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동창까페에 써 논 글을 읽다가 그 때 두놈들과 다투며 열받던 생각도 나고
군에 간 현섭이도 보고싶고
지금이나 그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이 부족한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두 아들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에
그때의 섭섭했던 마음을 고마움으로 돌리며 추억에 잠겨 그 글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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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침 영섭이,현섭이 두녀석을 태우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모처럼 두 아들놈들을 대동하고 나서니 든든하고 오랫만에 날씨도 쾌청한지라
기분이 꽤 괜찮았지요.
그런데 대화가 계속될수록 이놈들이 저를 열받게하는거에요.
`엄마, 오늘 저녁에도 약속 있으세요?'
`그래, 이번주에 저녁약속이 풀로 찼네.
`그런데 엄마만 맛있는거 매일 드시면 아무거나 대충 끼니 때우는
자식들이 눈에 밟히지 않으세요?
전 대학친구들이 맛있는거 먹으러 자꾸 가자그래도 성남의 어려운 친구들이
눈에 어른거려 잘 안가게 되던데요' 하는 현섭이 말에
영섭이 대답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우리엄만 자식들이 눈에 밟힐 사람이 아니지, 너 아직도 그거 모르냐?
이 말에 애들보고 웃겨도 너무 웃긴다며 소리질렀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굶겼냐? 눈에 밟히게 이놈들아
냉장고에 먹을것 채워놔 시시때때 맛있는거 해주고 사먹여 뭐가 불만인데?로
시작하여 출근길 내내 설왕설래
제가 약올라할수록 빙긋이 웃으며 저를 놀려먹는 두놈들에게 일침을 가하려
한마디했습니다.
`얘들아,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좋은 엄마라고 하는데 너희들 왜그래?'
이말에 아이들 한술 더 떠 박수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들같이 착하고 효자인 아들들을 둔 덕에 엄마가 좋은엄마란 자리에
무임승차한거지 엄마가 잘해서 그런게 아니라네요.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엄마 기좀 세워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나쁜놈들..
얼마전에 TV 드라마를 보다가 현섭이가 한 말이 생각나더군요.
드라마에서 수험생인 딸을 기다리느라 엄마가 밤늦게까지 소파에서 졸고있는모습을 본 현섭이가 `우리 엄만 저런적이 한번도 없는데' 하더군요.
엄마는 자기가 오면 쿨쿨 주무시고 계시거나 아직 안들어오셨거나
둘중에 하나였다며 수험생인 자기에게 하나도 보탬이 안됐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엄마들이 많이 하는 픽업도 한번 안해준건 두말 할것도 없구요.
그런 기준으로보면 전 빵점엄마임이 틀림없으니 할 말이 없답니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혼신을 다하는 다른엄마들에 비해
너무나 편하게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하게 맡겨놓고
저는 제 일에 열심이면서 각자가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솔선수범하며
대신 스트레스 안주고 잔소리 안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일 하라며 넓은 울타리안에서 마음껏 활개를 펴라고
제 작은 틀안에 가두지 않고 대범하게 키우느라 애쓴 이 엄마의 노고는
당연지사로 여기고 못 해 준것만 이죽거리는 두놈들을 향해
항변하고 싶은 말이 태산같았지만 속으로만 되새겼습니다.
`너희들 지금 엄마 죽이기에 신났지?
엄마가 좀처럼 약한모습 안 보이니까 마냥 강심장인줄 알고 찔러보나본데
얘들아 엄마도 실은 연약한 여자란다.
가뜩이나 찜통더위가 사람 죽이는데 너희들까지 이러면
엄마를 두번 죽이는거라는거 너희들 알고 있니?
속으로만 웅얼거리다가 아들놈들 키워봐야 공도 없고
말짱 도루묵이라고 씩씩거리는 저를 빙글거리며 쳐다보던 영섭이의
한마디가 정말 저를 죽이더군요.
`엄마,제가 엄마의 핍박과 압제를 벗어나 최감독으로 성공하는날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제가 성공해서 인터뷰하는날 엄마의 모습이 꼭 보고싶어요.'
올드보이의 최민식은 칸영화제 시상식자리에서 영화를 아주 좋아하시는
어머니덕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이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싶다고 하던데
전 지금보다 더 엄마노릇을 잘 할 자신이 없으니
아들놈들 앞길에 걸림돌이나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첫댓글 엄마의 숲속에서 잘 자란 모습이 부럽네요. 권사님도 더 크고 있잔아요. 임 권사님 세번 사세요. 화이팅!
글로 보아도 현장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 그 녀석들 엄마랑 노는 재미에 늘 집에가면 즐겁다던걸요 뭘. 너무 바쁜 엄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불만일겁니다.