미를 맛보기로 하자. 흥미롭지 않은가.
사실, 좀 송구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수명의 완숙기를 거쳐 그 너머 유유자적의 광활한 공간에서 이미 초연한 걸음을 걷고 있는 스님이며 시인이다. 그런데 이 어른들이 생의 모든 경험을 통해 이룩한 것도 수월찮으련만 그럼에도 아직 다 이루지 못한 뭔 아쉬움이 무던히도 남아 있었던가. 속세의 욕망을 구태여 감추지 않고 활짝 들어내고 끄집어내어 이야기 상대의 안방으로 들고 들어가서 모진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이 역지사지의 말과 생각과 사상이 펼쳐놓는 번뜩이는 충돌을 보라.
두 분의 언어가 혹은 대결하고 혹은 갈등하지만 그러나 끝내 이 어른들이 보는 현실과 이상, 그리고 유물론과 관념론, 음과 양은 서로 싸고돌다가 일 점의 꼭지를 만들며 휘몰아쳐 태극에서 소용돌이를 마감한다. 이런 지식과 지성과 지혜가 융합하고 충돌하는 담론의 미덕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다움이다. 열흘동안이나 흐르는 언어의 대하가 흐름을 멈추고 드디어 융합하는 순간에 우리는 탄복을 금 할 수 없다. 사실 그들이 뽑아 든 칼은 그들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의 이상이고 우리의 진리이며 진실이 아니더냐. 우리는 이 지혜의 잔치가 단지 보기 드문 구경거리가 아님을 잘 안다. 당연히 이 잔치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숭고와 지순함으로 안내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신경림시인이 “중국을 여행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깼다”고 하자, “그렇다면 요즘은 자본주의를 신봉하느냐?”고 오현 스님은 비웃는다. 구석으로 몰린 시인은 “결코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뒷걸음을 친다. 시인의 패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님이 연이어 칼끝을 들이대자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다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라고 신경림시인이 또 한 발 물러서지만 스님의 공격은 더욱 거세진다. 드디어 “제가 말하고 싶은 것~ ”이라고 꼬리를 내리다가 이어 “인간의 삶을 무슨 ‘주의’라는 것으로 묶어 놓고 그 개념에 맞춰 살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억압을 초래하는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라는 말로 항복을 간청하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재색식명수’ 즉 “재물과 이성과 먹거리와 명예와 잠을 자는 욕심”은 인간의 근본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욕망인데 “불가는 이중 성욕을 욕망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중은 인간의 이런 근본적 욕망을 막기 위해 결혼을 금하고 있다”고 하자, 시인은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종자를 이어갈 수 있느냐?”고 반격한다. 더구나 “불교가 영속하기 위해서도 이런 인간욕망의 근원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중생의 인간적 생존과 삶에 기생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느냐?”고 공격해서 스님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는다. 이에 스님은 ‘윤회사상’을 동원하여 불가의 관념적 모순을 인간의 보편적 삶과 존재가 근본을 이루는 현실로 이끌어 내어 설명하는 유물론으로 회귀한다. 허기야 영원한 시간과 영원한 공간과 영원한 존재는 결국 존재의 운명론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유물론이자 관념론이며 그것은 우주론이니 이는 바로 시인이 말하는 유물론을 스님이 받아드리는 항복의 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물론과 관념론 다시 말해서 물질과 신의 문제를 인식의 대소 양극단으로 끌고 가서 우주론에 빠트리는 것은 두 어른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를 함께 매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변증법적 전개나 통일이 아닐 뿐더러, 20세기가 남긴 이데올로기 이후를 감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꽤나 먼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마 우리시대 사고의 한계가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서 였던가. 두 어른은 자신들이 겪어 냈던 ‘사랑타령’을 한 꼭지씩 주고 받은 끝에 ‘사랑’에 대하여 아니 결국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규정에 대하여 모종의 비상한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잘 해주기”이며 “서로에게 비위 맞춰주기”이며 “서로에게 아부하기”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 나가면 “남녀간에는 사랑이 무르익고 친구간에는 우정이 생기고 사제간에는 믿음이 생길 것”이며 그러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고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하여간,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어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래서 불경을 논해보고 문학을 논해보고 그걸 무기로 세상을 쪼개 보고 이어 보고 붙여도 보자. 또 그런 수준을 넘어서서 녹이고 얼리고 증발시켜 새로운 세상을 설계해 보자. 때는 봄이지 않은가. 온 세상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교접하고 잉태하고 낳고 만발하기 위해 꽃을 피우지 않는가. 갇혔던 마음을 풀어 너른 세상에 방목하자.
겨울동안 냉기에 갇혔던 마음을 녹이고 열고 풀어서 불가와 문학은 물론 역사의 문틈을 헤집고 들어가 엿보면서 그 근본의 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혹 알겠는가. 불가의 심오한 진면목을 친견하거나 또 시인이 목을 매달아도 좋다는 그 문학의 참 세계를 맛보기라도 할지… 그러다 보면 ‘문득 깨닫는 ’오! 돈오돈수의 횡재라도 할지…
그렇다. 그들과 함께 인문학의 열차를 타고 오욕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인생의 길을 따라 여행’ 하면서 그 온갖 고통의 근원이 되고 있는 ‘사랑과 행복의 이중주’를 감상하고 한 없이 아름답고 귀한 이 지구자연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개발과 보존’의 소용돌이 논쟁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만질수록 커지는 욕망’이라던가 뭐가 뭔지 알 듯 모를 듯한 ‘통일’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 보기로 하자. 신자유주의가 난무하는 속에 정신 못 차리는 우리의 영혼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활기를 찾아주자.
인생은 필연보다는 우연이라고 했다.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가 불가의 영원한 숙제라고 했지만, 그러나 오현스님은 말하길 ‘알고 보면 도를 깨치는 것은 세수를 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했다. 사월초파일, 불탄의 성스러운 날에 즈음하여 문득 꽃길 따라 걷던 절간의 해우소에서 님이 그런 횡재를 누리라면… 이 덕담 또한 이 봄의 꽃이 아닐까. * *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 도사공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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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08.4월 <글나루> 서평2
소설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불가의 ‘윤회사상’은 우주를 무한의 시공으로 보면서도 그 안에 여섯 개의 섬이 있고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이 전생의 업을 따라 이 여섯 개의 섬을 떠도는 존재로 보고 있다. 이를테면 극선과 극악은 ‘하늘’과 ‘지옥’에 보내져서 천상락과 무한고통으로 값을 치르게 되며, 그 하늘과 지옥의 사이에 ‘인간계’, ‘축생계’, ‘아귀도’, ‘수라도’가 있어, 이미 전생의 업보를 따라 배정된 이승의 삶을 다시 심판하여 이 4도에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업 장을 짊어지고 우주의 무한 시공을 떠도는 윤회의 존재라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 소설 ‘동굴’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하기위해 플라톤의 동굴우화를 비유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저자의 이런 자본주의 비판정신과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에 대입해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윤회사상에 등장하는 아귀도와 수라도의 징벌 분위기나 그리고 그 두 세계를 살아내는 백성 ‘아수라’의 삶이야 말로 바로 주제 사라마구가 비판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세계와 너무도 흡사하니 말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 생으로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에 진출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그는 1947년 ‘죄악의 땅’이란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후 19년 이라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공산당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82년 ‘수도원의 비망록’을 발표하면서 일약 유럽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명실공히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세계의 지성으로 그리고 살아있는 작가정신의 표본으로 칭송되고있다. 그는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풍자로 경계 없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함으로서 드디어 1998년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설 ‘동굴’은 우화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소설에서 풀라톤의 우화 ‘동굴 비유’를 현대 자본주의에 대입해서,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다른 세상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으며, 그 가정 위에서 잘 못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그 희망을 향해 탈출하고자 시도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플라통의 동굴비유를 들어 오늘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자본주의적 현실을 ‘인간이 가서는 안 될 환영’으로 보고 있다. 이 환영은 동굴의 벽면에 비친 어떤 진실의 ‘어른 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환영의 세계, 그 ‘가짜의 세계’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슬에 묶여 있는 죽음의 존재’이기 때문에 플라톤의 동굴우화 등장하는 ‘사슬에 묶여 있는 시체’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라는 사슬에 묶여 있는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는 것이며 그 죽음의 무덤이며 공동묘지에 불과하다. 탈출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노년의 주제 사라마구가 자신의 생각을 총정리하고 이를 자본주의라는 현실에 쏟아 부으며 비판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우리는 그가 이미 마음을 접기는 했어도 한 때의 열정을 다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탈출하는 희망에 쏟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자본주의에 의해 사회주의가 붕괴되었고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이 상상의 원천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양대 이데올로기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적인 이념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주제 사라마구가 발견한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소설 ‘동굴’을 읽으면서 우리는 여느 소설처럼 소설의 이야기라던가 줄거리에 눈길을 보내선 안 된다. 그래선 주제 사라마구가 상상한 세상을 발견할 수 없다. 그 줄거리나 이야기는 그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 설치한 허접한 도구이거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분위기에 불과하다.
저자가 우리의 눈길을 유혹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주인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와 그의 딸 마르타 그리고 사위 마르살, 이웃 아주머니, 한 마리의 떠돌이 개가 열고 들어가서 펼쳐 놓고 있는 가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는 그들이 나누는 말의 내면을 통과해서 그들이 거기에 건설해 놓고 있는 광장에 도달해야 한다.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 놓은 이 광장은 먼 곳이 아니라 그들이 늘 그렇게 살아왔던 그들의 삶터이며 늘 그래 왔듯이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또 늘 그렇게 함께 해야 할 기억들의 세상이다. 그 기억들의 세상에서 사람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도자기와 흙과 바람과 나무와 개 개의 흙 묻은 발자국까지도 또 그들의 사랑과 증오 같은 것 까지도 거기서 거기선 모두가 따듯한 나의 부분으로 태어난다. 그 기억들의 광장이 주제 사라마구가 창조한 희망의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 근처의 쉼터와 그 쉼터에 아주 오랫동안 서 있는 뽕나무며 그 곳의 흙과 거기 서서 바라보는 먼 곳의 풍광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사물들과의 대화이며 그 속에 끼어 들어서 함께하는 시프리아노 알고르 자신과 또 딸과 사위와 강아지들이 나누는 마음이며 그 마음들의 세계다. 거기선 사람과 동물과 벌레와 사물들이 구분되어져서는 안 되는 더구나 선과 악도 구분되어서는 안 되는 그런 세계다. 이 세계에서는 자본주의라던가 사회주의 같은 그리고 사람을 갉아 먹는 세상의 이해득실 같은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바 그 광장이 주제 사라마구가 창조해 놓은 유토피아의 세상이다.
그랬다. 그들이 쎈터로 이사 했을 때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이제 필요한 것이라고는 이 집 식구들이 저 물건들 사이에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 뿐’이라고 한 말은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탈출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그의 딸 마르타도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거기서 쎈터의 상주 경비원 마르살 가초의 아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의 삶을 비참한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그건 바로 그들이 탈출해야 할 동굴 자본주의가 아니던가. *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도사공아저씨 심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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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방 소식
08년 주말농장에서
08년 새 봄
주말농장 <개미와 베짱이>의 개장식 날의 풍경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모처럼 오신 어른 몇 분은 추억을 되살려 열심히 농삿일을 하지만...
글쎄 과연 소출이 얼마나 될찌....
묘지위에 햇쌀은 높이 떠서
쨍쨍 내려 쪼이고
여기 저기 산비탈엔
하얀 산벗꼿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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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글나루>
l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전문화의 시대입니다.
l 공부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 인문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최소한 한 달 두 세권의 책 정도는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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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루> 수필
(이 글은 자운영님께서 08년 3월 21일자 인사모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이 땅의 노동운동이 걸어가야 하는 고된 나날들… 그 고독한 시간에 뜯어 보는 한 통의 편지는 감동 그 자체일 것입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혜경님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젠텍 승리의 낭보를 듣고 보낸 한 통의 편지는 그 투쟁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운영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름다운 글로 뽑아 여기 <글나루>수필로 올립니다. 선정된 글에 대해서는 작지만 책으로 만든 원고료를 보내드립니다.
문화사랑방 인서점 <글나루> 편집부 올림
<글나루> 수필
<백골단 부활… 다치지 않고 잘 버텨얄텐데…>
글쓴이 자운영
아~ 혜경님....
무예님의 글에 댓글을 달아 놓으신 걸 봤는데, 바로 제게 하시는 말씀이군요, 그렇지요? 그래요 제가 바로 그 ‘자운영’입니다. 제가 국어국문과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가 ‘영어가 싫다’는 것도 포함돼있다 보니 꼬부랑 글씨만 보면 괜히 어지럼증이 생긴답니다. 그래도, 제 걱정을 해 주시는 건 알아봤네요^^*. 저 또한 댓글을 달려고 쓰다 보니 내용 초과 메시지가 떠서 다른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게시판 한 줄을 차지하기로 했습니다.
실은, 며칠 전 인서점사랑방에 왔다가 '자운영' 세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혜경님 글에 댓글로도 남겼지만 혜경님께서 이렇게 좋아라 축하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고, 또 많은 힘이 되었답니다. 덕분에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지요. '사랑니'가 속을 썩이는 거 빼고는요~^^*
그런데 날마다 하하호호 웃고 다니는 저와는 달리, 저의 남편은 걱정을 한아름 싸 안고 살아 간답니다. 오늘도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로 경주에 내려갔는데 전국에 있는 수많은 장투사업장 문제가 올해에는 해결이 되려는지.... 앗참! 며칠 전, 백골단이 부활될 거라는 기사를 봤는데 오늘은 또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한테 면책권을 준다는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음! 고용주들을 위해서 노동자를 죽이는 이명박 정부. 점점 더 심한 정책들이 쏟아질 테고~ 점점 더 강하게 이땅의 노동자와 민주 세력들을 짓밟을 텐데… 음~ 이제 각오해야 겠네요.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잘 버텨줘얄텐데…단지 그걸 바랄 뿐이니… 정말 마음이 아플 뿐이지요. 그러나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조금은 그걸 믿고 싶고요.
혜경님 글에 댓글로 남겼듯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로 교섭을 시작하긴 했지만, 여전히 회사는 "시간만 끌 속셈’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엔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때까지 하루에 30만원씩 강제 이행금을 내라"는 ‘법원의 가처분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신청을 했더라고 요. 그런데.....^^* 우리 쪽에서는 "취소"결정이 날 지도 모른다는 음!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하고 법정으로 달려 갔는데
판사 왈 "만약 가처분 신청(강제 이행금)을 취소했는데 회사에서 성실하게 교섭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후 이젠텍 분회가 강제이행금을 신청한다면 그때 가서 당신들이 "성실하게" 교섭에 임했다는 증거를 내면 된다. 나는 회사가 낸 가처분 취소 신청을 받아 줄 생각이 없다. 알아서 취소해라."이렇게 판결을 내렸네요. 흥!! 고소하군요. 이번 2월에 평택지원으로 오신 분인 것 같은데 우리에게도 회사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결정이라 우리쪽이야 뭐 뻔하지만… 회사 쪽 변호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더라고 요. 헤~^^
이젠텍 문제 해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작은 판결일 수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 힘 받는 일이 하나씩 생기면서 그걸 징검다리 삼아 3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게 아닐까 합니다. 또한 혜경님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보태 주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시고요~ 정말 좋은 소식으로 혜경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
(출처 :인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 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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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루> 수필 (편지)
--- 중국 심천에서 온 정병철님의 편지
* 08년 4월 26일 인서점 다음 까페에 올라와 있는 중국 심천의 정병철님의 글입니다. 한 동안 당진으로 내려가
교육사업을 했지만 여의치 않자 서울로 옮겨 삶을 재 가동하고자 했으나, “아저씨 조금 떠나 볼까 합니다” 며,
들렸던 정병철, 오늘 까폐에 올라 온 글 보고 반가웠습니다. 부디 잘 하고 있어!
병철아! 난 널 믿어 뭘 꼭 해내고 말껴….
인서점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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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모 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중국 심천으로
삶의 공간을 옮기고, 처음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과거 중국으로 공부하러 올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중국심천에 발을 딛었습니다. 이제 3주가 조금 넘어 갔네요. 정신없이 일을 하고 나서 한 숨돌리니 나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그 시간 동안 못 본,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과 가까웠던 여러 지인들에게라도 연락 드리고 인사 드려야 한다고 맘을 먹곤 했지만 정작 연락한번 못 드리고 살았습니다. ^^;;
PCBANK라고 하는 Brand를 가진 회사의 중국지사(아직은 사무소 수준이지만) 책임자로 왔습니다. 말이 책임자지 저 하나 달랑 있고, 한국에서 필요한 인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근간 중국직원 한둘 정도를 구하고, 이런저런 정리가 되고 나면, 조금 수월하게 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 꿈을 가지고 다시 중국에 온 것이라 이리저리 궁리가 많습니다만, 우선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앞으로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이 엄마랑 아이도 그런대로 잘 적응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 유치원이 너무 멀어서(한국유치원) 그게 조금 걱정이네요.
혹시라도 심천이나 홍콩에 오실 일들이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다른 것은 못해도, 집에서 따뜻한 밥 한끼는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락처는 138-2526-1024 이구요.
집은 심천 남산구에 있는 양광아파트 단지입니다.
항상 건강들 하시고, 즐거운 하루하루, 깊은 고민과 빠른 움직임으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삶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심천에서 정병철 올림
광고 * 여러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많이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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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표지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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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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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소식 <글나루> 4호(08년 4월호) ----(전체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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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글나루 문예> —진달래--한태근 곡----앞 표지
2. 이제, 너희들의 묘비명을 준비하라.-------3
3. 역사의 반동기,를 준비하자. –김동찬 칼럼-------6
4. 서평1. 스님과 시인의 ‘열흘간의 만남’ --------9
5. 서평2. 소설 ‘동굴’---주제 사라마구---------14
6. 수필--<백골단 부활, 잘 버텨얄텐데…>자운영—20
7. 수필—중국 심천에서 온 정병철님의 편지-----23
8. 알림—인서점 강변문화제--------------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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